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15123204-02-sdSmashing Pumpkins – Siamese Dream – EMI/Virgin, 1993

 

 

위태로운 경계선 위의 아름다움

데뷔 앨범 [Gish](1991)의 비평적 찬사에도 불구하고 후속작 [Siamese Dream](1993)을 발매하기까지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는 최악의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밴드의 독재자 빌리 코건(Billy Corgan)은 너바나(Nirvana,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빌리 코건의 악연을 새삼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와 펄 잼(Pearl Jam)이 일으킨 돌풍을 바라보며 자괴감에 빠져들었고, 지미 챔벌린(Jimmy Chamberlain)은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제임스 이하(James Iha)와 다아시(D’Arcy)는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결국 한 스튜디오 안에 있기조차 힘들었던 제임스 이하와 다아시를 대신하여 빌리 코건은 [Siamese Dream]의 모든 기타, 베이스 파트를 자신이 연주해야만 했고, 이는 밴드를 거의 와해 직전의 상황까지 몰아넣었다.

문제는 밴드 내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소속사 버진(Virgin)은 빌리 코건에게 ‘너바나와 비슷한’, 즉 팔릴 만한 음악을 만들어 낼 것을 요구하며 작업비를 지원하지 않았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Today”를 레코드사 간부들 앞에서 연주해야만 했다(빌리 코건은 당시의 상황을 ‘난 점점 지쳐갔고 뚱뚱해졌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Siamese Dream]은 1994년 초 무렵 300만장의 판매고로 밴드의 수난에 보상해 준다(현재 앨범의 전세계 판매량은 700만 장을 넘어섰다).

이제 와서[Siamese Dream] 발매 당시의 정황을 얘기하는 것은 그럴듯한 ‘인간 승리’식 포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앨범을 통해 스매싱 펌킨스가 ‘후발주자’라는 멍에를 벗고 가장 촉망 받는 씬의 주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으며, 얼터너티브의 실질적 ‘승리자’가 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아무리 야박하게 점수를 준다 해도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면 [Siamese Dream]의 어떤 점이 밴드를 그토록 드라마틱한 ‘대역전’의 순간으로 인도한 것일까.

앨범의 첫 곡(이자 첫 싱글) “Cherub Rock”은 간질거리는 조용한 드럼 인트로에 이어 갑자기 폭발하듯 튀어나오는 중첩된 기타 사운드로 청자의 긴장을 유도한다(이런 스튜디오 녹음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노이즈-기타 오버더빙은 “Today”, “Soma”, “Mayonaise”에 이르기까지 앨범의 주된 성격을 이루는 요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Quiet”를 지나 밴드의 최대 히트곡이 돼버린 “Today”에 이르면 무언가 스매싱 펌킨스의 사운드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stop-and-start’ 식의 구성, “Today”는 그런지 사운드의 공식을 고스란히 채용한 곡이다. 물론 동요적인 멜로디 라인이 “Today”를 ‘스타일의 답습’이란 비난에서 비껴가게 하지만, 확실히 이 곡을 듣고 레코드사 간부들이 앨범 제작비를 지원해 주었다는 정황을 수긍케 할 만한 그럴듯한 상업적 타협책임을 부정하기는 힘들다(“Today”의 성공과 함께 밴드는 ‘차세대 너바나(next-Nirvana)’라는 호의적이지 않은 호칭을 선사 받는다). 오히려 [Siamese Dream]에 수록된 몇몇 곡에서 스매싱 펌킨스는 [Gish]와 비교했을 때, 훨씬 ‘인디’ 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Siamese Dream]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꼽아 볼 수 있다. 첫째는 “Hummer”, “Silverfuck”, “Soma”(R.E.M.의 마이크 밀스(Mike Mills)가 세션 피아니스트로 참여) 등에서 느낄 수 있는 밴드 고유의 특질들을 확장한 하드록-사이키델릭 사운드이고, 두 번째는 “Today”, “Rocket”, “Geek U.S.A.”에서 드러나는 최신 트렌드(그런지, 일부에서는 동향 출신 밴드 씨임(Seam)과의 유사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의 적극적인 수용, 그리고 마지막으로 “Cherub Rock”, “Disarm” 등의 사운드스케이프의 확장에 대한 욕구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방향은 각각 독립적인 형태를 띄면서도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스매싱 펌킨스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Today”의 성공으로 부각된 사운드의 첨단화(유행에 맞는다는 의미에서)는 밴드에게 우선적으로 아쉬운 사항들을 충족시켜 주었다. 데뷔 시부터 금전적 성공에 대한 강한 욕망을 보이던 밴드(빌리 코건)는 “Today”, “Rocket” 등의 큰 인기몰이와 함께 꿈에 그리던 성공과 그에 따르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존 밴드의 특징이 고스란히 유지된 “Silverfuck”과 같은 아트록 성향의 대곡(인터넷상에서 20분을 상회하는 라이브 버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매싱 펌킨스를 주류 록의 몰개성화에 휩쓸리지 않게 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 주었으며, 이러한 상반되는 요소들의 기묘한 안정 속에서 “Disarm”같은 앞으로의 방향성을 예고하는 곡이 존재할 수 있었다(지금은 일반적인 록 음악의 형태가 돼버리긴 했지만, 최소한의 악기 편성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당시에 이토록 풍부한 현악 세션을 사용한 것은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그 밖에도 [Siamese Dream]이 갖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브리티시 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수려한 멜로디 라인일 것이다. [Siamese Dream]에서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한 탁월한 멜로디 감각은 스매싱 펌킨스가 미국만이 아닌 대서양 건너편 영국/유럽에서도 성공을 거두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미국 음악에 대한 영국의 멸시를 비껴간 많지 않은 록밴드 중 하나가 스매싱 펌킨스이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Disarm”이나 “Mayonaise”의 멜로디 라인은 여전히 탁월할 뿐이다.

하지만 스매싱 펌킨스가 [Siamese Dream]을 통해 얻은 성공은 양날의 검과 같은 딜레마이기도 했다. 앨범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밴드는 (사운드 상으로든, 음악에 대한 관점 면에서든)그다지 상관이 없는 그런지의 대표격 밴드 중 하나가 되었고, 이는 결국 1990년대 메인스트림 록씬의 ‘단절’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Siamese Dream]이 챠트에서 막 상종가를 올리던 바로 그 당시에는 이 점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비록 1994년 롤러팔루자(Lollapalooza) 헤드라인 무대에서 청중들의 냉담한 반응 속에 10여분에 이르는 블루스 잼을 연주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긴 했어도, 스매싱 펌킨스는 후속작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1995)의 거대한 성공과 함께 최고의 밴드로서 그 입지를 다지게 된다.

스매싱 펌킨스에게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Siamese Dream]의 가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iamese Dream]의 활력은 전통적인 하드록 추종자 빌리 코건의, 기존 음악 체제에 대한 전복이었던 그런지 사운드의 차용을 통한 ‘신선함’에 있는 것이었고,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떠 안게 된 ‘반문화 운동’의 전위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Siamese Dream]의 가치는 록 음악의 ‘전통’과 ‘전복’이라는 상반되는 요소간의 교배를 통한, ‘아름답지만 지속될 수는 없는’ 한 순간의 빛남에 있다. 20030122 | 김태서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Cherub Rock
2. Quiet
3. Today
4. Hummer
5. Rocket
6. Disarm
7. Soma
8. Geek U.S.A.
9. Mayonaise
10. Spaceboy
11. Silverfuck
12. Sweet Sweet
13.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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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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