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30062809-0508lovepeace_2nd사랑과 평화 –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어요 – 서라벌(SRB 0023), 1979

 

 

‘훵크 마스터’의 짧고 환한 불꽃

“얘기할 수 없어요”의 초반 14마디의 연주는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정박의 디스코 리듬을 연주하는 드럼이 틀을 잡아주자마자 오르간과 기타가 서로 맞물리고, 다시 그 틈새로 날렵하게 끼여드는 스네어 드럼과 하이햇 심벌이 재빠른 그루브를 이끌어낸다. 기타는 시종 잽을 날리면서 깨작거리고, 때로는 블루지한 프레이즈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오르간은 비트와 화성을 동시에 만들어내면서 곡의 흥을 돋구는 보조적인 역할 이상의 연주를 들려준다. 잘 들으면 무척 복잡한 리듬이지만, 명료한 선율과 그럼에도 기본 박자를 일탈하지 않는 연주는 근심걱정 없이 곡을 감상하게 해 준다.

전작의 대대적인 성공에 이어서 나온 사랑과 평화의 두 번째 음반은 전작의 틀을 거의 그대로 다시 가져온다. 훵키하고 빠른 “얘기할 수 없어요” 뒤에 바로 이어지는 노곤한 블루스-가스펠 풍의 “내 진정으로”는 전작의 “한동안 뜸했었지”-“노래여 퍼져라”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피아노 협주곡 제1번/엘리제를 위하여”는 “운명”과 “여왕벌의 행진”을 의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전작의 성공에 기댄 안이한 후속작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두 번째 음반은 데뷔작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좀 더 정제되고 세련되게 풀어낸 동시에 전작의 날카로운 그루브를 온전히 옮겨왔다는 데에서 변별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고심 끝에 건져낸 변별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뚜렷이 보이는 차이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훵크에서 부족한 점이라 느껴졌던 ‘야성적인 관능적 쾌락’이 전작보다도 더 깎여나갔다 할 수도 있되, 그럼에도 이 음반의 소리들은 여전히 몸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바, 우리는 이 음반의 소리들을 따져보고자 함과 동시에 이에 맞춰 몸을 움직일 준비 또한 되어 있는 것이다. “장미”를 듣던 동시대의 사람들은 ‘자앙미! 장미 한소옹이!’를 따라 부를 준비만이 되어 있었겠지만 우리는 최이철의 기타에도 그만큼 관심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후대의 사람들이 좋은 곡을 다시 되새길 때 갖는 이점이란 이런 것이다.

더불어 연주곡(‘경음악’)이 무려 네 곡(“축제”, “솔바람”, “피아노 협주곡 제 1번/엘리제를 위하여”, “할미새”)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가진 ‘연주인으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막간곡 같은 “축제”를 지나 등장하는 “솔바람”은 전작을 닫았던 “뭉게구름”을 보다 상쾌하게 변형시킨 듯한 빼어난 곡이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곡은 “비가 내리네”로서, 길고 끊임없는 즉흥연주와 간간이 섞이는 희미한 보컬, 싸이키델릭한 오르간의 연주는 재즈의 감성과 더불어 ‘프로그레시브’의 흔적마저 품고 있는 이들의 야심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즈의 감성이 재차 눈에 띄는 “소녀” 또한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이 곡의 ‘복잡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 음반은 실질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짧고 굵은 절정기를 대변하는 음반이며, 이들이 이후 이 이상의 작품을 내놓지는 못했다는 사실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더 아쉬운 점은 이러한 감각적인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전통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최근의 ‘유학파’들이 연주하는 ‘훵키한 음악’이 정교하고 세련된 것은 사실이되 이 음반에서 느낄 수 있는 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끊어진 전통을 다시 잇는 것이 생각보다 지난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20030429 | 최민우 [email protected]

9/10

<부연>
1집의 “한동안 뜸했었지”를 비롯해 “얘기할 수 없어요”, “장미” 등의 수작(秀作)은 이장희의 손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그는 당시 ‘반도패션’ 매장을 운영하면서 락컴퍼니라는 프로덕션(기획사)과 광화문 스튜디오를 경영했는데(이 음반은 서울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자신의 동생인 이승희와, 최성원, 이영재 같은 포크 계열 뿐만 아니라 사랑과 평화를 비롯해 김태화, 김현식 등 밤무대 음악인까지 락컴퍼니에 포괄시키면서 성공적인 제작자로 등극한다. 이장희는 1980년 8월 ‘제 2차 대마초 파동’으로 도미하게 된다.
사랑과 평화의 ‘정규’ 앨범 3집은 1988년에서야 나타난다. 대마초 파동으로 그룹이 와해된 게 치명적이었다. 2집과 3집 사이 [넋나래]를 비롯해 몇 장의 비정규 음반들을 발표하면서 재기하고자 했지만 그리 호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데블스에 잠시 있다가 사랑과 평화에서 활동을 하게된 송홍섭이 이 음반에서 베이스를 쳤다.

수록곡
Side A
1. 얘기할 수 없어요
2. 내 진정으로
3. 축제
4. 솔바람
5. 피아노 협주곡 제1번/엘리제를 위하여
Side B
1. 장미
2. 그대만 보면
3. 비가 내리네
4. 소녀
5. 할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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