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성이여, 단결 투쟁하라”
전통적인 랩의 핵심이자 미덕은 때론 떠벌리고 때론 과시하는 라임이다. 이는 여성 래퍼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 힙합 뮤지션의 랩에서 다루어지는 두 번째 중요한 주제는 바로 “여성의 주체적 목소리를 한껏 높이자”는 것이다. 단순히 남녀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보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여성 래퍼들은 자신의 성숙한 사회 의식을 뽐내기 위해 열변을 토한다. 나아가, 자신을 포함한 아프로 아메리칸 여성들이 공적 공간에서 정치적 권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주장한다.

여성 힙합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90년을 전후한 시기, 이러한 경향을 주도했던 이는 단연 퀸 라티파(Queen Latifah)였다. 그녀는 진보적 흑인 여성이 취할 수 있는 보무 당당한 태도와 다양한 사회적 관심들을 진작부터 보여주기 시작했다. “Latifah’s Had It Up To Here”, “Come Into My House”, “U.N.I.T.Y” 같은 그녀의 곡들은 기본적으로 남성 청중을 주도하는 여성 래퍼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특히 데뷔 앨범 [All Hail The Queen]에 수록된 “Ladies First”는 흑인 여성의 확장된 정치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즉, 단순히 흑인 여성들의 단결과 독립된 목소리를 강조할 뿐 아니라, 아프리카 남부의 식민지적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흑인 여성의 공적 정치 활동의 중요성까지 주장한다. 말하자면, 전세계의 흑인 여성들을 규합하는 강력한 ‘블랙 우먼 다이아스포라(black women diaspora)’를 세우자는 것이다.

20021104080731-0421uswomen1‘갱스타 비치’ 세대를 대표하는 여걸 Foxy Brown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독립된 힘을 보여주려는 이러한 노력은 앙트와넷(Antoinette)의 “Who’s The Boss”나 요요(Yo Yo)의 “Stompin’ To The 90’s” 등의 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비록 강경파는 아니지만 솔트앤페파(Salt-N-Pepa)도 “Everybody Get Up” 같은 곡으로 이들을 뒷받침했다. 물론 퀸 라티파 세대 이후에도 이러한 진보적 전통은 지속되고 있지만, 사실 예전과 같지는 않다. 미스틱(Mystic) 같은 걸출한 언더그라운드 여걸을 제외하면 현재 주류 시장의 공격적인 여성 래퍼들은 대부분 새로운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바로 자기 스스로를 ‘갱스타 우먼(gansta women)’ 혹은 ‘갱스타 비치(gangsta bitches)’로 포장하는 것이다. 가령 폭시 브라운(Foxy Brown)이나 이브(Eve) 같은 이들은 그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갱스타 우먼’ 혹은 ‘갱스타 비치’는 1990년대 주류 남성 힙합의 트렌드가 적잖이 반영된 것이다. 즉, 남성 갱스타 래퍼들이 취해온 폭력에 대한 환상을 흑인 여성의 입장에서 전유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게토 거리를 활보하는 거친 이미지에 독특한 ‘섹스 어필’을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 여성 래퍼의 정체성은 모호한 이중성을 띠게 된다.

3)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일련의 진보적 좌파 성향 혹은 페미니스트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여성 힙합 뮤지션 대다수가 자신의 음악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앞서 언급한 남녀관계에 관한 것과 함께, 자신을 비롯한 흑인 여성의 ‘신체’에 대한 미적 과시 혹은 성적 자유의 표현에 관한 것이다. 남녀관계를 다루는 랩에서 대부분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마초적 남성이 주도하는 일방적 관계와 가부장적 권위에 맞서기 위해 다양한 음악적 전술들을 취한다는 얘기는 이미 했었다. 마찬가지로, 흑인 여성 랩의 또 다른 핵심 주제인 ‘섹스’ 혹은 신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 역시 중요한 사회 문화적 함의를 내포한다. 사실 주류 시장 여성 래퍼들의 ‘야한’ 뮤직 비디오나 선정적 단어를 남발하는 랩은, 그들의 음악이 단지 남성에 대한 유혹을 목적으로 할뿐이며 결국 스스로 흑인 남성 래퍼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고 있다는 편견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여성의 신체와 성적 자유를 핵심 주제로 하는 여성 래퍼들의 랩은 1980년대 이후 미국 사회 지배 담론에서 주변화되어온 흑인 여성들에게 새로운 공간과 목소리를 제공해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Shake Your Thang” by Salt-N-Pepa ([A Salt With A Deadly Pepa](1989) 중에서)

