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과잉시대의 록 음악

만일 록 음악의 주기적 부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면,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즉 그것이 상업적 성공만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연주기교와 스타일상의 차별적인 혁신의 주기를 말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록의 진정성과 대안적 정신을 지녔는지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그려질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 폭발한 시애틀 그런지 록(grunge rock)은 위의 세 가지 기준 모두를 적용했을 때 일정한 성과를 이루어낸 드문 사례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런지의 영광은 엄청난 패배주의와 함께 비극적인 파국을 맞았으며 이제 아무도 록의 대안문화적 폭발력과 음악적 비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록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닐 영(Neil Young)의 신념이 여전히 비장함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런지 이후의 록 음악은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게임과 같은 음악 외적 대체재는 물론이고 대중음악 내부에서도 록 음악은 상업적 인기와 예술적 지위 모두를 전자음악과 힙합에 내어주고 있다.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테크놀로지 과잉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록 밴드에서 연주하는 것은 3D 업종에나 속하는 일로 비쳐진다. 실제로 록 밴드 내에서 가장 체력 소모가 심한 드러머들의 경우 공연 때마다 땀을 한 양동이씩 쏟으며 심지어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는 반면, DJ들은 좋은 디지털 장비와 컴퓨터만 있으면 웅장하고 심오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전자음악이 가볍고 손쉬운 음악이란 뜻은 아니다). 땀내 나는 록의 화신들은 이미 늙어버렸거나, ‘로보트에 먹힌 톰 요크(Thom Yorke)’ 라는 말이 대변하듯 전혀 엉뚱한 취미에 관심이 가 있는 것이다.

창조적 복고주의, 혹은 낡은 진보주의

20030517014234-0120Garagerevolution in progress?
이러한 대세 변화를 거스르고 있는 네오 거라지 록(neo garage rock)은 2002년도부터 형성된 평론가들의 비상한 관심과 함께 서서히 본격적이고도 구체적인 폭발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현재 이 복고풍 로큰롤의 부활에 대한 평단의 시각은 극단적으로 갈리는 듯 하다. ‘록 음악의 르네상스’니 ‘차고로부터의 혁명’이니 하는 찬사가 있는 반면, 이미 박제가 되어버린 유산들을 혼성조합한 클리셰(cliche)라거나 원시인(caveman)의 구닥다리 로큰롤이라는 혹평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자국에서 불붙고 있는 거라지 록 부활의 물결을 별 것 아닌 것으로 깎아내리는 미국의 평단과(자신들의 부주의와 책임방기에 대한 면피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마치 이들 촌동네 밴드들을 발굴이라도 한 것처럼 치켜세우고 있는 영국 평론가들 모두 자존심 세우기에 골몰하느라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전후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유한계급 청(소)년들의 소일거리로 시작되었던 1960년대 원조 거라지 록은 분명 비틀스(The Beatles),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킹크스(The Kinks) 등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충격으로부터 형성된 자연발생적 음악이었다. 작곡, 연주, 레코딩에 대한 개념이 저열한 수준에 머물렀던 아마추어 로컬 밴드들의 음악은 투박한 매력을 지녔지만, 주류 록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소수 매니아들의 별난 취향에 머물고 말았다. 이후 거라지 록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출현한 플레쉬톤즈(The Fleshtones), 체스터필드 킹스(Chesterfield Kings), 퍼즈톤즈(The Fuzztones) 등 첫 번째 리바이벌 밴드들에 의해 보다 구체적인 형식미를 갖추게 된다. 이들 미국 밴드들은 선배 거라지 로커들에게서 물려받은 싸이키델릭 록과 펑크적 원형에 리듬 앤 블루스, 로커빌리 등 미국 루츠 음악을 접목시켜 거라지 록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즉 거라지 록 리바이벌은 이 때부터 단순한 리바이벌은 아니었던 것이다.

