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6033707-0506review_jun전인권 – 맴도는 얼굴/꽃분이 – 힛트(HM 10012), 1980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음반의 표지가 무척 생경하다. 전인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즉 방치되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곱슬거리는 긴 머리가 만들어내는 야수의 이미지는 찾을 길이 없다. 얼굴을 반쯤 덮은 뿔테 안경하며 단정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잘 정돈된 머리 모양이 낯설다. 따로또같이의 첫 음반에 실린 그의 사진을 바라볼 때나 마찬가지로 이건 ‘진짜’ 전인권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1979년, 따로또같이로 활동하며 전인권은 첫 솔로음반을 발표한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불 태우고 싶었던” 음반이라고 한다. 청계천에 자리잡고 있던 소규모 기획사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그 음반은 이듬해 좀 더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데, 그 새로운 모습의 솔로 음반이 이 글에서 다룰 음반이다.

앞면과 뒷면의 첫 수록곡은 따로또같이에서 전인권과 함께 활동했던 나동민의 곡이다. 음반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하는 듯한 나동민의 곡은 묘한 민요적 서정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이 만들어 가는 엇박자의 셔플 리듬과 전인권의 보컬은 곡과 잘 어우러져 있다. 앞면 첫 수록곡 “맴도는 얼굴”(음반 표기와는 달리 이길호의 곡)은, 따로또같이의 1집(1979)에 전인권의 목소리로 실린 바 있는 원곡과 거의 흡사한 느낌이지만, 리듬 파트를 베이스에서 드럼으로 대치해 만들어낸 백비트 덕에 로킹하다는 느낌이 더해진다. 음반 표지에 작곡자와 함께 병기되어 있는 편곡자 이정선의 손길 때문인 듯한데, 그는 이 곡을 포함해 “꽃분이”, “언젠가 그날” 등 3곡의 편곡자로 등재되어 있다.

나동민과 이정선의 터치가 따로또같이와 특별한 차별성 없이 가해졌다면, “어찌 사랑 너뿐이랴”를 포함한 강근식의 손길은 좀 다르다. 총 6곡의 편곡자로 쓰여져 있는 강근식은 이장희의 음반 [그건 너!]를 시작으로 동방의 빛에서 활동하며 1970년대 중.후반을 수놓았던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음악 프로듀서로 한국 대중가요의 사운드를 풍성하게 했던 인물이다. “어찌 사랑 너뿐이랴”의 클린 톤의 기타, 연주곡 “맴도는 얼굴”의 미니 무그의 사운드 등이 이 음반에서 그의 관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자칫 진부한 선곡이 될지도 모를 1920년대의 구전 가요 “희망가”나 손석우의 “이별의 종착역” 역시 기타, 드럼, 베이스, 피아노 등 여러 악기들의 다중적이고 풍성한 리듬을 통해 멋스럽게 가공하고 있다.

이호의 곡을 강근식이 편곡한 “어찌 사랑 너뿐이랴”에서는, ‘아’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여성의 ‘발성’이 높아졌다 사라지고, 스틸 기타의 하늘거림과 베이스 드럼의 선명함이 더해지며 시작된다. 보컬이 호흡하는 틈틈이 예의 클린 톤의 기타는 부드럽게, 트럼펫이 강하게 울리면서 공간을 메운다. 곡의 중간 중간을 연결하는 드럼의 필인이나, ‘아하-‘하고 외쳐대는 여성 코러스 등은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런 ‘대곡’ 같은 느낌은 “나의 마음을”(박두영 작사.작곡)에서 한층 강하게 느껴지는데, 신디사이저가 만들어 내는 배음(背音) 위로 심벌과 드럼, 베이스가 한꺼번에 요동치는 사운드가 차츰 약해지며 필터로 걸러진 듯한 보컬이 부드럽게 시작된다. 보컬의 뒤를 잇는 기타 역시 살짝 걸린 에코 덕분에 ‘클린’하다는 느낌과는 다른 향취를 풍겨내고 있다.

대부분의 데뷔 음반이 그렇듯 이 음반 역시 전체적으로 일관된 무엇이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특히 ‘경음악’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는 연주곡 “맴도는 얼굴”은 코러스 부분을 뒤덮고 있는 여성의 보컬 덕분에 한참 후에나 등장하게 될 노래방 반주의 원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전인권이 직접 쓴 “그 아이”의 경우 컨트리 웨스턴 풍으로 재미있게 편곡되어 있긴 하지만 음반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따로또같이와 동거할 수 없었던 전인권은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줄 후원자가 필요했던 것 같다. 두 차례의 데뷔 음반은 그런 그의 재능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했던 후원자에 의해 상품화되었고, 그 상품은 이정선과 강근식이라는 두 음악 프로듀서에 의해 가공되었다. 그러나, ‘들국화’에 실린 그의 곡 “행진”만큼 “그 아이”는 폭발적이지 못 했다. 20030324 | 신효동 [email protected]

6/10

p.s. “맴도는 얼굴”은 전인권의 1988년 독집 음반에 “헛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바 있다.

수록곡
Side A
1. 맴도는 얼굴
2. 어찌 사랑 너뿐이랴
3. 언젠가 그날
4. 희망가
5. 맴도는 얼굴 (경음악)
Side B
1. 꽃분이
2. 그 아이
3. 이별의 종착역
4. 나의 마음을
5. 해군가 (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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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들국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모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도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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