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지금 포스트시즌 경기가 한창이다. 한국도 아시안 게임만 아니라면 아마 이맘때쯤 플레이오프가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지만, 포스트시즌에 맞추어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와 대중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한번 해보고자 한다. 야구와 음악은 얼핏 무관해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특히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와 대중 음악은 이리저리 엮어 볼만한 흥미로운 얘기 거리가 의외로 많다. 물론 야구에 무관심한, 특히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는 더더욱 흥미가 없는 독자들은 이 글이 지면 낭비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야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나름대로 쏠쏠한 정보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미약한 기대를 갖고 얘기를 시작해본다.

1. 대중음악 속의 메이저리그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이 위치한 뉴욕주의 쿠퍼스타운(Cooperstown) 목장에서 즐겼던 공놀이는 사실상 야구가 아니었다고 치자. 그래도 야구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 뉴저지 호보켄(Hoboken)의 엘리시언 필드(Elysian Fields)에서 최초의 직업야구 팀인 뉴욕 니커보커스(Knickerbockers)가 본격적인 야구 훈련을 시작한 이후 무려 160여 년이 흘렀으니 말이다. ‘미합중국’의 짧은 역사에 견주어 볼 때, 재즈와 함께 미국인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문화적 발명품이라는 야구는 참으로 오랜 세월 그들에게 중요한 여가 수단이 되어온 셈이다.

야구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국민 경기(national pastime)’라고 한마디로 간단히 정의한다. 특히 두 개의 리그가 정착되면서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야구를 즐기게 된 1905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야구가 미국인들의 문화와 여가 생활에서 차지해온 비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하다. 물론 1960년대 이후 급속히 성장한 프로풋볼(NFL)과 1990년을 전후한 시기 새로운 힘을 받은 프로농구(NBA)의 인기가 메이저리그 야구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메이저리그다.

1) “Take Me Out To The Ballgame”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이니 야구 자체에 관한 어설픈 잡설은 이쯤에서 접고, 이제 대중 음악 속의 야구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공식 기록으로 남아있는, 야구에 관한 최초의 노래는 1857년에 나온 “The Baseball Waltz”다. 뉴욕 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직업야구 경기가 시작된 바로 직후에 이 노래가 이미 도처에서 불렸다고 하니, 야구가 얼마나 빨리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는지 대충은 감이 온다. 그리고 “Slide Kelly Slide”라는 노래가 최초의 야구에 관한 레코딩 음반(물론 에디슨 실린더 방식)으로 세상에 나온 게 1893년이다. 대중 음악과 야구가 각기 본격적인 ‘산업화’와 ‘전문화’를 눈앞에 둔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20021007031457-0419usline_baseball1Babe Ruth의 모습을 담은 [Baseball Magazine](1921년 8월)의 표지

이후 지난 100여 년간 야구에 관한 노래는 미국 내에서만 무려 1,000여 곡 이상이 발표되었다. 각 시대를 풍미한 인기 작곡가들이 야구 노래를 만들어왔고, 역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음악 스타들 상당수가 그들의 노래를 불러왔다. 이들 노래는 빅 밴드, 재즈, 소울, 포크부터 R&B, 로큰롤, 랩에 이르기까지 실로 미국 대중음악의 모든 하위범주에 걸쳐있다. 각 시대별로 발매된 야구노래들을 들으면, 미국 대중음악의 트렌드 변화와 역사를 감 잡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ake Me Out To The Ballgame” by Carly Simon ([Baseball: A Film by Ken Burns](1994) 중에서)

이러한 야구노래들 중에서도 오랜 세월 미국인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곡은 단연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이다. 야구장에 가거나 야구 중계를 볼 때 늘 들을 수 있는 이 노래는 아마 국내 야구팬들의 귀에도 이미 익숙할 것이다. 친근한 멜로디와 재미있는 가사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데, 애초에 뉴욕시에서 시작된 미국 프로야구를 목가적인 가족스포츠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노래이기도하다. 사실 이 곡은 1908년 잭 노워쓰(Jack Norworth)가 뉴욕 시 지하철역에 붙어있는 야구경기 포스터를 보고 즉석에서 곡을 만들고 친구 알 폰 틸저(Al Von Tilzer)가 글을 붙인 것으로, 미국 교외의 풍광과는 전혀 무관한 노래였다.

