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 Rubber Soul | EMI, 1965

The Beatles | Rubber Soul | EMI, 1965

 

고무신발로 갈아 신은 예술가들과의 조우: [Rubber Soul]에 대한 기억

내가 록 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1980년대 말부터이고 당시엔 스피커가 찢어져라 긁어대는 헤비메탈이 아니면 음악 취급도 받지 못했으며 나 역시 친구들과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나 헬로윈(Helloween) 앨범을 수집하고 마이클 쉥커의 기타 리프를 연습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지냈다. 집안식구 누군가 사다놓은 정체불명의 비틀스 베스트 테입에는 “Love Me Do”, “I Wanna Hold Your Hand” 등 초기곡들이 조악한 음질로 모아져 있었는데 내겐 냉소와 혐오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헤비메틀이 시큰둥해졌을 때도 나의 관심은 핑크 플로이드와 레너드 스키너드 등에 가 있었다.

비틀스의 음악을 진지하게 접하게 한 계기가 된 [Rubber Soul]은 냉소적이고 편협한 헤비메탈 키드를 조금은 성숙하게 한 최초의 예술작품이었다. 이미 너무나 많이 회자되고 다양한 비평이 있기 때문에 이 앨범에 대해 장황하게 논하는 것은 불필요하지만, 앨범의 의의 정도만 간략히 언급해 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비틀스의 [Rubber Soul]은 같은 해 발표된 [Help!]까지 그들이 보여준 태도와 음악 스타일로부터 최초의 혁신을 이루어낸 중기 걸작이다. 이전까지 비틀스는 직설적인 가사를 상큼발랄한 로큰롤에 담아 불러 스타가 된 댄디한 보이 밴드 이상이 아니었다(물론 이견이 있을 테지만). 이 앨범의 전반적인 톤은 미국 히피 무브먼트와 밥 딜런, 버즈(The Byrds) 등의 포크음악에 영향을 받아 좀 더 감성적이고 내면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고, 비틀스의 명반 중에서도 가장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곡들을 담고 있으면서도 실험적인 시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수록곡 대부분이 포크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타와 드럼은 미니멀한 지위에 머물고 이를 다양한 보컬 하모니와 실험적인 악기들로 보완하고 있다. “Norwegian Wood”에는 조지의 시타르 연주가 흐르고, 특히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하는 “In My Life”의 간주부에는 바하를 연상시키는 바로크 하프시코드가 등장하는 등 향후 그들이 펼쳐보일 실험적 싸이키델리아의 전조가 발견된다.

청계천에서 하드록 앨범을 뒤지다 앨범 자켓의 환각적인 타이틀 글씨가 특이해 덤으로 사온 [Rubber Soul] 빽판을 턴테이블에 걸었을 때의 첫 느낌은 촌스럽지만 황홀하게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노래실력은 별로인 것 같은 멤버들의 하모니가 묘한 우수를 전해주었다. 나는 이전까지 그토록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어보지 못했다. 또 이 때 들었던 모호한 쓸쓸함과 비관적인 자의식의 원천이 수록곡들의 가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나의 영어실력이 조금 나아졌을 때의 일이다. 이 곡들은 분명 사랑노래지만 사랑이란 말의 이면에 도사린 존재의 고독과 냉소(“Norwegian Wood”), 관계의 사망을 선언하는 이별과 변심에 대한 혼란(“What Goes On”), 질투를 넘어 위악의 포즈라도 취해야 하는 절박한 애증의 감정(“Run for Your Life”)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몇몇 문학작품 속에서 [Rubber Soul]에 담긴 쓸쓸한 사랑론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1981)이란 시집을 읽으면서 “노르웨이의 숲”을 연상했고, 하루끼를 읽으며 낡은 LP를 찾아 들었을 때는 나도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겪은 후였다.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평화’ – 최승자의 詩 ‘사랑하는 손’ 중에서

그러나 그 후로 나는 비틀스에 심취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명반을 차례로 접하면서도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가 들려주는 지하로부터의 야성적 울림에 더 매료되었고, 뒤늦게 만난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가 비틀스를 예술가연하는 나약한 음악으로 냉소하는 것에서도 묘한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내가 좋아하는 많은 밴드들의 음악속에 직간접적으로 살아있는 그들의 흔적을 외면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인지 [Rubber Soul]은 헤어져 신지 않지만 버릴 수 없는 낡은 고무신처럼 쓸쓸한 존재감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 장육 [email protected]

 

Rating: 9/10

 

수록곡
1. Drive My Car
2.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3. You Won’t See Me
4. Nowhere Man
5. Think for Yourself
6. The Word
7. Michelle
8. What Goes On
9. Girl
10. I’m Looking Through You
11. In My Life
12. Wait
13. If I Needed Someone
14. Run for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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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비틀스 공식 사이트 http://www.beat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