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13041528-0418djshadowDJ Shadow – The Private Press – MCA, 2002

 

 

가벼운 성숙

그는 정말 “졸라 나쁜 DJ”라서(“Walkie Talkie”) 6년 만에야 새 음반을 들고 나왔다. 메틀리카(Metallica)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 동안 그가 놀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팬들과 미디어는 (산만했던 [Psyence Fiction](1998)까지 포함하여) 각종 프로젝트에서 DJ 섀도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고, 대개의 경우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며 그의 새로운 음반을 기다렸다. 이것이 첫 번째 압박이다.

두 번째 압박은 그의 동업자들이 그가 새 음반을 만들 동안 턴테이블에 기름이나 치면서 빈둥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닌자 튠 레이블의 뮤지션들을 비롯하여 최근 5∼6년 동안 쏟아져 나온 턴테이블리즘-앱스트랙트 힙합 계열의 DJ들은 그가 만들어놓은 방법론의 토대 위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그래서 적어도 ‘기술’ 면에서는 섀도와 겨룰 수 있는 DJ들도 많이 등장했다. 더 나아가 그가 구축해놓은 영역을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마도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물은 올해 나온 RJD2의 [Deadringer](2002)일 것이다(그러나 탁월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섀도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간단히 말해 그는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처럼 ‘선구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압박을 한몸에 받으며 새 음반을 내놓았다. [The Fragile](1999)은 실패했다. [The Private Press]는 어떨까?

음반은 ‘가볍다’는 인상을 준다. 텁텁하고 두터운 힙합/훵크 비트를 주재료로 한 [Endtroducing…](1996)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것이다. 거라지 록 스타일의 기타 배킹과 업비트의 댄스 리듬을 도입한 첫 싱글 “You Can’t Go Home Again”을 얼추 들었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Monosylabik”의 실험적이고 난해한 샘플링 콜라주조차도 이전의 방대한 스케일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것이 피상적인 반응이었다는 것은 두세번 정도 듣게 되면 분명해진다. 사운드는 결코 가벼워진 것이 아니다. 샘플들은 그가 설정해놓은 섬세한 배치를 따라 촘촘히 맞물리며 고슬고슬한 결을 따라 흐른다. 리듬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했다. 그의 리듬감이 얼마나 예민한 것인지 새삼 알겠다. (미리 리버스(reverse)된 것을 포함하여) 샘플들을 겹겹이 덧입힌 뒤 그것들을 다시 컷 앤 페이스트(cut and paste)하여 사운드를 만드는 등의 새로운 방법이 도입되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 광섬유 케이블처럼 압축적이고 탄력있는 사운드가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신비로운 울림까지 건조하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던 앰비언트의 텍스처는 지상으로 올라와 사이키델릭한 안개로 변해 넓게, 아주 넓게 흩날린다(“Blood On The Motorway”).

다행스럽게도, 섀도의 기존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곡들 또한 많다. “Fixed Income”이나 “Mongrel…”, “…Meets His Maker” 연작에서 들을 수 있는 느긋하고 담대한 사운드 스케이프는 온전히 섀도의 것이며, “Walkie Talkie”에서는 강철 군화를 신고 스텝을 밟는 듯한 차갑고 치밀한 그루브가 화려한 스크래칭과 더불어 펼쳐진다. ‘pure energy’를 웅얼거리는 “Right Thing/GDMFSOB”의 탭댄스 같은 리듬과는 사뭇 다르다. 또한 “You Can’t Go Home Again”에서 ‘따로 또 같이’ 치밀하게 주조된 리듬과 사운드의 향연을 거부할 만큼 배짱 좋은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음반의 매력은 풍성한 질감을 갖고 있는 소울-사이키델릭 넘버들에 있다. 특히 음반의 중반과 후반부에 위치한 “Six Days”와 “Blood On The Motorway” 등은 어떤 ‘낭만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태생은 비천하였으나 시간이 부여한 품격을 입고 나타나 다시금 그 생명력을 자랑하는 존재를 볼 때 갖는 감정이다. 분명 고급은 아닌데 고급보다 훨씬 사랑스럽다. 거기에 이 백인 샘플 도둑은 이곳저곳에서 훔쳐온 우수(憂愁)와 고독의 이미지를 얹어놓았다. 비장하면서도 단순한 멜로디 주변을 층층이 감싸고 있는 섬세한 리듬이 말랑말랑하고 서늘한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는 “Six Days”는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의 백미이다. 이런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그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힙합 팬’의 입장에서는 불만일지 몰라도, ‘감상자’에게는 축복에 다름없는 곡들이다. 그리고 이 역시 그에게 있어서 ‘힙합’이라는 사실은 누차 강조된 바이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가볍다’는 것이다. 하지만 뜻이 변했다. ‘자신만만하고 야심에 차 있으되 그 야심에 짓눌려 있지는 않다’라고 말이다. 그것을 ‘성숙’이라 이름붙이겠다. 전작의 감동을 떠올리면서 ‘또다른 혁신’을 바란 사람들은 이 음반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음반을 듣는 도중 아쉬운 눈길로 [Endtroducing…]을 곁눈질하며 한숨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눈치보지 말고 솔직하게 좋다고 말해 보길.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강박관념을 훌훌 털어버린 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과시한 대가의 새 음반이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20020908 | 최민우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Letter From Home)
2. Fixed Income
3. Un Autre Introduction
4. Walkie Talkie
5. Giving Up The Ghost
6. Six Days
7. Mongrel…
8. …Meets His Maker
9. Right Thing/GDMFSOB
10. Monosylabik
11. Mashin’ On The Motorway
12. Blood On The Motorway
13. You Can’t Go Home Again
14. (Letter From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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