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05050620-0421sjh_bodynfeel신중현 – Body & Feel – 신중현MNC/SM, 2002

 

 

노장의 생생한 반추 또는 거장의 클래식

나이가 들다 보면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음악인도 예외는 아니다. ‘히트곡 모음집’ 형태의 음반이나 특정 시대의 편집음반이 자주 나오는 것은 꼭 음반사의 이윤동기가 아니더라도 지난 음악을 정리하고픈 음악인의 의사와 무관하지 않다. [Body & Feel]은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든 노장 음악인 신중현의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기념음반이다.

[Body & Feel](2CD)에 담긴 18곡은 대체로 신중현이 1968년부터 1974년 사이에 만들어 발표했거나 이때 히트한 곡들이다. “님아”(펄 시스터즈, 1968), “커피 한잔”(펄 시스터즈, 1968), “늦기 전에”(김추자, 1969), “봄비”(박인수, 1970), “미련”(장현, 1972), “간다고 하지 마오”(김정미, 1972), “미인”(엽전들, 1974) 등은 이 시기 청년들의 ‘애창가요’였다(괄호 안은 ‘히트’ 기준의 가수와 발표 연도). 또 신중현은 ‘소울·싸이키 가요’ 열풍을 일으킨 인기 작곡가이자 가수 조련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작곡가와 가수 조련가로서 신중현은 요즘으로 치면 박진영, 서태지, 유영진을 능가했고, 그가 키운 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정미, 장현, 임성훈(!) 등은 인기 면에서 요즘의 G.O.D., 보아, 이수영 등에 뒤지지 않았다.

이 음반이 다른 히트곡 모음집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단순히 주옥같은 곡들을 추려서 예전 레코딩 그대로 재수록한 게 아니라 신중현 작곡의 ‘애창가요’를 새로 녹음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수록곡들이 히트했던 시기(1969-74년)는, 지금은 잊혀졌지만, 한국 그룹 사운드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신중현 역시 덩키스, 신중현 오케스트라, 퀘션스, 신중현과 그의 캄보 밴드, 더 맨, 엽전들 등 팀을 바꿔가며(멤버들은 더 자주 교체해 가며) 그룹 사운드를 이끌었는데, 이 밴드들은 상대적으로 그가 키운 가수들만큼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신중현은 대부분 솔로 가수들을 통해 히트했던 곡들을 재녹음하면서 직접 노래도 했다.

표지에 적혀 있듯이 이 음반은 신중현의 작업실이자 공연장인 ‘우드스탁’에서 ‘스튜디오 라이브’ 형태로 녹음되었다. 신중현이 활동하던 초창기에 마이크 하나 놓고 빙 둘러서서 한번에 녹음하던 모노 레코딩과 유사한 방식으로, 여러 번의 합주 중 잘된 것을 원본으로 삼았다. 악기마다 따로 녹음하는 것은 물론, 소절 소절 잘 된 것만 뽑아 수정해서 편집하는 요즘의 레코딩 방식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말이 불편하다면 ‘리얼 뮤직’, ‘멀티 사운드 녹음 방식’ 같은 홍보 문구는 음악의 생생한 질감을 잘 살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실제로 음반 케이스에 적힌 대로 음반의 볼륨을 높여 들어보면 녹음하고 있는 스튜디오 녹음 현장에 있거나 공연 스테이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음악이 살아서 파닥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음반에 담긴 사운드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허용한) 언플러그드 라이브, 혹은 (오케스트라를 세션으로 초대한) 록 밴드의 라이브를 연상시킨다. 모든 곡이 신중현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하고, 그가 리드하는 밴드 음악과 오케스트라의 현악 세션이 어우러진다.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는 신중현, 일렉트릭 기타는 차남 신윤철, 베이스 기타와 드럼은 신중현 밴드의 김정욱과 유상원이 각각 맡아 밴드 편성을 이뤄 전곡을 연주했고, 마에스트로 챔버 오케스트라가 스트링 세션으로 참여했다. 밴드의 연주는 욕심 내거나 과시하지 않으며, 오케스트레이션은 이를 담백하게 수식한다.

