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11020508-0419devils01 데블스 -추억의 길/연인의 속삭임 – 아세아(ALS 228), 1971

 

 

소울, 악마들에 의해 환생하다

위줄 왼쪽부터 백동근(키보드), 김명길(보컬, 기타), 박인규(베이스), 최성근(테너 색서폰), 연석원(보컬, 기타), 앞줄 정태섭(드럼)

1968년부터 시작된 보컬 그룹 경연대회는 기성 그룹들에게는 대중들 앞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뽑내는 자리였으며, 새로운 신진들에게는 음반회사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을 수 있는 무대였다. 1971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데블스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파주와 왜관의 기지촌을 전전했던 데블스의 이전의 경력, 그리고 연석원 등이 탈퇴한 다음의 경력에 대한 소개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데블스는 그 해 개최된 ‘플레이보이컵 전국 보컬 그룹 경연대회'(1968년 시작된 그룹사운드 경연대회는 1969년 그 주최가 플레이보이프로덕션으로 바뀌어 1, 2회를 치른다)에서 ‘구성상’과 ‘가수왕상(연석원)을 획득했다. 경연대회에서는 멤버 전원이 해골 복장을 하고, 관에 마네킹으로 된 여자시체를 넣어 무대위에 놓고 연주했다고 한다. 이러한 무대 매너는 당시로는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었는데, 이 후에도 여러번 비슷한 무대를 보여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수상 경력을 통해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준(準) 독집 앨범’을 출시하게 된다. 이들을 픽업한 인물은 고(故) 김영종으로서 당시 팝 계열의 가수인 정원의 “무작정 걷고 싶네” 등의 곡을 작곡한 인물이다. 이 음반에는 총 10곡이 실려있는데, 위키 리가 노래한 “사랑의 집”이 마지막 트랙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데블스의 노래와 연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작곡가에 의해 픽업되어 제작한 음반이므로 ‘자작곡’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눈 나리는 밤의 데이트”(김명길 작사 작곡)”라는 자작곡이 있고 몇 곡은 ‘데블스 작사’로 표시되어 있다. 번안곡은 “프라우드 메리”(원곡 C.C.R.의 “Proud Mary”)와 “두 그림자”(원곡은 C.C.R.의 “Long As I Can See the Light”) 두 곡이다.

해골복장에 시체가 든 관으로 꾸며진 무대로 보아, 그들의 음악이 대단히 헤비한 사운드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해 봄직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소울의 색채가 진하다. 특히나 앞서 언급한 경연대회에서 가수왕상을 받은 연석원의 창법은 데블스의 음악적 지향이 소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영롱한 기타와 찰랑대는 심벌 소리로 시작되는 첫 곡 “추억의 길”은 단순한 가사에 연석원의 목소리가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며 오르내린다. 그 반대편에는 굵은 베이스가 보컬의 날카로움을 상쇄하며 흘러가고, 보컬과 베이스 사이로는 기타와 드럼, 오르간이 자리하고 있으며, 나머지 멤버들의 코러스 역시 그 사이 어디쯤 놓여있다. 라이처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의 ‘블루 아이드 소울’과 퍼씨 슬레지(Percy Sledge)의 ‘서던 소울’ 사이의 어딘가의 느낌을 자아낸다. 셋잇단음표가 한마디에 네 번 등장하는 리듬감과 보컬의 절창은 다음 곡 “슬픈 안녕”이나 뒷 면의 “밤비”로 이어진다. 이런 곡들에서 연석원과 김명길의 보컬은 소울 특유의 ‘크라잉(crying)’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세번째 곡 “무작정 걷고 싶어”는 기성 가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원곡이 팝 계열의 가수 정원의 노래를 캄보 밴드가 반주한 것이라면, 이 곡은 보컬 그룹에 의해 재해석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듯 한다. 이 곡에서 와와(wah-wah) 이펙트를 솔로가 아닌 백킹으로 사용하는 기법은 데블스의 ‘소울 사운드’의 중요한 요소로서 그 뒤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 뒤 등장하는 그룹의 자작곡 “눈 나리는 밤의 데이트”(김명길 작사·작곡)는 눈 ‘나리는’ 밤에 데이트를 나가는 한 청년의 설레임과 사랑스런 상대의 눈동자에 젖어드는 마음을 업템포의 밝고 경쾌한 리듬으로 표현한다. 짧은 곡(2분 14초)이지만 자작곡이라는 가치가 있으므로, 이 곡에 대해 조금 상세히 살펴보자. 먼저 부드럽지만 선명한 색서폰의 네 마디의 리프가 메트로놈처럼 똑딱거리는 (드럼)스틱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며 노래가 시작된다. 1절은 청년의 설레임을, 2절은 만남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데 기타는 청년의 마음을 드러내듯이 묘한 효과음을 입혀서 오른쪽 스피커에서 울어대고, 색서폰은 짧은 울림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연인과의 만남을 이루어내면 그 즐거운 심정을 우렁차게 뿜어낸다.

이 곡에서 데블스는 다른 그룹 사운드와는 상이한, 자신들의 음악적 지향을 분명히 드러낸다. 일반적인 록 밴드와 달리 데블스는 관악기를 다른 악기에 우선해서, 아니면 적어도 다른 악기와 동등한 비중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타(혹은 오르간)의 솔로가 이끌고 다른 악기들은 리드하는 악기를 따라가거나 밑에서 받쳐주는 ‘싸이키델릭’ 사운드와는 달리 이들은 ‘악기들의 절제된 연주와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한 리듬감’이라는 다른 사운드를 추구하는 것이다. 번안곡인 “프라우드 메리”에서, 전주를 포함하여 원곡에서는 기타가 담당하던 부분을 관악기가 담당하는 것도 이들의 편곡의 중요한 특징이다. 번안곡들의 경우 (미국의) 백인 밴드의 레퍼토리를 골랐지만 C.C.R.이 ‘흑인같은 백인 음악’을 구사한존재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울’이라는 지향에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눈 나리는 밤의 데이트”의 흥겨움은 이별을 노래하는 “가는 임 보내는 마음”, 떠나간 연인에 대해 노래하는 “밤비”로 이어진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어떻게 보면 진부한 주제가 ‘뽕짝’거리는 브래스를 포함한 그루브감 있는 리듬 위에 실리고 보컬은 그 위에서 절절하게 노래한다. 이런 점도 ‘통속적인 주제를 신실한 감정으로 표현하는’ (미국) 소울의 일반적 특징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는 확실하게 답변할 수 없지만, 이 음반이 소울에 대한 한국 그룹 사운드의 가장 진지한 응답이라는 점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음반 뒷 표지에도 쓰여 있는 ‘소울-싸이키델릭’이라는 당시 음반산업계의 유행어는 재고를 요한다. 싸이키델릭과 이상하게 엮여 있던 영혼(soul)은 악마들(Devils)에 의해 환생한다. 20021002 | 신효동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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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한편 펄 시스터즈, 김추자, 양미란, 임희숙 등의 ‘소울 가요’와 데블스의 음악 사이의 관계는 모타운 소울과 서던 소울(‘스택스 사운드’) 사이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유는 비유일 뿐이다.

수록곡
Side A
1. 추억의 길
2. 슬픈안녕
3. 무작정 걷고 싶어
4. 눈 나리는 밤의 데이트
5. 가는임 보내는 마음

Side B
1. 연인들의 속삭임
2. 밤비
3. 프라우드 메리
4. 두 그림자
5. 사랑의 집 – 위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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