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les | Beatles for Sale | EMI, 1964

Beatles | Beatles for Sale | EMI, 1964

 

일보 전진 이보 후퇴 또는 그 반대

팝 음악계에서 비틀스(The Beatles)의 절대적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은 많다. 편집앨범을 제외한 그들의 모든 앨범에 별 다섯 개 만점을 준 올 뮤직 가이드(All Music Guide)의 평점도 그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물론 [Yellow Submarine]이라는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앨범은 명목상으로만 비틀스의 앨범일 뿐 실질적으로는 조지 마틴(George Martin)의 솔로 앨범에 불과하다. 모르긴 해도 앨범을 이렇게 여러 장 발표한 아티스트 중 모든 앨범에서 만점을 받은 것은 아마 비틀스가 유일하지 않나 추측된다. 문제는 별 다섯 개를 받은 앨범들 전부가 과연 진정으로 그렇게 평가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평가에는 대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미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아 온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The Beatles(White Album)], [Abbey Road] 등의 앨범에 새삼스럽게 이론을 제기하는 것은 비평적 자살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심지어 그 동안 다소 경량급으로 취급받아 온 [Please Please Me]나 [With The Beatles]에 대해서도 그 약동하는 에너지와 순수한 환희를 과소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1964년작 [Beatles For Sale]에 대해서만큼은 ‘주인을 잘 만나서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진 대로 비틀스는 전작 앨범 [A Hard Day’s Night]를 통해 전곡 오리지널 작품집이라는 기념비적 업적을 달성해냈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해 발표된 [Beatles For Sale]에서 커버 여섯 곡에 오리지널 여덟 곡이라는 초창기 포맷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들의 이러한 음악적 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비틀스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 앨범을 만든 것일까? 그리고 이 앨범은 과연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몇 가지의 설명이 나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른바 ‘피로요인’이다. 1964년은 비틀스가 생애 가장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해다. 멤버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이 해에 11월 23일 단 하루를 쉬었다고 한다. 이 앨범은 바로 이 해 말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앨범을 둘러싼 이러한 정황은 이 앨범이 지닌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도록 만든다. 더욱이 이 앨범이 발표된 시점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연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앨범의 의도는 보다 명백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연말은 한 해 동안 판매되는 앨범의 절반 가량이 팔리는 대목 중의 대목이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비틀스가 이런 대목을 공치며 보내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은 그들 주변에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앨범 타이틀 [Beatles For Sale]은 이런 의미에서 소름끼칠 만큼 솔직한 자기 고백인 셈이다. ‘연말 대목을 앞두고 앨범을 만들기는 해야겠는데 바쁘고 피곤해서 제대로 만들 여력은 없고, 그냥 예전에 하던 대로 커버 곡과 오리지널 곡을 적당히 섞어서 빠른 시일 내에 대충 만들고 끝내자.’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반이 바로 이 앨범인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해서 다 나쁘라는 법은 없고,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을 용인 못할 만큼 편협하게 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비틀스가 3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도 이런 식의 혹사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은 좀 든다. 아티스트에 대한 착취가 당연시되던 당시의 음악계 관행에서는 제 아무리 비틀스라도 감히 보스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주요 아티스트가 연말을 그냥 보내도록 내버려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굳이 힘들여 새 앨범을 만들기보다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Greatest Hits] 컴필레이션을 택하는 편이 보다 일반적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비틀스가 그처럼 창조력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 당시의 혹독한 착취 덕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비틀스가 오늘날의 아티스트였다면 이들은 해산할 때까지 기껏 서너 장의 앨범 밖에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Revolver]나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또는 [Abbey Road] 같은 앨범을 구경도 못해봤을지 모를 일이다.

비틀스의 음악적 생애에서 ‘후퇴’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Beatles For Sale]은 이 말의 적용이 어색하지 않은 몇 안되는 사례의 하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앨범은 그 구성에 있어 [A Hard Day’s Night] 이전의 시기로 되돌아가고 있으며, 여기에 실린 커버곡들은 이들의 함부르크 시대 레퍼토리를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외형 상의 특징을 넘어 앨범의 음악적 내용에 직면하게 되면 더 이상 ‘후퇴’라는 말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비록 1950년대 곡들의 커버에 크게 의존하고는 있지만 여기서 이들이 그 곡들을 다루는 방식은 [Please Please Me]나 [With The Beatles]에서 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은 더 이상 초기 앨범들의 천진난만하고 단순명쾌한 ‘애들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이들이 들려주는 복잡미묘하고 세련된 감성의 음악은 [A Hard Day’s Night]를 통해 부쩍 커버린 이들의 음악적 성장을 드러내며 이들의 성장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비록 이 앨범의 외관이 비틀스의 음악적 후퇴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이들은 결코 후퇴를 몰랐던 것이다.

이 앨범이 지닌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비틀스의 앨범이라는 점이다. 만약 이것이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이었다면 여기에는 아무런 논란의 여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틀스의 앨범인 한 이들이 발표한 다른 앨범들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앨범 자체만을 놓고 보면 대단히 즐길 만한 작품이지만 이 앨범은 다른 앨범들처럼 음악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고 팬들의 뇌리에 길이 남을 명곡을 담고 있지도 못하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존 레논(John Lennon) 그리고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한 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한꺼번에 두들겨대는 척 베리(Chuck Berry) 커버 “Rock & Roll Music”이나 유일한 싱글 히트곡 “Eight Days A Week”, 그리고 밥 딜런(Bob Dylan)의 영향을 반영한 포크 록 넘버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 등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구성하기는 하지만 이 앨범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비틀스가 이듬해부터 공연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음반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전력투구하기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평년작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이 앨범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앨범은 비틀스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데 의도치 않은 견인차의 역할을 한 작품이 되는 셈이다. | 이기웅 [email protected]

 

Rating: 6/10

 

수록곡
1. No Reply
2. I’m A Loser
3. Baby’s In Black
4. Rock & Roll Music
5. I’ll Follow The Sun
6. Mr. Moonlight
7. Kansas City/Hey-Hey-Hey-Hey!
8. Eight Days A Week
9. Words Of Love
10. Honey Don’t
11. Every Little Thing
12.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
13. What You’re Doing
14. Everybody’s Trying To Be My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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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비틀스 공식 사이트 http://www.beat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