친근한 곡조로 인해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은 (이후 미국 국가가 되는) “The Star-Spangled Banner”와 함께 메이저리그 초기부터 야구장 안팎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 1949년에는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와 진 켈리(Gene Kelley)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될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계속 음반으로 나오고 있어, 이미 레코딩된 것만도 수백 개의 버전에 이른다. 단순한 오르간 연주나 어린이 합창부터 클래식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을 접할 수 있는데, 그 중에는 대중음악 스타들이 부른 것도 상당수다.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로큰롤 버전, 조지 라바이(George Rabbai)의 트럼펫 연주, 닥터 존(Dr. John)의 피아노 솔로와 거친 보컬, 그리고 킹 커티스(King Curtis)나 칼리 사이몬(Carly Simon)의 독특한 해석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 노래를 자기 나름의 개성으로 불러왔다. 물론 이 노래 특유의 정감 어린 곡조와 따뜻한 감성은 어느 누구의 버전에나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말이다.

2) “Did You See Jackie Robinson Hit That Ball?”
“Take Me Out To The Ballgame”과 같은 절대적 사랑을 받는 ‘국민가요’는 아니지만, 야구장 안팎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노래들은 그밖에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특히 “Willie, Mickey & The Duke” 같은 곡은 지금도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팀들이 자신의 버전을 만들어 야구장에서 틀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설적인 슈퍼스타 윌리 메이스(Willie Mays)와 미키 맨틀(Mickey Mantle)을 소재로 한 이 노래는 두왑 그룹인 셰브론스(the Chevrons)가 40여 년 전에 불러 50만장이 팔리는 큰 히트를 기록했었다. 야구와 사랑을 빗댄 필리(Philly) 소울 그룹 인트루더스(the Intruders)의 “(Love Is Like A) Baseball Game”(1968)이 빌보드 싱글 차트 26위에 오르기 직전까지, “Willie, Mickey & The Duke”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야구 노래였다.

야구를 소재로 한 노래들은 때론 야구 역사의 소중한 순간들을 압축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가령 뉴욕 브루클린 출신 할리우드 배우이자 가수였던 데니 케인(Danny Kane)의 “D-O-D-G-E-R-S Song (Oh, Really? No, O’Mally)”(1962)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향 브루클린을 등지고 LA로 연고지를 옮긴 다저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는 노래다. 그는 이 노래에서 역시 같은 시기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자이언츠와 다저스의 경기 장면을 빅 밴드 반주 하에 코믹하지만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데니 케인이 예고했듯이, 20세기 초반 뉴욕에서 시작된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숙명적 라이벌 관계는 대륙을 가로질러 캘리포니아에서도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

아카펠라 그룹 스토미 웨더(Stormy Weather)의 “The Land Of Wrigley”(1985)와, 컨트리 싱어 스티브 굿맨(Steve Goodman)의 “A Dying Cup Fan’s Last Request”(1981)는 인종과 음악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시카고 사람들의 야구 사랑을 상징하는 노래들이다. 전자가 절정기를 구가하던 1984년의 시카고 컵스를 칭송하고 있다면, 후자는 그전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던 시카고 컵스의 부활을 간절히 염원하는 노래였다. 특히 스티브 굿맨은 1984년 시카고 컵스가 정규시즌 우승까지 불과 ‘매직 넘버 3’을 남겨둔 시점에 지병으로 숨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한편 60여 년간 뉴욕 양키즈 전용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의 아나운서를 담당했던 멜 알렌(Mel Allen)은 “Baseball Dreams”(1985)라는 노래에서 독특한 ‘랩’으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게임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해 야구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야구노래 중에서도 야구선수들을 소재로 한 노래들은 특히 흥미롭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부터 이름을 기억하기도 힘든 평범한 선수들에 이르기까지, 야구선수를 소재로 한 노래들은 메이저리그 초창기부터 지속적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뉴욕 양키즈의 조 디마지오(Joe DiMaggio)가 56게임 연속 안타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던 1941년, 레스 브라운(Les Brown)과 그의 빅 밴드는 10대 소녀 베티 보니(Betty Bonney)의 보컬을 빌려 “Joltin’ Joe DiMaggio”라는 곡을 발표해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여성 보컬리스트 테레사 브루어(Teresa Brewer)는 미키 맨틀의 목소리가 직접 담긴 “I Love Mickey”(1956)라는 노래를 발표해 1950년대 중반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 베이브 루쓰(Babe Ruth)와 조 디마지오에 이어 뉴욕 양키즈의 막강 타선을 이끌었던 미키 맨틀은 공교롭게도 이 노래가 발표된 1956년에 아메리칸리그 트리플 크라운(타격 1위, 타점 1위, 홈런 1위)에 올랐는데, 결국 “I Love Mickey”는 자신의 빛나는 성적을 자축한 셈이 되었다.

