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 Revolver | EMI, 1966

The Beatles | Revolver | EMI, 1966

 

이게 원래 ‘화이트 앨범’ 아니었어?

[weiv]가 비틀스 대특집에 돌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동안 비틀스는 일종의 ‘신성 불가침’이라고 여겨왔던 탓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꼭 비틀스를 ‘신격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개인적으로, 비틀즈는 1960년대의 산물이라고 본다. 영화 쪽에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문학 쪽에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스포츠의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가 그러했듯, 비틀스는 철두철미 ‘1960년대 영미 사회 격동기 천재들의 시대’의 팝 음악 쪽 대표 선수다. 이 천재들은 하나같이 1960년대가 끝나자 말랑말랑해지며, 일종의 ‘후일담’을 늘어놓게 되지 않았는가. 이것은 말하자면 시대의 광풍이다. 얼버무려 말하자면, 그 시대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폴로와 디오니소스가 한데 어울려 탈진하여 나자빠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 발광의 향연이 그 시대의 징표였다. 베트남 전쟁과 68 혁명은 젊은이들에게 차라리 축복의 백그라운드였다. 앞으로 그런 시대는 웬만해선 오지 않는다. 1990년대 초중반, 모종의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되어 혹시나?했지만 역시나!였다. 찻잔 바깥으로 넘치도록 휘몰아치는 메가톤급 태풍은 한 세기에 한때만 오는 것이다. 마치 여름과 가을 사이 한철에만 연약한 대지를 할퀴고 지나가는 수마(水魔)처럼.

비틀스가 무소불위의 위용을 뽐내던 시절을 겪지못한 이가 대부분인 웨이브 필자(와 독자들)이, 21세기 초반 가을이 무르익어갈 무렵 비틀스에 (감히?) 도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계와 무리수가 뒤따른다. 시대적 배경과 비틀스를 연결시켜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설명과 해석을 시도하자니 가진 밑천이 모자라고, 그렇다고 오늘날의 시각에 맞추어 재평가 해보려니 어딘가 구태의연하고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오늘날 아무리 좋게 들어보아야 비틀스의 노래는 ‘멜로디 하나는 기가 막힌 올드 팝송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싸이키델릭한 실험적인 노래들도 상당수고 심지어는 “Helter Skelter” 같은 헤비 메탈(!)도 있지만, 비틀스 해산 후 30여년 간 별의별 오만가지 실험과 시도가 팝스계를 휩쓸고 지나간 지금, 그들의 음악으로부터 더 이상 ‘혁신성’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래도 비틀스가 이 모든 것의 원조가 아니냐!”라는 충고를 귀담아 듣기는 하지만, 역시 건성일 수 밖에 없다. 마치 신중현의 위대함을 잘 알고는 있지만, 손은 시나위의 CD로 뻗게되는 것처럼.

그래도 ‘진정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비틀스의 음반이 두 장 있다. 하나는 [Revolver] (1966)요, 다른 하나는 [The Beatles(‘화이트 앨범’이라 불리는)] (1968)다. 왜 위대한 건지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위대한 것 아닌가? 초월적인 그 무엇..), 암튼 홀리듯 듣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나만 유난히 그런 건지도 모른다. 남들이 다 좋다는 [Abbey Road] (1969)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어딘가 엉성하고, 작위적이다. 반면 이 음반들은 물샐 틈 없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박력을 과시한다. 혹자는 [화이트 앨범]이 중구난방식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중구난방의 진수는 [Abbey Road] 아닌가? 특히 ‘메들리’는 중구난방을 어영부영 넘기려는 일종의 속임수인 것이다.

