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29063257-0502he6_gogo1front히 식스 – He 6와 함께 고고를!(GoGo Sound 71 제1집+제2집) – 그랜드(GH 000020/21), 1971

 

 

동시대 서양 록 음악을 완벽히 구사한 프로페셔널 연주

히 식스(He 6)의 [He 6와 함께 고고를!(Go Go Sound 71)] 1집과 2집은 1971년 당시 서양 록 음악의 양식이 국내 한켠에서 이미 동시대적으로 수용되고 있었음을 일깨워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헌정 음반과 복각 작업으로 이미 친숙한 신중현의 작품들이 지극히 한국적인 록 음악이었다면 본작에 담긴 히 식스의 음악은 서양적 의미의 록에 보다 충실하다. 더불어 산울림과 대학가요제 출신들의 이른바 캠퍼스 그룹 사운드 음악이 서양의 그것에 비해 최소 10년의 간극을 지닌 록 음악을 구사했음에 반해, 히 식스는 정확히 동시대의 서양 록 음악을 완벽히 연주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싸이키델릭, 재즈 록, 라틴 록, 블루지 하드 록과 같이 당시 서양을 풍미하던 다양한 범주의 양식들이 한 데 녹아 있다. 이것은 필자에게 있어 놀라운 발견이었다. 게다가 노래가 없는 연주만의 대곡이라니, 그것도 즉흥으로! 1970년대 한국에 독자적 록 음악이 나름대로 자생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양과 동시대적으로 맞장 뜨는 록 음악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히 식스의 전신인 키 보이스, 히 화이브의 음악이나 “초원”과 같은 히 식스의 대표작들을 이미 접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필자의 평가가 의외일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작품이 실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1971년이라면 록 음악이 사회적 외침을 자제한 대신 전통적 의미로서의 예술적 완성도, 말하자면 양식미를 구축해 나가고 있었던 때이다. 범주의 분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이다. 많은 이들이 가사에 담긴 메시지보다는 연주 자체와 형식에 더 치중했으며 라이브에서의 즉흥 연주와 청중들을 자극하는 퍼포먼스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표방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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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6와 함께 고고를!(Go Go Sound 71)]은 히 식스가 명동의 오비스 캐빈(사보이 호텔 근처에 있던 3층 건물의 클럽으로 각 층마다 음악 홀이 마련되어 있었다. 1층은 주로 스탠더드 스타일의 음악, 2층은 포크, 3층은 록 음악을 위주로 록 밴드가 교체 출연하는 콘서트 홀이었다고 한다)에 출연하던 당시 자주 연주하던 잼 형식의 곡을 녹음한 것이다. 당시 클럽에서 연주하던 그룹들은 멤버들을 소개할 때 외국 음악을 연주하거나 정해진 곡을 연주했던 데 반해, 히 식스는 매일 다른 테마의 곡들, 그것도 주로 오리지널 곡들을 선보였으며 이때 연주한 테마만 무려 40개가 넘는다고 한다(곡명이 테마 1, 테마 2 식으로 돼있는 것인 바로 이 때문). 그 중 8개의 음원만이 두 장의 앨범에 나뉘어 음반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김홍탁에 따르면 이 앨범은 커버에 시험판이라고 써 있지만 실제로 발매된 것으로 단지 몇 백장(!) 정도만 만들어 음악 다방 등에 배포되었다고 한다.

