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의 역사가 50여 년을 경과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 중 하나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기타를 메고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 1-2년 사이에 신작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한 노장들만 해도 밥 딜런(Bob Dylan),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믹 재거(Mick Jagger), 닐 영(Neil Young), 밴 모리슨(Van Morrison),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등 일일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로큰롤의 역사에서 노인들이 이처럼 활약한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 항간에서는 이들이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컴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는 하는데,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들은 결코 현역에서 물러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른만 넘으면 퇴물로 간주되어 라스베가스 등을 전전했던 초기 로큰롤러들과 달리 이들은 환갑의 나이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음악활동을 하면서 노년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로큰롤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젊음’일 것이다. 로큰롤은 오랫동안 기성세대와의 대립과 반목 속에서 발전해왔고 젊은 세대의 유일한 자기표현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오늘날 점점 더 두드러지는 노년층 로큰롤러들의 맹활약은 로큰롤의 이러한 기존 관념에 대해 중대한 도전을 제기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사실 ‘노인들이 하는 로큰롤’이라는 관념에는 작지 않은 딜레마가 존재한다. 로큰롤이 젊음의 패기나 약동하는 에너지를 결여할 때 그것은 더 이상 로큰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늙은이들이 젊은이들 흉내를 내려 애쓰는 것도 봐주기에 그리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 동안 노인들의 로큰롤은 코미디에서나 가능한 발상으로 여겨져 왔다. 있을 법하지도 않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코미디가 우리의 눈앞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020930032612-thewho코미디의 제일 원칙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년 로큰롤러들의 창궐도 마찬가지로 로큰롤을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만든다. 환갑을 목전에 둔 후(The Who)가 “늙기 전에 죽고싶다(I hope I die before I get old)”(“My Generation”)고 노래하는 것이나, 억만장자가 된 엘튼 존(Elton John)이 “돈이 없다(I don’t have much money)”(“Your Song”)고 토로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가 “죽기 전에 늙고싶다(I hope I’m old before I die)”(“Old Before I Die”)고 후를 조롱하고, 엘튼 존이 꽃과 부동산 값으로 20개월 동안 3천만 파운드(약 6백억 원)를 지출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것 등은 이 모든 것을 더욱 더 씁쓸한 블랙 코미디로 만들 뿐이다. 이 곡들을 처음 발표할 당시 후는 겁 없고 도전적인 10대의 반항아들이었고 엘튼 존은 가난하고 이름 없는 예술가였다. 이 두 노래가 명곡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티스트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가 최근 공연에서 부른 “My Generation”이나 엘튼 존이 얼마 전 다시 불러 싱글로 발표한 “Your Song”에는 이런 진실이 철저하게 결여되어 있다.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여 웃어넘기지 않는 한 이 노래들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다.

20020930032612-adamsjohndylan후와 엘튼 존은 그나마 죄질이 경미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9.11 테러사건 직후 부시 행정부의 반테러 정책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나선 닐 영(Neil Young)이나 막내 아들 루카스(Lucas)를 귀족학교인 이튼스쿨에 입학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믹 재거(Mick Jagger)는 용서가 어려운 경우에 속한다. “사탄을 무찌르러 가자(Goin’ after Satan)”(“Let’s Roll”)며 전쟁을 선동하는 닐 영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를 무색하게 하는 매파 전쟁광의 모습이며, 학업 성취도가 우월한 다른 학교들을 다 제쳐두고 굳이 이튼을 고집하는 믹 재거 역시 단순히 자녀의 교육을 걱정하는 부모의 모습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한 때 자타가 공인하던 반문화의 기수들이었다.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던(또는 혐오를 부추기던) 기성질서를 앞장서 수호하려 들거나(닐 영) 그 안에서 신분상승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믹 재거)을 지켜보면서 이들의 과거 행적에까지 그 순수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들이 기존 질서에 그토록 도전했던 이유가 결국은 스스로 기득권 세력이 되기 위함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일 뿐이라는 것인가?