20021007031457-0419usline_baseball2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 Jackie Robinson(브루클린 다저스)

메이저리그 야구의 역사가 100년을 넘었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메이저리그는 1947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해에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흑인 야구선수인 잭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이 브루클린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 이전까지 메이저리그는 흑인 야구선수들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반쪽 리그’였고, 흑인 선수들은 자신들만의 니그로 리그(Negro League)에서 따로 활동을 했었다. 오랜 세월 니그로 리그의 양대 영웅이었던 샛철 페이지(Satchel Paige)와 조쉬 깁슨(Josh Gibson)을 뒤로하고 메이저리그에 뛰어든 젊은 흑인 잭키 로빈슨은 그 해 처음 신설된 메이저리그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한 신고식을 했다.

“Did You See Jackie Robinson Hit That Ball” by Count Basie & His Orchestra ([Baseball’s Greatest Hits](1989) 중에서)

사실 그 당시의 야구장을 상상하면, 잭키 로빈슨의 활약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전국 어디서나 벤치와 관중석 모두 백인들로 가득 채워진 야구장에서 온갖 폭력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오직 흑인을 대표한다는 명예와 자부심 때문에 홀로 고통을 인내했던 잭키 로빈슨은 진정 가장 위대한 흑인 ‘운동선수’이자 ‘운동가’였다. 그가 마침내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던 1949년, 이를 기념이라도 하듯 “Did You See Jackie Robinson Hit That Ball”이라는 흥겨운 노래가 발매되어 큰사랑을 받았다. 재즈 거물 카운트 배시(Count Basie)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녹음한 이 빅 밴드 스타일의 노래는,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던 당시에 잭키 로빈슨의 활약이 흑인들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이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잭키 로빈슨의 활약에 힘입어 1950년대 이후 니그로 리그 선수들을 비롯해 빼어난 자질의 흑인 야구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흑인 선수는 역시 자이언츠의 외야수 윌리 메이스였다. 그의 눈부신 활약을 담은 흥겨운 스윙 곡 “Say Hey (The Willie Mays Song)”(1954)은 자이언츠가 뉴욕을 연고지로 하던 시절 처음 세상에 나왔다. 윌리 메이스와 동향인 앨라배마 출신 흑인 형제 듀오 트레니어스(the Treniers)가 부른 이 노래는 윌리 메이스의 목소리까지 삽입되어 더욱 정감이 간다. 당시 야구장의 자이언츠 팬들 특히 흑인 팬들 상당수가 경기 중에도 “say hey”라고 외치며 후렴구를 흥얼거릴 정도로 이 노래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2.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대중음악

대중음악이 오랜 세월 야구를 흠모하고 그에 대한 노골적인 애정을 과시해 왔다는 얘기는 이쯤에서 접도록 하자. 야구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특히 메이저리그와 팬들을 매개하고 연대하는데 절대적 역할을 했음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나 싶다. 더욱이 이들 노래 대부분은 아직도 불려지며 미국 야구 역사의 산증인 역할을 하고 있으니,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음악의 힘은 참으로 놀라운 것 같다.

