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23055846-0422goldenfolk_marchoffool배리어스 아티스트 – 골든 포크 앨범 Vol. 11: 바보들의 행진 – 신세계(SO 0054), 1975

 

 

바보 행세 뒤에 숨겨진 통렬한 시대 정신

1975년에서 1983년이라는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한국의 대학생 수가 거의 네 배 가량 늘어나 전 인구의 3%에 육박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역사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그게 실은 농사 짓는 부모들이 팔아치운 소 뼈다귀 위에 쌓아올려진 ‘교육 기적’임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 기간은 또한 하길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으로 시작해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거쳐 김신의 소설 [대학 별곡]으로 마감되는 캠퍼스 낭만주의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왜 하필 낭만주의였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고등 교육의 팽창으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초기의 이 준(準)지식인층은 노동과 가족적 의무로부터 당분간 면제되면서 자유 재량에 맡겨진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그걸 무슨 목적을 위해 어떻게 써야 할 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구상이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전문 직종으로의 진출이 보장된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에게는 ‘대학 이후’를 미리 보여줄 만한 선례조차 없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왜 그 영화와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철학과 아니면 국문과에 다니지 않았던가). 고등 교육을 받는 대학생들을 ‘바보’라고 부른 영화 제목의 역설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멍청해지고 마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병태: 나에겐 꿈이 있어.
영자: 꿈? 무슨 꿈? 갈매기 꿈?

긴급 조치와 휴교령을 통해 더더욱 늘어난 대학생들의 ‘자유’ 시간이 표상하는 이율배반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탄압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재영이 분한 영철이 교정에서 담배를 피우다 교수로부터 따귀를 얻어맞는 장면이 시사하듯, 억압은 공공 영역을 넘어 사회의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었고, 그로부터 ‘탈주’하려는 젊은 몸부림은 영화의 주요한 테마를 이룬다. 장발 단속을 하는 경찰관에게 쫓겨 거리와 육교 위를 달아나는 장면, 그리고 그 때 베이스 기타 및 베이스 드럼과 하나되어 귓전을 네 번 때리는 송창식의 ‘왜애 불 러!’란 외침과의 결합은 일종의 심오한 해석을 촉발시킨다.

경관이 용의자를 ‘이봐, 거기!’하고 불러 세우는 상황은 프랑스 맑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가 제창한 이데올로기 이론의 핵심적인 사례로 등장한다. 이른바 호명(呼名)이라고 불리는 이 무의식 메커니즘은, 음악 용어에 빗대어 말하자면 일종의 주객전도된 호응(call and response)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배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질서를 내면화한 개인 주체(subject)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지배 질서, 그 이데올로기의 균열은 호명이 제대로 된 응답(‘예, 저요?’)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고, 응답을 거부하는 것은 능동적인 저항을 의미할 터이다. 따라서 탈주 장면 위에 더해지는 ‘마음 없이 부르는 소리는 안 들려…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라는 송창식의 일갈은 송곳마냥 날카로운 비판과 저항의 톤을 싣고 귓전을 파고든다. 동시대를 풍미한 신좌파 이론과 청년 문화는 이렇듯 예기치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목소리를 통해 조우하는 것이다.

“왜 불러”의 통렬함은 송창식의 트로트/뽕짝 기행이 다다른 정점이다. 목소리를 대신해서 기타와 오르간이 코러스-버스의 멜로디를 번갈아 맡는 연주곡 버전을 들어 보면 완연해지는 “왜 불러”의 ‘왜색’은, 한편으론 엄청난 대중적 히트에 기여한 반면, 다른 한편으론 탄압의 표면적 구실을 제공하기도 했다. 왜 하필 뽕짝이었을까? 이 시기 송창식의 또다른 역작들인 “한번쯤”이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입증하듯 이는 일회성에 그칠 만한 풍자나 아이러니가 아니었고, 또한 그의 음악적 야심과 재능에 비추어본다면 단순한 상업적 고려였다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그는 구태의연해진 형식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찾아내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점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트로트 가락에 실린 그의 신선한 서사적 실험이다. “한번쯤”에서 1절 가사와 2절 가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시점 전환은 박진감 있게 교차되는 심리 묘사와 더불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댓구와 운율로 송창식의 가사를 문학 작품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고도로 상징적이고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독일 하멜른(Hameln) 지방의 전래 우화에서 영감을 얻은 “피리 부는 사나이”는, 우회적으로나마 성(性) 해방이라는 당대 청년 문화의 주요 테마를 환기시킨다. 정도와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언급한 세 곡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육체적 욕망과 유혹의 분위기, 권력의 언어를 빌어 말하자면 그 ‘저속함’은 통기타 포크가 감내하기에는 어려운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바로 그런 감성을 담아내기 위해 송창식은 뽕짝으로 눈을 돌린 것이 아닐까? 김민기가 “종이연(혼혈아)”이나 “기지촌”에서 척박하고 너저분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블루스를 끌어다 쓴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

뽕짝-포크 혼종 시도는 양희은이 부른 “산장의 여인”, “부모”(1977)나 전영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1977), “서울 야곡”(1978) 등으로 한동안 지속되었다. 가사, 목소리, 창법 등에서 ‘포크 가수가 부르는 뽕짝입네’를 분명히 하고 넘어가는 이 곡들은, 순수하고 고결하기만 한 포크 음악으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정서적 효과들을 뽕짝으로부터 착취하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 효과들 중 하나는 아마도 애수(哀愁)일 텐데, 이미 “상아의 노래”나 “딩동댕 지난 여름” 같은 애수띤 곡들을 불렀던 바 있는 송창식은, 여기서는 김상배의 곡 “날이 갈수록”으로 그 효과를 재현한다. 영화에서 치기어린 낭만조차도 진이 다 빠져 버린 주인공들의 애수를 토로한 이 노래는, 적어도 산울림의 “청춘”(1981)이 나오기 전까지는 젊음의 덧없음을 가장 절절히 한탄하는 노래로 꼽힐 것이다.

