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모든 역사 기술이 그러하듯, 올드 스쿨 힙합이 역사적 유물로 기록 혹은 기억되는 과정은 과감한 왜곡과 망각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일반적으로, 미국 주류 음악 시장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이전의 소위 올드 스쿨 힙합은 ‘브롱스의 블록 파티’, ‘랩 배틀’, ‘브레이크 댄싱’, ‘스크래치 디제잉’, ‘그래피티’ 등의 단어로 요약, 정리되기 마련이다. 물론 이 단어들로 지금 상상되어 재구성된 올드 스쿨 힙합 혹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모습이 말짱 허구라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힙합이 주류 시장의 획일화된 상품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지배 담론 구성에 거슬리는 여타의 문화적, 음악적 요소들은 과감히 무시되고 제거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1980년대 중반 이후 힙합이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 청년의 전유물로 규정되고, 그 음악적 내용물이 랩과 샘플링으로 언명되면서 문화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힙합은 보다 매끄럽고 획일화된 대량 생산에 적합한 상품으로 변모해 버렸다. 결국 새로 규정된 주류 상품 코드를 벗어나는 올드 스쿨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소위 문화적 변칙과 음악적 변종들은 뉴 스쿨 주류 힙합의 도래와 함께 종말을 고하게 된다.

힙합이 주류 시장의 말끔한 상품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은근슬쩍 혹은 의도적으로 생략되고 제거된 올드 스쿨의 다양한 역사적 내용물들을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올드 스쿨 힙합의 주된 공간을 브롱스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브롱스의 스트리트 잼과 블록 파티에서 뉴 스쿨 힙합으로 직접적인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말짱 허구나 다름없다. 사실 1982년경에 이르면서 이미 힙합 음악과 문화는 브롱스를 떠나 맨해튼 다운타운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중남미계 이민 청년들 혹은 라티노 힙합 키드들의 눈부신 활약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힙합은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특히 그래피티와 브레이크 댄싱만 따진다면 라티노 청년들은 상당 기간 뉴욕 올드 스쿨의 공동 주연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올드 스쿨 힙합이 작동했던 공간과 그 주체 뿐 아니라 음악적 내용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자유로웠다. 미국 청년문화의 최전선인 맨해튼 다운타운에서 백인 펑크 키드들이 흑인 힙하퍼들과 어울리고 한편으로 라티노 청년들까지 무대 전면에 나서 힙합 문화를 향유했음을 전제한다면, 올드 스쿨 힙합 음악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자양분을 흡수하며 음악적 토대를 마련했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일렉트로(electro)’ 혹은 ‘일렉트로 훵크(electro funk)’는 바로 랩과 디제잉 그리고 샘플링에만 국한될 수 없는 올드 스쿨 힙합의 자유로운 사운드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은 가장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힙합 음악의 하위 장르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올드 스쿨 일렉트로의 흥망성쇠를 간략히 재조명해볼 것이다. 사실 일렉트로는 대부분의 힙합 사가와 평자들로부터 1980년대 초, 중반의 일시적 유행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힙합 공동체 바깥에서 올드 스쿨 일렉트로가 지금 차지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최근 힙합 음악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비트 실험들을 염두에 둔다면, 일렉트로에 대한 재평가는 충분히 가치 있는 작업일 것이다. (올드 스쿨 힙합의 대안적 공간으로서 맨해튼 다운타운, 그리고 또 다른 주체였던 라티노 청년들에 대해서는 내가 쓰는 유에스라인을 통해 차후에 별도로 구체적인 재조명을 할 예정이다.)

일렉트로의 탄생: 아프리카 밤바타

일렉트로의 탄생을 얘기하려면 그래도 잠시나마 1982년의 맨해튼 다운타운을 언급해야할 듯 싶다. 이미 1980년을 넘어서면서 브롱스를 뒤덮었던 힙합의 열기는 급격히 식어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힙합 뮤지션과 브레이크댄서들, 그리고 그래피티 화가들은 브롱스 게토 청년들의 점진적인 외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히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일대를 휩쓸고 다니던 마당발 브로커 팹 화이브 프레디(Fab 5 Freddy)가 구세주 역할을 자처했다. 미국 청년문화의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던 맨해튼 다운타운 클럽 가에 이들 브롱스 힙합 아티스트들을 연결시켜준 것이다. 포스트 펑크, 뉴 웨이브, 노 웨이브로 이어지는 자유로운 예술적 기운이 만연했던 맨해튼 다운타운은 새로운 음악적, 문화적 표현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이들 브롱스의 흑인 예술가들은 예상외의 열렬한 환영 속에 맨해튼 다운타운에 수월하게 입성할 수 있었다.