그래서 혹시 신중현이란 이름이나 기념음반의 성격 때문에 대곡에 거장적 풍채가 물씬 풍기지 않을까 기대(혹은 염려)했던 사람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시종 간결하며, 무리하지 않는다. 하긴 이것도 대가답다면 대가답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당대 청년들을 뒤흔든 업 템포 곡들에 나오는 “불덩이 같은 이 가슴”(“커피 한잔”)이나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미인”) 같은 구절들보다는, 원래 그윽한 발라드지만 딸깍 딸깍하는 드럼 소리가 담담하게 추스리는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에”(“미련”) 같은 구절이 더 인상적으로 들린다. 꼭 계절 탓은 아닐 것이다. 이를 감싸는 사운드의 표면도 다듬어지지 않은 듯 까칠하며, 노이즈 같은 불순물도 거르지 않고 그대로 함유하고 있다. 노장 사상에 친화적인 ‘한국 록의 노장’답다.

다만, 고음은 힘에 부치고 음정은 종종 불안정한 신중현의 보컬은 귀에 거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직접 노래한 것은 ‘노욕(老慾)’이었을까. 하지만 끝내 그의 보컬이 정감 어리게 들리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이번 사운드와 썩 잘 어울린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역설적으로는 신중현의 곡들이 지금 들어도 훌륭한 ‘한국 대중음악의 클래식’이란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음반에 담긴 결과물을 중의적으로 ‘신중현 클래식’이라고 부른다면 그런 맥락에서다. 이 음반은 그럴 자격이 있다. 20021024 | 이용우 [email protected]

7/10

<부연>
1. 이 음반은 원래 신중현이 “아름다운 강산”과 “미인”만을 직접 부르고 그 외에는 모두 다른 후배 가수들을 초대해 부르게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모두 직접 부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이는 한편으로 ‘하도 가수들에 치여'(물론 이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예 직접 노래했던 엽전들을 떠올리게 한다.
2. 크레딧에 나와 있듯, 이 음반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신윤철의 것이다. ‘당연히’ 신중현의 솜씨일 것이라고 예단할 수 있기에 덧붙인다. 이 음반에서 신윤철의 기타 음색/질감과 연주패턴은 때로 1980년대 한국 록/메탈을 연상시키는데 그럴 때 그의 기타 연주는 음반 전체 분위기와 이질적으로 들린다.

* 이 글은 [씨네21](375호)에 실린 글의 롱 버전입니다.

수록곡 (괄호 안은 오리지널 가수 및 밴드, 발표 연도)
CD 1
1. 미련 (쉐그린/임아영, 1972)
2. 마른 잎 (임아영, 1971)
3. 나는 너를 (서유석/장현, 1972)
4. 늦기 전에 (김추자, 1969)
5. 빗속의 여인 (애드 훠, 1964)
6. 봄비 (이정화, 1969)
7. 님아 (펄 시스터즈, 1968)
8. 석양 (장현/더 맨, 1972)
9. 미인 (엽전들, 1974)
CD 2
10. 꽃잎 (이정화, 1969)
11. 잊어야 한다면 (김정미, 1972)
12. 커피 한잔 (원제 “내 속을 태우는구려”는 애드 훠, 1964 / “커피 한잔”으로 제목을 바꿔서는 펄 시스터즈, 1968)
13. 나뭇잎이 떨어져서 (김추자, 1969)
14. 거짓말이야 (김추자, 1971)
15. 님은 먼 곳에 (김추자, 1970)
16. 간다고 하지 마오 (김정미, 1972)
17. 떠나야할 그 사람 (펄 시스터즈, 1968)
18. 아름다운 강산 (더 맨,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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