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21062027-0422handaesoo1한대수 – 고민(Source Of Trouble) – 풍류/유니버설, 2002

 

 

21세기를 살아가는 20세기 히피의 고민

1968년 장발 히피의 모습으로 등장한 한대수는 ‘자유의 바람’과 ‘물 좀 주소’라며 자기 목소리를 토해내면서 한국 모던 포크의 비조(鼻祖)가 되었다. 그렇지만 1975년 그는 바람을 접고 ‘쫓기듯’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곳이 ‘행복의 나라’였기에? 아니, 이 곳이 ‘아무리 봐도 안보여’서. 1989년, 14년만에 그가 다시 이곳을 넘나들며 펼쳐놓은 ‘마지막 꿈’에는 한편으로 에이즈가, 디지털 세상이, 종교가, 멸망의 밤이, 다른 한편으로 공포가, 멍든 마음이, 실수가 담겨 있었다. 그때 손에 들고 온 록, 재즈, 아방가르드의 혼혈 종자는 ‘한대수=포크’라는 ‘패러노이아(paranoia)’적 굴레에 대한 자기부정이었다.

 

20021121062027-0422handaesoo2[고민(Source Of Trouble)]은 이방인으로 와서, 외계인 같은 별종으로 머무르다, 국외자가 된 한대수의 아홉 번째 앨범이다. 한편 이 음반은 김도균(그룹)의 [정중동(Movement On Silence)], 이우창의 [나 없는 나(Selfless Self)]와 함께 박스 세트 [삼총사(The Three Musketeers)]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록 기타리스트 김도균과 재즈 피아니스트 이우창은 음악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 1997년 후쿠오카 공연부터 한대수의 조력자로, 음악적 동지로 활동해왔다(이우창은 이미 1991년 한대수 5집 [천사들의 담화]에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8집 [Eternal Sorrow](2000)를 마지막 독집으로 삼겠다던 한대수가 [고민(Source Of Trouble)]을 만들게 된 계기는 지난 2001년 10월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가진 단독 공연 ‘The Last Concert’였다. 이 공연의 기획자 하종욱은 주인공인 한대수와, 조연자 김도균, 이우창을 한데 묶은 협연 음반을 제안하고 제작을 맡은 것이다(애초의 의도와 달리 그 결과물은 협연이 아니라 각자의 독집이 되었다).

[고민(Source Of Trouble)]의 음반 커버는 한대수의 전작들처럼 이채로운데, 한대수 자신의 얼굴 사진이 핵심이란 점에서 익숙하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 한대수는 위악적인 찡그림이나 우는 듯한 표정이 아니라 덤덤한 인상의 상반신 포즈라는 점에서 다르다. 옷을 걸치지 않은 채 왼손에 갈치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인상은 모호해서, 보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혹시 그 모호함이 음반 타이틀 ‘고민’을 상징하는 것일까.

음악들은 어떨까. 도입부의 두 곡은 강렬하다. 첫 곡 “Marijuana”는 리듬 기타, 베이스, 드럼이 자아내는 훵키하고 깔끔한 리듬, 그리고 이와 대조적인 리드 기타의 뜨거운 프레이즈가 귀에 먼저 들어온다. 가래가 끓는 듯한 한대수의 음색은 예의 허스키한데, 버스 부분은 주절주절 늘어놓는 지껄임에 가깝고 코러스 부분은 그나마 노래 같다. 전작의 훵크 스타일 노래 “멍든 마음 손에 들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익숙하겠지만, “행복의 나라”나 “바람과 나” 같은 ‘한대수 클래식’에만 익숙한 사람은 이 곡의 영어 가사와 훵키한 스타일이 영 낯설 것이다. 그런데 마리화나? 다음 곡은 제목부터 ‘호치민'(!)이다. 바쁘게 스트로크 하는 어쿠스틱 기타를 발판으로, 급박했던 정세와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을 형상화한 쓰래쉬/데쓰 메탈 스타일의 거친 사운드가 작렬한다. 한대수는 저 격렬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옛날 얘기해주듯 호치민에 대해 말 그대로 설명한다. “그.. 저.. 호치민에 대해서 말하자면, 저… 참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저…” 호치민이 누구인가. 20세기 아시아의 대표적인 혁명가이자 공산주의자로,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초대 주석이었으며 베트남에서 절대적으로 추앙 받는(일례로 모든 지폐에 그의 그림이 담겨 있다) 베트남 공산당과 사회주의 공화국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마리화나나 호치민이나 1960년대 히피 사상과 문화를 깊이 받아들인 ‘영원한 히피’이자 분방한 비판 의식의 소유자인 한대수다운 노래 소재이다.

