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30055639-0508juninkwon3destiny전인권 – 다시 이제부터…(Destiny) – 성웅뮤직/서울음반, 2003

 

 

슬픔과 낙관의 세 번째 행보

드디어 전인권의 솔로 3집 [다시 이제부터…(Destiny)](성웅뮤직, 2003)가 시장에 풀렸다. ‘드디어’란 촌스러운 표현은 웬만하면 피하려 했으나, 전인권의 이번 음반을 받아보는 이들의 심정을 공통분모로 표현하기에 다른 단어를 고르기 어려울 듯하다. 딴은 그렇다. 들국화 새 음반에 대한 기대도 바싹 말라가던 차에(나올 계획이란 얘기가 나온 지 5년도 더 된 것 같다), ’14년만의 신보’라며 전인권 3집에 대한 기사들이 일제히 나와 펌프질한 것도 2월의 일이었고, 그후 한달 넘게 음반 쇼핑몰의 예약판매 알림이 무색하게 세 차례 발매 연기 끝에 나왔으니 말이다.

이번에 나온 전인권 신보는 두 개의 상이한 타이틀을 달고 있다. 하나는 원래 타이틀이었던 ‘운명(Destiny)’, 다른 하나는 발매 직전 추가된 ‘다시 이제부터…’이다. 운명? “사람들은 날 록의 신화라 말하며 높게 평가하지만 난 그저 록을 위해 태어났고 록을 위해 살고 록을 꼭 해야만 하는 록 하는 가수라고 불려지기를 원한다”는 전인권의 말이야 반쯤은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수 있지만,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이란 의미는 왠지 평소 전인권의 이미지와는 엇나간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렇담, 다시 이제부터? 이건 전인권답다. 진부할 수 있지만, 그 말이 전인권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면 수긍하기 어렵지 않다. 14년 전에 나온 솔로 2집의 타이틀이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이기도 했고.

이 음반의 모양새는 책 형태에 음반을 넣었다는 점에서 김윤아의 [섀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중앙M&B, 2001)과 시노래 모임 나팔꽃의 [제비꽃 편지](현대문학북스, 2001), 음반과 사진집의 결합이란 점에서 한대수의 [Masterpiece](신세계, 2000)와 유사성이 있다(물론 음반이 주가 된다는 점에서는 후자에 더 가깝다). 웬만한 음반 포장으로는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했겠지만, 음악과 사진을 ‘한 큐에’ 제공해주는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케이스만 특이하냐 하면, 내용도 그에 못지 않다. 조용필부터 샤크라까지 톱 스타들의 화보집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김중만이 전인권과 함께 중국 서북부 신장자치구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열흘간 헤매고 다니며 찍은 흑백 사진들이 총 60쪽에 걸쳐 40여 컷 실려 있다. 물론 사진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여러 풍경과 쑥대머리에 검은 색 세미 정장을 입고 있는 전인권의 다양한 모습이 중심을 이루며, 현지 주민들의 해맑은 모습도 간간이 삽입되어 이국적 정취를 전한다. ‘전인권 화보집’이라기엔 진중해 보이고, ‘김중만 사진집’이라기엔 전인권이란 인물이 중심에 있다. 하드커버 표지 안쪽에 CD가 꼽혀 있으니 사진책일 뿐 아니라 음반이 분명하고, 그 사진들 속에 노래 가사와 크레딧이 담겨 있으니 ‘사진이 담긴 고급 속지’의 역할로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이번 음반이 포장에서부터 나름대로 정성도 들이고 최근 음반 포장의 트렌드에도 보조를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팔리는 시대여서? 그런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그 이유뿐이더라도 무성의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 전인권은 원래 음반의 시각적 측면에도 공을 들여왔다. 케이스만 보더라도, 전작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언제나 영화처럼/빨간 풍선)](파랑새기획/서울음반, 1989) LP의 경우도 게이트 폴더(그러니까 양쪽으로 열 수 있는 ‘더블 재킷’)에 큼직하고 컬러풀한 12쪽 짜리 속지가 들어가 있었다(실제 보진 못했지만, 한정 발매 초판은 LP가 오렌지색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커버였던 솔로 1집 [파랑새/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동아기획/서라벌, 1988)조차 노트에 펜으로 갈겨 쓴 낙서 같은 가사와 그림을 프린팅한 속지가 이채롭기는 마찬가지다. 거기 담긴, 연필로 손수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는 이번 3집의 뒷표지 안쪽에 담긴 자화상 스케치와 맞닿아 있다. 1988년 한창 때 자화상과 그 사이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고 50줄에 들어선 지금의 자화상이 주는 느낌은 대조적이다. 10대 시절 음악보다 먼저 이 사내를 뒤흔들고 이후 그의 삶과 음악 생활의 동반자로, 또 음반과는 다른 기록이 되어준 ‘그림’. 이번 그림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나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20030502084925-0508juninkwon2왼쪽과 가운데 그림은 전인권 솔로 1집(1988) 속지에 담긴 캐리커처, 오른쪽은 3집(2003) 뒷표지 안쪽에 실린 캐리커처.