“어릴 때 음악을 시작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야구를 싫어했던 게 음악을 하게 된 가장 큰 동기로 작용한다.” 몇 년 전에 미국의 음악 전문 케이블채널인 VH1과의 인터뷰에서 푸 파이터스(the Foo Fighters)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 했던 말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단적이고 윤리적 기준을 강요해온 야구를 직업으로 선택한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대중 음악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맥락에서, 이런 주장을 했었다. 하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의 역사와 현실은 모두 이러한 가정을 거부한다. 사실 우리 모두 즐기고 좋아하는 음악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특별히 싫어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상당수의 메이저리거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 음악의 ‘실천’에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1) “Welcome To The Show”
야구장에 가서 직접 야구게임을 관람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야구장에 입장할 때부터 경기가 끝난 뒤 빠져 나올 때까지 음악은 야구게임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가 된다. 7회 초가 끝난 뒤 소위 ‘세븐쓰 이닝 스트레치(7th inning stretch)’ 때 관중들이 음악에 맞춰 직접 몸을 흔들고 즐기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경기 도중 상황에 따라 틀어주는 다양한 음악은 알게 모르게 관중석의 분위기를 시종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홈팀이 이겼을 때 흘러나오는 노래는 더 큰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덕분에 양키 스타디움의 팬들은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의 “New York, New York”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듣기를 원하고, 셰아 스타디움의 뉴욕 메츠 팬들은 매일 밤 바하 맨(Baha Men)의 “Who Let The Dogs Out”에 열광하며 야구장을 빠져 나오고 싶어한다.

야구장에서 쉴 틈 없이 듣게 되는 음악 중에서도, 선수들이 선택하는 소위 ‘테마송’은 아마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음악 사랑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물일 것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구장에서는 홈팀 타자들이 타석에 설 때마다 그들이 원하는 신청 곡들을 짤막하게 틀어준다. 물론 홈팀의 선발 투수나 구원 투수가 마운드에 오를 때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음악에 스스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평하는 상당수의 타자들은 한 경기에서 타석에 설 때마다 제각기 다른 노래를 틀어달라고 신청하기도 한다.

야구장에서 울려 퍼지는 다양한 테마송을 들으며 왜 저 선수는 하필 저 노래를 택했을까 하고 추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온갖 인종과 국가 출신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선호하는 테마송은 그만큼 굉장히 다양하다. 하지만 잡다한 선호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테마송은 인종이나 민족정체성에 따라 대강의 분류가 가능하다. 딱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백인 선수들은 헤비메탈을 비롯한 전통 백인 록을 좋아하고, 아프로 아메리칸 선수들은 랩이나 훵크를, 그리고 중남미 계 선수들은 살사나 메렝게를 포함한 라틴 음악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래는, 기억에 남는 현역 선수의 테마송 중 그러한 분류에 적합한 사례들을 한번 뽑아본 것이다. 비록 몇몇 특정 팀의 선수들에 편중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도 아마 이러한 분류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본다.

* 백인 록을 선호하는 경우
마이크 피아자(Mike Piazza, 뉴욕 메츠) – 머틀리 크루(Motley Crue)의 “Too Young To Fall In Love”,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Over The Mountain”
티노 마르티네즈(Tino Martinez,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AC/DC의 “You Shook Me All Night Long”, 밴 할렌(Van Halen)의 “Dreams”
릭 엔킬(Rick Ankiel,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파파 로치(Papa Roach)의 “Last Resort”
토드 질(Todd Zeile, 콜로라도 록키스) – 크리드(Creed)의 “Higher”
로빈 벤츄라(Robin Ventura, 뉴욕 양키즈) –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 Peppers)의 “Under The Bridge”, 밥 딜런(Bob Dylan)의 “Like A Rolling Stone”
알 라이터(Al Leiter, 뉴욕 메츠) –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Tenth Avenue Freeze Out”
* 흑인 음악을 선호하는 경우
션 던스턴(Shawn Dunston,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DMX의 “Party Up (Up In Here)”
데이비드 저스티스(David Justice, 오클랜드 에이스) – 그랜드마스터 플래쉬(Grandmaster Flash)의 “The Message”
* 라틴 계열 음악을 선호하는 경우
이반 로드리게즈(Ivan Rodriguez, 텍사스 레인저스) – 리키 마틴(Ricky Martin)의 “Shake Your Bon-Bon”
호르헤 포사다(Jorge Posada, 뉴욕 양키즈) – 산타나(Santana)의 “Oye Come Va”