노회한 아티스트들의 이러한 행태는 로큰롤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품게 만든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몇몇 아티스트의 일탈이라기보다는 로큰롤을 통해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인간 군상의 일반적 행태로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술적 정직성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밥 딜런(Bob Dylan)마저 어플라이드 머티리얼(Applied Material)이라는 반도체 회사의 기업행사에 출연하여 손쉽게 100만 달러를 챙겼다는 소식이고 보면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별로 무리한 일이 아니다. 돈 얘기를 꺼낸 것에 대해 혹자는 “그럼 음악하는 사람은 굶어 죽으란 말이냐?”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돈도 돈 나름이고 돈이 예술을 부패시킨다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진리 중의 하나다. 돈이 초래하는 부패는 단순히 예술가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서도 함께 나타난다. 철저히 돈에 팔려간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밥 딜런의 이날 공연에서는 과거 그가 전기기타를 처음 메고 나타났을 때와 같은 야유가 전혀 없었다. 밥 딜런 본인은 이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날 그 곳에 모인 청중이 그의 음악을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20020930032612-mickjagger2001노장 아티스트의 난립은 로큰롤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로큰롤에서 흥분과 생기를 앗아가 버리며 후배 음악인들에게 로큰롤이 정년도 없는 평생 직업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은 로큰롤에 정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들 노장이 유통기한을 훨씬 넘어서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노장들의 신작 앨범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고 해서 이들이 다시 로큰롤의 주역으로 복귀했다는 착각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이들이 현재 받고 있는 각광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음반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제작/유포한 허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화제 속에서 발표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믹 재거(Mick Jagger)의 신작 앨범들은 실제 판매 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폴 매카트니는 이 앨범 발표 후 가지려 했던 유럽 순회 공연을 관객부족을 염려해 전격 취소했고 언제부턴가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공연의 주된 레퍼토리는 과거의 명곡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등을 내몰았던 EMI는 한 때 이 두 노장의 거취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민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과거의 공적을 생각해서 봐줬다”는 공식 발표로 마감되기는 했지만 이들 두 노장은 앞으로도 계속 EMI의 애물단지 노릇을 할 것이 뻔하다.

케빈 스페이시(Kevin Spacey)는 현재 헐리웃에 만연하고 있는 풍조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과거에는 누구나 배우가 되기를 꿈꿨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다 스타가 되려고만 한다.” 배우가 되는 것과 스타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좋은 배우가 되지 않고서도 스타가 될 수 있으며 좋은 배우이면서 스타가 아닌 사람도 많다. 이 명제는 로큰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타가 되려 하지만 스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훌륭한 뮤지션이 될 필요는 없다. 본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현재 활동하고 있는 노장들에게 이러한 풍조의 확산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마땅히 떠나야 할 시점에 떠나지 않음으로써 로큰롤을 단순히 수지맞는 돈벌이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물론 이들에게도 이와 관련한 고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6년에 발표된 제쓰로 털(Jethro Tull)의 [Too Old To Rock & Roll; Too Young To Die]는 로큰롤 역사상 최초로 현역에서 중년을 맞게 된 이 세대의 고민이 솔직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로큰롤은 쉽사리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제쓰로 털의 리더 이언 앤더슨(Ian Anderson)은 로큰롤을 떠나 사업가로 변신했고 동시대의 나머지 아티스트들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경력을 오늘에까지 유지하고 있다.

특별히 흥미로울 것도 없는 노장 로큰롤러들의 최근 활동상이 갑작스러운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지극히 명백하다. 새로운 세대에서 이들에게 필적할만한 슈퍼스타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대중의 뇌리에 채 각인되기도 전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스타가 그 어느 때보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스타 하나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음악보다 스타성을 더 중시하는 풍조는 결국 음악을 죽이고 진정한 스타 탄생의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 초래한 이러한 스타 부재의 상황은 음악산업으로 하여금 안정된 수입원이라고 믿어지는 옛 스타의 브랜드 파워에 더욱 더 의존하게 만든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믿음이 착각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만일 그들이 진정한 스타의 탄생을 원한다면 이제 그들은 로큰롤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해야할 것이다. 로큰롤 자체보다는 그에 부수되는 돈과 명성에 더욱 관심있는 사람들이 들끓을수록 로큰롤은 점점 더 지루한 음악으로만 전락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의 부모 세대만 해도 로큰롤을 진지한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기껏해야 젊은 시절에 잠시 즐기다 마는 통과의례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의도와는 좀 다른 맥락이지만 이런 생각에는 어느 정도 경청할 부분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로큰롤은 직업이 아니다. 로큰롤은 창조력이 왕성한 젊은 시절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 능력이 소진한 뒤에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진정한 로큰롤러라면 자신의 창조력을 남김 없이 불사른 뒤 미련 없이 로큰롤에 등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로큰롤에서 유독 요절 아티스트가 추앙되는 이유도 이들이 끝까지 살아남아 추한 꼴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장들은 이미 그들의 몫을 충분히 다 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일은 자신들이 이룩한 과거의 영광을 보듬으며 아름답게 여생을 보내는 것 뿐이다. 환갑이 넘은 로큰롤러가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의 반항을 선동하는 모습은 상상하기에도 별로 유쾌한 장면이 아니다. 혹시라도 죽을 때까지 현역 일선에서 스타로 남기를 고집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그들은 영화 [친구]에 나오는 장동건의 대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고마 해라. 마이 무그따 아이가?” 20020915 | 이기웅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