20030517014234-0220Jack20and20MegJack White & Meg White
그렇다면 1990년대 말엽부터 다시 부활되고 있는 네오 거라지 록은 어떠한 색채를 띠고 있는가? 이번 특집에서 다루고 있는 앨범들의 스타일은 다양하게 분기하고 있는 네오 거라지 록의 스펙트럼을 반영한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를 위시한 디트로이트 씬의 밴드들이 1960-70년대 영국 하드 록과 브리티쉬 블루스에서 힌트를 얻었다면, 예예예스(Yeah Yeah Yeahs)나 무니 스즈키(The Mooney Suzuki) 등은 뉴욕 출신답게 아트 펑크의 거라지 버전이라 해도 무방할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임모탈 리 카운티 킬러스 Ⅱ(The Immortal Lee County Killers Ⅱ)나 솔리대드 브러더스(The Soledad Brothers)는 미국 남부 블루스의 원초성과 펑크 록의 공격성에서 교집합을 찾아내었고, 로즈 오브 알타몬트(The Lords of Altamont)가 대표하는 남성적인 서부 거라지 록에서는 로커빌리나 서프 록의 영향이 발견되고 있다. 물론 거라지 록 부활의 신대륙인 스웨덴의 하이브스(The Hives)나 디비전 오브 로라 리(Division of Laura Lee) 등과 변방 뉴질랜드의 댓선즈(The Datsuns), 디 포(The D4) 등은 본토와는 또 다른 음악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러한 분화 양상은 지역색과 로컬 씬의 전통이 반영된 것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블루스, 하드 록, 펑크, 싸이키델릭 등 현재 네오 거라지 록이 참고하고 있는 과거의 유산은 매우 다양하여 일관된 스타일이나 복고지향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즉 옛것과 또 다른 옛것의 조합, 또는 옛것과 새 것의 조합은 단선적 복고주의로는 볼 수 없는 일정한 창조적 형태를 갖추기 때문이다. 이를 창조적 복고주의로 부르든 낡은 접근법의 진화주의로 부르든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들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최근의 거라지 록은 분명 록 음악의 원초적 에너지를 환기시켰고, (조합적인 수준일지라도) 새로운 스타일의 발견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송장이 되어버린 블루스, 차고에서 부활하다

지금까지 네오 거라지 록의 분화 양상을 거론하였지만 굳이 공통분모를 찾으라면 블루스와의 관계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블루스의 영향은 거라지 록의 본토인 미국 밴드들에게서 두드러지고 있는데, 블루스 리바이벌 작업이 이전에도 있어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미국의 기층 음악에 천착했던 선배들인 블랙 크로우스(The Black Crowes)나 블루스 트래블러(Blues Traveler) 등은 비교적 조심스럽고도 점잖게 블루스 록을 현대화시켰다고 볼 수 있으며, 보다 최근에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Jon Spencer Blues Explosion)과 같은 밴드는 블루스에 대한 애증을 비딱하게 뒤틀리고 변질된 노이즈로 표현하고 있다.

20030517014234-0320ILCK2Immortal Lee County Killers Ⅱ
그러나 위의 선구자들은 임모탈 리 카운티 킬러스 Ⅱ, 솔리대드 브러더스, 밴텀 루스터(Bantam Rooster) 등의 거라지 록 밴드들에 비하면 모두 얌전한 블루스 순수주의자(blues purist)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들 거라지 록 밴드들이 블루스와 펑크라는 언뜻 상극처럼 보이는 장르간의 합일을 이루어낸 점은 의미 있는 공헌이다. 임모탈 리 카운티 킬러스 Ⅱ의 체틀리 “엘 치타” 와이즈(Chetley “El Cheetah” Weise)는 “블루스와 펑크는 공히 삶에 대한 정직한 반응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블루스와 펑크는 양립할 수 없는 음악인 듯 하면서도 계산하지 않는 직설적 연주 스타일과 원초적 에너지의 발산이라는 점에서 묘하게 닮아 있는 것이다.

임모탈 리 카운티 킬러스 Ⅱ 등이 펑크와의 교접을 통해 전통적인 남부 블루스에 혼을 불어넣었다면,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등의 디트로이트 밴드들은 하드 록의 모태가 된 브리티쉬 블루스를 차고로 불러들이고 있다. [사운드의 힘(Sound Effect)]에서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가 지적한 것처럼, 아프로-아메리칸 블루스의 본질적인 한계는 정서적 전문성(쉽게 말하자면 즉흥적인 감성에 의존하는 블루스의 관성)을 기술적(음악적) 전문성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크림(The Cream)이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등이 구현했던 브리티쉬 블루스의 프로페셔널한 연주기교와 형식미는 록 음악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동시에 예술가연하는 음악에 반기를 든 펑크 연대의 주적이 되기도 했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는 원초적인 미국의 전통 블루스보다는 브리티쉬 블루스의 형식적 특성을 추구하면서 블루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어쨌든 진화에 실패하여 허름한 선술집의 취기로 기억되는 나이 든 음악이 젊은 신세대 로커들에 의해 생기를 부여받는 현상은 새롭고 흥미롭다. 결국 블루스와 펑크를 조합하든 변형된 블루스 록을 차용하든, 네오 거라지 록은 펑크와 그런지처럼 무언가를 적대적으로 배격하면서 자기들만의 완고한 정체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서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는 음악인 것이다.

