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09095921-0507jonesNorah Jones – Come Away With Me – Blue Note/EMI, 2002

 

 

범상한 비범함, 비범한 범상함

최근 매장에 진열된 노라 존스의 음반에는 낯익은 황금 축음기 여덟 개가 늘어선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런 스티커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예쁜 얼굴을 보면서, 나도 언제부터 그래미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여과지에 남겨진 커피 찌꺼기같은 “Layla”를 들려주던 에릭 클랩튼의 언플러그드 라이브 음반 때부터였을까? 아마 내가 본 최고의 그래미 시상식은 보니 레이트(Bonnie Raitt)가 세 개 부문을 가져갔던 1989년 시상식일텐데, 그 쇼에서는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가 “Girl You Know It’s True”를 뻔뻔스럽게 립싱크했고, 나는 엉터리 발음으로 뜻도 모른채 되바라지게 그 후렴구를 따라했던 것이다. 걸 유 노 잇 츠루, 우, 우, 우, 알러어어뷰.

많은 ‘진지한’ 음악팬들은 그래미가 당대의 중요한 음악적 흐름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사실 그래미는 언제나 진지한 음악의 손을 들어줬다. 널리 알려진만큼 유명무실하기도 한 분류법에 따르자면, ‘상업성의 마력에 굴복하지 않음과 동시에 대중에 대한 적절한 배려 또한 잊지 않은’ 양수겸장의 음악들인 것이다. 이 기준이 정말 모호한 것이라는 사실은 세상이 끝난 뒤에라도 남아 있겠지만, 이런 기준에 딱 들어맞는 음악이 있다는 사실도 여전하다. 어쨌든 노라 존스 또한 이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다이아나 크롤(Diana Krall)의 뒤를 잇는 신진 재즈-팝 보컬리스트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힌 셈이다.

음반을 요약하면 ‘전형적인 재즈 밴드의 편성과 연주로 들려주는 어덜트 컨템퍼러리 팝’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캐롤 킹(Carol King)을 은근히 닮은 존스의 음성, 숙련된 연주와 작곡, 튀는 부분 없이 절도있게 진행되는 편곡과 매끈한 어레인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졌다는 말을 덧붙이면 음반에 대해 할 이야기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라비 샹카(Ravi Shankar)의 딸이라는 정보는 얼굴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대한 해답은 될지언정 음악에 대한 이해에는 도움이 안 된다.

첫 싱글로 ‘의외의’ 히트를 기록한 “Don’t Know Why”는 이 모든 것을 요약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풍부하지는 않지만 표현력있는 존스의 보컬은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피아노 연주와 잘 맞고, 밴드는 반주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숙한 멜로디는 이 곡이 창작곡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스탠다드 아닌 스탠다드라 불러도 좋을 것일텐데, 그렇다고 이것이 스탠다드가 될성싶지는 않다. 대중적이면서도 ‘품위있는’ 멜로디는 이 음반이 내세우는 장점으로서, 꿀로 절인 밴 모리슨(Van Morrison) 같은 “Feelin’ The Same Way” 같은 곡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간간이 섞이는 슬라이드 기타 소리들, (“Painter Song”의) 처량한 아코디언 소리는 컨트리의 향신료를 살짝 뿌린다.

그러나 ‘재지’한 블루스인 “The Long Day Is Over”까지 올 때쯤이면 무난함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스탠다드(유명한 행크 윌리암스(Hank Williams)의 “Cold Cold Heart”와 “Turn Me On”, “The Nearness of You”)의 해석은 하룻밤 동안 1미터를 전진한 군인만큼이나 조심스럽다. 정감있는 목소리임은 분명하나, 존스의 목소리는 크롤만큼 음반을 장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해서, 다 듣고 나면 로댕이 미술학교에 떨어졌을 때 1등으로 입학한 학생 같은 음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좋다. 지금도 어느 도시의 마천루에서는 이런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고 사랑을 하며 눈물을 흘릴 사람들이 있을 테고, 누군가는 이 음반을 틀어놓고 꿈꾸는 눈빛으로 커다란 소파에서 편안함을 만끽하겠지만, 그들에게 소멸이 찾아오듯 이 음반 또한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음반과 우리가 폭격 때문에 소멸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처한 야만적인 상태를 드러내는 것일진대, 이 음반의 비범하리만치 범상한 소리들은 그 상태의 냉혹함을 일깨움으로써 음반의 철두철미한 범상함을 비범하게 증명한다. 20030327 | 최민우 [email protected]

6/10

* 이 글은 조이씨네(www.joycine.com)에 실린 글의 수정본입니다.

수록곡
1. Don’t Know Why
2. Seven Years
3. Cold, Cold Heart
4. Feelin’ The Same Way
5. Come Away With Me
6. Shoot The Moon
7. Turn Me On
8. Lonestar
9. I’ve Got To See you Again
10. Painter Song
11. One Flight Down
12. Nightingale
13. The Long Day Is Over
14. The Nearness of You

관련 글
Diana Krall, [The Look Of Love] 리뷰 – vol.3/no.22 [20011116]

관련 사이트
노라 존스 공식 사이트
http://www.norahjo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