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이 글은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2001년 10월 19일치 <김정환의 ‘할 말, 안 할 말’>에 실린 글입니다. 다소 시간이 지난 글이기는 합니다만, ‘전인권의 팬’을 자처하는 시인 김정환의 전인권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운 글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한 관계는 흥미로운 면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전혀 달라 보이는 삶을 살아온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1980년대라는 ‘엄한’ 시기에 한 사람은 대중문화계, 속된 말로 ‘딴따라판’에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민중문화계, 속된 말로 ‘운동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비슷한 시점에 태어나 비슷한 시기에 성장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치열하면서도 멋지게’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옮겨 봅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김정환님과 [프레시안]에 감사드립니다. 아, 참 김정환 시인의 다른 글을 보니 강금실님도 전인권의 팬이라도 하더군요. 전인권이 ‘사고’를 쳤을 때 변호를 맡았다는군요. 지금 법무부 장관으로 계신 그 분 맞습니다. 맞고요! 관심있는 분들은 [씨네 21]에 김정환이 쓴 글[여성동아]의 기사를 참고하세요.

20030326040933-0506terroristjuninkwon1전인권. ⓒ프레시안.

봄-가을이 없어졌다는 말이 유행하다 보니 완연한 가을 색으로 쌀쌀한 기운도 뭔가 찌뿌드드하게 느껴지는 날 저녁 아홉시 쯤, 계절과 상관없이 강남에 밀려 왁자지껄하지만 생기와 활기와 살기가 구분되지 않고 그냥 찌뿌드드하기만 한 신촌 술집골목 일대, 그 중에서도 외진 곳에 숨듯이 들어앉아 손님을 청하는 건지 쫓는 건지 상가(喪家)에나 어울릴 듯한 간판 등이며 그 안에 20년 묵은 여주인이 지배하는 낡은 목조 흑백의 실내 분위기며 중년은 아니더라도 중년 티가 나는 손님들이며 그들이 즐겨 신청해 듣는 김추자-장현 류의 1970년대 유행가며 그 모든 것이 도무지 찌뿌드드한 술집 ‘섬’에서, 그것도 술을 이쯤 하여 중단할지 아니면 내처 새벽까지 고!할지가 시들하고 애매하여 찌뿌드드한 저녁 9시에 그를 만나니 아니나 다를까 그도 찌뿌드드하다. 하긴 이 집엘 20년이나 단골로 다닌 내가 제일 찌뿌드드하다. 그리고 그도, 나를 만날 때마다 찌뿌드드하다.

“미안해요. 요즘은 너무 바빠서. 술도 같이 못하고….” 그는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내가 고맙고 미안하지. 바쁜 사람 불러 놓고 ‘할 말 안 할 말’하자고 우기고 있으니. 나는 지칠 대로 지친 그가 좋다. 우선 그건 바쁘다는 소리니까. 그가 바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술집이 고요하기 한적하기를, 그렇게 손님이 없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도둑놈 심보 아니겠는가. 그 다음은, 이게 정말 중요한데, 그런 그를 ‘알아’야 그가 무대에서 발하는 ‘예술’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래를 부르는 거다. 나는 그가 천하의 지고성(至高聲)을, 참으로 서정적으로 토해낼 때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름다움의 사신(死神)과 파우스트의 거래를 하는 듯한 환각을 느낀다. 그가 평소에도 강건하기에 그런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는 팬들, 데모하듯 “행진”을 연호하는 팬들은, 고맙지만, 그것을 느낄 수 없다. 사회적 참여 또한 아름다움의 사신(死神)을 관통하는 행위라는 것을 느끼지 않는 한. “돌고, 돌고, 돌고”의 박자에 기다렸다는 듯 ‘집단 속 광란’의 춤을 연출하는 팬들은, 미안하지만, 그것을 느낄 수 없다. 집단적 춤의 진정한 충동은 ‘집단 속으로 내팽개쳐 지고 싶은’ 그것이 아니라 죽음=아름다움의 충동을 집단성으로 관통하면서 보다 질 높은 의미=아름다움의 전망을 체감하려는 그것임을 알지 못하는 한.

