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les | Help! | EMI, 1965

The Beatles | Help! | EMI, 1965

 

팝 음악이 ‘진정’ 아름다웠던 시절

지금은 다시 록과 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기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강성 록 사운드’가 대세를 이루는 시기와 ‘팝과 절충한 록’이 강세인 시기의 교차는 언제나 반복되어 왔다. 주기적으로 볼 때, 현재는 강성 록의 입김이 쇠해지고 록음악이 ‘방향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오는 시기이다. ‘다시는 펑크 폭발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저주같은 예언도 종종 들린다. 일반적으로 호평받는 밴드들은 한결같이 포스트 록이나,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영향을 받은 듯한 개러지록, 그것도 아니면 포크에 몸을 실어 저마다 무언가 ‘색다르다’는 사실을 어필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그 모든 움직임의 뒤에는 비틀스라는 큰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팝과 록의 절충을 비웃는 ‘강성 록 주의자’들에게는 그 역시 하나의 공격 빌미가 될 뿐이겠지만.

초창기 비틀스는 미국식 로큰롤에 티니밥(teenybop)을 적절히 조화시킨 음악으로 영미 전역에 걸쳐 명성을 얻었다. 얼핏 단순하고 가벼운 로큰롤로 넘겨짚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음악은 실로 다채로운 화성과 보컬 방법론의 혁신,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이 멋들어지게 조화되어 완성된 ‘작품’이었다. 특히 “I Wanna Hold Your Hand” 같은 곡에서 나타나는 조성의 변화나 이질적인 창법의 교차는 당시 대중음악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였다. 이런 부분들을 비틀스 초기 사운드의 주요 특성으로 규정짓는다고 할 때, ‘중기’ 비틀스를 설명해주는 표현은 아마도 ‘팝과 록의 융합’일 것이다. 음반 [Help!]는 ‘록 밴드 편성에서 구사하는 팝 음악’이라는 중기 비틀스의 모토가 어떤 형태로 나아가는지 보여주는 ‘단서’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더 나아가 틴에이지 스타이던 비틀스가 차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완성한 ‘아티스트’로 발전하는 ‘연결 고리’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를 갖는다 하겠다. 스타의 명성을 이용한 3류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아니라, 예술인으로 발돋움하는 비틀스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음반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갑작스레 등장하는 합창으로 문을 여는 “Help!”와 뒤를 잇는 “The Night Before”는 초기 비틀스 사운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곡이다. 둘 다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조성의 변화, 로킹한 스타일과 섬세한 스타일을 오가는 보컬, 배킹 보컬과의 콜 앤 리스폰스 등 ‘비틀스 현상’의 요인들이 고루 담겨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음반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가령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는 전형적인 포크 록의 화법을 취하고 있고, “I Need You”는 초기 곡들에서 ‘발랄함’을 줄이고 ‘신실함’을 확대한 듯한 곡이다. 이처럼 경박할 정도로 생기에 넘치던 비트족들의 생리를 억제한 곡들은 음반 내 곳곳에서 ‘성숙한’ 비틀스를 상징적으로 강변한다. 소박한 전개와 보컬의 덤덤한 표정의 “Tell Me What You See”, 컨트리를 수혜받은 “Act Naturally” 등이 좋은 예이다. 물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음반 전체적으로는 일관된 이미지를 지니면서도 개별 곡들이 독특한 개성을 발현한다는 점이다. 비트족의 감성은 한걸음 뒤로 물러난 반면, 멜로딕한 측면(=팝)은 더욱 강조되었다. 비틀스 곡 중 두 번째로 자주 리메이크된다는 “Ticket to Ride”는 설명이 필요없는 멜로디 라인에 완전무결한 훅을 지니고 있지만, 화성 구조의 섬세함으로 인해서 고급스럽고 깊이있는 느낌을 전달한다. 물론 이런 설명에서 “Yesterday”를 빼놓는다는 것은 ‘사족’이거나 ‘차포 떼고 두는 장기’일 것이다. “Yesterday”는 ‘팝음악의 고전’이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수없이 새롭게 불린 곡이라서 새삼스럽게 설명하는 행위가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서정적이고 유려한 선율과 오케스트레이션이 만드는 오묘한 잔상, 그리고 ‘당신 손을 잡고 싶다’ 외치던 그 애들이 맞는가 싶을 만큼 깊이있는 노랫말이 가장 이상적인 조화를 이뤘다”는 설명은 아무리 사족이라도 덧붙여야 하겠지만. “Yesterday”는 밴드 편성 없이, 매카트니가 어쿠스틱 기타와 스트링 섹션만으로 ‘뚝딱’ 만들어낸 곡이며, 이 사실은 ‘밴드가 만드는 팝 음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한다.

오늘날의 음악팬들은 ‘밴드 편성’으로 ‘팝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 유달리 반감을 표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현재의 밴드들은 몹시 방향을 설정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는 록의 ‘강렬한 측면’은 상대적으로 발전 여지가 좁은 반면, 팝 음악과의 절충은 상업적인 행위로 치부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묘한 처지에 놓인 밴드들이 실제로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게 본다면, 비틀스의 시대는 참으로 편안하고 정감어린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밴드 멤버가 혼자 팝 발라드를 만들어 불러도 ‘불멸의 고전’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시기. 록 밴드가 틴 팬 앨리나 샹송 스타일을 마음대로 편식해도 평단에서 기립 박수를 치던 시기. 물론 당시와 현재가 시대상과 ‘록의 지위’에 있어 다소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틀스 시대는 팝 음악이 ‘진정’ 아름답던 시절이 아니었나 하는 부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팝 음악은 신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음악가들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멋진 화음을 간소한 악기 편성 위에서 아낌없이 선보였다.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무엇이 누군가에 의해 폄하되는 일도 없는, 마냥 아름다운 시기였던 것 같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Yesterday’인가 보다. | 배성록 [email protected]

 

Rating: 9/10

 

수록곡
1. Help!
2. The Night Before
3.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4. I Need You
5. Another Girl
6. You’re Gonna Lose That Girl
7. Ticket to Ride
8. Act Naturally
9. It’s Only Love
10. You Like Me Too Much
11. Tell Me What You See
12. I’ve Just Seen a Face
13. Yesterday
14. Dizzy Miss Liz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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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비틀스 공식 사이트 http://www.beat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