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20105157-ramonesRamones – Rocket To Russia – Sire/Rhino, 1977/2001

 

 

바보들의 행진

펑크 록의 본질은 아트 록이다. 적어도 뉴욕에서 처음 그것이 등장했을 때는 그랬다. 여기서 아트 록이라는 말은 록 음악의 특정 장르(오케스트라와 협연하거나 4부작 컨셉트 앨범을 만듦으로써 록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음악)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예술적인 록’이라는 의미다. 초기의 펑크 록 아티스트들은 록 음악을 개인의 예술적 비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다. 이들은 그림이나 시 대신 음악을 매체로 선택한 예술가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음악보다는 주로 음악 외의 예술 분야에서 자신들의 음악적 영감을 구하려 했다. 패티 스미쓰(Patti Smith)가 랭보(Arthur Rimbaud)의 보헤미안적 시를 자기 노래의 주된 텍스트로 삼은 것이나 톰 벌레인(Tom Verlaine)이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추상화를 참조하여 자신의 기타라인을 만든 것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쓰리코드(엄밀히 말하면 4코드) 미학과 2분짜리 로큰롤로 유명한 라몬스(Ramones) 역시 예술 지향적인 뉴욕 펑크 커뮤니티의 일원답게 록 음악의 예술적 활용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패티 스미쓰, 텔레비전(Television), 리차드 헬(Richard Hell), 토킹 헤즈(Talking Heads) 등 아트 펑크 계열의 동료들처럼 드러내놓고 예술적 주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1950-1960년대 로큰롤에 대한 이들의 패스티쉬는 실상 다다이즘에서 팝 아트에 이르는 반예술적 아이디어에서 영향 받은 것이었다. 이들은 당시 록 음악의 패러다임에서는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던 요소들을 끌어 모아 주류 록의 가치체계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였다. 대곡에는 소품으로, 복잡함에는 단순함으로, 기교에는 무기교로 맞선 이들의 도전은 스스로를 ‘바보 멍청이들(idiotic morons)’로 내세우는 아이러니에서 그 완결을 이루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아이러니는 자신들의 공격대상이었던 ‘자뻑’과 영웅주의의 덫에 스스로 걸려드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의 의도는 오랫동안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고 이들의 바보행세는 무시되거나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라몬스의 예술적 비전이 가장 명료한 형태로 드러난 작품은 1976년에 발표된 데뷔 앨범 [Ramones]였다. 흔히 미니멀리즘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음악적 성향은 이 앨범이 지닌 극도의 단조로움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표현 방식을 발견하였다. 리듬패턴과 코드전개는 물론 악기사용이나 선율의 운용에 있어서도 곡들 간의 차이를 극소화한 이 앨범의 미학은 1976년 당시의 정황에서는 일종의 충격전술로서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초지일관으로 쿵쾅대기만 하는 음악으로는 일회성 해프닝 이상의 어떤 것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1977년에 출반된 세번째 앨범 [Rocket To Russia]는 이러한 한계에 직면한 이들이 음악의 내적 논리에 보다 많은 신경을 쓴 작품이다. 이 점은 당장 사운드만 비교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기타와 베이스가 서로 다른 채널로 분리된 데뷔 앨범의 1960년대식 핑퐁녹음은 진정성 면에서는 우월했을지 몰라도 라몬스 본연의 사운드에 대해서는 터무니 없는 왜곡이었다. 반면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수용한 [Rocket To Russia]는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에 비견될 정도로 두텁고 다층적인 이들의 기타 텍스쳐를 충실하게 재현해준다.