브롱스 힙합 음악을 양분하던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가 총대를 맨 것은 물론이다. 맨해튼 클럽 가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된 1982년에 아프리카 밤바타는 “Planet Rock”을, 그리고 그랜드마스터 플래시는 “Message”를 연이어 발표했고, 이 두 곡이 순차적으로 뉴욕 시를 강타하면서 힙합은 극적인 소생의 계기를 마련한다. 눈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웠던 브롱스의 올드 스쿨 전사들은 결국 암울한 레이건 시대에 브롱스 게토를 떠나 맨해튼의 근사한 새 보금자리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된 것이다.

Afrika Bambaataa – “Planet Rock”
[Looking For The Perfect Beat 1980-1985](2001) 중에서

20030409093642-0507us1일렉트로 훵크의 창시자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
특히 아프리카 밤바타의 “Planet Rock”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Message”에 비해 대중적 친화력은 떨어졌지만, 음악 자체만 따진다면 맨해튼 백인 청년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미 브롱스 시절부터 온갖 잡동사니 음원들을 활용한 화려한 디제잉으로 정평이 나있던 아프리카 밤바타는 맨해튼 다운타운에서 다양한 백인 뮤지션들과 조우하고 그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에 대한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Planet Rock”은 아프리카 밤바타의 노력과 고심의 산물이자, 나아가 일렉트로 혹은 일렉트로 훵크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곡이 되었다.

지금 듣는다면 “Planet Rock”의 사운드는 너무 단순하고 조잡하게 들릴 수도 있다. 올드 스쿨 특유의 직선적인 랩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투박한 드럼 머신의 반복적인 비트와 원형적인 신디사이저와 샘플러가 만들어내는 유치찬란한 멜로디는 1980년대 한국 오락실에서 갤러그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음악이 20여 년 전에 나왔음을 염두에 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게토의 힙합과 랩 음악에 훵크를 결합한 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사운드를 접목하는 놀라운 실험이 이 곡을 통해 성사된 것이다. 특히 “Trans-Euro Express”나 “Numbers” 같은 크라프트베르크의 고전을 노골적으로 빌려서 훵크의 감성, 힙합의 태도와 결합하는 시도는 대담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아프리카 밤바타는 이 한 곡으로 이후 뉴욕을 풍미하는 ‘일렉트로 무브먼트(Electro Movement)’를 홀로 추동하게 된다.

물론 까다로운 이들은 아프리카 밤바타를 일렉트로의 창시자로 단정하기를 주저한다. 정확히 말해 같은 해에 몇 달 앞서 “Electrophonic Phunk”(1982)를 발표한 소울 댄스 그룹 쇼크(Shock)가 원조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밤바타는 일렉트로의 음악적 원형을 충실히 제시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 후대의 힙합과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 모두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일렉트로의 진정한 대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렉트로의 진화: 새로운 전자 마법사들

“Planet Rock”이 뉴욕 일대의 힙합 공동체를 강타한 1982년을 기점으로, 상당수의 흑인 뮤지션들이 랩과 훵크에 반복적인 전자 음을 결합한 새로운 음악들을 뉴욕 도처에서 발표하기 시작한다. 드럼 머신과 신쓰 팝, 비디오게임, 훵크와 같은 이질적인 질료들이 힙합의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타진하는데 본격적으로 활용되게 된 것이다. 물론 일렉트로의 급작스러운 유행은 당시 뉴욕 힙합 공동체에서 아프리카 밤바타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아프리카 밤바타가 소속된 레이블 토미 보이(Tommy Boy)는 사실 일렉트로 열풍 덕분에 올드 스쿨 시기 최고의 힙합 레이블이 될 수 있었다. 아프리카 밤바타의 음악적 영향을 받은 플래닛 패트롤(Planet Patrol)의 “Play At Your Own Risk”(1982), 존준 크루(Jonzun Crew)의 “Pack Jam”(1982)과 “Space Cowboy”(1983)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토미 보이는 간판 힙합 레이블이자 일렉트로의 리더로 입지를 굳힌다. 물론 뉴욕 힙합을 양분하던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슈거 힐(Sugar Hill) 레이블 역시 일렉트로 열풍에 편승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는 못 했다. 그나마 관심을 끌었던 곡이 레지 그리핀(Reggie Griffin)의 “Mirda Rock”(1982)이었는데, 프린스(Prince)와 카바렛 볼테르(Cabaret Voltaire)가 결합한 듯한 절묘한 사운드로 슈거 힐의 자존심을 어느 정도 세워주었다.

