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지독히도 게으른 삶을 살고 있는 저로서는 무언가 베스트를 꼽는다는게 죄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열심히 최근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것을 꼼꼼히 뒤돌아본 것도 아니고…. 그냥 이건 올해 제가 우연찮게라도-각종 영화제를 포함하여-보게 된 영화들 중에서 유난히 인상적인 것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싶은 정도로 해 두겠습니다.

1. 그림자들(존 카사베츠)
20030106103305-shadows이름으로만 유명한(그런데 소개되는 일은 없었던) 미국 독립영화계의 대부 존 카사베츠의 데뷔작입니다. 대선 당일날 무지하게 술을 먹고 바로 다음날 아직도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관람한 영화라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근 2년정도 사이에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내용은 물론 카메라 워크나 편집 등등 모든 면에서 정말 ‘마구리 미학’의 정수라고 함부로 말하고 싶은, 그러면서도 재즈의 즉흥연주같은 미묘한 흐름을 살린 영화입니다. 그만큼 비참하면서도 항상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버리는 것이 삶인 것 같구요.

2.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초기의 두 작품이 ‘머리는 타란티노인데 몸은 남기남’ 같은 영화들이었고, 나름대로 잘 만든(말 그대로 well-made) [공동경비구역 JSA] 역시 제게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겼읍니다만, [복수는 나의 것]은 많은 논쟁을 뒤로 하고 박찬욱이라는 영화감독 개인으로 본다면 ‘자신의 길을 찾기 시작한’ 영화같습니다. 반면 [오아시스]는 공인된 걸작 같습니다만 제겐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아직도 좀 부담스럽네요. 당장의 눈물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그는 너무 많은 구석에 구둣점을 찍는 것 같아서요….

3. 질투는 나의 힘(박찬옥)
20030106102800-envy관객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에서 본 영화(개봉예정은 내년 4월)입니다. 홍상수감독의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다음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에 대해서 더 많은 걸 할애하는 영화같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면을 통해 이야기하지만 주인공을 연기한 박해일이라는 배우는 ‘발견’이라는 이야기를 해도 크게 틀릴 것 같지는 않구요….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영화들의 운명이라는 점이죠. 촬영이 끝난 지 1년이 지난 지금에도 해외영화제를 먼저 두드릴 수밖에 없는 건 정말 국내 영화 배급구조의 한심함을 탓할 수밖에 없는건지….

4. 이치, 더 킬러(미이케 다케시)
전 솔직히 부천영화제에서 이 사람의 다른 영화들은 그냥 그렇게 봤습니다만. 이건 정말 골때리더군요. 무엇보다도 그 핸드폰 벨소리…. (웨이브내 오某씨는 [데드 얼라이브](피터 잭슨) 이래 최고의 난도질영화라고 극찬하더군요. 뭐 하여간 많이들 좋아하시고 커뮤니티도 꽤 생긴 걸로 압니다만) 여하간 개인적으로는 ‘즐거움’ 면에서 가장 큰 걸 준 영화같군요.

5. SEOUL(최민수….??)
20030106102800-C4165-t감독이 누군지 기억도 안 나고 알 필요도 없는 영화. 민수형의 명대사들의 총출동(“지시는 내가 한다” “여기는 한국이야!” 등등 주옥같은 대사들….). 그런데 그게 거의 자기 패러디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까지 생각된다면? 물론 올해는 이 영화 말고도 각종 쓰레기들이 많이 양산된 해이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점점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 중에서 보고싶은 영화가 줄어든다는 데 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같은 영화의 실패에 대해 ‘안이한 기획의 실패’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떠나간 자리에 남는 더더욱 안이한 쓰레기들인 것 같군요. 20021223 | 김성균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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