복고주의 록 음악의 미래

음악 시장의 전반적인 위축에도 불구하고 2002년도에는 굵직한 신인들이 다수 출현한 해였다. 평단은 차세대 거물(next big thing)을 논하기에 이르렀고 거라지 록과는 거리를 둔 밴드들도 뭉뚱그려 거론되는 혼란도 야기되었다. 물론 복고주의 바람은 네오 거라지 록 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바인스(The Vines), 인터폴(Interpol), 리버틴스(The Libertines) 등 정규 데뷔 앨범을 발표한 루키들은 네오 거라지 록과는 다소의 차별성이 있지만 복고적인(reactive) 지향을 보이는 것만은 확실하다. 편가르기는 편리하지만 공허하기도 하다. 이제 논의는 차고의 경계를 긋고 진품을 가려내는 식의 저차원에서 벗어날 때다. 거라지 록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진정한 거라지 록의 부활인지 하는 논의는 이제 정리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 젊은 뮤지션들이 어떤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이들에 의해 록 음악의 위기는 어떠한 양상으로 타개, 혹은 심화될 것인지’와 관련된 경향성의 발견이며 그것의 함의를 읽어내는 것이다.

다소 이른 감이 있으나 2000년대 들어 록 음악에 화두를 던진 네오 거라지 록에 대해 불붙은 논쟁은 향후의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담론들 가운데 네오 거라지 록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술성과 스타일상의 통일성을 체득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그러나 거라지 록은 예술성(록 음악의 예술성이란 모호한 개념이지만)을 지녔던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으며, 제 각각 변두리에 처박혀 있는 밴드들이 스타일상의 통합을 이루어 낼 리도 만무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담론으로서만 가능할 일이며 저널리즘이 집착할 문제일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있다. 네오 거라지 록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쓸데없이 냉소할 이유도 없지만 그런지의 코미디 같았던 명운처럼 싸구려 상업문화의 이용가치로 전락하는 것만은 쉽게 용인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쇼핑몰이나 TV 광고에서 “Seven Nation Army”를 듣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도 희망사항일 뿐이라면, 앞으로의 일이야 어찌 되든 지금은 변두리 차고에서 울려나오는 거칠고 야성적인 소리에나 귀 기울여 보자. 록 음악이 살아보려 발버둥치고 있다는 점만은 확인할 수 있으리라. 20030511 | 장육 [email protected]

덧붙이는 말
작년에 이어 네오 거라지 록 특집의 2편을 기획하게 된 동기는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화이트 스프라이프스의 신보 이야기를 하던 [weiv]의 필진들은 ‘작년에 다루지 못했던 밴드들 중에 이런 밴드도 있더라’, ‘그 때 다루었던 밴드들이 새로 낼(혹은 낸) 앨범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와 같은 즉흥적인 말들을 던져놓았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특집은 잉태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두고 씬의 흐름이나 음악적 방향을 재점검하는 작업은 다소 무모할 뿐더러 쉽지도 않았습니다만, 그저 스트록스, 바인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하이브스를 묶어 거라지 록 4인방이라고 불러대는 국내 평단의 논의 수준에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번 특집도 미국의 네오 거라지 록 밴드를 위주로 했지만, 작년에 비해 디트로이트 씬 이외의 지역에 보다 주목한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습니다. 특집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예예예스, 임모탈 리 카운티 킬러스 등 작년에 다루어졌던 밴드들의 2003년 신보를 살펴보면서 네오 거라지 록의 전개양상과 현주소를 조망하는 부분입니다. 다른 하나는 작년 특집의 리스트에는 빠졌지만 2000년대 네오 거라지 록의 다른 차원들과 스펙트럼을 살펴보고자 추가되어진 밴드들에 대한 리뷰입니다. 부족하고 불친절한 인트로 글이지만 각각의 리뷰에서 만회되어질 것으로 믿고 독자 여러분들의 열띤 관심과 날카로운 지적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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