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6052006-0506review_choisungwon이승희·이영재·최성원 – 노래의 날개/그대 떠난 뒤에는/매일 그대와 – 서라벌(SRB 0004), 1980

 

 

언더그라운드의 예고된 힘

전두환, 고인이 된 코미디계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원한 국민가수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1980년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면면들이다. 가요판은 일인천하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1975년 가요정화조치와 함께 무력해진 포크와 록의 생존자들은 그 순간에도 명동, 종로, 신촌에 모여 정중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1980년 한 여름에 출시된 최성원, 이영재, 이승희의 앨범은 조동진, 해바라기, 정태춘, 따로또같이와 더불어 1970년대 개화했던 포크와 포크 록의 지류가 1980년대에 어떠한 방식으로 생존해 있었는지(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생존해 갈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최성원은 잘 알려진 대로 훗날 들국화에 합류하게 되는 개성있는 싱어송라이터이고, 이영재는 동아기획 사단의 음반에 종종 그의 이름을 새기는 편곡자 겸 기타리스트이다. 이승희는 1970년대 포크 씬에서 가장 유니크한 감성의 소유자로 꼽히는 이장희의 친동생이다. 이장희는 이 앨범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막후 실력자(?)이기도 하다.

이 앨범은 여러 모로 1년 전에 출시된 따로또같이의 정규 데뷔 앨범과 비견된다 할 수 있다.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최성원의 나긋나긋함, 혈연적 근친이 음악적 근친으로까지 이어짐을 증명한 이승희의 끈끈함, 이영재의 세련된 나른함(이것을 일명 ‘영국풍’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이 어울리며 차이와 조화를 보여주는 것이나, 심미화된 포크의 경지, 소시민적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 유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앨범과 동시에 따로또같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또같이의 전인권, 이 앨범의 최성원이 마침내 들국화로 ‘찬란하게’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원시적인 힘이 넘치는 전인권의 카리스마와 댄디한 최성원의 팝적인 감성이 절묘하게 어울린 들국화의 양대 질료를 이 앨범들부터 조금씩 드러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더그라운드의 실력자들이 뭉친 이 앨범은 따로또같이 앨범에도 조금씩 나타난 토종기(?)를 완벽하게 거세한, 잘 만들어진 ‘팝’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을 듣는 순간, 아주 가까운 과거였던 1970년대 ‘가요’의 잔향을 느끼기보다는 비틀즈의 지난 레퍼토리를 더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험이다. 앨범을 여는 곡 “노래의 날개”의 영롱한 기타 플레이, 간주의 기타 솔로는 경청할 만한 인상을 선사하고, 조원익의 베이스와 배수연의 드럼은 ‘아니, 그 시절에…’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절제되었으면서도 어느 순간 몽환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여기서 잠깐, 조원익과 배수연은 알고 보면 고수라 부르기에 충분한, 1970년대 중후반에 화려하게 개화했던 동방의 빛 출신이다. 그리고 이 둘이 1980년대 완성도 있는 음반의 플레이리스트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라 할 정도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 둘의 존재에서도 1970년대의 음악적 유산이 198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화려하게 개화했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하겠다.

어쿠스틱 기타의 힘찬 스트로크와 블루지한 일렉트릭 기타가 이승희의 독특한 보컬의 색감과 어우러지는 “그대 떠난 뒤에는”은 블루스에 따라붙는 눅눅한 기운(일명 ‘뽕’ 기운)을 거세한 도시적 감각을 보여준다. 보컬의 하모니가 돋보이는 코러스는 이들이 스타일의 답습만이 아니라 가창의 전통에도 신경을 쓴 천상 포키의 후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때로는 이러한 의도가 지나쳐 “사랑인가봐”에서는 방송사 합창단과 같은 코러스를 구사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포크와 블루스 로큰롤 등 서양 음악 언어의 충실한 습득과 재현, 공연을 통해 갈고 닦은 개인기와 팀워크, 범생이 크리스챤과 불량 소년의 치기, 얼치기 보헤미안의 아우라와 신촌의 공기가 어우러지면서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폭풍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실제로 “매일 그대와”, “지난 겨울”, “그대 슬퍼 말아요”는 1980년대 중반 화려하게 재등장하였다). 지하의 모색과 실험이 마침내 지상에서 만개한 1980년대 중반의 ‘화려한 시절’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다른 음악’에 대한 조갈은 폭압기에도, 대마초 파동이 휩쓸고 간 후에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단 한 장으로 끝난 이들의 외출에 눈길을 줄 이유는 충분하다. 20030314 | 박애경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Side A
1. 노래의 날개
2. 사랑인가봐
3. 미아
4. 나 서러워지면
5. 내가 찾는 아이
Side B
1. 그대 떠난 뒤에는
2. 매일 그대와
3. 지난 겨울
4. 그대 슬퍼말아요
5. 즐거운 주말 (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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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들국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모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도 회원으로 있다.
http://cafe.daum.net/march
들국화 팬 사이트
http://my.dreamwiz.com/apr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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