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ogjasimcoeim3qadCIOMo

The Beatles | A Hard Day’s Night | EMI, 1964

 

이것은 리뷰가 아니다

1. “이봐 나는 로큰롤 싱어야. 내가 왜 이런 노래를 불러야하나?”
– 빌리 제이 크레이머 (폴 매카트니로부터 “Yesterday”를 받아 들고)

비틀스(The Beatles)가 전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그들의 다섯 번째 싱글 “I Want To Hold Your Hand”부터다. 그 전까지 그들은 단지 머지사운드라고 불리는 일군의 리버풀 출신 밴드들 중 하나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실력으로만 따지면 그들은 이미 무명시절부터 리버풀 최고의 밴드였다. 그러나 그것이 곧 최고의 밴드라는 대중적 인정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한동안 제리 & 더 페이스메이커스(Gerry & The Pacemakers), 서처스(The Searchers), 머지스(The Merseys), 빅 스리(The Big Three) 등의 그룹들과 동급으로 취급되어야만 했다. 당시 리버풀 씬의 대부로 군림하고 있던 인물은 존 레논(John Lennon)이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아니라 빌리 제이 크레이머(Billy J. Kramer)였다. 비록 레논과 매카트니가 그의 히트곡 대부분을 써주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들 사이의 위계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매카트니는 그에게 “Yesterday”를 줬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고 레논은 “Do You Want To Know A Secret”을 써주면서 ‘노래가 신통치않아 미안하다’는 메모를 첨부할 정도였다.

이처럼 한때나마 비틀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룹들 중 지금까지 널리 기억되는 밴드는 거의 없다. 그들 모두는 1-2년간 바짝 인기를 모으다 급속하게 도태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그들의 이름은 단지 열렬한 올디스 팬이나 대중음악 사가들의 입에서나 오르내릴 뿐이다. 비틀스가 머지사운드 최후의 승자이자 유일한 생존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것처럼 그들에게 곡을 쓸 수 있는 특출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그룹들의 작곡능력이 비틀스보다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비틀스 외에는 작곡을 할 줄 아는 그룹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로큰롤 초창기에는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당시의 리버풀 젊은이들도 작곡의 가치를 알지 못했고 작곡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방금 대서양을 건너온 멋진 레퍼토리들이 즐비하게 깔려있는데 굳이 곡을 만들어서 무엇할 것이며 만든다고 해서 도대체 누가 들어주겠는가?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국 그들의 명을 재촉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자기 자신의 레퍼토리가 없는 그룹은 지역에서 골목대장 노릇은 할 수 있어도 큰 물에서는 결코 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세 번째 앨범 [A Hard Day’s Night]는 이들이 이러한 지역적 한계를 넘어 20세기 최고의 음악가로 본격 도약을 시작한 작품이다. 이들 최초로 전체를 자작곡으로 꾸민 이 앨범은 이들 자신에게도 획기적인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브리티쉬 인베이전 시대의 동료 밴드들에게도 분화와 세대교체를 촉진하는 매개로 작용했다. 후(The Who), 킹크스(The Kinks), 좀비스(The Zombies)처럼 작곡이 가능한 밴드들은 새로운 세대의 주역으로 각광을 받으며 등장했고 그런 능력이 없는 1세대 밴드들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과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매니저 앤드류 룩 올드햄(Andrew Loog Oldham)은 자신이 관리하던 그룹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와 스몰 페이시스(The Small Faces)를 각각 화장실에 가둬놓고 곡을 완성해야만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비상수단’을 강구함으로써 이들을 거물밴드로 키워내기도 했다. 이 점 하나만 봐도 [A Hard Day’s Night] 앨범은 현대 대중음악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한 작품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2. “그들은 비틀스를 다시 들으면서 노래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다”
– 노엘 갤러거 (미국 록 밴드들에 대한 소감을 묻자)

