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인사동
날짜 2003년 1월 22일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인사동 거리에는 음울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를 만나러 가던 날 오후, 익숙한 듯 낯선 인사동 거리의 풍경에 힐끗 눈길을 주며 그의 노래 “인사동”의 통렬한 풍자를 떠올렸다.

쇠죽통에 꽃 담아 놓고 상석 끌어다가 곁에 박아놓고
허물어진 종가 세간 때빼고 광내서 인사동

물신과 탐욕의 포로가 되어버린 전통, 키치화한 유물에 대해 이토록 독설적으로 야유한 노래가 있었던가? 약속 장소를 전해 듣는 순간부터 필자는 생뚱맞게도 인사동에 대한 그들의 애증이 어떤 경지인지 궁금해졌다.

“낯설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고…”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은옥씨가 말을 이었다.
“우리 세대의 동네라 생각했는데 젊은 친구들이 점령해서인지 편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그는 불안하다는 표현을 썼다.
“예전에는 편안했지만 불안정해 보이고 뒤죽박죽해보이고 이후에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을 못하겠고…”

그의 불안감은 우리다운 소리, 한국적인 노래에 집요할 정도로 천착했던 그의 노래 이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얘기의 시작을 “인사동”으로 시작한 이유도 우리가 아무 고민없이 이야기하는 ‘한국적인 것’ 아니 ‘한국적이라 믿어왔던 것’에 대한 회의와 불신때문이 아니었을까? 더구나 이야기의 주체가 다름 아닌 그들이라면.

21세기의 초입에서 다시 첫차를 기다리는 심정

지난 연말 이들은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타이틀로 한 열번째 음반을 출반했다. 데뷔한 지 사반세기 만에 비로서 가지게 된 열 번째 음반. 십진법 단위의 주기에 익숙한 우리네 관행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이번 음반이 그들에게 주는 의미가 각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봄에 [20년 골든 앨범]을 내면서 기존 음악을 정리했습니다. 단순히 음악뿐 아니라 삶을 정리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며 기존에 냈던 여섯 종의 앨범을 절판했지요. 음반사에서야 기존의 곡을 새롭게 편집한 상품의 하나로 이 음반을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음악을 고르고 편곡하는 과정에서 우리 음악에 대해 평가하는 계기가 되어 의미있는 앨범이었습니다.”

정태춘이 거쳐왔던 20년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이 음반에 [아, 대한민국]의 주요 수록곡은 제외되었다. 그는 [아, 대한민국]은 별도로 다시 내고, 꼭 살리고 싶은 앨범이라 작년 골든 앨범에서는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는 이를테면 작년 골든 앨범 이후 정리한 이후의 첫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초기 제 작품은 사적인 일기와 같았다고 생각해요. 중반기의 노래는 사적인 이야기보다는 상황에 관한 일기였습니다. 음악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으로 본다면 전반부. 중반부가 끝나고 후반부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후반부를 길게 보지는 않지만. 이번 앨범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작사. 작곡 뿐 아니라 음악적 색깔이나 완성도까지 내가 책임지고 해간다는 방식으로, 새로운 기분으로 앨범을 냈지요. 상황에 관한 일기를 쓸 때에는 사적인 노래는 하지 않았지만 이번 앨범에는 사적인 노래도 넣었습니다. “아치의 노래”라든가 “빈산”이라든가.”

이번 음반은 한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태춘밴드와 함께 만들었다. 전문 편곡자나 세션맨이 개입하지 않은 온전한 그들만의 음반인 것이다.

“음악적 욕심도 있었고, 결국 나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요. 물론 힘들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고, 음악적 표현방식도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각별하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고, 재미있었습니다.”

필자는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의 수록곡들을 들으며 이 음반으로 그들 음악 노정이 또 다른 반환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혹은 그들의 음악적 이력은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현대사, 그것이 만들어낸 일련의 상황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라는 음반의 타이틀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음반은 이를테면 내가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 세대 혹은 집단을 향한 두 번째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92년 장마 종로에서]에서는 80년대까지의 싸움이 끝나고, 헤어지고 흩어지지만 비둘기의 비상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이 음반은 그것 이후 두 번째 편지라 할 수 있지요. 다시 첫차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내가 앞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담았고,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번 음반에서 문학적 성취 역시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의도를 듣는 이가 공감하고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런 당부의 말은 접어도 될 듯하다.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그의 성실한 팬들은 가사의 의미와 문학적 성취를 결코 가벼이 넘기지 않을 것이기에.