음반이란 청각적 상품/예술을 두고 자꾸 시각적인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음반의 주인공인 전인권에게 시각적 요소가 중요한 걸 어쩌랴(단지 음악의 시각화를 빠뜨릴 수 없는 시대상 때문만은 아니다). 확실히 그의 모습은 ‘깬다.’ 들국화 시절 긴 퍼머 머리로 출현(!)했던 1980년대에도 무난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봉두난발(蓬頭亂髮)’이란 말이 적절할 헤어스타일, 마찬가지로 ‘방치’에 가깝게 기른 수염, 여기에 의상과 무관한(아니 즐겨 검은 정장차림에) 검은 선글라스는 전인권의 트레이드마크이다. 세련됨과 다듬음에 대한 거부, 아니 자연스러움에 대한 고집스런 태도가 완강하게 드러난다. 어디 ‘꼴’뿐이랴.

전인권은 좋은 의미에서 ‘꼴의 값을 하는’ 가수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아마도 우스꽝스럽고 약간은 ‘똘아이 같은'(이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아저씨라는 게 지배적일 것이다. 이는 우선 앞서 얘기한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꼴’ 때문이지만, 그의 언행은 그런 인상을 굳히게 한다. 1990년대 그가 TV에 나왔던 모습은 대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따금 출연한 TV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희화화된 모습, 다른 하나는 뉴스에서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되는 모습. 그는 ‘국산 담배를 애용합시다’라는 문구 아래 국산 담배 피우는 모습을 실은 ‘골 때리는’ 광고를 자비로 내기도 했다. 대마초 흡연과 필로폰 투약 혐의로 네 번이나 구속되었던 전력의 그가 말이다.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된 연예인들이 대개 다시는 안 하겠다는 ‘반성’과 ‘선처’를 호소하는데 비해, 전인권은 몇 년간 대마초를 끊을 계획이라면서도 반성의 빛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롭다는 말을 한쪽으로만 보고 있어요. 불건전한 자유로움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거나, “아니, 국가가 개인의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어요? 허무주의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도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견해를 피력하는 걸 보면,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내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코카인 복용 혐의로 형을 언도 받은 데 반발한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사강 못지 않은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음성과 말투 역시 어눌한 인상이지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그 의미와 타이밍이 매우 적절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통일을 화두로 한 엄숙한 문화공연에 들국화 멤버와 무대에 오른 그는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법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그의 ‘전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그러나 앞으로 나와 광란의 향연을 벌이는 것은 법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일순, 청중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분위기가 급변했음은 물론이다. 그의 말은 어눌한 듯 보이지만, 전혀 어눌하지 않다.

‘전인권 어록’을 만들어도 좋을 만큼 그의 말솜씨는 뛰어나다. 말투 때문에 눌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달변인 것처럼, 모습과 행동거지 때문에 즉흥적이고 분방하기만 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오해다.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최성원도 얼마 전 말했지만) 들국화 시절 전인권은 즉흥적인 인물로, 최성원은 계산적인 인물로 간주되었지만, 우발적으로 보이던 전인권의 행동들은 의도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연장에서 툭툭 내뱉는 말들과 즉흥적 쇼맨십도 미리 심사숙고하고 준비한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흔히 들국화를 비틀스에 비유하여 전인권은 폴 매카트니, 최성원은 존 레넌 식으로 연결짓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전인권이 더 존 레넌에 가깝다. 전인권은 좋은 의미에서 ‘계산적’인 가수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자유분방하고 고집스러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걸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제 ‘소리’에 대한 것으로 돌아오자. 이번 3집은 ‘예의’ 거침없고 솔직하며 다소 막무가내인 그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노래하겠다”가 대표적이다. “나의 아픈 기억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 나는 노래하겠다 아픔이 올 때마다 / 노래하겠다 노래하겠다 노래하겠다 노래하겠다”며 그는 고집스럽게 다짐한다. 또 “날아라 더 높이 너의 꿈을 찾아서 / 산으로 들로 네가 날고 싶은 대로”라고 노래하며 스스로도 되새긴다(“자유 2”). 그러면서 특유의 샤우팅 창법으로 “아-“하고 끝없이 소리를 지른다(“내 심장은”).