하긴, 이런 말을 하는 나는 늙었고, 전인권은 보다 젊다. “그 장충공원 공연, 안 와봤어요? 어유, 아까워라. 끝내줬는데. “돌고, 돌고, 돌고”에서 청중들이 모두 몰려나와 한바탕 날고뛰는데…. 하여간 끝내 줬어요. 어유….” 그가 어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생방송 인터뷰의 천재다. 거침이 없고 솔직하고, 야성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인터뷰를 듣다 보면 그 숱한 달변들이 하루아침에 변명 혹은 포장 혹은 예의 혹은, 심지어, 사기처럼 들린다. 그는 노래 뿐 아니라 사이사이 애드립에서도 청중들을 되는대로, 그러나 절묘하게 호흡을 타면서 다룰 줄 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연세대 노천공연 때 그가 마이크를 잡자 청중들이 환호했고 그는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법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와아.” 함성과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할 말을 다했는가? 아니다. 틈을 주지 않고 그가 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와 광란의 향연을 벌이는 것은 법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와아.” 그 말에 ‘엄숙한 대열’이 순식간에 집단 춤 속으로 무너졌다. 그렇게 그는 단 두 마디로, 자신의 ‘대마초 고난’의 과거와, 예술의 미래까지 다 말해버린 것이다.

그는 맨 정신을 싫어한다. 나도 맨 정신을 싫어한다. 이러니까 무슨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같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도 취했다. 나도 취했다. “김정환씨는 특히 여자를 좋아하는 게 맘에 들어요. 나도 여자를 좋아하거든요. 여자에 대해 도덕적인 사람 만나면 불편하거든요….” 그래. 그는 여자를 좋아한다. 나도 여자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방법과 정도는 그도 비밀이고 나도 비밀이다. 동행해준 조경란(소설가)이 환히 빤하게 웃는데, 이쁘고 고맙다. 어쨌거나, 조경란에 대해서도 글을 써야 하니 여기서는 아끼고, 이렇게 취해 갖고서야 대담이 진행될까? 하긴, 상관없다. 그와 나는 맨 정신인 채로 얘기를 해본 적도 없거니와, 맨 정신으로 서로 대화가 통하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까. 그리고, 사실 물어 볼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신변잡기가 궁금한 것은 아니니까. 궁금하단 들, 그는 워낙 유명인이고, 웬만한 소식은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다. 너무 딱딱해서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지 함께 배석한 김상도(프레시안 사회·문화 에디터)가 ‘외국의 대마초-마약 사례’를 거론하면서 유럽도 나라마다 처벌 규정이 다르고 미국도 어떤 주는 죄가 되지 않고, 그렇게 운을 뗐지만 그 얘기도 사해광고(四海廣告)가 된 후 전인권의 ‘마약을 피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폭탄선언으로 집약된 터라 나는 ‘어쨌거나 외국에서 유명 예술가가 대마초 피웠다고 징역사는 건 듣도 보도 못했네’하고 말미를 끊었다.

이제껏 하고 싶었는데 못해본 것이 무엇이냐, 혹은 앞으로 무엇을 꼭 해보고 싶으냐, 우선은 그것 하나면 족하리라. 그는 예술가니까. 그런데, 그의 대답은 너무 적확해서 나를 놀래킨다. “못해 본 거, 하고 싶은 거요, 있지요…. 청중들과 서로 맞대꾸하면서 장난스럽게 아뭏지도 않게, 재미있게, 그러면서 할 말 다하는 거 말예요…. 풍자와 해학이 있는….” 그러면서 그는 신곡이라며 몇 대목을 흥얼거렸는데 그게 진하디 진한 해학의 육자배기를 닮았으면서도 당대성으로 비리디 비렸던 것이다. 아니, ‘예술적’이라는 형용사로 미화시킨다면, 한가로우면서도 피비렸다고 해도 좋겠다.