정동진에서 그네들의 싸움과 희망과 꿈을 본다

이 음반에는 전작에 이어 ‘정동진’이라는 공간이 등장한다. 정동진과 샌디에고와 뉴멕시코의 해안이 동시에 등장하는 “정동진 3″이라는 곡은 음반의 발문을 쓴 어느 평론가의 표현처럼 경이롭고 혼란스럽다. “정동진 3″까지 이어지도록 만든 힘, 태평양 건너 누추한 멕시코 사내의 사연까지 반추하도록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지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만든 상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입을 연 그에게 정동진이란 치열하게 싸우고, 역사와 사회에 헌신했던 1980년대와 “모래시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동진이라는 상징을 낳게 만들었던 드라마 “모래시계”는 보지 않았다고 한다. 방송이라는 매체에서 민중적 입장에서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기는 어려울 터, 드라마에서 현대사를 거론하는 것이 기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정동진은 “모래시계”의 주인공들의 회한 어린 장소가 아닌 그만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강릉 공연 중 들렀던 정동진에서 마침내 그가 보려고 하던 풍경을 보았다.

“강릉 시장에서 소나기를 만나 천막에 대피해 있다가 비가 그쳐서 중앙로로 나왔는데 철길 너머 쌍무지개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때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0년대에 헌신적으로 싸웠던 사람들. 그들의 희망… 뉴멕시코 해안에서 거의 비슷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노래에서 노래한 멕시코 사내가 던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무엇을 정동진의 사내가 동해바다에 던지고 있었지요.”

박은옥씨는 1998년 음반에 실린 “정동진 1, 2″와 “정동진 3″은 같은 날 만든 곡이라고 덧붙여주었다. 1994년 무렵 LA를 방문했을 때 들른 멕시코 국경 너머 티유하나라는 시골 읍내의 피폐한 모습과 방금 거쳐온 샌디에고의 풍요로움이 대비되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두 공간을 이어주는 끈은 삶의 남루함,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386세대와 새로운 10년

1980년대의 모색이 조롱과 냉소의 대상으로 바뀌었던 ‘환멸의 시대’를 건너고, 또 세기가 바뀐 후에도 그가 386세대와 모래시계 세대에 대해 느끼는 연대감, 동질감은 달라지지 않은 듯 보였다. 당연히 386세대가 전면에 부상했던 지난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세대혁명’이라는 말이 나오는 그의 얼굴이 단박에 환해졌다. 화제는 1980년대 시대정신의 복원, 386세대의 문화적 정체성과 연대감 고취를 내걸었던 공연 ‘바람이 분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바람이라면 단기적으로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사모의 흐름이 있었지만 다른 흐름과 전망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두가지 전망, 두가지 희망이 있었습니다. 386 세대의 자기정체성이 우리 사회에서 확인이 되는 것, 그래서 그네들이 이후 아름다운 역할을 해주고, 뿔뿔이 흩어진 대중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동질감을 가지고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문화적으로 풀어내기를 바랬습니다. 이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단초를 풀어가거나 그들의 동질감의 일부분으로서 나의 노래가 기여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는 헌신과 투쟁으로 대표되는 386세대들이 느슨하게나마 조직화되어야 하고, 10여 년의 침묵을 깨고 나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 공연을 제안하고, 그 이후의 전망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전망을 실현해줄 대안으로 문화재단 형태를 제안하였다. 이를 통해 1990년대를 거치면서 뚜렷한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지 못했던 그네들을 문화적으로 촉발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함께 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새로운 10년 캠페인’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그의 프로젝트는 새로운 세기, 시민사회의 본격 개화와 관련이 있다.