흑인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적 자유에 대한 표현을 통해, 이들 여성 래퍼는 흑인 남성 래퍼들에 의해 주도되어온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쾌락에 대한 전제들을 깨부수기를 요구한다. 더불어, 백인 남성 중심의 주류 담론이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의 신체를 규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들은 지속적으로 도전해 왔다. 사실, 1980년대 후반 이전까지만 해도 흑인 여성 특유의 풍만한 특정 신체 부위들은 주류 담론에서는 미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매체들이 흑인 여성의 신체에 대해 아예 언급을 회피했던 것을 상기하면, 1990년대 이후의 지나친 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솔트앤페파의 “Shake Your Thang” 뮤직 비디오와 거칠 것 없는 랩을 필두로 최근의 릴 킴(Lil’ Kim)이나 이브에 이르기까지, 흑인 여성 래퍼들의 솔직한 성적 표현들이 이러한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특히 그들은 미국의 주류 대중 문화에서 묘사되지 않았던 게토 흑인 여성들의 고유한 문화적 기호와 경험을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흑인 여성에 대한 지배 담론의 외면에 대담하게 맞서 왔다.

동료 흑인 남성들이 지닌 성적 편견을 교정하고 나아가 백인 여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하는 지배 담론의 미적 기준에 도전하면서, 흑인 여성 래퍼들은 젊은 아프로 아메리칸 여성들이 보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흑인 여성 래퍼들의 육체적, 성적 자유에 대한 표현은 필연적인 한계에 부딪히면서 때론 모순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남성 래퍼와 메이저 음반회사 간부들이 힙합 음악의 실천을 둘러싼 모든 사회적, 제도적 권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은 지배적 성 담론에 대한 흑인 여성 래퍼들의 직접적인 도전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더욱이,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나 가사 표현의 도덕적 기준을 흑인 남성 래퍼들과 공유한다는 점은 이들 흑인 여성 래퍼의 치명적 약점이 된다. 가령 솔트앤페파의 “Shake Your Thang”은 노골적인 성 표현으로 악평이 나있는 남성 래퍼 서믹스어랏(Sir-Mix-A-Lot)의 “Baby Got Back”과 그 내용 면에서 동일한 범주로 묶일 수 있다. 말하자면 여성의 신체를 소비의 대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4. 페미니즘과 흑인 여성 힙합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음악적 실천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 혹은 주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간단하나마 살펴보았다. 흑인 여성의 사회, 정치적 실천과 자주적 힘을 강조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즉 남녀관계를 묘사하거나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적 자유를 표현하는 경우에도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결코 흑인 남성들의 편견이나 심지어 백인 사회의 지배 담론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왔음을 이제는 인정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 뮤지션을 비롯한 흑인 남성들의 성적 억압에 대한 이들 여성의 좌절과 분노 속에는, 그들과의 사회 문화적 유대와 정서적 공유 혹은 그들에 대한 동정이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성 정치에 기묘히 공존하는 ‘무한한 가능성’과 ‘필연적 한계’는 바로 이 모순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여성 힙합 뮤지션의 음악적 실천이 진보적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먼저, 전술한 것처럼, 흑인 남성 래퍼들과 성 담론을 둘러싼 대화를 진행해야 하고, 동시에 보다 넓은 맥락의 사회적 담론들과 투쟁을 해야한다. 특히 페미니즘의 충실한 수용과 해석은 진보적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거쳐야 할 필연적 단계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백인 여성 중심의 미국 주류 페미니즘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가정은 금물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진보적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다소 모호하고 복합적인 대응은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선 흑인 여성들의 모순적인 일상 환경은 그들을 획일화된 페미니스트 전사로 전환시키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즉, 아프로 아메리칸 남성들의 성적 억압이 초래하는 실망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결코 인종적 동료인 이들 남성에 대한 동정과 유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스트 담론이 1990년대 초까지도 여전히 백인 이외의 여성들, 특히 흑인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소외시 한 것은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불신을 결정적으로 부추겼다. 말하자면 이들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은 다른 마이너리티 여성 문화 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자체를 이슈화하기에 앞서 페미니즘 내의 ‘인종’ 정치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 시절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것이다.

