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30061739-0508lovepeace_4th사랑과 평화 – 바람불어/샴푸의 요정 – 오아시스(OL 2974), 1989

 

 

상큼한, 혹은 위험한 외출

1988년 11월 한 방송사의 베스트극장에서 방영된 ‘샴푸의 요정’이라는 드라마를 추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신선한 감수성의 드라마를 연출하던 주찬옥 극본, 황인뢰(PD) 연출 ‘콤비’가 장정일의 시를 원작으로 만들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동명의 타이틀 노래 역시 이 드라마의 파급력에 한 몫 했다. 이 곡을 만든 장기호(베이스)는 박성식(키보드)과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3집에 참여한 후 밴드에서 나와 CM 송과 광고 음악, 드라마 음악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 노래도 그때 만들어진 노래다.

바로 이 “샴푸의 요정”을 비롯해 “조바심”, “그대 떠난 뒤” 등 유려하고 세련된 음악이 사랑과 평화의 네 번째 앨범을 통해 빛을 발한다(이 앨범은 레코드사의 사정으로 시중에 얼마 풀리지 않아 대중들은 잘 구할 수 없는 희귀 음반이 되었다고 한다). ‘훵키 록 혹은 퓨전 재즈의 황금 조합’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음반의 주인공은, 그간 사랑과 평화를 이끌었던 최이철이 아닌 사랑과 평화의 신입 멤버 장기호와 박성식이다. 유려한 사운드와 상큼한 감각은 바로 이들에 의해 조율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작곡한 곡수 면에서도 이들의 비중이 크며(장기호는 네 곡, 박성식은 두 곡) 히트곡도 이들(특히 장기호)의 곡에서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눈에 들어오는 곡은 이들의 곡이다.

“샴푸의 요정”은 그루브한 분위기의 베이스 위에는 다양한 톤의 키보드/신서사이저 위주의 반주에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기호의 보컬은, 간주에 잠깐 흐르는 거친 최이철의 목소리와 대조적이다. 애절한 발라드 “그대 떠난 뒤” 역시 부드러운 보컬 멜로디와 화음을 강조하는 신서사이저 위주의 반주가 이루어진다. 이 두 곡에서 느껴지는 기타 솔로 연주는, 말하자면 풍성하게 사용되는 신서사이저의 사운드와 닮아 있다. 또 한 가지는 여러 음향 효과가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샴푸의 요정”에는 전화벨 소리가, “그대 떠난 뒤”에는 빗소리 음향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런 음향 효과는 장기호와 박성식이 당시 광고 음악을 했던 경력이 반영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갑시다”(박성식 곡)도 기차의 발차 소리로 시작하는데 이 곡은 호루라기 소리(호루라기는 사랑과 평화의 애호(?) 악기다), 실로폰 음향 등 다양한 퍼커션을 동원해 즐겁게 합창한다. 최이철이 노래하는 “조바심”(장기호 곡) 역시 경쾌한 곡인데 쿵딱쿵딱거리는 드럼과 빠라 빠빠라 하는 배킹 보컬의 흥취를 비롯해, 신서사이저와 보컬이 선율을 주고받으며 울림 많은 건반악기가 이를 활기차게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큼발랄 곡들이 이 음반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최이철의 곡 “바람불어”는 이 앨범에서 가장 강한 훵키함과 그루브감을 맛볼 수 있는, 예전의 사랑과 평화의 훵키 계보에 속하는 곡일 것이다. 풍부한 신서사이저는 물론 슬래핑 기법의 강렬한 베이스 기타에 최이철이 연주하는 하모니카가 맛깔스럽게 양념처럼 들어있다. “마음은 푸른 하늘”처럼 장기호의 곡이라 하더라도 최이철이 노래한 곡들은 훵키하다. 이와 대조적인 최이철의 작품은 “4월이 잠든 꽃밭”인데 전주 하모니카, 고요한 아르페지오 음형의 기타 연주를 위주로 3박자 슬로 템포의 서정적인 (하덕규의) 가사를 읊조리는 노래다.

그렇지만 향후 사랑과 평화의 앞날을 보여주는 곡은 다음의 경건한 노래들이 아닐까. 피아노 위주의 단촐한 반주의 서정적인 노래 “내겐 노래 있어”(박성식 곡)는 “이 세상 끝까지 노래하리”라는 결의를 후반부 코러스에서 다같이 부른다. 다소 찬송가적으로 느껴지는 건전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으로 이어지는데 이 곡이 바로 장기호와 박성식의 향후 방향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평화(혹은 이를 이끌어왔던 최이철)의 입장에서 이들의 영입이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엇갈릴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사랑과 평화 식 훵키함은 다소 완화되면서, 유려한 감각의 상큼한 서정성이 보다 짙은 농도로 발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의 향취가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어쨌거나 장기호와 박성식은 따로 빛과 소금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20030429 | 최지선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Side A
1. 바람불어
2. 그대 떠난 뒤
3. 내겐 노래있어
4. 나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
Side B
1. 샴푸의 요정
2. 조바심
3. 마음은 푸른 하늘처럼
4. 여행을 갑시다
5. 4월이 잠든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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