반면 세 번째 곡부터는 분위기가 차분해진다. ‘영원한 사랑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As Forever”와 여름에 관한 짧은 시 “여름 노래”는 모두 약간의 리듬감과 스트링(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세션이 가미된 발라드이다. 그 사이에 있는 “질주”는 한대수, 김도균, 이우창 ‘삼총사’가 모처럼 중심이 된 연주이다. “여름노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겨울 노래”는 제목처럼 추운 겨울의 냄새가 피어오르고, 한대수의 단골 주제인 시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오늘 가면”은 그의 노래, 어쿠스틱 기타, 하모니카만으로 담백한 맛을 남긴다. 1970년대 한대수의 포크 (록)음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들이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종의 보너스 트랙 “천사들의 잡담 1″과 “천사들의 잡담 2″는 제목 그대로 [천사들의 담화](1991)의 연습/리허설을 발췌한 것이다. 이 트랙들은 한대수의 레코딩 방식이 궁금한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기록일 것이다.

이처럼 한대수 9집 [고민(Source Of Trouble)]은 그의 1970년대 음악의 맥을 잇는 곡들과 1980년대 이후 새로운 경향의 곡들이 혼재하고 있다. 전자의 취향이라면 중후반의 어쿠스틱 사운드가 끌릴 것이고(물론 편곡이나 질감은 좀더 깔끔한 편이다), 후자를 평가하는 경우라면 모두(冒頭)를 장식하는 두 곡과 음반에 ‘간지’처럼 들어가 있는 “상사병”이 인상에 남을 것이다. 앰비언트적인 끝 모를 음향의 출렁임 속에 줄 긁는 소리와 ‘보고 싶어’란 간단명료한 내레이션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경구처럼 집약한다.

[고민(Source Of Trouble)]은 1990년대 후반 다시 분 포크 리바이벌 붐이 단지 ‘노스탤지어’로 환원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포크는 향수에 기댄 답습이나 답보가 아니라 언제나 자기부정과 성찰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혹시 이 음반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음반이 1970년대의 절박하고 진솔한 포크와 1980년대 이후의 장르를 횡단하는 실험에 각각 한 발씩 걸치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1970년대 풍 포크 곡들은 재현을 뛰어넘는 창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록이나 훵크 스타일을 도입한 곡들은 새롭지만 그에겐 맞지 않는 구두 같기 때문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그 점이 ‘고민’이란 이 음반의 타이틀을 분만한 숨은 동인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데뷔작 [멀고 먼 길](1974)의 정성조나 김진성 같이 시너지 효과를 견인할 인물이 부재하기 때문일까. 이 음반의 베스트 트랙인 “상사병”이 한대수의 보컬이 배제된 곡이란 점은 아이러닉하다. 20021120 | 이용우 [email protected]

8/10

<부연>
이 음반은 ‘The Last Concert’ 공연 직후인 2001년 11월, 닷새 동안 밤 7시부터 밤 12시까지 녹음되었다. 한대수는 악보도 없이, 어떤 곡은 가사만 덜렁 적은 종이를 가지고 나타나 스튜디오에서 일필휘지로 풀어냈으며, ‘양호합니다’란 특유의 습관적 말로 과정들을 각각 정리하면서 3일만에 녹음을 완료했다. 메트로놈도 쓰지 못하게 하고, ‘다시 해도 더 좋은 음악은 없다’며 실수를 보완하려는 세션들의 추가 녹음도 불허했다. 그래서 제작자이자 공동 프로듀서인 하종욱은 한대수 몰래 이틀 동안 세션 녹음을 추가했다.

수록곡
1. Marijuana
2. 호치민
3. As Forever
4. 질주
5. 여름 노래
6. 겨울 노래
7. 오늘 가면
8. 상사병
9. 천사들의 잡담 1(1991. 4. New York)
10. 천사들의 잡담 2(1991. 4.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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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공식 사이트
http://hahndaes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