물론 인종이나 민족 정체성과 무관하게 테마송을 선택하는 선수들도 상당히 많다. 이는 개인마다 상이한 음악 선호도, 성장기 경험이나 연령, 혹은 선수로서의 개성과 연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마이크 햄튼(Mike Hampton, 콜로라도 록키스)은 컨트리 스타 팀 맥그로(Tim McGraw)의 곡이면 무엇이나 트는 경우고, 뉴욕 토박이인 존 프랑코(John Franco, 뉴욕 메츠)는 애드 립(Ad Lib)의 1960년대 곡 “The Boy From New York City”와 함께 늘 불펜에서 뛰쳐나온다. 한편 로저 클레멘스(Roger Clemens, 뉴욕 양키즈)는 자신의 별명에 딱 맞아떨어지는 엘튼 존(Elton John)의 “Rocket Man”이 들리면 바로 등장한다. 양대 리그를 대표하는 소방수들인 트레버 호프만(Trevor Hoffman, 샌디에고 파드레스)과 마리아노 리베라(Mariano Rivera, 뉴욕 양키즈)가 마운드에 오를 때는 테마송으로 인해 그 살벌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는데, 전자는 AC/DC의 “Hells Bells”, 후자는 메탈리카(Metallica)의 “Enter Sandman”을 주제가로 사용한다.

이미 지나간 얘기지만 뉴욕 양키즈 시절에 수비 문제로 내, 외야를 전전하며 가슴앓이를 하던 척 노블락(Chuck Knoblauch, 켄사스시티 로얄스)은 에미넴의 “The Way I Am”을 테마송으로 하여 정신적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뉴욕 양키즈 최고의 인기 스타 데릭 지터(Derek Jeter)는 자신의 선호도와 전혀 무관하게 테마송을 외부로부터 ‘선정 당하는’ 특이한 경우다. 한때 투팩(2 Pac)의 “California Love”를 단골 테마송으로 했던 그는 재작년부터는 음반 회사에서 홍보용으로 그에게 따로 청탁해서 보내는 노래들만 어쩔 수 없이 틀고 있다. 뉴욕의 젊은 팬들에 대한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음반회사의 독특한 프로모션은 충분히 수긍할 만 한데, 가령 그가 타석에 나올 때마다 래퍼 블랙 롭(Black Rob)의 “Whoa!”나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의 “Jumpin’ Jumpin'”같은 곡만 죽어라 들었던 기억이 있다.

2) “Just Like Baseball”
테마송 차원을 넘어, 아예 직접 무대에서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상당수다. 특히 프로페셔널 뮤지션 뺨치는 실력을 가진 선수들의 경우, 본업이 메이저리그 야구인지 음악인지 분간이 안 되기도 한다. 사실 음반 작업이나 무대 연주 활동을 병행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꾸준히 존재해왔다. 가령 1930년대와 1940년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소위 ‘개스하우스 갱(the Gashaouse Gang)’ 일원으로 명성을 날렸던 외야수 페퍼 마틴(Pepper Martin)은 자신의 빅 밴드와 함께 곡들을 발표해 라디오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편 조 디마지오는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음악적 재능을 과시했었고, 윌리 메이스는 “My Sad Heart/If You Live Me”(1962)라는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밖에 미키 맨틀이나 어니 뱅크스(Ernie Banks)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도 오프시즌에는 무대에서 연주 활동을 활발히 했었다고 한다.