무자비한 검열로 30분이 넘게 잘려나간 탓에 영화는 때로 줄거리의 앞뒤조차 맞지 않고 중구난방이지만, 독특한 에피소드를 이루는 인상적인 장면들과 음반에 실린 노래들의 조화는 실로 절묘하다. 예컨대 [쿨 핸드 루크(Cool Hand Luke)]의 달걀 먹기 시합을 은근슬쩍 지시하는 듯한 과 대항 막걸리 마시기 대회 장면은, 투 코리언스가 부른 “한 잔의 술”과 완벽한 짝을 이룬다. 이장희가 만들고 이미 [별들의 고향]에서 직접 부르기도 한 이 노래는, 그 특유의 퇴폐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권주가(勸酒歌)다. 동방의 빛 이호준의 전기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물방울 똑똑 떨어지는 듯한 인상적인 리프로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원곡과 동일하지만, 신디사이저를 아예 빼버리고 전기 기타의 개입을 최소화한 뒤 베이스 라인과 건반을 부각시킨 동방의 빛의 탁월한 연주는 김도향과 손창철의 걸찍한 목소리와 어우러져 전작을 훌쩍 뛰어넘는 주태백의 경지에 도달한다. 특히 손창철이 한참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를 흉내내다가 오르간의 글리산도(glissando)에 실려 ‘마시자 한 잔의 술’하는 코러스로 넘어가는 대목을 듣고 있노라면 막걸리 생각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술 얘기를 하다보니 이제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를 언급할 시점에 이르렀다. 2000년대의 오늘날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1990년대 중반까지 20여년간 대학가의 술판에서 빠지지 않던 합창곡으로서, 아마도 한국 대중 음악 사상 가장 각광받은 록 송가(rock anthem)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그 노래는 바로 “고래 사냥”이다. 시작을 알리는 군악대 풍의 행진곡 드럼은 도입부에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두 가지를 암시한다. 그 하나는 성년의 문턱에 들어선 대학생-청년들 앞에 버티고 선 최종의 훈육 기관, 군대가 드리운 음울한 그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버스(verse)를 채우는 송창식의 축 처진 읊조림과 대비되는 극적인 전환의 도래이다.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라는 한탄에 동감이라도 하듯 전기 기타는 벤딩을 먹어 징징거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하며 절망이 한 차례 밑바닥을 치고 나면, 곡의 분위기는 탐 탐(Tom Tom)을 다섯 번 두드리며 이루어지는 드럼 비트의 변화와 함께 급전한다. ‘자 떠나자’하는 송창식의 절규는 강근식의 기타와 유니즌(unison)을 이루어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선동적인 효과를 발휘하면서 듣는 이들을 흡인하지만, 이런 비등도 잠깐, 긴 ‘어이-‘하는 긴 타령조의 탄식은 다시 애초의 가라앉은 정념을 내뱉는다.

하지만 2절로 접어들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좀 더 단호한 태도로 ‘꿈’을 노래하기 시작하는 송창식의 목소리에는 점차 힘이 실리고, 밴드의 연주도 이미 바뀐 리듬을 그대로 끌고 나가면서 에너지를 증강시킨다. 무엇보다 두 번째 코러스에서는 영화의 원작자이자 노래의 작사가이기도 한 최인호가 남긴 불멸의 펀치라인(punch line)이 송창식의 통쾌한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신화(神話)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 최인호 이래 캠퍼스 낭만주의를 건드린 수많은 작가 및 작가 지망생들은 청춘을 예찬하는 그 한구절을 찾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들을 산으로 바다로 떠나보냈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이만큼 큰 고래가 걸려든 적이 없었다. 이젠 한 번 솟구친 기운을 누그러뜨리지 않으려는 듯 기타 솔로는 코러스를 다시 한 번 되풀이하면서 피날레를 예비한다. 이윽고 마지막 코러스에 이르면, 앰프가 감당을 못하고 웅웅거릴만치 혼신의 힘이 실린 기타 애들립은 구호를 외치는 것 마냥 코러스를 반복하는 송창식의 목소리와 함께 세차게 몰아쳤다가 차차 잦아든다. 빛이 바래만 가는 그 질풍 노도의 기억과도 같이.

영화사(史)에 관해 논할 자리는 아니지만, [바보들의 행진]은 1960년대 미국의 [졸업(Graduate)]이나 [Easy Rider], 혹은 동시대 자메이카의 [The Harder They Come]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시대와 세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초기에는 전위적 예술영화를 시도했던 하길종이 ‘세상과 타협해’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표면상의 바보스러움 뒤에 치열한 정신을 숨기고 있다. 30년 전 영화를 만들었던 이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을 얽매고 있었던 시대적 제약이 지금 와 보기에 어처구니 없으리만치 어리석은 것이었다면, 정교하게 고안해 낸 바보짓보다도 더 통쾌하게 그걸 고발하는 방법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과 웃음 덕택에 ‘꺼벙하게’ 보인다는 얘기를 간혹 듣곤 했던 송창식이 통렬한 시대의 목소리로 등장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20021215 | 김필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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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왜 불러 – 송창식
2. 날이 갈수록 – 송창식
3. 왜 불러 – 경음악
4. 고래사냥 – 송창식
5. 날이 갈수록 – 경음악

Side B
1. 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 – 임희숙
2.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 He 5
3. 두손을 마주잡고 – 김세환
4. 창가에 홀로 앉아 – 이장희
5. 한잔의 추억 – 투코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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