음악적인 면에서 [Rocket To Russia]의 가장 두드러지는 면모는 1950-1960년대 로큰롤에 대한 이들의 깊은 천착이다. 특히 서프 사운드의 본격적인 도입은 이들에게 보다 폭 넓은 음악적 어휘의 구사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비치보이스(The Beach Boys) 풍의 “Sheena Is A Punk Rocker”(이 곡은 두번째 앨범 [Leave Home]에도 펑키한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와 “Rockaway Beach”, 그리고 1960년대 히트곡들인 트레쉬멘(Trashmen)의 “Surfin’ Bird”와 바비 프리먼(Bobby Freeman)의 “Do You Wanna Dance”의 커버 버전들은 이 앨범에 전작들과 구별되는 가볍고 경쾌한 색채를 부여한다. 그러나 새로운 음악적 요소의 가세에도 불구하고 맹렬한 속도로 밀어붙이는 이들 고유의 단순 명쾌한 사운드는 전혀 수그러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Cretin Hop”이나 “Teenage Lobotomy” 등의 곡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이들의 사운드는 향상된 녹음기술에 힘입어 오히려 그 위력이 배가된 느낌이다. “We’re A Happy Family”의 종지부에 나오는 불필요한 효과음만 제외한다면 이 앨범은 그야말로 하나도 버릴 곡이 없는 완벽한 작품이다. 12줄 기타의 활용을 통한 다변화된 음색과 조이 라몬(Joey Ramone)의 일취월장한 보컬은 그렇지 않아도 훌륭한 이 앨범에 날개를 달아주는 구실을 한다.

20030220105157-ramones1[All The Stuff (And More) Volume 2]의 표지그림. [Rocket To Russia]와 [Road To Ruin]의 합본에 4곡의 보너스 트랙이 추가되어 있다.

펑크 록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Rocket To Russia]의 CD 재발매는 다소 소홀히 이루어진 감이 없지 않다. 그 동안 이 앨범을 접할 수 있는 경로는 네번째 앨범인 [Road To Ruin]과 합본되어 1990년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All The Stuff (And More) Volume 2]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All The Stuff (And More) Volume 1]에는 첫번째와 두번째 앨범인 [Ramones]와 [Leave Home]이 합본되었다).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 지역 단위로 재발매된 적은 간혹 있었으나 전세계적 차원에서 이 앨범의 단독 재발매는 워너와 라이노가 제휴하여 내놓은 2001년 버전이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뜸을 들인 이 앨범의 재발매는 한마디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멋진 슬립케이스 포장에 풍부한 정보의 라이너 노트와 전곡의 가사가 수록된 부클릿 그리고 빼어난 음질의 사운드에 다수의 보너스 트랙까지, 2001년 버전은 마치 ‘재발매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모범을 보이기라도 하는 듯하다.

2001년 버전은 라몬스 음악의 초심자 뿐 아니라 이미 [All The Stuff (And More) Volume 2]를 소장하고 있는 기존의 팬들에게도 적극적인 고려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면에서 우월한 리이슈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리마스터링의 귀재 빌 잉글롯(Bill Inglot)과 라이노 기술진이 참여해 만든 이 버전의 음질은 [All The Stuff (And More) Volume 2]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소리를 들려준다. 이들의 손을 거친 생생하고 풍성한 사운드(“Rockaway Beach” 후반부의 드럼 연타를 들어보라)는 마치 라몬스의 음악을 처음부터 새롭게 발견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손상된 마스터 테이프에서 비롯된 “Needles And Pins”의 열악한 사운드가 다소 옥의 티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 곡은 어디까지나 보너스 트랙일 뿐이고 정 아쉬우면 [Road To Ruin]에 수록된 공식 버전을 들으면 된다. 물론 이 결함 많은 트랙보다 [All The Stuff (And More) Volume 2]에 수록되었던 “I Don’t Want to Live This Life (Anymore)”가 재수록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조금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이 재발매판의 우수성을 고려할 때 사소한 트집잡기 이상은 아닐 것이다. 20030215 | 이기웅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Cretin Hop
2. Rockaway Beach
3. Here Today, Gone Tomorrow
4. Locket Love
5. I Don’t Care
6. Sheena Is A Punk Rocker
7. We’re A Happy Family
8. Teenage Lobotomy
9. Do You Wanna Dance?
10. I Wanna Be Well
11. I Can’t Give You Anything
12. Ramona
13. Surfin’ Bird
14. Why Is It Always This Way?
15. Needles And Pins [Early Version] 16. Slug [Demo Version] 17. It’s a Long Way Back to Germany [U.K. B-Side] 18. I Don’t Care [Single Version] 19. Sheena Is a Punk Rocker [Single Version]

관련 글
Ramones [Ramones] 리뷰 – vol.3/no.19 [20011001]

관련 사이트
Ramones 공식 사이트
http://www.officialramones.com/
Ramones 비공식 사이트
http://www.kauhajoki.fi/~jplaitio/ramones.html
http://www.ramoneson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