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07125207-telepopmusik_weivTelepopmusik – Genetic World – Virgin, 2002

 

 

의욕과잉과 다재다능의 사이에서

1990년대 초까지 엘자(Elsa), 장 자끄 골드만(Jean Jaques Goldmann), 빠뜨리샤 까스(Patricia Kaas) 등의 감미로운 샹송을 통해 국내에 드문드문 소개되던 프렌치 팝(French Pop)은 1990년대 후반 다프트 펑크(Daft Punk)를 필두로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로 주 장르를 완전히 바꾸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일렉트로니카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프렌치 일렉트로니카는 다프트 펑크 이후로 에어(Air), 캐시우스(Cassius), 알렉스 고퍼(Alex Gopher) 등 그 후계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프렌치 일렉트로니카라는 국적을 기준으로 한 구분과는 별개로 프렌치 팝 특유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타국의 일렉트로니카와는 구분되었다.

그러나 올해 데뷔 앨범을 낸 트리오 텔레팝뮤직은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특유의 아우라를 걷어내어 “나는 프랑스인이 아닌 유럽인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노래들은 영어로 불러졌으며 다프트 펑크, 캐시우스, 디미트리 프럼 파리(Dimitri from Paris) 등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친 디스코적인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서늘한 심상의 곡들은 흐린 영국의 기후를 닮았다.

시네마틱(Cinematic)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음악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것처럼 듣는 이에게 시각적인 감상을 하는 듯한 착각을 심어준다. 곡 중간중간에 들어간 모노 톤 사운드와 지직거리는 소리는 낡은 영화의 빛 바랜 느낌을 주고, 음악보다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구식 라디오가 더 눈에 띄는 그런, 들어도 보는 듯한 낯선 감각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는 두 번째 싱글 곡인 “Love can damage your health”가 “You only live twice”, “Goldfinger” 등 일련의 007 주제가 스타일로 곡을 구성했다는 데에도 큰 혐의가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이 투사하는 영상은 감상이 불편할 정도로 한꺼번에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스타일을 담고 있다. “Breath”에서 앰비언트 하우스(Ambiant House)로 깔끔한 도입을 보여주고 “Love can damage your health”에서 스트링이 가미된 일렉트로니카로 부드럽게 감정을 이어나가지만 “Da Hoola”에서 갑자기 랩핑이 나오며 빅 비트(Big Beat)로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바뀌어 버린다. “Let’s go again”에서는 애시드 재즈로 다시 바뀌었다가 “Trishika”에서는 아예 트리키(Tricky) 스타일의 트립합(Trip-Hop)으로 바뀐다. 과장 보태어 애니메이션에 비유를 하자면 원령 공주가 숲을 지나다 이웃집 토토로를 만나 같이 하늘을 날다가 기동전사 건담과 전투를 하는… 이런 뒤죽박죽의 컨셉을 가진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편안하게 보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스타일의 한 곡 한 곡이 싱글로는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어, 텔레팝뮤직의 다양한 장르에 대한 적응력을 보여준다. 뜬금 없이 나타난 건담을 보고 화를 내는 이라면 이 앨범은 구성력이 떨어지는 졸작이 될 것이고, 뜬금 없든 말든 건담의 세밀하고 멋진 메카닉 디자인을 보고 감탄하는 이라면 이 앨범은 매우 훌륭한 앨범이다.

모두 평균 이상의 높은 완성도를 들려주는 개별 곡들 중 가장 귀에 잘 들어오는 곡들은 “Breath”, “Love can damage your health”, “Yesterday was a lie” 등인데 이 곡들은 모두 게스트 보컬 안젤라 맥클러스키(Angela McCluskey)의 보컬로 불리워져 산만함 가운데 통일감을 느낄 수 있다. 차라리 중심으로 앨범이 구성되었으면 좀 더 밀도 있고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Love can damage your health”, “Yesterday was a lie”에서는 안젤라 맥클러스키의 육성이 믹싱 과정을 거쳐 딱딱한 기계음처럼 들리는데, 이 딱딱한 기계음은 빌리 할리데이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많이 닮았다. 이 역시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투박한 양철 로봇이 빌리 할리데이의 지직거리는 LP를 듣고 모창을 하는 것 같다. 이 낯선 “복고적인 미래”의 이미지는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심상이며, 모창을 통해서 새로운 원형을 창조한다는 것이 꽤 신선한 발상이다.

비록 첫 데뷔 앨범을 통해 다프트 펑크나 에어 만큼의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고, 너무 다양한 스타일을 들려주려 했다는 결점이 있지만 의욕의 과잉이 어느 신인 아티스트들에게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한계임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첫 행보가 나쁘지 만은 않다. 그러나 두 번째 앨범의 성격을 짐작할 수 없다고 말하면 욕이 될까… 20021001 | 이정남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1. Breathe
2. Genetic World
3. Love Can Damage Your Health
4. Animal Man
5. Free
6. Let’s Go Again
7. Dance Me
8. Da Hoola (Soda-Pop Mix)
9. Smile
10. Trishika
11. Yesterday Was A Lie
12. L’incertitude D’heisenberg

관련 사이트
텔레팝뮤직의 공식 사이트
http://www.telepopmusik.co.uk

“Breath”의 뮤직비디오
http://www.virtuetv.com/clients/emi/telepopmusik/breathe8573_r_250.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