여기는 [Revolver]를 논하는 자리이니,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자. [Revolver]의 놀라운 점은 바로 ‘다양함’에 있다. 곡 하나하나가 하나의 완벽한 ‘비틀스 만의 장르’를 이룬다. 이와 같은 다양함은 멤버 각자의 ‘개인성’과도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건 존 레논(John Lennon)의 ‘자아찾기’의 본격적인 징후가 “I’m Only Sleeping”과 “She Said, She Said”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Taxman”과 “Eleanor Rigby”, “Doctor Robert”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돋보이는 노래들(세 곡 제목 모두 사람 이름이나 인칭을 나타내는 명사임에 유의)인데, 작곡자(차례대로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존 레논)의 개성과 세계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회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음반에 사회 의식만 가득한 건 아니다. ‘개인성’ 또한 전 음반인 [Rubber Soul] (1965)과는 뚜렷한 구분을 짓는 비틀스의 새로운 영역이다. 멤버 각자의 개인적 관심사는 노랫말과 사운드 방식에서 잘 드러나 있다. “Eleanor Rigby”에서 전개되는 현악 4중주 양식과 “For No One”에서의 하프시코드 연주는 “Yesterday”로부터 시작하여 “Golden Slumbers”로 일단락을 짓게되는 폴 매카트니의 클래식에 대한 강박관념과 경쟁의식의 산물이다. 또한 “Here, There And Everywhere”는 오늘날까지 지겹게 맥을 이어오고 있는 ‘매카트니표 발라드’의 할아버지격이다. 조지 해리슨에게 있어 “Love You To”는 그의 음악적 전성기 대부분을 사로잡았던 인도 음악(과 철학) 탐구의 시초점이다. 존 레논에게 있어 “Tomorrow Never Knows”는 그의 어지러운 싸이키델리아의 만화경을, “She Said, She Said”는 솔로 시절 만개되는 직설적인 자기 분석과 토로의 세계의 씨앗을 대표한다. 그럼 링고 스타(Ringo Starr)는? “Yellow Submarine”으로 보건대, 이미 그는 자작곡 만들기보다는 친구들의 노래를 받아 부르는데 익숙해지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이 모든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그 방면의 결정판인 [화이트 앨범]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두 음반 자켓의 바탕 색깔이 똑같이 하얀 색이지 않은가. 다만 차이는 있을 것이다. [Revolver]는 비틀스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로 경력 상 최정점에 오르기 직전, 그러니까 ‘고지를 눈앞에 둔’ 자의 심정으로 총화단결하여 만든 음반일 것이고, [화이트 앨범]은 그와 반대, 즉 “이제 그만 하산하도록 하여라”의 복잡한 심경으로 손댄 음반일 것이다. 이 말은 같은 다양성이라도 전자로부터는 ‘통일성’이, 후자는 ‘해체성’이 알게 모르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같은 하얀색 바탕의 자켓이라도, [Revolver]는 ‘백화만발’이, [화이트 앨범]은 문자 그대로 ‘텅 빔’이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불과 2년 사이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이토록 순식간에 일어나게 된 것은, 오늘날 생각해보면 불가사의에 가깝다. 아마도 그 당시는 ‘시간의 흐름’이 오늘날과는 상당히 다른 패턴을 보이지 않았을까? ‘격동(激動)’이란 단어가 “급격하게 변동함”의 뜻이라면, ‘격동의 세월’이었던 1960년대 영미 사회에서 급격히 움직인 건 ‘사건과 실화’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Revolver]를 오늘날 느긋한 마음으로 듣기에 다소 버거울 때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공감각적 ‘역동성’ 때문이리라. | 오공훈 [email protected]

 

Rating: 10/10

 

수록곡
1. Taxman
2. Eleanor Rigby
3. I’m Only Sleeping
4. Love You To
5. Here, There And Everywhere
6. Yellow Submarine
7. She Said, She Said
8. Good Day Sunshine
9. And Your Bird Can Sing
10. For No One
11. Doctor Robert
12. I Want To Tell You
13. Got To Get You Into My Life
14. Tomorrow Never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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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비틀스 공식 사이트 http://www.beat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