록 음악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직접 전기 기타 같은 악기들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한 1980년대 이후의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는 ‘뮤지션 아닌 뮤지션’이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편이다. 시애틀 마리너스와 캘리포니아 앤젤스(지금의 애너하임 엔젤스)에서 올스타 좌완투수로 명성을 날리다 1999년에 은퇴한 마크 랭스턴(Mark Langston)은 오프시즌에는 시애틀을 근거지로 매직 버스(Magic Bus)라는 밴드의 멤버로 활동했었고, 1990년대 중반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활동하며 올스타 투수로도 선정되었던 타일러 그린(Tyler Green)은 빼어난 컨트리 싱어이자 피아노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다. 한편 뉴욕 양키즈 시절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George Steinbrenner)의 ‘전사(warrior)’로 불리며 맹활약했던 외야수 폴 오닐(Paul O’Neill)은 직선적인 드러밍이 돋보이는 빼어난 드러머다. 오프시즌이면 가장 친한 음악 동료인 존 멜렌켐프(John Mellencamp)와 거의 매년 라이브 투어를 함께 하며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20021007031457-0419usline_baseball3사이영상 수상자 Jack McDowell(가운데)의 밴드 Stickfigure

메이저리그 출신이면서 뮤지션으로 가장 유명세를 많이 타는 이는 아마도 잭 맥도웰(Jack McDowell)과 팀 플래너리(Tim Flannery)일 것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인 1993년 22승을 올리며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획득했던 잭 맥도웰은 선수 시절부터 빼어난 투수이자 ‘로커’였다. 1990년대 초부터 시카고를 근거지로 하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 스틱피켜(Stickfigure)의 리더로 꾸준히 음반과 무대 활동을 해왔다. 기타와 보컬에 모두 능한 잭 맥도웰은 1999년 메이저리그 은퇴 후에는 아예 스틱피겨 활동에만 전념 중인데, 지난 봄에 드디어 신보인 [Apes Of The Kings]를 발표했다.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이 늘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였다며, 야구와 연을 끊은 현재의 생활에 자족하는 듯하다. 잭 맥도웰과 달리 팀 플래너리는 메이저리그 은퇴 후에도 코치 생활과 음악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자신이 선수로서 10년간 몸담았었던 샌디에고 파드레스에서 3루 주루 코치를 맡고 있는 그는, 최근에 [Highway Song]이라는 음반을 발매했다. 이 음반에는 “The Baseball Song”이란 노래가 담겨 있어, 그의 야구에 대한 진득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잭 맥도웰과 마찬가지로 팀 플래너리도 전형적인 인디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지만, 블루그래스에 바탕한 그의 음악은 잭 맥도웰에 비해 훨씬 구닥다리처럼 들린다.

“Benign” by Stickfigure ([Feedbag](1997) 중에서)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 중에도 출중한 뮤지션들이 꽤 많다. 가령 뉴욕 양키즈의 중견수 버니 윌리엄스(Bernie Williams)는 어린 시절 예술학교에서 클래식 기타를 수학한 만능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오프시즌에는 특히 뉴욕의 재즈클럽에서 유명 재즈 뮤지션들과 퓨전 스타일의 곡들을 즐겨 연주하기도 한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20승을 올리며 마이크 햄튼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던 호세 리마(Jose Lima,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고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뮤지션으로도 나름의 인지도를 갖고 있다. 빼어난 라틴 음악 작곡자이자 보컬리스트, 프로듀서인 그는 몇 년 전까지도 오프시즌에는 고향에서 음반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최근의 부진한 성적을 감안하면 지금은 야구에 더 전념해야 할 듯하다.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에드 스피지오(Ed Spiezio)의 아들이자 애너하임 엔젤스의 1루수인 스캇 스피지오(Scott Spiezio)는 우수한 록 보컬리스트이다. 일리노이주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밴드 샌드프락(Sandfrog)의 일원인 그는 밴드 멤버들과 전국투어를 벌이기도 하는데, 이번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신보와 함께 새 뮤직비디오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 중 가장 탁월한 뮤지션의 칭호는 아무래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소속 투수 스캇 라딘스키(Scott Radinsky)의 몫인 듯 하다.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활약하던 1990년대 중후반 셋업맨으로 나와 박찬호의 승리를 몇 차례 날리면서 국내 팬들과도 일찌감치 안면을 텄던 선수다. 사실 그는 메이저리그 선수라기보다는 펑크 로커가 본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뮤지션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펑크 록 밴드 텐 풋 폴(Ten Foot Pole)의 보컬리스트로 캘리포니아 인디 펑크 씬에 처음으로 이름을 등록했던 그는 LA 다저스에서 투수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1995년 초에 팀을 탈퇴하고 잠정적으로 음악 활동을 중단했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체못했는지, 결국 같은 해 하반기에 또 다른 펑크 록 밴드 풀리(Pulley)를 결성하게된다. 1996년 이후 계속되는 멤버교체에도 불구하고 풀리는 지금까지 4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으며 펑크 전문 에피타프(Epitaph) 레이블의 간판밴드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풀리의 1999년 셀프 타이틀 앨범과 작년에 발매된 [Together Again For The First Time]은 펑크 리바이벌을 선도하는 수작들로 꼽힌다. 하지만 ‘메이저리거 스캇 라딘스키’는 작년 팔꿈치 수술 이후 올 한해 완전히 간판을 내린 상태다. 근년에 부상과 부진에 시달려온 그가 내년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로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치길 기대해본다.

