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27091754-f51710tjqejJurassic 5 – Power In Numbers – Interscope, 2002

 

 

올드 스쿨 힙합의 수호자란 명예의 고수 혹은 그 멍에로부터의 탈피

쥬라식 화이브(Jurassic 5)는 올드 스쿨 힙합의 환영(幻影)이다. 네 명의 엠씨와 두 명의 디제이는 힙합의 고색 창연한 시대를 마술처럼 재생해낸다. 물론 그들의 마법이 진정한 ‘전통의 재창조’인지 노스탤지어의 허상에 기댄 상술인지를 애써 구별할 필요는 없다. 그저 6명의 LA 토박이들이 재현해내는 20여 년 전 브롱스의 블록 파티 혹은 맨해튼 다운타운 클럽 공연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쥬라식 화이브가 드러내는 올드 스쿨의 면모는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다. 우선 그들은 디제이 중심의 패거리다. 컷 케미스트(Cut Chemist)와 디제이 누마크(DJ Nu-Mark)는 사운드 감독관 혹은 무대의 실제 주인공으로서 이들 패거리를 이끄는 쌍두마차 역할을 한다. 튼실한 비트와 화려한 턴테이블리즘을 멋들어지게 버무리며 진정한 ‘디제이의 귀환(return of the DJ!)’을 실천하는 셈이다. 한편으로 네 명의 엠씨들은 디제잉에 기댄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에 보다 충실하다. 두 디제이가 주조하는 사운드 위로 쏟아지는 4중창 랩은 구체적인 메시지를 배제하고 한껏 멋 부린 라임과 호언장담에 집착한다. 갱스타 래퍼나 ‘정치꾼’ 엠씨가 주체로 나서는 뉴 스쿨 힙합이 거북한 이들에게 ‘쥬라식 화이브 식’의 올드 스쿨은 부담 없는 흥겨움을 제공하며, 역설적으로 더욱 최신의 세련된 힙합으로 다가선다.

이미 전설이 된 [EP](1997)와 정규 데뷔 앨범 [Quality Control](2000)을 도합 70여 만장 팔아치우며, 거물 힙합 그룹으로 성장한 쥬라식 화이브에게도 물론 나름의 고민은 있다. 친근하되 구체성이 결여된 랩 중창과 익숙한 음원들의 재활용은 상업적 성공을 위한 보증수표가 되긴 했지만, 한편으로 단지 힙합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지속적으로 우려먹을 뿐이라는 비아냥거림도 감수해야 했다. 실제로 백인 중심의 대학가 라디오에 울려 퍼지는 쥬라식 화이브의 노래를 흑인 힙합 방송에서 전혀 들을 수 없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

2년여의 제작 과정을 거쳐 발매된 두 번째 정규앨범 [Power In Numbers]는 ‘올드 스쿨의 수호자’라는 명예를 고수하되, 동시에 그 ‘멍에’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려는 쥬라식 화이브의 새로운 노력들이 돋보인다. 우선, 앨범을 양분하며 대부분의 트랙에서 프로듀스를 담당하고 있는 컷 케미스트와 디제이 누마크는 보다 다양한 비트 실험을 시도한다. 두툼한 베이스와 ‘큰’ 드럼 비트에 적절한 샘플링을 섞거나 보다 분할된 리듬 실험을 도입하고 때론 R&B 성향의 사운드까지 넘나든다. 한편으로, 사운드스케이프를 확장하면서도, 화려한 기교의 디제잉은 가급적 지양하고 시종일관 엠씨들과 조화를 이루려 노력한다.

따라서, 턴테이블리즘 전형에 디제이 누마크의 멋진 퍼커션 솜씨를 곁들인 연주곡 “Acetate Prophets”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곡은 네 엠씨가 전면에 나선다. 찰리 투나(Chali 2Na)의 깊은 바리톤과 마크 세븐(Marc 7even)의 거친 고음이 소리의 틀을 만들고 자키르(Zaakir)와 아킬(Akil)의 유연한 라임이 중간 여백을 채우면서, 완벽한 하모니의 래핑은 보다 깊어진 상호간의 신뢰감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올드 스쿨 찬양과 라임 솜씨 자랑에 집착하던 전작과 달리,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주제들을 가사를 통해 표현하려 애쓰고 있다.