20021104080731-0421uswomen2지금은 가장 성공한 ‘블랙 쇼 비즈니스 우먼’으로 변신한 Queen Latifah

주류 언론 심지어 흑인 미디어 진영에서도 페미니스트로 평가를 받았던 퀸 라티파나 엠씨 라이트(MC Lyte)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거부하는 것은, 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그 속에는 동료 흑인 남성들에 대한 막연한 동정심이 내재해 있다. 퀸 라티파는 트리샤 로즈(Tricia Rose)와의 1993년 인터뷰에서 “(주류) 페미니즘의 ‘반-남성적’ 포지션이 남성의 태도를 교정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드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지만, 내 음악 작업이 그들과 같은 ‘반-(흑인)남성’의 태도를 담지한 것으로 규정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페미니즘에 대한 자신의 미묘한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심지어 엠씨 라이트는 같은 인터뷰에서 “(흑인) 여성의 독립과 남녀간의 상호의존은 동시에 가능하다”라고 모순된 주장을 하기도 한다. 특히 투 라이브 크루의 노골적인 성 표현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하면서도, 자신의 ‘비판’은 주류 미디어와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불만’과는 전혀 다르다고 굳이 첨언한 것은 이들 흑인 여성의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경계심을 분명히 보여준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소위 ‘포스트-페미니즘’ 세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 활동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릴 킴이나 폭시 브라운 같은 갱스타 비치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외모와 음악적 표현을 통해 기존 흑인 여성의 복종적이고 순종적 이미지를 거부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수동적 여성상에 대한 그들의 대안은, 소비주의에 중독된 게토의 갱스타 흑인 청년에 대한 무차별적 동경과 모방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흑인 여성의 권력 확보는 남성 중심의 힙합 문화에 대한 경배와 일방적 수용을 통해 가능하다는 또 다른 모순된 결과의 반복에 이르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모호한 태도는 결국 ‘인종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동시에 동료 흑인 남성과 대립해야 하는’ 그들의 모순적인 사회 문화적 지위로부터 기인한다. 즉,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주의는 흑인 여성과 남성들의 중요한 심정적, 문화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인종을 넘어선 여성간의 유대를 곤란케 만드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 유색 인종 여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들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더욱이 기존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도 폐쇄된 문을 개방하면서 미국 내 여성 운동은 점차 인종적 경계들을 넘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 뮤지션을 포함한 상당수의 흑인 여성들은 여전히 기존 페미니즘을 흑인 여성이나 흑인 공동체와의 구체적 연관성이 부재한, 단지 백인 여성만의 사회 운동으로 간주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인종과 젠더의 문제를 배타적인 분석 범주로 취급해온 미국의 주류 페미니즘이 이 이중적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노력에 보다 박차를 가하지 않는다면, 흑인을 비롯한 마이너리티 여성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여전히 좁아 보인다.

5. 글을 마치며

간단하나마 미국 여성 힙합의 음악적 실천, 그리고 연관된 사회, 문화적 의미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여성 힙합 뮤지션 중에서도 특히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 여성 래퍼들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기술되었다. 이는 근래에 이르기까지 아무래도 미국의 여성 힙합 뮤지션 상당수가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이었으며, 또한 그들 대부분이 엠씨잉에 편중되어 왔기 때문이다.