글을 쓰고 나니, 국내 사정과는 전혀 무관한 듯한 미국 야구 얘기를 너무 오래 한 것 같아 다소 걱정이 된다. 그래도, 야구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스포츠 신문이나 야구 백과사전에서는 찾기 힘든 이런 메이저리그 뒷이야기들도 있구나하며 큰불만 없이 대충 넘어갈 수도 있으리라. 사실 100년이 넘는 역사의 미국 프로야구가 대중음악과 오랜 세월 함께 엮여온 연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야구팬으로서 괜히 부럽기도 하고 심술이 나기도 한다. 이제 만 스무 살이 된 한국 프로야구도, 이런 비슷한 얘기들을 할 수 있는 때가 서둘러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21001 | 양재영 [email protected]

* 초기 미국 야구에 관한 노래들을 모은 음반으로는 다나 포츄네이토(D’Anna Fortunato)와 트리스켈튼 올스타(Triskelton All-Stars)의 음반 [Hurrah For Our National Game](Newport Classic, 1994)을 추천한다. 클래식 보컬에 노이로제가 있는 이들에게는 다소 거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만한 초창기 야구 음악 컬렉션은 찾기가 쉽지 않다. “The Baseball Polka”(1858)부터 “That Baseball Rag”(1913)까지 22곡의 노래는 50여 년에 걸친 미국 야구 초기 역사를 한 장의 시디로 요약해준다.

* 야구 관련 히트곡들을 모은 음반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컴필레이션 음반 전문인 라이노(Rhino) 레이블에서 출시된 [Baseball’s Greatest Hits](1989)가 단연 최고다. 이 글에서 소개된 곡들을 포함해 20여 곡의 야구를 소재로 한 ‘명곡’들이 이 한 장의 앨범에 모두 들어 있다. 물론 루 게릭(Lou Gehrig)의 유명한 양키 스타디움 은퇴 연설 등 값진 보너스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다양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노래와 연주를 듣고 싶다면 [Big League Rocks](2000)를 권한다. 이 글에서 소개한 ‘메이저리거 뮤지션’ 다수를 포함해 10여명의 전, 현직 스타 선수들의 숨은 노래와 연주 실력을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의 ‘퀄리티’가 음반 구매의 절대 기준이라면, 이 앨범을 구하기보다 차라리 스캇 라딘스키의 밴드 풀리나 잭 맥도웰의 밴드 스틱피겨의 음반을 사서 듣는 게 더 즐거울 것이다.

관련 사이트
샌디에고 파드레스 3루 코치이자 블루그래스 뮤지션 Tim Flannery의 공식 사이트
http://www.timflannery.com
애너하임 엔젤스 1루수 Scott Spiezio가 활동하는 밴드 Sandfrog의 공식 사이트
http://sandfrog.com
What Are 레이블의 사이영상 수상자 Jack McDowell의 밴드 Stickfigure 페이지
http://www.whatarerecords.com/artist/stickfigure/new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