첫 싱글로 발매된 “What’s Golden”은 무거운 비트를 바탕으로 간결한 관악 섹션, 적절한 스크래칭과 네 엠씨의 리듬감 넘치는 랩이 조화를 이루는 흥겨운 곡이다. 일견 여전한 올드 스쿨 찬가처럼 들리지만, ‘9. 11 테러’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는 디제이 누마크의 주장에 걸맞게 ‘공격적인’ 성향이 가득하다. 물론 파괴력을 따지자면 “A Day At The Races”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전설적인 엠씨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과 퍼시 피(Percy P)가 게스트로 참여한 이 곡에서 복고적인 베이스라인 위로 6명의 라임 고수들이 숨가쁜 랩 대결을 펼치는데, 1980년대 후반 ‘골든 에라(Golden Era)’의 향수에 절로 젖어들게 한다.

간소하지만 적절한 게스트 기용은 한편으로 사운드의 폭을 넓히는데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다. 넬리 퍼타도(Nelly Furtado)의 코러스가 남성 중심의 랩 하모니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남녀 관계의 양면성을 묘사하는 “Thin Line”은 컷 케미스트 나름으로 해석한 R&B 성향의 ‘어번 팝(urban pop)’이다. 하지만 보다 근사한 발라드는 촉망받는 프로듀서 트리오인 샤피크 후세인(Shafiq Husayn), 옴마스 키쓰(Om’Mas Keith), 타즈 아놀드(Taz Arnold)가 참여한 “Hey”다. 부드러운 키보드와 아련한 스네어 드럼 연주를 배경으로 자키르의 멋진 노래 솜씨까지 맛볼 수 있는 흥미만점의 트랙이다.

무엇보다도, 꽉 찬 사운드에 상응하는 네 엠씨의 진지한 라임은 이번 앨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변화다. 영리한 말장난의 단계를 넘어 때론 인종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진지하고 신랄한 문제제기를 시도하고 있다. 가령 비트너츠(The Beatnuts)의 주주(JuJu)가 프로듀스한 “One Of Them”이 갱스터 문화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담고 있다면, “If You Only Knew”는 세상에 대한 거칠 것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멋진 재즈 랩이다. 물론 미국 대도시 삶에 대한 어두운 우화 “Remember His Name”도 빼놓을 순 없는데, 복잡하지만 치밀한 이야기 구성을 통해 네 엠씨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쥬라식 화이브의 성숙한 사회의식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트랙은 “Freedom”이다. 샘플로 사용된 줄리어스 브록킹턴(Julius Brockington)의 “The Feeling”이 시종 일관 중독적인 멜로디를 제공하는 가운데, 네 엠씨는 정교한 라임으로 제 3세계의 빈곤문제부터 미국의 감시 감찰 시스템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가차없이 비판한다. 특히 찰리 투나가 머미아 아부자말(Mumia Abu-Jamal)의 석방을 주장하며 동시에 흑인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만연한 소비주의를 냉소적으로 꾸짖는 부분은 이 곡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작 [Quality Control]의 장점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사운드와 엠씨잉 양쪽에서 은근한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Power In Numbers]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마 기존의 백인 언더그라운드 힙합 팬들은 친근한 올드 스쿨 골격에 다채로운 사운드 실험을 가미한 이 앨범에 또 한번 만족할 것이다. 한편으로 흑인 공동체의 관심사를 담아낸 라임은 새로운 청자들, 특히 진보적인 흑인 청년들로부터 적잖은 환영을 받지 않을까 싶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고 했지만, 쥬라식 화이브의 여섯 전사들과는 전혀 무관한 얘기처럼 들린다. 조화롭고 창의적인 협업을 무기로 이들이 지난 10여 년 간 이루어낸 음악적 진보는 결국 앨범 타이틀 ‘power in numbers’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20021209 | 양재영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This Is
2. Freedom
3. If You Only Knew
4. Break
5. React
6. A Day At The Races (feat. Percy P & Big Daddy Kane)
7. Remember His Name
8. What’s Golden
9. Thin Line (feat. Nelly Furtado)
10. After School Special
11. High Fidelity
12. Sum Of Us
13. DDT
14. One Of Them (feat. Juju of The Beatnuts)
15. Hey
16. I Am Somebody
17. Acetate Proph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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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Jurassic 5 공식 사이트
http://www.jurassic5.com
Jurassic 5 팬 사이트
http://www.jurassic5.cjb.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