“아, 그거 좋네….” 나는 그렇게 추임새를 넣으면서 옛날 일을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거 왜 한참 전에 말예요, 경복궁 밑 ‘전인권 카페’ 시절에, 판소리나 민요를 직접 부르기도 하고(이를테면 ‘모진 놈 만나서 돌베개 배었네’, 그런 거), 그런 분위기를 따서 노랠 많이 부르고 의욕도 있고 주장도 하고 그랬었잖아요, 그래서 판을 하나 낸 게 있을 텐데, 그거 잘 됐나요?” 나는 내용 우선주의자에다 당대주의자라서 전통적인 형식에 푹 빠져(이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고, 당시의 그의 그런 행태(?)에 몹시 걱정을 했던 편이라, 국악에 무척 정통한 선배를 일부러 모셔다가 그를 설득시키려 한 적도 있었다. 그 선배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간절한 어조로 그의 음악을 ‘지적’했다. ‘몸에 저절로 배면서, 경험이 자연스레 우러나야 국악이고 양악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지금까지의, 그리고 현재의 들국화 노래와 창법이 훨씬 좋은데, 형식 차용은 무리다….’ 그런 내용이었다. 그때도 물론 전인권이나 나나 술에 흠뻑 절은 상태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물론, 전인권이 그 정도의 ‘형식주의자’였을 리는 없겠고, 선배도 그런 뜻은 아니었겠다. 사실 전인권의 노래와 창법에는 일찌감치부터 질기디 질긴, 구수하기보다는 처절한 국악창법이 있었다. 문제는 그의 샤우팅 록(shouting rock) 창법에 모종의 자연스러운 민족성을 부여해주었던 그 ‘국악’이 이제 전면에 나서면서 노래의 맛깔스러운 의상이 아니라 노래를 지배하는 뼈대로 들어선다고 할 때 생겨날 ‘예술의 파탄’이 문제였다. 운동권 용어로 말하자면 PD예술에서 NL예술로 악화된 달까. 대중문화계에서 (최)정상의 프로로 활동하면서 알게 모르게 체득한 대중성의 감을 보다 예술적으로 응집-심화하는 게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하고 당연하고 마땅한 일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전인권의 대답은 간단하고 흔쾌했다. “잘 안됐었지요, 뭐….” 그러다가 그는, 늘 그렇듯, 말의 맥락을 끊고, 의미의 맥락은 훨씬 더 강력하게 이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때 공연을 백 오십 일이나 잡아놓았었는데…. 그게…. 그래서 여행을 다녔는데요. 아, 그 한라산. 한라산에서 눈이 펄펄 내리는데 길을 잃고, 그 눈발 속에서 혼자, 그것을 내가, 다 버텼어요. 아, 그거, 후배들도 그런 거 한번 해봐야 돼요, (윤)도현이도 해봐야 하고, (이)은미도 해봐야 돼….” 윤도현하고는 아직 인사가 없고 이은미 하니까 생각난다. 김광석이 죽은 후 옛날에 같이 음악운동을 했던 친구와 후배들 사이에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소문이 을씨년스럽게 돈 적이 있다. 노래에 열성적이며 사고방식이 건전한데다 이재(理財)에도 밝았던 그가 자살할 리 없다는 거였다.

