20030523103807-Ash%20Ra%20TempelAsh Ra Tempel – Ash Ra Tempel – Ohr (56013), 1971

 

 

즉흥과 새로운 사운드로 빚어낸 광폭하고 우주적인 사이키델릭 록

초기 크라우트 록의 대표적 그룹들, 예컨대 아몬 듈, 구루 구루, 탠저린 드림의 작품은 미리 정해진 바가 없는 즉흥 연주 혹은 즉흥성이 짙은 연주를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 블루스나 록 비트가 내재되어 있는 작품을 지향했다는 면에서 ‘프리 록’이라 불리울 만하다. 애시 라 템펠의 동명 타이틀 첫 앨범 역시 그 전형을 보여준다. 일그러진 전기 기타의 증폭음, 청각을 시각으로 환원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된 전자 음향은 이전 사이키델릭의 소박하고도 개인적인 초현실과는 또 다른 층위의 초현실 세계를 구현한다. 이성이 만들어낸 상상의 조각을 계산적으로 재편한 것이 아닌, 육체에 각인된 희미한 기억들을 동물적으로 포착하여 이어나간 결과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음악은 거침없고, 광폭하며, 육감적이다. 마누엘 괴트싱에 따르면, 그는 본 작을 통해 “블루스로부터 영향 받은 즉흥과 새로운 사운드의 합체”를 기도했으며, “작곡과 즉흥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려 했다.

그는 애시 라 템펠 이전에 스티플 체이스 블루스밴드(Steeple Chase Bluesband)란 그룹에서 존 메이올 스타일의 곡들을 연주한 바 있다. 하지만 본 앨범에 블루스 스타일의 연주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만들어낸 기타 사운드는 그 스스로 약물에 의한 영향을 시인했듯이 다분히 사이키델릭적이고, 새로운 테크닉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리’ 그 자체에 많은 관심을 갖는 등 현대 음악적인 접근에 더 경도되어 있다.

스티플 체이스 블루스밴드는 마누엘 쾨트싱(Manuel Goettsching, 기타), 하르트무트 엔케(Hartmut Enke, 베이스), 불프 아르프(Wulf Arp, 드럼) 그리고 볼커 지벨(Volker Zibell)에 의해 1969년 베를린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정식 앨범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1970년 5월 19일 지방 방송에서의 라이브 음원 중 5곡이 이후 발매된 마누엘 괴트싱의 미발표곡 컴파일레이션 앨범 [The Private Tapes Vol.1]에 수록되어 있다. 아르프와 지벨이 탈퇴한 후,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 출신의 드러머 클라우스 슐체(Klaus Schulze)가 가입하고 그룹은 애시 라 템펠로 개명된다. 이들은 슐체와 함께 탠저린 드림의 오리지널 멤버였으며 이후 기괴한 전자음악가로 명성을 떨칠 콘라트 쉬니츨러(Konrad Schnitzler)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청중들 앞에서 장시간의 즉흥 연주를 선보이곤 했다. 1971년 3월, 함부르크에서 이들은 크라우트 록의 대부이자 탁월한 엔지니어링 솜씨를 보여준 코니 프랑크(Conny Plank)와 함께 데뷔 앨범을 녹음한다. 11일 만에 완성된 이 앨범은 독일 언더그라운드 뮤직의 보고인 오르(Ohr) 레이블을 통해 동년 6월에 발매된다.