당시 히 식스의 라인업은 최헌(보컬, 리듬 기타), 김홍탁(리드 기타), 이영덕(기타, 보컬), 유상윤(오르간, 플루트), 조용남(베이스), 권용남(드럼)이다. 1집은 보컬이 없는 네 개의 연주곡을 담고 있다. 첫 곡 “테마 1 인트로닥숀 뮤직”은 9분 15초의 대곡으로 앨범에서 단연 돋보이는 곡이다. 열정 넘치는 곡 전개와 거침없으면서도 탄탄한 즉흥 연주, 국내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플루트 파트의 본격 삽입, 싸이키델릭과 재즈를 넘나드는 초절기교의 키보드 연주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실력에서 나오는 이들의 자신감 넘치는 연주는 서양 스타일의 록을 하고 있는 변방 국가 록 그룹의 콤플렉스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게끔 한다. 필요치 않은 비교인 듯하나, 이 곡은 이태리 그룹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뉴 트롤스(New Trolls)의 명곡 “Nella Sala Vuota”를 연상케 하는데, 히 식스의 곡은 이와 비교해 결코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연주 측면에선 한 수 위일 정도이다. 거칠고 육질감 가득한 연주와 흐느적거리는 싸이키델릭의 부유감은, 당시 활동하던 일본 그룹들의 과도하게 깔끔한 연주와 녹음에선 결여된, 뜨겁고도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테마 2 기타를 위한 4/4 박자”는 재즈 풍 키보드와 드럼, 베이스의 반복 비트가 지속되는 가운데 기타의 즉흥 연주가 펼쳐지는 곡이다. 여기서 김홍탁의 연주는 즉흥이면서도 놀라운 절제미와 통제력을 보여주며 다른 파트와 기묘한 하모니를 이루어 내고 있다. 조용필이 “음악은 수학이다. 대책 없는 연주를 나는 가장 싫어한다”고 하면서 김홍탁을 “이 땅의 넘버원 기타리스트”로 꼽았는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안정적이면서도 다른 파트와 융화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즉흥의 미덕을 손상하지 않는 탁월한 감각과 정교한 기교를 그는 지니고 있다. “테마 3 달리는 人間”에서는 주 테마가 지속되며 변주되는 가운데 플루트, 기타, 키보드, 베이스, 드럼 순으로 솔로 즉흥 연주가 이어지는데 당시 재즈나 록 라이브 연주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형태를 따르고 있다. 역시 각 멤버의 탄탄한 실력을 다시금 실감케 하는 좋은 곡. 1집의 마지막 곡인 “테마 4 Percusion 테마”는 블루스 감성의 하드 록으로 데렉 앤 더 도미노스(Derek & The Dominos)의 [In Concert] 앨범에 실린 곡들을 연상케 한다. 특히 후반부의 드럼 솔로는 짐 고든(Jim Gordon)의 그것과 비견될 만할 정도.

2집 역시 총 네 곡을 담고 있다. “테마 5 1/2의 세계”, “테마 6 폭풍”은 1집의 “테마 2 기타를 위한 4/4박자”와 같이 나머지 파트의 반주를 배경으로 기타 즉흥 연주가 이어지는 곡들이다. 이것들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역시 이 앨범의 백미는 17분에 달하는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의 명곡 “In-A-Gadda-Da-Vida”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1968년에 발표된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두 번째 앨범 [In-A-Gadda-Da-Vida]의 타이틀곡인 이 곡은 리더인 덕 잉글(Doug Ingle)에 의해 작곡되었으며 인도 음악과 싸이키델릭 록을 융합한 헤비 사운드로 당시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여기서 히 식스는 원곡보다 느린 비트를 채용하고, 헤비함보다는 싸이키델릭함을 부각시킴으로써 원곡 재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원숙함을 보여준다.

히 식스에게 있어 당시 서양의 록 음악은 취미적 재현 대상이나 따라야 할 첨단 트렌드이기 이전에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음악적 형식 틀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1971년에 녹음된 이 두 앨범을 들으면서 만약 유신 정권과 그 폭압 정치가 없었다면, 김홍탁을 비롯한 당시 연주인들이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면, 한국에서도 영미의 음악을 흡수한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형식적 정교함에 독자적 감성을 입힌 우리만의 록 음악이 만개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줄곧 떠나지 않았다. 산울림이 아마추어리즘의 파격을 제시했고, 신중현이 한국적 싸이키델릭을 창조했다면, 히 식스는 동시대 서양 록 음악의 형식을 충실히 차용하면서도 당당하게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던 한 프로페셔널 연주 집단의 면모를 보여준다. 20030120 | 전정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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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He 6와 함께 고고를!(GoGo Sound 71 제1집)] Side A
1. 테마 1 인트로닥숀 뮤직
2. 테마 2 기타를 위한 4/4박자
Side B
1. 테마 3 달리는 人間
2. 테마 4 Percusion 테마
[He 6와 함께 고고를!(GoGo Sound 71 제2집)] Side A
1. 테마 5 1/6의 세계
2. 테마 6 폭풍
3. Come On Baby
Side B
1. 인아가다다비다
cf) 16분 58초로 러닝 타임이 길어 앞 부분은 제외하고 일부만(10분 9초부터 끝까지) 스트리밍합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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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http://cafe.daum.net/add4
윈드버드
http://www.windbird.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