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22111354-eureka

#1. 정말이지 일요일 오후의 TV는 재미없다. 방송 3사가 거의 대부분 재탕 방송에 이어 그렇고 그런 오락 쇼를 한다. 그중 ‘열린 음악회’가 가장 밋밋한 프로그램이라 되려 튈 지경인데 지난 일요일(2003.1.26)에는 ‘미주 이민 100년’ 기념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랬다. 요즘 한동안 TV에서는 한국인이 미국에 이민하여 얼마나 질시와 천대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질기고 모질게 살아왔는지 조명하는 데 여념이 없지 않았던가.

#2. TV 프로그램이 재미없기는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나 설날에도 마찬가지다. 그때만 되면 방송되는 단골 프로그램을 보고 더 무료해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씨름 경기 중계 혹은 그저 그런 뻔한 레파토리의 영화 프로그램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외국인 가요제(혹은 노래자랑) 이야기다. 한국의 명절인데도 외국인인 그들은 한복을 입고 한국 가요를 부르는데, 피부색이나 발음이 낯선 그들을 보며 대개는 동정심을 느끼면서 동시에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자신에게는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 프로그램을 계속 재미있게 볼 ‘한국인’은 없다.

#3. 사설이 길었다. 위의 두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얼마 전 도착한 낯선 이름 하나를 이야기할 차례다. ‘유레카’라는 버마* 출신의 ‘이주 노동자’ 밴드다. 그리스어로 ‘찾았다’라는 뜻의 ‘유레카’라는 단어는, 보통 한국 사람들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 도중 뛰어나와 깨달은 진리 운운 하는 사건으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이들은 자신의 작업 현장인 공장의 박스에서 보고 지은 것이다.

한국 최초의 이주노동자 밴드로 기록될 이 밴드는 얼마 전 음반 [What Is Life](2002)를 내고 공연까지 열었다. 리더인 산나잉(San Naing, 베이스)에 소모뚜(Soe Moe Thu, 기타), 딴진(Thant Zin, 드럼), 소뚜라(Kyaw Thura, 키보드)를 비롯해 보컬에 사뇨(Aung Myo Aye, Sharnyo), 소툰(Soe Tun), 쩌(Htay Lynn Naing), 이 7인의 ‘이방인’ 이외에 한국인 이름도 보인다. 독일에서 비디오 아티스트 혹은 영상 작가쯤으로 불릴 박경주라는 여성이 바로 그다. 감히 그녀는 ‘이주 노동자 뮤직 프로젝트’를 시도하게 되었고, 마침 1998년 성탄절에 결성되어 ‘버마 공동체’에서 문화행사에 참여해온 그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밴드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고 사비를 털어 음반을 제작하고 공적 지원까지 어렵사리 받아냈다는(대한민국의 공적 자금을 타는 절차가 얼마나 복잡한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후문을 들으면 얼마나 어렵게 유레카가 연습을 하고 음반을 냈는지 끄덕일 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음반에는 다국적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장애(Hindrance)’는 나이지리아인(Uche)이, ‘나에게(To My Heart)’는 태국인(Julia Kim)이, ‘한사람(There’s a Man)’은 중국인(소사)이 참여하는 등 외국에서 건너온 혹은 다녀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접 가사 쓰기에도 참여했다(박경주가 프로젝트를 홍보하면서 관련 외국인 단체에 가사를 공모한 소산이기도 하다). 보컬에서도, 독일인(Michel Roth)은 ‘나에게’, 네팔인(Nalina Chitrakar)은 여성 보컬이 참여한 유일한 곡 ‘언젠가(Someday)’ 등에 참여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외부의 도움만 받았을까. 많은 곡들은 유레카 자신의 산물이다. 소모뚜와 사나잉이 버마에서 근 10년간 음악활동을 했다거나 이번 앨범에 몇몇 곡을 작사-작곡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아무런 기본 없이 음악 활동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외국인 치고는 유창한, 그렇다 하더라도 어눌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는 한국어로 8곡 가운데 무려 6곡을 불렀다는 사실을 두고 어떤 이들은 혹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유레카 멤버들이 앞서 이야기한 TV 프로그램식 동정을 바란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현재 그들이 딛고 있는 지반이 한국땅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의 노래가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운드 자체도 한국 노래 같다. 이말은 ‘가요(혹은 뽕끼 섞인?)’ 같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들의 ‘록 가요’ 혹은 ‘발라드 가요’를 듣고 혹자들은 이들의 음악이 ‘쿨’하지 않다고 투덜거릴지도 모르겠다(이들 취향의 스펙트럼은, 메탈리카나 미스터 빅 같은 공인된(?) 메탈 뮤지션이나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 같은 하드 코어 등이 주종을 이룬다. 김경호처럼 메탈 밴드 출신의 솔로 전향(?) 가수나, 강산에, 안치환 같은 포크 록을 기반으로 한 뮤지션도 선호 대상이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라니 그들의 노래가 바로 한국 가요의 현주소를 반증하는 게 아닐까 뜨끔해진다.