Man Parrish – “Hip Hop Be Bop (Don’t Stop)”
[Man Parrish](1982) 중에서

20030409093642-0507us2초기 일렉트로의 또 다른 개척자 맨 패리시(Man Parrish).
결국 아프리카 밤바타와 토미 보이 레이블 뮤지션들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일렉트로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도처의 힙합 혹은 댄스 음악 뮤지션들에게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한다. 아니, 시기를 따지자면 “Planet Rock”이 발매될 무렵 동시다발적으로 일렉트로 고전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 샘플링과 컷앤페이스트 기법은 새로운 발전 없이 원초적 단계였기에, 드럼 머신의 반복적 비트와 신디사이저의 현란한 멜로디는 상당수의 힙합 뮤지션들에게 새로운 방법론으로 쉽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훗날 미국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원조로 평가받게 되는 맨 패리시(Man Parrish)는 유럽 신쓰 팝과 미국의 훵크나 디스코를 재조합하는 빼어난 재주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Hip Hop Be Bop (Don’t Stop)”(1982)은 크라프트베르크로부터 훔친 듯한 베이스라인과 명징한 신디사이저 연주가 어울리는 경쾌한 사운드로 초기 일렉트로 사운드를 대변해 주었다.

맨 패리시에 이어 제리 칼리스트(Jerry Calliste)와 알도 마린(Aldo Marin) 듀오로 구성된 하심(Hasim)의 “Al-Naafiysh (The Soul)”, 그리고 타이론 브런슨(Tyrone Brunson)의 “The Smurf”가 연이어 1982년의 뉴욕 댄스플로어를 강타했다. 이후 몇 년간 뉴욕의 일렉트로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꾸준히 지속된다. 특히 제리 칼리스트가 주도하는 커팅 레코드(Cutting Records) 레이블에 소속된 하이피델리티 쓰리(Hi-Fidelity Three)는 “Never Satisfied”와 “B-Boys Breakdance”를 1983년에 연이어 내놓으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한편 댄스 듀오 워프 나인(Warp 9)은 “Light Years Away”(1983)에서 엇박의 비트와 간결한 키보드 라인만으로 일렉트로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비상한 재주를 뽐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뉴클리우스(Newcleus)가 “Jam On Revenge (The Wikki-Wikki Song)”(1984)을 히트시키며 뉴욕 클럽 가의 또 다른 간판스타로 자리잡았다.

일렉트로 무브먼트는 물론 이들 ‘일렉트로 전문’ 뮤지션들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뉴욕 힙합의 간판임을 자처하던 후디니(Whodini)가 영국 신쓰 팝 스타 토마스 돌비(Thomas Dolby)와 공동작업으로 “Magic’s Wand”(1982)를 발표한 이후 다양한 흑인 뮤지션들이 일렉트로 실험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라스트 포엣(The Last Poets) 같은 백전노장 듀오도 1984년에 발표된 [Oh My People]에서 일렉트로 사운드를 선보였다. 물론 그들이 당시 소속된 셀룰로이드(Celluloid)가 일렉트로 전문 레이블이었음을 상기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한편, 당대 최고의 랩 스타 커티스 블로(Kurtis Blow)의 디제이였던 데이비 디엠엑스(Davy DMX)는 터프 시티(Tuff City) 레이블을 통해 “One For The Treble”(1984), “DMX Will Rock”(1984) 등 일렉트로 수작을 연이어 내놓았다. 그는 이들 트랙에서 영국 여성 래퍼의 랩을 활용하고 있는데, 사실상 일렉트로가 이미 뉴욕을 넘어 유럽 댄스플로어의 영향권에까지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일렉트로의 유럽 침공: ‘스트리트 사운드(Street Sounds)’의 전설

일렉트로는 실제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미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국한된 언더그라운드 무브먼트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특히 미 대륙 반대편의 캘리포니아주는 일렉트로를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로 각광받았다. 캘리포니아로 건너오면서 일렉트로는 보다 훵크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혹자는 뉴욕의 그것과 구별하기 위해 이들 캘리포니아 뮤지션의 음악을 반드시 ‘일렉트로 훵크’로 부르기를 원한다.