물론 그 정서적 강도는 1980년대 들국화 시절 청(소)년들을 뒤흔든 “행진”이나 “그것만이 내 세상”의 사자후와 비교할 수는 없다. 시대도 다르고,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당연하다. 그 사이 전인권에게 파란만장한 일들이 일어나고(특히 그는 아내와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는데, 그이의 앞길을 빌어주는 “코스모스”와 “새야”가 이번 음반에 실려 있다), 나이도 이제 50줄에 들어섰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음반에 담긴 그의 노래에는 비감 어린 정서가 묻어 나온다. 그래서 그의 절창은 빠른 템포의 곡보다는 발라드에서 빛난다. 주말 연속극 주제가 같은 분위기로 편곡된 “운명(들꽃 한 송이)”과 미셀 폴라네프의 샹송을 번안한 “다시 이제부터”가 음반 타이틀로 선정된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을 게다. 꽃다지와 안치환의 곡들을 듣는 듯한 사운드의 “강해야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낙관의 정서를 설파한다. “운명”과 “다시 이제부터”가 신파와 청승의 함정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강해야지”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전인권의 힘’이다.

20030502084617-0508juninkwon3전인권은 들국화 시절부터 팝송, 가요를 막론하고 남의 노래를 자기 것처럼 잘 소화해왔다. “사랑한 후에”(원곡은 알 스튜어트의 “The Palace Of Versailles”)나 “사노라면”의 경우처럼 때로 창작에 가까운 뛰어난 리메이크(cover) 솜씨를 선보이곤 했다. 이번 음반에도 예상대로 리메이크 곡들이 실려 있다. 앞서 얘기한 번안곡 “다시 이제부터”를 비롯해, 김민기의 “봉우리”, 신중현과 엽전들의 “뭉치자”가 그것이다. 특히 김민기와 신중현 곡의 리메이크는 그의 음악적 뿌리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신중현의 주옥같은 곡들 중 하필 “뭉치자” 같은 문제작을 선곡한 이유는 미심쩍지만, 전인권이 평소 ‘나의 우상이자 콤플렉스’라고 극찬에 마지 않던 김민기의 “봉우리”를 선곡한 건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긴 내레이션이 시작될 때 그만 웃음을 터뜨릴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눌한 말투가 질박한 느낌을 주는 전인권 버전은 가식적인 느낌을 주는 양희은 버전에 비한다면 원곡의 의미망에 훨씬 다가서 있다.

언제나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여주던 전인권은 앞으로도 10년은 너끈히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그는 ’65세까지 청춘’이란 지론을 갖고 있다). 전성기 때에 비하면 목의 상태도 여의치 않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소리를 질러댈 테고 듣는 사람들도 괘념치 않고 들을 것이다. 비록 이번 음반에 슬픔과 힘겨움이 적잖게 담겨 있지만, 툭 털고 일어서는 낙관의 행보도 담겨져 있지 않은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 늦었을 때가 시작이란 생각으로 / 내 발 아래 줄을 그었다 / 이제부터 시작하는 거다 / 하늘 한번 쳐다보고 / […]/ 노래할 때가 가장 좋은 마음이란 즐거움에 노래한다 / […] / 강해야지 그 누구도 내 나이도 그 누구도 문제될 수 없었다 / 오직 나를 강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강해야지”) 전인권답다. 그에겐 ‘운명’이란 말보다는 ‘다시 이제부터’란 말이 더 어울린다. 아무래도 ‘다시 이제부터…’란 문구를 음반 타이틀로 올린 것은 잘한 일이다. 20030416 | 이용우 [email protected]

7/10

* 이 글은 컬티즌에 실린 글입니다.

수록곡
1. 봉우리
2. 다시 이제부터
3. 운명(들꽃 한 송이)
4. 강해야지
5. 가만히
6. 내 노래 아는지
7. 새야
8. 코스모스
9. 내 심장은
10. 자유 2
11. 뭉치자
12. 노래하겠다
13. 뒷동산에 저 소나무
14. 새 아침
15. 걷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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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들국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모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도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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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 전인권의 ‘Merry Christmas’ 콘서트: 김정환의 공연 후기(로그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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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한국 록의 신화’ 들국화의 전인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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