그때 내가 농반진반으로 그랬다. “자살이다, 일마들아. 무대라는 게 삶과 죽음을 오가는 곳 아니겄냐. 청중이 없거나 빠져나간 객석이 슬프거나 해서 고독한 게 아니라 청중의 환호와 자신의 ‘육성의 열락’ 속에 몸을 맡긴다는 게 고독이나 슬픔 보다 더 ‘극치의 죽음’과 일맥상통한 거 아니겄냐. 우리가 자살하는 거랑 다르단 말이다….” 그 얘기를 어떤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하는데 돌연 옆자리인지 뒷자린지에서 이은미가 받았다. “맞아, 그래요. 어쩜, 정말 그 말이 맞아요….” 그것을 계기로 나는 이은미와 전에도 몇 번 보았지만 피차 아는 체 하기 쑥스러운 관계에서 마주치면 눈인사는 할 정도로 ‘발전'(?)했다. 원래도 그(녀)가 새침 뗀 게 아니고 내가 빙충맞아 그랬던 거지만.

어쨌거나, 이은미 얘기까지 포함해서, 그는, 혹시 무의식적으로(왜냐면 그는 자신의 뜻이 좀 통한다 싶으면, 어허, 혹은 어유, 등의, ‘jazz’라는 어감의 오르가즘을 닮았지만 꽤나 걸걸하고 무지근한, 거의 육중한 자체 감탄사를 발할 뿐 자신의 논리화하려는 적은 없으니까. 독자, 혹은 팬들의 이해를 돕자면 그 감탄사는 공연 중 그가 너무 도취하여 고개를 절레절레, 혹시 헤벌레 헤벌레 흔들 때 그 동작의 언어-탄성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답변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 그는 아마도 생전 처음, 자신의 ‘절멸과 엑스타시’의 무대경험, 혹은 대마초 경험을 한라산 ‘무대’에서 거꾸로의 방향으로 객관화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참으로 귀한 대중문화의, 주관과 객관의 변증법 과정이다. 옥스포드 콤페니온(companion, 백과사전에 가까운 입문서) 시리즈 중 ‘대중문화’편을 A부터 Z 항목까지 꽤나 촘촘히 읽다가 ‘대저 5백 년 동안 대중문화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강력하며 영원하다’라는 구절을 읽고는 무턱대고 감동했던 생각이 난다. 대중 혹은 자기 속으로의 ‘열광적 죽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중과 자기를 관통하면서 그 관통으로써 아름다움의 미래전망을 빛 발해야 한다.

죽음인 아름다움이 죽음을 이긴다…. 이쯤에서 그가, 말했던 것이다. 장난스럽게 아뭏지도 않게, 재미있게, 풍자와 해학이 있는…. 풍자와 해학은 좀 낡은 표현이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에는, 놀랍게도, 현대예술의 가장 어려운 핵심이 담겨 있다. 비극적 서정이 극치에 달하고 제 스스로 농익음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 내리는 그, 영원보다 긴 찰나의, 비극보다 더 포괄적인, 아니 비극의 청출어람인 웃음. 마치 죽음이 삶을 너그럽게 껴안고 흘리는 듯한 웃음. 무거움 보다 더 진지한 가벼움. 그렇다면, 그러니, 전인권으로 하여, 대중문화가 어찌 강력하고 영원하지 않겠는가. 이 대목에서 조경란이 물었다. “비틀스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죠, 굉장하죠, 며칠 전 존 레논이 부르던 “Imagine”을 녹음했는데, 그건 내가 제일 잘 부르죠. 쑥스럽지만. 아니, 그게 아니고, 그래요 비틀즈 참 대단하죠, 아… 프로그레시브 록도 그렇고 많은 장르에서 선구 노릇을 했죠. 박자도 재밌고, 그런가 하면 선율이 달콤한 “Yesterday”도 있고….” 내가 또 아는 체를 한다. “전체적으로 응집력이 부족해 보여. 들국화 노래에 있는, 박자가 아무리 광란에 가깝더라도 응집력이 더 강해지는 그런 거. 그게 없잖아요?” “글쎄, 어, 그런가?” 그는 내 말이 맘에 안 드는 체로 나의 ‘들국화 추켜세우기’가 싫지는 않은지 긴가민가한 표정이다.