LA에서 일렉트로를 위한 터전을 마련한 주인공은 이집션 러버(Egyptian Lover)였다. 이 이집트계 미국인 청년은 “Egypt, Egypt”(1984) 단 한 곡으로 뉴욕 일렉트로의 아성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업템포의 강력한 비트에 크라프트베르크의 “Tour de France”를 다소 엉성하게 결합한 이 곡은 LA의 댄스플로어를 강타하며 큰 인기를 모았다. 뒤이어 언노운 디제이(the Unknown DJ), 나이트 오브 더 턴테이블(Knights Of The Turntable), 월드 클래스 뤡킹 크루(World Class Wreckin’ Cru) 등의 뮤지션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198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는 일렉트로 혹은 일렉트로 훵크의 보고(寶庫)로 자리 매김 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들 캘리포니아 일렉트로 뮤지션들은 미 전역에 이름이 알려진 ‘팝 스타’는 아니었다. 이는 뉴욕 일렉트로 씬의 경우도 마찬가진데, 실제로 “Planet Rock” 이후 일렉트로의 간판을 내건 어떤 곡도 주류 시장에 진입해 성공을 거둔 적은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내에서 철저한 언더그라운드 무브먼트이자 서브장르로 평가되던 일렉트로가 오히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더 큰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맨 패리시의 “Hip Hop Be Bop (Don’t Stop)”이 1983년 영국 차트 41위에 오른 뒤, 타이론 브론슨의 “The Smurf”, C.O.D.의 “In The Bottle” 등이 연이어 호성적을 기록했고, 이후 수년간 일렉트로 성향의 곡들은 꾸준히 영국 차트를 오르내렸다.

Egyptian Lover – “Egypt, Egypt”
[Street Sounds Electro Vol.5](1984) 중에서

20030409093642-0507us3전설적인 일렉트로 컴필레이션 시리즈 [Street Sounds Electro] 4집.
특히 [Street Sounds Electro] 앨범 시리즈는 1980년대 유럽에서 일렉트로의 인기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음반이었다. 모간 칸(Morgan Khan)이 기획한 이 시리즈는 한마디로 미국의 일렉트로 수작들을 선별한 컴필레이션 앨범들이다. 일렉트로가 막 싹트기 시작한 1983년에 1집이 나온 이후 1988년까지 무려 22장의 앨범이 영국에서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팩맨(The Packman)과 뉴클리우스의 트랙을 시작으로 무려 200여 곡의 대표적인 일렉트로 고전들을 이 전집을 통해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특히 1986년의 11집 이후는 주로 일렉트로에서 뉴 스쿨 힙합으로의 전환기적인 곡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올드 스쿨 힙합 격동기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값진 음반들이다.

애초에 LP와 테이프로 발매가 되었던 [Street Sounds Electro]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절판된 상태이며, 특히 1985년 이전에 발매된 앨범들의 경우 지금 중고 음반상에서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행히 일렉트로 전성기의 고전들로 채워진 1집부터 10집까지 열 장의 앨범이 지난 2000년에 영국에서 한정량 시디로 재발매되었는데, 이 또한 현재 동이 난 상황이다.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Street Sounds Electro]는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를 배회하는 수많은 음반 수집가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며, 올드 스쿨 경배자들에겐 전설로 남아있다. 사실 이 영국산 음반들이 지금은 유럽 뿐 아니라 미국의 올드 스쿨 힙합 팬들과 테크노 매니아들로부터도 최고의 일렉트로 고전으로 꼽히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일렉트로의 소멸 혹은 분화