비틀스는 활동 당시부터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었지만 해산 이후에도 결코 쇠퇴하지 않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여러 음반사들은 신인 밴드 홍보에 ‘제2의 비틀스’라는 선전문구를 요긴하게 사용해왔고, 가끔씩 출반되는 각종 비틀스 모음집은 아직도 EMI의 가장 확실한 수입원 중 하나다. 우리 주변에서도 비틀스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음반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음악 관련 행사가 적은 한국에서도 비틀스 관련 이벤트만큼은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비틀스가 현존하는 형태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비틀스는 더 이상 떠들썩한 찬양이나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무언 속에서 그들의 음악이 조용히 들려질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틀스는 침묵 속에서 현존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음악 수용자들 사이에서 비틀스가 일종의 당연시되는 삶의 전제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비틀스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대답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점심에 무엇을 먹었냐?”는 질문에 “밥을 먹었다”고 답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비틀스의 음악은 이처럼 언급되지 않음으로써 훼손되지 않는다. 그것은 실재하는 신성불가침이며 현존하는 대중음악의 가치와 진위를 판별하는 메타음악이다.

그 동안 지구 상의 수많은 밴드들이 비틀스를 사숙하며 음악에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그들 중 비틀스를 능가했던 밴드는 거의 없으며 능가하려 시도했던 밴드조차 많지 않다. 이러한 그간의 사정은 비틀스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현실에 있어서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틀스가 현대 대중음악의 영원한 모범을 창출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를 통해 대중음악의 발전 가능성을 크게 제한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지난 10여년간 영국 음악계가 보여준 답보상태는 이 점을 가장 잘 예시하는 사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초가 안돼 있는 미국 애들’에 대한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의 일침은 사실 영국 음악계의 현주소를 적시하는 지표로 해석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비틀스를 극복 대상으로 삼기 보다는 그들이 창조한 세계에 철저히 안주하려 함으로써 영국 음악인들은 자국의 음악계를 황폐화시켰고 나아가 전세계 음악계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상실하고 말았다.

이제 비틀스가 해산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비틀스에 영향받았음’을 앞세운 그룹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것은 놀라움을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비틀스의 음악은 물론 좋다. 그러나 비틀스는 비틀스로 족하다. 그들은 잊혀진 그룹도 아니고 새롭게 조명되거나 발굴될 필요가 있는 밴드도 아니다. 그렇기에 21세기에도 여전히 창궐하는 ‘비틀스의 후예’들은 단지 이 시대의 예술적 게으름과 도전정신의 부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영국 음악인들 나아가 서양 음악인들이 비틀스의 무게에 짓눌려 꼼짝 못하는 것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한 그들에게서 기대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비틀스의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뭔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별로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비틀스 뜯어먹기’는 여기나 거기나 별반 다를 바 없는 전지구적 현상처럼 보일 뿐이다. 이제 이런 음악은 지겹다. 음악이 지겨워질수록 우리의 밤은 점점 더 힘겨워지기만 한다. | 이기웅 [email protected]

 

Rating: 10/10

 

수록곡
1. I Should Have Known Better
2. If I Fell
3. I’m Happy Just To Dance With You
4. And I Love Her
5. Tell Me Why
6. Can’t Buy Me Love
7. A Hard Day’s Night
8. Anytime At All
9. I’ll Cry Instead
10. Things We Said Today
11. When I Get Home
12. You Can’t Do That
13. I’ll Be Back

관련 글
Intro: 페퍼 상사의 클럽 앞에서 – vol.4/no.18 [20020916]
“내비둬(Let It Be)” – vol.4/no.18 [20020916]
비틀스가 있어 행복했던, 행복한, 행복할 인생이여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Please Please Me]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With The Beatles]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A Hard Day’s Night]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Beatles for Sale]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Help!]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Rubber Soul]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Revolver]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Magical Mystery Tour]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The Beatles (White Album)]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Abbey Road]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Let It Be] 리뷰 – vol.4/no.18 [20020916]
The Beatles [1] 리뷰 – vol.4/no.18 [20020916]
John Lennon [John Lennon/Plastic Ono Band] 리뷰 – vol.4/no.18 [20020916]
Paul McCartney [McCartney] 리뷰 – vol.4/no.18 [20020916]
George Harrison [All Things Must Pass] 리뷰 – vol.4/no.18 [20020916]
Ringo Starr [Ringo] 리뷰 – vol.4/no.18 [20020916]

관련 사이트
비틀스 공식 사이트 http://www.beat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