훌륭한 변형 커버에 담긴 음반에는 양 면 각각 한 곡만이 담겨 있으며 이 둘 모두 보컬이 배제된 순수 연주곡이다. 상업적인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첫 곡인 “Amboss”는 크라우트 록, 특히 실험적 사이키델릭 하드 록의 특질과 매력을 한 데 담고 있는 명곡이다. 이들의 음악은 캔(Can),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노이!(Neu!)의 계산된, 짜임새 있는 구조적 작곡 패턴의 음악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한 마디로 말해 ‘반(反)이성적’인 음악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들의 곡을 들으며 무의식과 같은 이성의 이면을 떠올리거나, 이성이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는 일맥 상통하지만 이들의 음악에 담긴 영상적 이미지는 60년대 말 영미 사이키델릭 록 작품의 소박하고도 낙관적인, ‘만화경’ 같은 것이 아니라, 암울하고도 보다 심층적인 그 무엇으로 가득 차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본 작은 핑크 플로이드의 [A Saucerful Of Secrets](1968)와 닮아 있지만, 보다 원초적이고도 역동적인 음공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 테크노 음악의 트랜스적 속성과 유사하다. 선율과 리듬을 리드하는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음향 효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괴트싱의 자극적인 전기 기타 연주, 독자적 파트로서도 손색이 없는 엔케의 둔중한 깁슨 베이스 연주, 타임 키핑을 별로 고려치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슐체의 폭압적이고 – 말 그대로 – ‘신들린’ 드러밍은 기존의 로큰롤은 물론 정형화된 어떤 형태의 대중 음악의 범주에서도 벗어나 있다. 20세기 현대 예술의 주요 과제가 철학과 과학이 새롭게 발견한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대한 표현과 묘사 방법을 탐색하는 것이라면, 본 작은 결과적으로 기존 대중 음악의 영역보다는 현대 예술의 영역에 맞닿아 있다. 바꾸어 말해 그들은 대중 음악으로 여겨졌던 록과 학술적 현대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한다. 이는 서로 다른 범주의 형식적 요소들을 혼합했던 클래시컬 록이나 심포닉 록의 접근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첫 곡이 혼란스러운 비트와 날카로운 음향으로 가득 한 공격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역동성을 보여주었다면, 두 번째로 담긴 “Traummaschine”는 불명료한 전자음과 음향 효과가 주를 이룬 정적인 곡이다. 클라우스 슐체와 마누엘 괴트싱이 만들어낸 이런 소리들은 눈부신 하얀 빛과 짙은 그림자로 채워진 흑백의 초현실주의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후 애시 라 템펠은 클라우스 슐체 대신 볼프강 뮐러(Wolfgang Mueller)를 드러머로 기용한 앨범 [Schwingungen](1972)을 발표했으며, 사이키델릭 문화의 선구자이자 LSD 전파를 주도한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와 함께 그룹의 작품 중 가장 사이키델릭한 성향이 짙은 앨범 [Seven Up](1972)을 제작한다(이 앨범 명은 녹음 당시 LSD를 청량음료에 타 마신 일에서 연유한다). 이즈음 괴트싱은 그룹 발렌쉬타인(Wallenstein)의 하랄트 그로스코프(Harald Grosskopf), 위르겐 돌라제(Juergen Dollase) 그리고 솔로 활동을 시작한 클라우스 슐체, 엔지니어 디터 디르크스(Dieter Dierks) 등과 프로젝트 그룹 코즈믹 쿠리어즈 세션(Cosmic Couries Session)을 조직하여 이른바 코즈믹 록(German Cosmic Rock)의 범주에 해당하는 곡들을 녹음한다. 이것들은 코스미세 무지크(Kosmische Musik) 레이블을 통해 앨범으로 발매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앨범 [Cosmic Jokers], [Galactic Supermarket]은 당시 마누엘 괴트싱이나 클라우스 슐체가 확립한 스페이시한 사운드 메이킹 기법, 약물과 현대 미술의 영향을 받은 초현실적이고도 역동적인 음공간 구현 방법이 집약된 탁월한 작품이다. 영국 레이블인 버진(Virgin)으로 이적한 다음부터 그는 전자 음악에 점차 경도된다. 특히 80년 이후의 작품들은 이전 크라우트 록의 속성이 많이 줄어든 단순하고 반복적인 전자음 일색으로 오히려 하우스 뮤직 팬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얻는다.

발표된 지 32년이 지난 애시 라 템펠의 데뷔 앨범에서 우리는 꿈틀거리는 욕망을 본다.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이고 죽음에 대한 욕망이며 허상에 대한 욕망이다. 이는 지극히 시대적이고 문화적이다.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 약물 문화의 영향, 음향 기술, 20세기 음악의 에토스가 서로 화학 작용을 일으켜 만들어낸 본 작은 70년대 초 독일 언더그라운드 록 씬의 모습을 선명하게 반영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포스트 록의 원류를 발견한다. 20030521 | 전정기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Amboss
2. Traummas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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