미 대륙 반대편의 캘리포니아 그리고 대서양 건너 유럽의 은근한 열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힙합의 본고장 뉴욕에서 일렉트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쇠락하고 있었다. 그나마 일렉트로가 명맥을 유지했던 것은 순전히 맨트로닉스(Mantronix) 덕분이었다. 이들의 데뷔작 [Mantronix: The Album](1985)은 중, 후기 일렉트로를 대표하는 음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들 듀오의 리더인 커티스 맨트로닉(Kurtis Mantronik)은 샘플러와 신서사이저로부터 뽑아낸 음원들로 유기적인 댄스 리듬을 만들어내는 출중한 능력을 뽐내며 당시 뉴욕 힙합 최고의 프로듀서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맨트로닉스는 차츰 힙합 공동체로부터 자의반 타의반 밀려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힙합을 포기하고 급기야 유럽 댄스 클럽 씬으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이 실제 일렉트로의 전반적인 몰락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뉴 스쿨로 전이되고 주류 시장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힙합의 방법론 자체가 혁신적인 변화를 경험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사실 1980년대 중반 이전의 올드 스쿨 힙합은 넓게 보자면 대부분 일렉트로 훵크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가령, 앞서 언급한 후디니의 “Magic’s Wand”나 심지어 아프리카 밤바타의 라이벌인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White Lines (Don’t Do It)”(1983) 같은 곡은 굳이 일렉트로로 분류되진 않더라도, 최소한 신쓰 팝과 드럼 머신의 비트, 훵크를 뒤섞은 사운드를 기조로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반복적인 비트가 장시간 지속되는 ‘정통’ 일렉트로 곡들에 비해 곡의 길이가 짧고 조잡한 샘플링이 보다 빈번히 등장하며 랩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이미 과도기적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말이다.

아마도 1980년대 중반 샘플링 기술이 발전하고 이를 힙합 공동체가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일렉트로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사실상 일렉트로의 적자(嫡子)라 할 수 있는 런 디엠씨(Run DMC)는 뉴 스쿨로의 전환을 선도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이들은 드럼 머신을 이용하되 보다 록 성향의 강력한 비트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했으며, 한편으로 샘플링된 음원을 직접적인 ‘훅’으로 즐겨 사용했다. 일렉트로나 그로부터 영향받은 올드 스쿨 힙합 음악이 댄스플로어에 한정된 편이었다면, 이들의 음악은 보다 광범위한 대중을 흡수하는데 더할 나위 없었다. 결국 랩과 샘플링 중심의 힙합을 본격적으로 프로듀스하면서 런 디엠씨를 비롯한 데프 잼(Def Jam) 레이블의 뮤지션들은 1980년대 후반 뉴욕 힙합 씬을 장악하였고, 이제 힙합은 주류 시장의 ‘팝송’으로 본격적인 변신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샘플링을 보다 세련되게 다듬고 본격적으로 활용했던 말리 말(Marley Marl) 같은 출중한 프로듀서들의 역할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사운드 작법 자체가 변화하고 힙합이 보다 대중친화적인 상품이 되면서, 한때 뉴욕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대변하던 일렉트로 뮤지션들은 점차 무대 뒤로 사라져갔다. 맨트로닉스의 뒤를 이은 라틴 라스칼스(Latin Rascals)나 쳇 누네즈(Chet Nunez) 같은 이들은 한마디로 비운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한편 맨트로닉스는 일렉트로의 종말과 함께 1990년대 초에 음반 활동을 완전히 접게 된다. 근년에 커티스 맨트로닉은 유럽 댄스 클럽 씬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특유의 샘플러와 신디사이저 솜씨 덕에 극적인 재기를 했지만, 과거 힙합 공동체에서 자신이 누렸던 절대적 지위는 여전히 복원하지 못 하고 있다.

