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08093054-riotactPearl Jam – Riot Act – Sony, 2002

 

 

펄 잼은 펄 잼이다

펄 잼(Pearl Jam)의 7집 앨범 [Riot Act](2002)를 듣다 문득 친구와 나눴던 담소가 떠올랐다. 때는 2000년 3월이었고, 막 개강을 하고 실기실에서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의 [Machina/Machines Of God](2000)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이런 말을 했었다. “스매싱 펌킨스는 다 좋은데 꾸준한 맛이 없어, 마치 펄 잼 같은…” 지금 생각해도 그 때 그리 틀린 말을 했던 것 같지는 않다. 스매싱 펌킨스는 그 앨범을 끝으로 해산해 버렸고, 펄 잼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이렇게 또 다시 새 음반을 발매하기에 이르렀으니까.

그 때 펄 잼에 대해 한 ‘꾸준하다(혹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당연히 칭찬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그 해 5월, [Binaural](2000)이 나왔을 때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이 지나 [Riot Act]를 처음 플레이하면서 드는 당혹감이 무엇인지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나지막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들은 [Binaural] 이후의 2년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여전하고 익숙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처음의 당혹감이 점차 익숙함, 더 나아가 친근함으로까지 발전했음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앨범은 특별히 돌출 되는 부분 없이 무난하다면 무난하고 심심하다면 심심할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이질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You Are”이나, ‘Green Disease’의 전주 부분에서는 1980년대 뉴로멘틱스를 연상케 하는 기타 사운드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결국 앨범을 감싸안는 주된 정서는 “Can’t Keep”이나 “Love Boat Captain”, “I Am Mine”(첫 싱글), 등에서 들을 수 있는 ‘루츠’적이고 ‘스피리추얼’한 사운드를 통해 형성된다(상기 두 곡이 앞으로의 음악적 변화의 조짐 같지도 않고).

에디 베더(Eddie Vedder)의 보컬은 이제 더 이상 얘기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정말 눈부신 몇몇 순간들을 연출한다. 다른 멤버들의 연주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최대한 자제하고 어디까지나 에디 베더의 보컬을 감싸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으며, 이러한 ‘곡을 주도하는’ 보컬과 그 ‘보컬을 보좌하는데 주력’한 연주를 통해, 앨범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고 안정적이며, 심지어는 ‘팝적’이기까지 한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러 비난과 내외부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작업만으로 이를 헤쳐나가고자 했던(지금의 씬에서 펄 잼만큼 안정적으로 음반을 만들어온 밴드가 과연 있는가) 밴드의 ‘일관성’이 큰 역할을 했으리란 사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No Code](1996)의 저조한 판매고로부터 시작된 펄 잼의 길었던 고난의 여정은 [Riot Act]로 이렇게 그 장을 마무리하는 듯하다. [Binaural]부터도 조짐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제 펄 잼은 더 이상 주류의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인기와 명성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얼마 남지 않은 팬들과 함께 늙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두고 ‘그들은 너무 쉽게 조로(早老)해 버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Riot Act]에서 들려오는 펄 잼의 그 신실한 감정에 마음을 닫아 버리기는 쉽지 않다.

아직 [weiv]에서 활동하기 이전에 본 펄 잼의 리뷰 중에 굉장히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이미 펄 잼은 록 음악의 역사에서 떠나 밴드 자체의 역사로 옮겨간지 오래다’, 그리고 [weiv]는 아니지만 핫 뮤직(Hot Music)에 실렸던 [Vitalogy](1994)의 리뷰 한 구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는 팬들만을 위한 밴드가 되어 가는가’ 전자의 경우는 당시 펄 잼의 현재와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었고, 후자는 앞으로 다가올 밴드의 미래에 대한 날카롭고도 ‘아름다운’ 예측이었다. 그래서 [Riot Act]에 대한 평가는 위 두 말을 조합해서 이렇게 내려보려고 한다, ‘팬들만을 위한 밴드의 가감 없는 역사 그 자체’. 진심으로 ‘펄 잼은 펄 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에 안주한다는 것이 그렇게 큰 잘못 같지는 않다. 20021108 | 김태서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1. Can’t Keep
2. Save You
3. Love Boat Captain
4. Cropduster
5. Ghost
6. I Am Mine
7. Thumbing My Way
8. You Are
9. Get Right
10. Green Disease
11. Help Help
12. Bushleaguer
13. 1/2 Full
14. Arc
15. All Or None

관련 글
Pearl Jam [Binaural] 리뷰 – [weiv] vol.2/no.16
Pearl Jam [Ten] 리뷰 – vol.3/no.21
Pearl Jam [Vs.] 리뷰 – vol.3/no.21 [20011101]
Pearl Jam [Vitalogy] 리뷰 – vol.3/no.21 [20011101]

관련 영상

“Thumbing My Way”

관련 사이트
http://www.pearlj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