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6040430-0420us_roxanneshanteRoxanne Shante – Greatest Hits – Cold Chillin’, 1995

 

 

여성 힙합의 여명기를 밝힌 사자후

올드 스쿨에서 뉴 스쿨로 미국 힙합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던 1980년대 중후반은 뉴욕 퀸즈가 힙합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런 디엠씨(Run D.M.C.), 엘엘 쿨 제이(LL Cool J), 솔트앤페파(Salt-N-Pepa), 그리고 데프 잼(Def Jam) 레이블을 막 설립했던 러셀 시몬스(Russell Simmons)에 이르기까지, 퀸즈는 장차 미국 힙합을 이끌게 되는 막강 파워 전사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배출해냈다. 물론 이들 만큼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진 못 했지만, 콜드 칠링(Cold Chillin’) 레이블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주스 크루(Juice Crew)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 패거리는 당시 엠씨잉과 디제잉 실력만 따진다면 단연 퀸즈 최고로 꼽혔다. 대장이자 프로듀서인 말리 말(Marley Marl)을 중심으로,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 비즈 마키(Biz Markie), 엠씨 샨(MC Shan), 마스타 에이스(Masta Ace), 쿨 지 랩(Kool G. Rap) 등 훗날 전설로 남는 걸출한 엠씨들을 배출했던 주스 크루의 역사는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놀랍게도, 장차 주스 크루의 홍일점 멤버 록산느 샨테(Roxanne Shante)로 변모하는 당시 14세의 소녀 롤리타 구든(Rolita Gooden)과 그녀의 빅 히트곡 “Roxanne’s Revenge”가 있었다.

1980년대 초중반의 미국, 보다 구체적으로 뉴욕 힙합 공동체는 여전히 메이저 음반 산업의 간섭 혹은 유혹과 분리된 공간이었다. 자칭 엠씨라는 이들은 다른 엠씨의 랩에 대꾸하거나 시비 거는 내용의 랩을 담은 싱글 음반들(answer record)을 저열한 녹음장비로 한정량 찍어내는 데 만족했고, 랩을 통한 사적인 복수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소위 ‘음반 전쟁(wax wars)’은 절정에 달했다. 이 처절한 음반 전쟁의 시기에 런 디엠씨의 “Sucker MCs”에 대한 딤플 디(Dimples D)의 ‘대꾸’ 싱글 “Sucker DJs”(1983)를 프로듀스하면서 명성을 떨치던 퀸즈 토박이 말리 말은 또 다른 ‘복수 노래’를 불러줄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당시 라이벌 프로듀서였던 디제이 레드 알러트(Red Alert)와 음반 녹음을 했던 랩 그룹 U.T.F.O.에 대한 복수를 노리던 말리 말은, 결국 이웃 소녀 롤리타 구든의 입을 빌려 그들의 히트곡 “Roxanne Roxanne”를 ‘씹는’ “Roxanne’s Revenge”를 만들어낸다. 이름까지 아예 ‘록산느’ 샨테로 개명한 이 소녀가 U.T.F.O.의 노래에 대한 신랄한 복수를 담은 음반을 발표하면서 힙합 역사상 최대 혹은 최악의 음반 전쟁이 이어졌다. 이후 노래속 주인공 록산느에 대한 혹은 록산느를 씹는 음반들이 100여장 이상 쏟아져 나왔고 급기야 치열한 법적 공방까지 이어지면서, 록산느 샨테와 “Roxanne’s Revenge”는 올드 스쿨 시기 뉴욕 힙합의 전설이 되었다.

[Greatest Hits]는 “Roxanne’s Revenge”를 포함하여 록산느 샨테의 짧고 아쉬운 10여 년의 음악 활동을 정리해 주는 음반이다. 상당수의 곡들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더욱이 그녀의 초기 싱글 음반들을 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Runaway”, “Bite This”, “Queens Of Rox”(이상 1985), “The Def Fresh Crew”(1986), “Payback”(1987) 같은 수작들이 빠진 것은 무척 아쉽다. 그래도 이 앨범은 지금 그녀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음반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물론 이 속에는 전설적인 패거리 주스 크루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리고 초기 여성 힙합의 진지하고 공격적인 태도들을 맛 볼 수 있다. 심지어 릴 킴(Lil’ Kim)이나 폭시 브라운(Foxy Brown) 식의 노골적인 여성 랩의 원형까지도 접할 수 있다.

특히 그녀의 또 다른 대표 곡인 “Have A Nice Day”(1987)는 할 얘기가 많은 노래다. 주스 크루의 음유 시인이랄 수 있는 빅 대디 케인의 코러스와 말리 말의 빈틈없는 비트 프로덕션이 돋보이는 이 곡은, 알고 보면 또 다른 ‘복수 노래’다. 이번에는 KRS-1의 부기 다운 프로덕션(Boogie Down Productions)이 그 타깃이다. 그들이 “Bridge Is Over”로 퀸스브리지(Queensbridge) 보호구역 출신인 주스 크루의 심기를 먼저 건드렸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Have A Nice Day” 발표된 얼마 후 부기 다운 프로덕션의 디제이 스콧 라 록(Scott La Rock)이 사망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 곡은 배틀 엠씨잉(battle MCing)을 통한 힙합 패거리간의 비극적 ‘전쟁’의 효시가 된 셈이다.

힙힙 공동체가 여전히 록산느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록산느 샨테는 주스 크루 동료들과 함께 조용히 자신만의 음악 활동을 지속한다. 하지만 “Have A Nice Day” 등의 소규모 성공을 빼면, “Roxanne’s Revenge”와 같은 빅 히트는 끝내 재현되지 않았다. 데뷔 곡의 예상을 뒤엎는 성공과 논란은 여전히 10대 소녀에 불과했던 그녀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더욱이 솔트앤페파나 엠씨 라이트(MC Lyte) 같은 감각적인 후발주자들을 쫓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주스 크루 동료 남성 래퍼들의 왕성한 음반 작업도 때론 그녀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을 것이다. 1990년을 전후해 몇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던 그녀는 결국 학업을 이유로 불과 26살의 나이에 음악 활동을 청산하고 만다.

록산느 샨테는 “Roxanne’s Revenge” 한 곡만으로도 초기 여성 힙합을 대표하는 엠씨로 꼽을 만하다. 비록 말리 말을 비롯한 남성 동료들의 간섭과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 곡을 통해 남성 중심의 힙합 공동체 속에서 그들과 직접적인 맞대응을 시도하면서 여성 힙합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끌어냈다는 점만으로도 록산느 샨테의 짧은 활동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021001 | 양재영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1. Roxanne’s Revenge
2. Have A Nice Day
3. Go On Girl
4. Live On Stage
5. Knockin’ Hiney
6. Feelin’ Kinda Horny
7. Brothers Ain’t Shit
8. Big Mama
9. Dance To This!
10. Yes Yes Y’all
11. Straight Razor
12. Deadly Rhymes
13. Queen 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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