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8013649-Icu20-20Chotto20Matte20A20Moment!Icu – Chotto Matte A Moment! – K, 1998

 

 

로 파이(lo-fi) 일렉트로니카 — 기상천외한 조합

1980년대 초 등장한 로 파이 운동의 기수 비트 해프닝(The Beat Happening)의 일원이자, 그 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K 레코드 사장이기도 한 캘빈 존슨(Calvin Johnson)은 예측불허의 인물이다. 비트 해프닝 이후에도 그는 헤일로 벤더스(The Halo Benders)나 덥 나르코틱 사운드 시스템(Dub Narcotic Sound System)이라는 일단의 프로젝트성 밴드들을 이끌었는데, 후자는 그 이름이 꼭 자메이카 음악을 하는 밴드같지만 실제로는 하드한 훵크를 연주한다. 무대에 올랐을 때도 그가 풍기는 첫인상은 전형적인 게으름뱅이(slacker) 인디 로커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지적이고 날카로운 전문직 종사자의 그것에 가깝다. 그러나 일단 공연이 시작하면 예의 그 술취한 듯한 목소리와 무대를 휩쓸고 다니는 춤바람은 그런 인상을 삽시간에 날려보낸다.

하지만 존슨은 자신의 음악 활동보다는 레이블 운영과 음반 제작에 더 시간과 관심을 쏟았고, 그런 노력은 근 20여년에 걸쳐 K 레코드와 부설 덥 나르코틱 스튜디오가 모디스트 마우스(Modest Mouse), 벡(Beck)의 [One Foot In The Grave](1994), 그리고 근래 들어서는 마이크로폰즈(the Microphones) 등을 배출하면서 미국 인디 록계에서 부동의 입지를 굳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처럼 주로 로 파이 노이즈-펑크-팝으로 특징지어지는 K 레코드가 그 레이블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전자음악 쪽으로 손을 뻗친 건 다소 의외지만, 이 또한 존슨의 기상천외한 음악적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덥 나르코틱 스튜디오에서 일을 해주고 있던 동네 DJ 켄토 오이와(일명 K.O.)의 작업을 듣고 녹음을 해보라고 권유했던 것이 이쿠 (Icu 또는 Iqu)가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다.

밴드의 이름은 영문자로 Icu 였다가 소송 위협이 들어오는 바람에 Iqu라고 바꿔 표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어로는 ‘여러'(いく)라는 형용사든가 어딘가를 ‘가다'(行く)라는 동사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냥 별 뜻 없이 쓰고 부르기 편한대로 지은 이름일지도 모른다. 앨범 제목도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란 일상 회화를 장난스럽게 반은 일어로, 반은 영어로 써 놓았으니까. 그냥 발음만 통일해서 ‘이쿠’로 해주면 그만이다. 당시의 3인조 멤버 구성도 인종적으로 딱 절반으로 나뉘는데, 비트매스터(beatmaster)인 K.O.는 100% 일본계, 어쿠스틱 베이스의 애런 하트먼 (Aaron Hartman)은 100% 백인이고, 그 사이에 낀 키보드 미치코 스위그스(Michiko Swiggs)는 반반인 것으로 보인다. 이만하면 음악을 접하기 전부터도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기미를 엿볼 수 있다.

첫 트랙 “Flower And Moon”의 초반부터 주목을 끄는 어쿠스틱 베이스 소리는 이쿠의 음악에 재즈적인 감각을 부여하지만, 정작 하트먼은 공식적으로 재즈를 연주하거나 훈련을 받은 경험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프렛이 없는 어쿠스틱 베이스에서 제 음을 짚으려고 애쓴다는 본인의 해명이 허풍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의 손길은 시종 일관 노련하다. 브레이크비트 드럼, 고색창연한 오르간 사운드, 카시오 키보드의 리프가 뒤를 따르고, 어느 나라 말인지 분별하기 힘든 노래소리로 만들어진 K.O.의 테이프 루프가 간간이 전진후퇴의 스크래칭 효과를 내면서 반복을 거듭한다. 그렇게 해서 생성되는 왠지 모르게 가볍고 번잡스런 기분은 두 번째 트랙 “Yopparai”에 와서 한층 더 강해진다. 드럼 앤 베이스 비트가 드르륵 긁어대었다가 정신없이 두들겨패면, 가속 및 변조된 음성이 무슨 어린이 만화 주제가 같은 노래를 불러제낀다. ‘장난감 그루브’외에는 별달리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 이런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헬로 키티 같은 일본제 만화 캐릭터가 겜보이 화면 속에서 노래하는 걸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끝부분에 가면 K.O.가 의도한 아이러니가 뒤통수를 강타하는데, 속도를 정상으로 떨어뜨리고 변조를 거치지 않은 채 듣는 음성은 다름아니라 일본 스님들이 목탁 소리에 맞춰 경 읽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런 곡들이 있는가 하면, 이후 리믹스 앨범에도 수록된 “Can’t You Even Remember That?”은 침중한 베이스 라인을 따라 전개되는 앰비언트 덥 스타일의 곡이다. 또한 안개에 푹 싸인 듯한 아날로그 신서사이저 사운드가 의심의 여지 없이 에어(Air)를 연상시키는 “Whistle”은, 느리긴 하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고 귓전을 울리는 드럼 비트와 어쿠스틱 베이스의 줄을 퉁기는 긴장감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반면 “Done By The Twist…”는 변화무쌍한 비트와 난해한 전자음의 향연으로 실험주의 테크노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렇듯 다양한 전자 음악 하위 장르들을 두루 섭렵하다시피 한 이 음반이 고작 8트랙 녹음 시설과 중저가 장비들을 동원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K 레코드의 로파이 철학이 올린 또 하나의 개가라고 볼 수 있다.

언급했다시피 밴드 이름, 앨범 제목이나 사운드 샘플에서 은근히 비쳐나오는 ‘일본색’은, 후속작인 일종의 리믹스 앨범 [Teenage Dream](2000)에 이르면 표지 디자인에서부터 일본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가감없이 삽입하는 등 아주 명시적인 것으로 된다. 이와 같은 멀티컬쳐/멀티장르 전략은 일본의 버팔로 도터(Buffalo Daughter), 보어돔즈(Boredoms), 유럽의 루퍼(Looper), 마우스 온 마즈(Mouse On Mars), 그리고 미국의 푸가지(Fugazi), 빌트 투 스필(Built To Spill) 등 이쿠와 한 무대에 섰던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밴드들을 보면 한 눈에 드러난다. 2000년 이후 한동안 별 활동이 없고, 같은 K 레이블 동료인 올드 타임 릴리전(Old Time Relijun)에게 베이시스트 하트먼을 되돌려주는 등 좀 불길한 징조가 보이긴 하지만, 로 파이 펑크와 첨단 일렉트로니카의 결합이라는 이쿠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30320 | 김필호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Flower And Moon
2. Yopparai (A Drunkard Who Fell From Heaven)
3. Can’t You Even Remember That?
4. Temptation
5. Whistle
6. Aluet
7. Done By The Twist…
8. Bouncing Baby Buddah
9. [untitled hidden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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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이쿠 공식 사이트
http://www.iquiqu.com/
K 레코드 이쿠 사이트
http://www.kpunk.com/IQU/
이쿠 인터뷰
http://www.nonverbal.com/konketsu/interviews/i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