Herbie Hancock – “Rockit”
[Future Shock](1983) 중에서


일렉트로 훵크와 재즈의 조우,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Future Shock](1983).
결국 일렉트로는 1980년대 후반 뉴 스쿨 힙합의 도래와 함께 소리 소문 없이 꼬리를 내렸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올드 스쿨 일렉트로가 완전히 세상을 등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힙합의 하위 장르로서 일렉트로 자체는 겨우 4-5년의 짧은 영화를 누린 후 사라졌지만, 훵크와 기계적인 비트의 전자 음을 결합한 이 독특한 사운드의 영향은 이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이 “Rockit”(1983)에서 보여준 재즈와 일렉트로 훵크의 접목 실험은 이미 20년 전에 일렉트로의 폭넓은 응용 가능성을 예시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뉴욕 올드 스쿨 일렉트로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역시 후대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들이다. 관심 있는 이들은 근년의 ‘일렉트로 리바이벌(Electro Revival)’, ‘일렉트로 클래시(Electro-Clash)’ 혹은 ‘누 일렉트로(Nu-Electro)’에 대한 얘기들을 이미 접했을 것이다. 여기서 상세히 언급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펠릭스 다 하우스캣(Felix da Housecat)이나 피셔스푸너(Fischersponer)의 저가 드럼 머신 비트를 들으며 올드 스쿨 일렉트로의 향취를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최근의 일렉트로 클래시가 갑작스런 일은 아닐 것이다. 가령, 이전의 시카고 하우스나 디트로이트 테크노에서도 일렉트로의 영향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안 앳킨스(Juan Atkins) 같은 테크노 대부가 애초에 올드 스쿨 일렉트로 그룹인 사이버트론(Cybertron)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곰곰이 따진다면 사실 힙합 내부에서도 그 당시 일렉트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렉트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뉴욕 힙합 씬에서 쇠락의 기미를 보였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오히려 언더그라운드 클럽들을 중심으로 한동안 지속적인 지지를 받았다. 결국, 샘플링 중심의 뉴욕 뉴 스쿨 힙합이 일렉트로를 버린 데 반해, 웨스트 코스트 힙합은 일렉트로 훵크를 중요한 자양분으로 흡수하며 음악적 진보를 거듭하게 된다. 샘플링을 가급적 자제하고 신디사이저 중심으로 훵크의 아우라를 묘하게 재생했던 닥터 드레의 지 훵크(G-Funk)는 바로 일렉트로의 직접적인 은혜를 입은 음악이다. N.W.A 결성 이전에 닥터 드레가 멤버로 활약했던 월드 클래스 뤡킹 크루는 실제로 198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일렉트로 훵크의 간판 스타 중 하나였다.

Outro

일렉트로는 여태껏 1980년대 올드 스쿨 힙합 시절의 일시적 유행 정도로 취급되어 온 게 사실이다. 다행히도, 전술한 것처럼, 지금 올드 스쿨 일렉트로는 당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직접적인 자양분으로 인정되며 뒤늦게 각광받고 있다. 물론, 다소 늦긴 했지만, 힙합 공동체내에서도 일렉트로에 대한 재평가가 서둘러 이뤄져야할 것이다. 뉴 스쿨 힙합이 일렉트로를 부분적으로 거세했던 역사를 확대재해석하기 보다, 일렉트로의 강점을 어떤 식으로 재흡수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게 당장 절실해 보인다. 아마도 올드 스쿨 일렉트로는 현재 주류 시장의 마이크로 비트 프로덕션이나 데피니티브 쥭스(Definitive Jux) 패거리를 비롯한 인디 힙합의 ‘비트 파괴’ 실험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일렉트로는 올드 스쿨 힙합 자체의 진정한 복원을 위한 핵심 고리다. 크라프트베르크와 신쓰 팝을 랩과 훵크에 접목했던 일렉트로의 작법은 힙합 역사상 유례없는 창조적인 사운드 실험이었다. 결국 일렉트로는 힙합 특유의 하이브리드한 속성을 20여 년 전에 이미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던 음악적 표현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흔히들 얘기하는 컷앤페이스트 혹은 컷앤믹스를 통한 힙합의 방법론적인 장르와 경계 파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일렉트로가 뉴욕을 휩쓸던 1980년대 초반은 맨해튼 다운타운의 백인 펑크 키드들 그리고 라티노 브레이크 댄서들과 그래피티 화가들이 올드 스쿨 힙합의 중요한 주체로 전면에 나서던 때다. 따라서 일렉트로는 인종적, 문화적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던 올드 스쿨의 가장 자유분방한 시절을 음악을 통해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일렉트로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에 대한 재조명은 결국 올드 스쿨 힙합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고, 나아가 현재의 첨단 힙합 트렌드를 이해하는데도 소중한 기여를 할 것이다. 20030301 | 양재영 [email protected]

관련 글
Afrika Bambaataa [Looking For The Perfect Beat 1980-1985] 리뷰 – vol.5/no.7 [20030401]
Mantronix [Mantronix: The Album] 리뷰 – vol.5/no.7 [20030401]
‘Real Nigga’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 vol.3/no.5 [20010301]
브루클린 미술관, ‘Hip Hop Nation’ 전시회 관람기 – vol.3/no.1 [20010101]
힙합, 테크놀로지 그리고 네그리튜드 (1) – 랩/힙합의 탄생 – vol.2/no.2 [20000116]

관련 사이트
일렉트로에 대한 정보와 대표적인 앨범에 대한 자세한 소개
http://www.electroempire.com/
일렉트로의 개괄적인 설명과 대표적인 앨범 소개
http://members.aol.com/a5if/electro.html
일렉트로 대표적인 곡들 감상
http://www.thedisco.demon.co.uk/electr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