“Stage 1: Shortee’s Return” by Shortee ([The Dreamer](1999) 중에서)

하지만 최근 여성 힙합의 양적, 질적 성장은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우선 엠씨 뿐 아니라 여성 턴테이블리스트들의 성장이 유달리 눈에 띤다. 더욱이 그 중 상당수는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이 아니다. 가령 디제이 쇼티(Shortee) 같은 백인 여성이나 롤리 로(Roli Rho) 같은 아시아계 여성 디제이들은 남성 턴테이블리스트를 능가하는 탁월한 기량을 뽐내고 있다. 더욱이 미 각지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빼어난 여성 엠씨들이 눈부신 활약을 벌이고 있다. 좀 지난 얘기지만, 프리 더 하니 다크(Pri The Honey Dark) 같은 여성 엠씨는 1997년 블레이즈 배틀(The Blaze Battle) 대회에서 수 십여 남성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배틀 엠씨로 인정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을 넘어서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성향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성장하고 있음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인종적, 지역적 경계를 넘어선 여성 힙합의 이러한 비약적 성장은 힙합 문화와 음악 전반의 거대한 지형 변화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 힙합의 새로운 흐름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할 수 있는 기회가 서둘러 오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이 글에서 부족한 구체적인 음악적 사례들은 함께 업데이트되는 10장의 여성 힙합 앨범 리뷰로 대신하고자 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성 힙합의 수작 혹은 문제작으로 평가되는 10장의 대표적인 앨범을 꼽아보았다. 퀸 라티파의 전형적인 블랙 페미니즘부터 폭시 브라운이나 이브의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신세대 여성주의까지, 여성 힙합의 다양한 흐름을 어느 정도 감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참고로, 솔트앤페파의 [Hot, Cold And Vicious](1986), 이미 웨이브에 리뷰가 올라와 있는 로린 힐(Lauryn Hill)의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1998),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의 [Supa Dupa Fly](1997)는 이번 선정에서 제외되었음을 미리 밝혀 둔다. 각각의 리뷰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이 세 앨범과 뮤지션들이 여성 힙합 아니 미국 힙합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소중한 것임을 재차 강조하는 정도로, 아쉽지만 이들에 대한 얘기는 줄여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작업이 오랜 기간 힙합 음악과 문화의 성장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해왔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될 듯싶다. 그들은 남성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 작업에 때론 협조하고 때론 도전하면서 힙합 음악의 고정되고 편협한 관성들을 깨부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다. 무엇보다, 남성 래퍼들의 성 차별주의에 대해 비판과 포용을 병행해온 그들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편으로 그들은 때론 의도적으로 때론 자연스럽게 인종주의와 젠더를 둘러싼 이슈들과 관련해 주류 사회의 지배 담론과 지속적으로 경합해왔다. 특히, 흑인 여성 스스로의 목소리와 역사를 지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흑인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인종주의에 찌든 미국 대중 문화의 미학적 가치들을 전복하려 했던 기나긴 투쟁은 여성 힙합의 또 다른 소중한 성과라 할 수 있겠다. 결국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의상과 외모, 라임을 통해 표현되는 존재감은 게토의 젊은 흑인 여성들이 문화적, 사회적으로 자주적인 실천의 공간을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힘이 되어온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인종적, 지역적 경계를 넘어선 여성 힙합 전반의 새로운 변화는 물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성과들을 공고히 하기 위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노력과 분투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 남성 힙합 팬들이 여성 힙합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을 제거하고 그들의 음악적 실천을 보다 진지하게 수용한다면, 그들은 훨씬 여유롭게 21세기 힙합 공동체의 또 다른 주체로 완전히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021001 | 양재영 [email protected]

* 참고 문헌
Rose, Tricia. 1994. Black Noise: Rap Music and Black Culture in Contemporary America. Middletown: Wesleya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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