물론 이들의 사운드는 너무 많이 비어있다. 비어 있다는 말은 세련되거나 풍성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선적으로 그들의 작업 여건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음악적 환경과 아마추어적인 면모를 보강하기 위해 다른 작곡가의 도움을 얻게 되었을 것인저… 이중 말랑말랑한 ‘발라드 가요’와 ‘록 가요’쯤 될 ‘인생이란’과 ‘장애’를 작곡한 이는 다소 낯선 이름의 작곡가 김종관이다. 민중 가요 쪽에 관심 가진 사람에게는, 한때 바람을 탔던 ‘민중 록’ 밴드 중 ‘메이데이’의 멤버라고 말하면 기억할 것이다.

또 한 사람의 작곡가로, 박경주의 친구인 독일인 볼프강 인데어 비쉐가 있다. 그는 유레카의 작품이나 김종관의 작곡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의 곡을 삽입해서 긍정과 부정의 느낌을 동시에 준다. 그가 작곡한 두 곡에서 ‘나에게’의 음울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와, 그가 노래까지 한 ‘한 사람’의 쿵딱거리는 일렉트로니카 비트는 좋게는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다. 어쩌면 이런 부조화는 유레카의 잘못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작곡가 문제 이외에도 유레카의 음악 자체로 따질 때는 공백과 허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앞으로 유레카에게 노정되어 있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음악적 숙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래는 힘이 있다. 가구 공장, 박스 공장, 염색 공장 등 3D 업종에서 불철주야 일하는 그들, 한가롭게 음악을 할 환경이 아닌 엄연히 ‘미등록 체류자’*의 위태로운 신분의 그들, 게다가 버마 공동체가 있는 부천을 비롯해 김포, 부평, 포천, 안산 등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들이 쉬기도 바쁠 일요일에 피곤한 육체를 이끌고 연습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무엇일까”라며 되뇌는 미등록 체류자, 이주 노동자로서의 삶의 애환,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라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죽도록 기계와 싸우는… 장애인”이라는 이들의 절절한 외침은 모두 땀과 눈물에 젖은 그들의 삶을 진솔하게 반영한다. 그래서 진솔한 가사만을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곧잘 이야기되는 형식과 내용의 일치 어쩌구, 삶의 일환으로서의 리얼한 음악 저쩌구 하는 식의 여러 논쟁들은 그들의 노래 앞에서는 다 쓸모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음악에서 꿈을 찾자’는 밴드명의 취지처럼 어떤 뮤지션보다도 그들에게 음악은 자신들의 삶의 꿈을 ‘찾아나가는’ 매체인지도 모른다. 20020221 | 최지선 [email protected]

* 현재 버마의 공식명칭은 ‘미얀마’지만, 이것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현재의 군사독재 정부가 마음대로 정한 이름이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버마민주화운동단체’에서는 원래의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 흔히 언론에서는 이들과 같은 처지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부르지만, 이보다는 ‘미등록 체류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라고 한다.

* [웹진 컬티즌]에 실린 글을 부분 수정한 글입니다.

수록곡
1. 인생이란 What Is Life
2. 엄마에게 To My Mother
3. 장애 Hindrance
4. 희망 Hope
5. 꿈의 길 Road To Dream
6. 나에게 To My Heart
7. 한 사람 There’s a Man
8. 언젠가 Some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