“역사가 10년 단위로 바뀐다고 하면 1990년대는 두 번의 민간 정부와 이를 관장했던 김정권과 함께 끝나간다고 봅니다. 그리고 비로서 21세기로 진입하는 것이지요. 386이 책임있는 시민사회의 부분으로 떠오르면서 일부는 기득권층으로 편입되기도 하겠지만 또 일부는 흩어져서 자기 운동을 하겠지만 그들이 건강한 집단의식과 소명의식을 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10년 캠페인’은 대통령 노무현 이후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386세대에게는 가장 예민하고 흡수력이 좋았던 20대 청년기에 싸우면서 체득하고 받아들였던 그들의 문화가 분명 존재했었고, 청춘과 열정의 힘으로 만들어진 상상력이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데, 건강한 사회를 일구어가는데 여전히 유효한 힘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네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해나가고 함께 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이야기를 던지고 싶어요. 386문화재단 건립을 위한다거나 이런 화두를 던지는 공연.”

음악적 모국어 그리고 ‘한국적’이라는 이름의 부채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초기작에서 보였던 치열한 허무, 토종의 소리에 대한 고집, 폭압에 저항해왔던 투사적 면모가 실상은 한 뿌리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평소의 심증이 굳어졌다. 그것을 반골정신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이번 음반에서는 그의 고집과 정신이 한결 여유로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흐벅진 풍자와 독설을 늘어놓는 대목에서도 어느 순간 일말의 낙천성을 느꼈을 정도로 노래를 감싼 장단과 비트는 포용성있게 들렸다. 그러나 음악을 대했을 여운과 충격은 고백컨대 1988년에 나왔던 [무진 새노래] 이후 처음이라 할 정도로 강렬했다. 그 강렬함은 동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진정 우리다운 대중음악을 만났다는 기쁨의 다른 표현이라 해도 무방하다.

1978년 그는 분명 포크 가수로 데뷔했지만 팝의 세례를 받은 포크 가수와는 분명 달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한국 포크사의 거목으로 불리고, 그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

“포크란 무엇이며 포크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포크가 각 나라의 전통에 맞게 일부는 상업화되고 일부는 정신을 유지하면서 포크의 의미를 형성한다고 보는데, 한국으로 얘기한다면 한국적 현실을 담아내고 음악적 모국어에 보다 천착해 들어가는 것을 말하지 않을까요? 이런 면에서 나는 한국적인 가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 음반에서 ‘우리 장단을 어떻게 요즘 시대에 나오는 새로운 노래에 도입할 것인가,’ ‘요즘 음악과 크게 거리감 없이 우리 소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낼 것인가’를 화두로 삼았다고 한다. 드럼으로 재현한 굿거리 장단이 북소리와 전자 기타와 어우러지고, 또 재즈의 스윙감과 기분좋게 화합한 이번 음반은 그가 붙들고 있던 화두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는 이러한 시도가 자신의 밴드가 아니면 이루어내지 못했을 작은 성과라 했지만, 그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었다. 박은옥씨는 에미넴(Eminem)의 음악을 즐기는 딸이 신곡을 소개한 12월 공연을 본 후, “괜찮대”라는 코멘트를 했다고 전한다. 그것이 부모의 음악에 대한 최초의 촌평이었다는 말과 함께.

이 대목에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성취감을 이루게 한 동인이 듣고 싶어졌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 그 의미에 대해서.

“그건 부채감이죠. 여기서 태어나 살면서 음악이라는 것, 노래라는 것으로 박수도 받고 과분하게 칭찬도 받고 대접도 받으면서 나름대로 전문인으로서 부채감을 느꼈고,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봅니다.”