20030326040933-0506terroristjuninkwon2김정환은 1980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문단에 나온 후 시작(詩作) 못지 않게 문화 운동에도 많은 힘을 써 왔다. 현재는 한국문학학교 교장으로 있다. ⓒ프레시안.

내가 내처 나가 본다. “사실 여러 분야를 혁신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이들 수록 나는 그게 일종의 무책임한 분탕질로 보이거든요. 살아온 환경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그럴 텐데. 거긴 수난 받은 역사의 무게가 대중문화를 심하게 짓누르지 않는다는, 그만큼 홀가분하다는 얘기도 되겠고. 사실 옛날 사회주의 정권에서도 비틀즈는 높이 평가했어요. 리버풀 노동자 계급 출신에다가 또 많은 부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난 절충처럼 느껴지더란 말이지. 까부는 애들처럼 보이는 대목을 영 씻을 수가 없어, 내가 듣기로는. 비틀림이 비틀즈 못지 않지만 좀더 구세대고 흑인 영가 풍의 정서적 응집지향을 어느 정도 익히고 시작했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더 좋은 것 같애. 예술가란 게 행태는 모든 것에 반항하는 아나키스트지만(이 대목에서 “그렇죠, 그렇지…” 하고 그가 긴가민가한 채로 반색을 한다) 하지만 한 중심을 향해 정서를 쌓아올려 청중을 묶어내면서 감동을 통한 집단 정서의 질적 변화를 유도하고 그 안에 동참한다는 점에서는 볼셰비키적인 면이 내용상으로는 더 중요하단 말예요…(어 무슨 또 골치 아픈 소리?)” 너무 나갔나, 아니면 나도 감염됐나. 내 말이 헷갈리고, 어긋나가기 시작한다.

“난 말예요, 옛날 후배들 공연하고 풀이 죽어 있으면 꼭 사이먼과 가펑클 ‘뉴욕 센트럴 파크 공연’ LD를 같이 봤어요. 그리고는 ‘내가 너희들 꼭 저런 공연 한 번은 해보게 해주마’고 약속했지요. (“어유, 사이먼과 가펑클, 거 멋있죠.”) 우선, 우리나라처럼 무슨 무슨 노털들이 공연하기 전에 잔소리 안 하는 공연(“하하, 맞아요.”). 거 뉴욕시장이 나와서 딱 한마디하잖아요. 레이디스 앤 젠틀맨, 사이먼 앤 가펑클, 그렇게 소개만 하고 들어간단 말예요. (“어, 그거, 정말 멋있죠.”) 두 사람의 노래는 정말 감미롭고 청중들은 연인끼리 어깨를 감싸고 그냥 음미하듯 들을 뿐이죠(“거, 좋죠.”). 밴드가 거창한데도 뭐 하러 나왔나 싶을 정도로 노래에 개입을 안 하죠. 그러다가 딱 5분, 아니 10분 동안 폭발하는데 정말 죽이잖아요. (“죽이죠, 하하.”) 그리고 사이먼과 가펑클이 좀 비트가 있는, 그리고 대중적인 노래를 부르면 환호가 터지는데, 그 표정이 말 그대로 고맙다는 표정이잖아요. 그 사이 해는 지고 어스름 내리고, 연인끼리는 더욱 각자의 품을 파고들고…. 그런 공연. 초장부터 한데 엉켜 붙는 게 아니라, 구분이 된 연후 서서히 결합하면서 결합의 예술도를 높여 가는 공연….”

너무 열을 올렸나?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내 말을 따라왔으되, 자기 식으로 따라왔다. ‘아나키트스적’ 가사와 ‘볼셰비키적’ 가락이 결합한, 그래서 비틀스적이라기보다는 존 레논적인 ‘이매진’ 속으로 몰두하면서. (물론 건성으로 따라왔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 ‘전인권 식’은, 당연한 얘기지만, 주절주절 떠들어댄 나의 정상(正常)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내 정상의 목표에 가 닿아 있었다.

