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그 이름은 ‘한국 록의 금자탑’이다. 이 말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동의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 1985년 소리소문없이 발표된 이 늦깎이들의 ‘데뷔 앨범’이 일으킨 파란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짧은 말’만 한다면 이들은 여러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강력하고 중후한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정적이고 섬세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들국화에 매료되었고, (비슷한 말이지만) 까다로운 취향의 ‘록 매니아’들과 원만한 취향의 ‘가요 팬’들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라는 관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은 ‘직접 노래를 만들고 기타 치면서 부르는 실천’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능숙하게 연주해 내는 실천’을 종합했다. 전자를 ‘통기타 포크송’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그룹 사운드’라고 불렀던가. 다른 용어라도 상관없다. 이런 결합이 들국화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었다는 점만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단지 ‘포크와 록의 종합’이라기보다는 ‘포크송과 그룹 사운드의 종합’이라고 부르기를 제안한다. 이들이 창조해 낸 ‘한국 록’은 종합의 하나의 요소라기보다는 종합의 총체적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들국화는 ‘전인권과 최성원의 상이한 개성의 조화’라는 통설보다 훨씬 복잡한 집합체였다.

20030326054831-0506intro_1그런데 이상하다. 들국화의 ‘한국 록’은 이상적으로 보임과 동시에 불완전하다. 그들의 앨범의 표지를 들여다 보자. 멤버 네 명의 사진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름은 전인권, 허성욱, 최성원, 조덕환이다. 이 표지의 컨셉트는 다들 알다시피 [Let It Be]의 표지를 빌려와서 재구성한 것이다. 촌스러운가? 상관없다. 그건 들국화라는 이름만큼 촌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그런 걸 왈가왈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네 명의 멤버가 비틀스처럼 리드 기타, 리듬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으로 꽉 짜여진 편성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따름이다. 유심히 따져 보면 네 명 가운데 ‘기타잽이’와 ‘드러머’가 없다. 전인권과 조덕환이 기타를 연주하기는 하지만 그건 노래부를 때 ‘반주’하는 정도였다. 게다가 최성원이 베이스 기타를 연주한 경력은 3~4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고, 허성욱은 오르간이나 신서사이저보다는 그랜드 피아노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맞다. 들국화는 비틀스보다는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 영(Crosby, Stills, Nash & Young)에 가깝고, 송골매보다는 따로또같이에 가까운 그룹이었다. 즉, 우리가 암암리에 떠올리는 ‘록 밴드’와는 달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음악은 ‘포크 록’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포크’라는 말도 ‘록’이라는 말도 논란이 많은 한국에서 저렇게 단칼에 정의하고 끝내 버리는 일은 무의미할 때가 많다.

데뷔 앨범을 녹음할 무렵 들국화의 불완전함을 메워준 것은 ‘세션’으로 참여한 주찬권(드럼)과 최구희(기타)였다. 그들이 ‘직업적 세션맨’이 아니고 ‘그룹 사운드’에서 연주인으로 오랜 수련을 쌓아온 인물들이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이들이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세션맨이었다면, 즉, 그 이름이 그 이름인 인물들이었다면 들국화의 음반에서도 어느 음반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기타 사운드와 드럼 패턴을 들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들국화의 독창성은 침식되었을 것이다.

음반이 예상밖의 성공을 거두고 라이브 공연을 거듭하면서 주찬권과 최구희(그리고 손진태)는 들국화의 정규 멤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들국화는 ‘한국 록’을 정말로 주류로 부상시킬 것만 같았다. 자의식 강한 가사와 완벽한 사운드가 조화된 이들의 ‘행진’은 “드디어 한국에도…”라는 기대감을 낳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음악인 내부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이들은 선배로부터 사랑받고 후배로부터 존경받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뒤의 복잡한 이야기들은 나중으로 미루거나 생략하겠다. 각 멤버들은 나름대로 솔로로, 그룹으로 활동을 계속했지만 그 활동을 ‘1985년부터 1987년 사이의 들국화’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아쉬움은 그리움으로 변했고, 그리움은 회한으로 바뀌었다. 1995년에 나온 [들국화 3집]은 ‘해프닝’ 이상이 아니었다. 1998년에 재결합 공연, 2000년에 재재결합 공연이 있었지만 그건 ‘팬 서비스’ 이상은 아니었다.

2003년 이제 들국화 신화의 주역은 한국 나이로 50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전인권이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들국화는? 또다시 해체된 것일까. 그렇지만 이들에게 해체는 재결성보다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점이 서운한가. ‘인권이형, 성원이형, 찬권이형 제발 싸우지 말고 이번에는…’이라고 부탁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1985~87년의 신화’를 만들기 전 이들이 어떤 발자취를 거쳐왔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어쩌면 들국화 신화가 진행되는 과정보다는 그 신화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한국 록’의 일반적 조건이다. 그 뒤의 지리멸렬해 보이는 과정도 마찬가지. 너무 비관적으로 말하는 것 같지만, 음악이든 다른 분야든 재능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시간보다는 찢기고 갈라지고 헤어지는 과정이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 ‘한국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들국화가 완전한 형태의 록 밴드라고 아쉬워하는 일은 사치스럽기조차 하다.

이번 특집을 통해 ‘들국화 신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발자취를 추적해 보자. 공연을 비롯한 여러 이벤트들을 세심하게 추적해야겠지만 일단은 ‘음반’으로 남아있는 것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약 20년 전 ‘미비한 조건과 환경에서 최선을 추구했던 형님들(혹은 오빠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머지는 ‘동생들’에게 남겨진 것들이니까.

이야기가 무겁게 흘렀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양해를 구한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가 필요 없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분명 들국화를 넘어서는 음악이 나온 다음일 것이다. 즉, 들국화 콤플렉스가 해소된 다음일 것이다. 20030323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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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그룹 들국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모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도 회원으로 있다.
http://cafe.daum.net/march
들국화 팬 사이트
http://my.dreamwiz.com/aproman
http://www.hangj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