박은옥씨는 그의 성장 환경과 기질에서 원인을 찾았다. 전축과 엘피의 혜택을 입은 그들 세대는 공통적으로 팝송의 영향을 받았는데, 정태춘씨에게는 이런 과정이 없었던 것이 환경적 이유라면, 선험적으로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그의 기질을 이룬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런 성향의 형성은 긍정적이라기 보다는 불행하다고 할 수 있지요. 주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소외감. 거리감.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모국어에 천착한 것은 뭐랄까 쫓겨다니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저쪽에 대해 내가 거리를 둔 측면도 있지만 내가 저쪽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느낌. 우리 소리를 결코 즐겁게 찾아다닌 것은 아닙니다. 저쪽과 대항하기 위하여. 그렇게본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늘 네가티브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골정신이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힘이라던 필자의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한국적이라는 것은 상황과 화해하지 못하는 소수자, 주변자의 표현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그를 규정해왔던 부정의 정신이 유지될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가 든다고 이야기하면서, 어쨌든 지금은 환멸을 유보하려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부정과 환멸을 유보하는 그때에도 열정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민족음악이라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지, 여전히 소수자의 음악인지 질문해보았다.

“우리는 피해를 당하고 있는 집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개념 속에 동시대의 것을 포괄하여 끌어내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을 이제는 풀어내고 가야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그는 민중가수, 민중음악, 민족음악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여전히 착취당하고 있는 집단이 있지만 민중이라는 개념도 바뀌고, 민족 역시 패권주의적 문화에 대항하기 위한 민족이 아니라 각 종족의 미학을 담지하고 있거나 계승하고 있는 보편적 미학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대항적인 것으로서 우리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미학적 개념, 입장에서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발굴하는 변화 말이지요.”

그리고 남은 이야기

“정동진 3” 창작의 뒷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남편이 아니라 음악적 동반자로서 느꼈던 그의 탁월함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정태춘씨에 편승하여 ‘한국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손사래를 치는 박은옥씨를 보니 오랫동안 품어왔던 궁금증이 발동했다. 가수로서 탁월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그저 ‘정태춘. 박은옥’의 한 부분으로만 알려지거나, 정태춘이라는 거목의 음악적 내조자로만 알려지는 것에 대해 혹 아쉬움 혹은 불만은 없을까? 라는 궁금증 말이다. 기다림을 정갈한 아름다움으로 풀어낸 “봉숭아”를 좋아하는 중년의 남성 팬들은 그녀에게 사모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고, 청명한 목소리에 경의를 표한다.

“노래만 하는 가수로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음악인으로서 보면 정태춘씨가 월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의 타고난 재능을 인정합니다. 물론 정태춘씨에 부수되어 거론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은 있지만 내가 노력이 부족했지요.”

그녀는 보컬리스트로서 이번 음반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몸이 좋지 않아 “봄밤”과 “빈산”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남편 역시 박은옥씨의 가수로서의 매력과 능력을 높이 산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독특하고 매력있는 표현력이 있었는데 나의 노래만 부르면서 좁아진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가수로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표현하지 못하니 박은옥만의 독집을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문득 재니스 이안(Janis Ian)의 “Jesse”를 부르는 박은옥씨를 처음 보고 매료되었다는 그의 회고담이 떠올랐다. 지난 음반에서 그녀는 윤민석씨가 만든 곡을 불러 남편이자 음악적 동반자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 바 있다. “윙윙윙”과 “회상”을 기억하는 이에게 독집 출반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린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음반을 누가, 어떻게 들어주기를 바라는지 질문해보았다. 민중가수로 불리지만 정작 민중이 아닌 지식인이 선호하는 데에서 느꼈던 딜레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후였다. 아내는 자신들의 음악적 시도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주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음악에서 듣는 이가 공감하고 위로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남편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밀도 있는 대중과의 의미있는 소통을 원했다. 아내는 초기 노래의 서정을 좋아하는 40대의 중산층 팬과 거리의 가수로 그를 기억하는 386세대가 동시에 그들의 공연장을 찾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했다. 어찌 보면 그들을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는 다른 세대의 팬들은 그들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쏟아내던 무렵 그는 지난 시절의 노래를 부정했었다. 시대를 성찰하고,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지 않는 치열함, 때로는 자신의 일부마저 부정할 수 있는 강골의 기질이 있기에 우리는 그를 그리고 그들을 거장이라고 부른다. 20030124 | 박애경 [email protected]

* 이 글은 월간 [민족예술] 2003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kpaf.org/magazine/magazine_this.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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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정태춘 팬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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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인터뷰
http://www.personweb.com/cultuer&people/Chungtc51/ctc_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