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05011951-0507leeup이상은 – 신비체험 – T Entertainment, 2003

 

 

듣기 좋은 신비체험

이상은의 음악이 6집 [공무도하가](1995)로부터 크게 달라졌다고 하지만 적어도 그 본연에 있어서 “언젠가는”과 같은 곡으로부터 크게 변한 바는 없다. 멜로디는 듣기 편하지만 식상하지 않고 편곡은 충실하고 재능이 있다. 더하여 이상은이 노래하는 감정은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추상화된 감정의 심상인데, 때문에 이 음악과 메시지는 듣는 이를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일이 없다. 그는 자신의 곡에 관조와 통찰을 담아낼 줄 아는 가수이지만 “아름다운 심상을 가진 포용력있는 가사’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요약해서 그의 음악은 듣는 이를 차별하지 않는 보편소구적인 팝음악으로서의 범주를 일관성있게 지켜왔다. 이러한 특질은 이상은의 앨범이 [공무도하가] 이후로 점점 신비주의 혹은 뉴에이지 성향을 짙게 담고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굳이 뉴에이지 운운하지 않더라도 탈속(脫俗)에 대한 욕망을 위험하지 않게 자극하는 것은 본래 팝음악의 역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1집인 [신비체험]을 CDP에 넣고 듣는 순간에 받는 느낌 역시 보편적인 편안함이다. 누구나 적정량의 신비체험을 공급받기를 원하고 이상은은 이번 앨범에서도 그것을 아름다운 심상과 편안한 단어들로 이야기해준다. “꿈은 알고 있어 모든 답을 / 울지 말고 잠이 들면 / 아침새가 날아올거야 / 너의 사원의 향내음과 함께”(Misterium) 필자로서는 꿈이 모든 답을 알고 있을까봐 무서워 죽겠고, 나의 사원에는 악취가 진동할까봐 걱정이지만 아름다움을 꿈꾸는 것은 해가 없는 일이고 이상은이 삶의 힘겨움을 모르는 철없는 가수도 아니다. 이것은 노래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서 모두를 위안해주는 순간을 꿈꾸는 음악이다. “말해줘 말해줘 더이상 슬프지 않다고 / 노래해줘 노래해줘 우리는 하나라고”(Paradise) 물론 이상은은 그렇게 말해준다. 편안함은 이상은이 지닌 한계이면서 동시에 그가 가진 힘이다.

이상은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공무도하가]와 [외롭고 웃긴 가게](1997)가 자신의 차별성을 부각하고자 팽팽하게 긴장한 예외적인 앨범이라고 본다면, 이 앨범은 이상은이 추구해온 본연에 대해서 충실하다. 자아에 대한 혐오와 불안마저 엿보이던 [외롭고 웃긴 가게]를 다시 한 번 내주지 않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상은은 앨범에서 긴장하기보다는 자신을 편안하게 드러내고 이야기한다. 잘 차려입은 것이 아니라 집에서 입던 대로 입었다는 느낌이다. 덕분에 [공무도하가] 이후로 그늘에 가려진 것처럼 보이던 3, 4집의 노래들이 앨범 중간중간에 떠오르는데 그건 필자만의 감상인지 모르겠다. 필자에게는 이 앨범이 팝가수로부터, 팝가수가 아니고자 하는 긴장감을 가지던 뮤지션이, 다시 팝가수로서의 자신을 용인하는 앨범으로 들린다. 그것은 단순한 원점회귀는 아닐 터다. 사실 이상은은 지금처럼 과잉평가(과대평가가 아님) 받기 이전에도 충분히 좋은 뮤지션이었다.

가사들은 대체로 자기고백적이면서 동시에 그 가사를 듣는 대상으로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는 청자를 호출한다. 다케다 하지무 외에 장영규, 달파란 등에 의해 전자적인 사운드가 도입되었지만 그것은 다케다 하지무가 해 왔던 역할 – 이상은의 멜로디와 메시지를 방해하지 않으며 듣는 이를 더욱 예민하고 깊은 상태로 이끌어가는 것 – 과 크게 차이는 없다. KAYIP이 참여한 “Valkyrie”는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달파란/병준이 참여한 “Supersonic”은 본 앨범의 편곡체제가 안겨주는 선물 같은 재치있는 곡이다. (다른 버전의 히든트랙으로도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사운드와 편곡의 변화는 생선요리에 얹는 소스가 슬쩍 바뀐 정도이고 생선의 조리법은 그대로다. 그러니 ‘디지털 이상은’에 대해 호들갑 떨 이유는 없을 거 같다. 이 앨범은 그가 지키고 발전시켜온 특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좋은 팝앨범이다.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그런데 한편에서 뭔가 딱히 기억에 남는 곡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Endless Lay](2001) 앨범 속지에 제공된 평이 생각나는데 본 앨범에도 그 평에서 지적된 ‘멜로디 훅의 부족’이라는 말이 적용된다. 이는 분명히 송라이팅 단계에서 노래 멜로디가 평이하게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어렵지 않고 나쁘게 말하면 단조롭다. 이런 점도 본작을 ‘힘을 빼고 편하게’ 작업한 앨범으로 여기게 하고 있다. 이상은은 이제 ‘노래한다’기 보다 ‘감정을 관조의 필터를 통해 읊조린다’는 차원에서 앨범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하기사 뮤지션이 “항상 긴장감 속에서 발전해야 한다”라는 강박을 가져야 할 이유가 뭔가? 이건 팝인데. 그런데 또 한편에서 드는 생각은 팝음악이라면 멜로디 훅이 부족하다는 것은 뭔가 아쉽다는 정도의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좋은 멜로디에 대한 긴장감을 가지지 않은 팝음악이라. 앨범은 팝의 범주 속에서 팝에 충실하지 않다. 그러면서 이상은이라는 인물에는 더없이 충실하다. 본작은 묘한 자리에 놓여 있고, 한국의 대중음악 지형 속에 이상은이 놓인 독특한 위상을 반영한다. 그러니 위 단락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노래’를 들으려는 청자에게는 아쉬운 점이고, ‘이상은’을 들으려는 청자에게는 그다지 불만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전자였다. 20030402 | 김남훈 [email protected]

5/10

수록곡
1. Soulmate
2. The World Is An Orchestra
3. 비밀의 화원 / Secret Garden
4. Winter Song
5. Valkyrie
6. Paradise
8. Indian Flower
9. Mysterium
10. Free Man
11. Voyager
12. Supers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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