“미국 테러니 아프간 전쟁 그런 것들 보면 참 큰 일 났다, 내가 참, 이래서는 안 된다, 더 잘 해야 되는데, 록의 정신은 저항정신인데, 내가 참 이래서는 안 된다,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테러도 나쁘지만, 전쟁은 정말 나쁜 거잖아요. 평화가 좋은 거잖아요….” 그래. 그 지점을 향해 우리는 온 거였다. 피차 술 취한 정신으로. 아니, 당연하다. 그것은 어차피 맨 정신으로 올 수 없는 지점이었다. 왜냐면, 한 마디로 그가 가창력을 최초로 폭발시켰던 들국화 1집 음반은 일제잔재와 군사독재 그리고 타성과 게으름에 찌든 채 서양 팝송의 무차별 융단폭격에 귀를 막고 있던 기존 가요계에 던진 폭탄이었다. 기성 가요계는 대경실색했고 청중들은 환호하면서 갱생했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음악의 테러리즘, 예술의 테러리즘은 목적과 지향 뿐 아니라 수단도 철두철미 평화주의적이다.

문화적 살인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낡은 도덕을 통치수단으로 온존시키면서 문화-예술의 저급화를 방치 혹은 조장 혹은 강제하는 현대의 모든 정치도 스탈린적이다. 그의 ‘대마초 행동’은 예술을 낡은 도덕의 잣대, 그것도 독재의 권위와 혼동되는 도덕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정신상태에 대한 끈질긴 테러리즘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창예술의 수준은 점점 더 높아졌다. 육성의 아름다움에서 나이의, 생애의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간의 음악-존재적 희열 혹은 구원을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며 그 아슬아슬한 경계의 틈을 점점 더 가파르게 만들어 가는 무대예술가의 심정은 뉴욕 무역센터를 향해 비행기를 몰고 가던 테러리스트의 그것에 가장 근접해 있다. 동시에, 5천 5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는커녕, 자신의 목숨을 예술화하는 것이다. 미 제국주의를 겨냥한 약소민족 테러리즘의 명분과 수단 사이 모순은, 최고 수준의 휴머니스트 논리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 논리 너머에 예술가의, 전인권의 ‘맨 정신이 싫은’ 예술 혼이 있는 것이다.

‘메시지’란 말이 좀 걸려서, 내가 그랬다. “노래는, 설령 갈가리 찢겨 절규할망정 그 절규의 서정적 극한을 갈 뿐, 그것으로 록은 저항할 뿐, 꼭 그런 가사라야 ‘메시지’가 담기는 것은 아니잖겠느냐. ‘메시지’ 때문에 노래의 질이 떨어진다면, 결국 절규의 질도 떨어지는 것 아니겠느냐….” 뭐, 그런 얘기는 아니겠고. “너무 걱정 마세요. 하여간, 내가 좀 잘해야 할 텐데….” 그가 그렇게 답했다. 하긴, 물어 보는 도중에도 괜한 기우겠거니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어쨌거나, 괜히 하는 김에 나는 괜한 말을 더 보탰다. “혹시 자신의 예술에 회의가 든다거나, 자신이 없는 거예요?” “어유, 그럴 리가요. 허허….” 그는 짤막하게 웃어넘겼지만 나는 쓸데없이 한 방 맞은 것 같아서 조금 억울했고, 그가 자리를 뜬 후에도 술을 꽤 마셨다. 아니 기분이 썩 좋았다. 아마도, ‘그의 경지’에 달해보려는 욕심으로 더 마셨을 것이다.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미국 말 잘 듣고 잘 보여서 이슬람 문명권 보다 ‘조금 잘’ 사는 대신 ‘진지한’ 생(生)과 사(死)의 영혼을 빼앗긴 나를 겨우 달래는 차원에서 필름이 끊겼지만. 끝. 20011018 | 김정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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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팬 사이트
http://my.dreamwiz.com/apr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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