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02100843-0417tomzeTom Ze – Estudando O Samba – Continental, 1976

 

 

톰 제, 브라질, 그리고 세계화의 허와 실

바로 얼마 전 인상적인 월드컵 우승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브라질은 또 한차례의 경제 위기를 맞이하여 IMF로부터 무려 300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 금융을 받을 처지가 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만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는, 오랫동안 권력에 도전해 왔던 좌파 브라질 노동자당의 후보 룰라(Lula)가 마침내 승리를 쟁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설사 정권을 잡는다 해도 이른바 ‘정통 자유시장 경제’를 추구해 온 현존 우파 정부의 실정(失政)을 고스란히 떠맡은 데다, IMF 국제자본주의에게 시작부터 목줄을 잡힌 꼴이 될 테니 전망은 매우 어둡다 하겠다. 1990년대 후반의 한국과 상당히 흡사한 이 안쓰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다사롭고 부드럽게만 들리던 다수의 브라질 음악들조차도 쓰디쓴 뒷맛을 남긴다.

지난 번 브라질 특집에서 다룬 뜨로삐까이아가 1960-70년대 군사독재에 맞선 자유주의-보헤미안적 문화 운동이었다면, 잔혹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눈에 보이는 물리적 폭력보다는 얼굴 없는 ‘경제적 폭력’을 주로 휘두르는 21세기의 세계화된 자본주의 권력에 맞서서는 어떤 식의 대응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대응을 논하기 이전에, 과연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얼마만큼의 자각이 선진적인 문화예술인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 면에서 보면,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뜨로피까이아의 베테랑 톰 제가 작년 여름 자신의 투어를 ‘Globarbarism’으로 명명하면서 반(反)세계화의 기치를 든 것은, 그로부터 1년 동안 아르헨티나를 필두로 브라질, 우루과이 등 남미 곳곳으로 번져간 경제파탄 상황에 비춰 보면 선견지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적으로도 톰 제는 항상,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시대를 앞서나갔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뜨로삐까이아의 동료들이 잘 나가던 1970-80년대 동안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자포자기에 이른 톰 제의 음악 경력이 부활하는 게 일종의 ‘세계화’ 때문이었다는 건 다소 역설적이다. 브라질 음악에 눈독을 들여온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우연히 발견한 톰 제의 음악에 눈이 번쩍 띄어, 스스로 편집한 [Brazil Classics] 시리즈의 CD 다섯 장 중 둘을 톰 제의 음악에 할애한 것이 새 출발의 계기가 되었다. 당대 브라질 팬들에게는 기괴하게 들릴 뿐이었던 톰 제의 음악은 십 수년 후 ‘첨단’을 추구하는 북미 음악인들에게 매우 힙(hip)한 것으로 재평가받아서, 1999년에는 토터스(Tortoise)를 백밴드로 거느리고 미국 투어를 갖기도 했다. 그리고 북미 시장에서의 이런 때아닌 인기는 브라질 국내로 역수입되기에 이른다.

제목을 번역하면 ‘삼바 공부’ 혹은 ‘삼바 연구’쯤이 될 이 1976년 앨범은 데이비드 번이 처음 집어들었던 바로 그것인데, 여기 실린 열두 곡 중 셋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Brazil Classics]에 재수록된 걸 보면, 이 앨범이야말로 톰 제의 ‘세계 시장 경쟁력’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사실 뜨로피까이아 시절부터 꾸준히 내온 톰 제의 이전 작품들은 그의 음악적 개성과 독창성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잘 드러내주긴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 낡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반면, 여기에는 이후 포스트모던 팝을 예견하는 실험적인 곡들과 친숙하고 접근하기 쉬운 고전 삼바의 재해석이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간 부제를 빼버리면 수록곡 대다수가 1음절짜리 단어 하나를 달랑 제목으로 달고 있는 것도 이색적인데, 그 첫 곡인 “Ma”(사실 a 위에는 물결 모양의 틸다(~) 기호가 붙어 있다)는 퍼커션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혼성 코러스, 어쿠스틱 및 전기 기타, 그리고 브래스 섹션이 각자 동일한 악구(樂句)를 계속 반복하면서, 긴장감과 더불어 일종의 주술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게 단순한 삼바 앨범이 아님을 시작부터 분명히 한 셈이다. 세 번째 트랙 ‘Toc’는 거기서 더 나아가서, 스틸 기타, 퍼커션, 그리고 브래스 섹션이 쌓아가는 반복적이면서도 복잡한 리듬 패턴 위에, 필터로 걸러진 목소리와 전기 드릴로 추정되는 소음 등이 들락거리다가, 마지막엔 이 모든 것들이 톰 제의 발악과 죄다 뒤섞이면서 약 3분간 팽팽히 잡아당겨놓은 긴장의 실타래를 돌연히 뚝 끊어버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안또니우 까를로스 조빔의 고전 “A Felicidade”는, 초입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타악기와 약 30초 후에 난데없이 등장했다 곧 사라지는 브래스 섹션을 빼놓는다면 주앙 질베르뚜의 스탠다드 버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Mae” 또한 삼바 작곡가 엘Ens 메데이로스(Elton Medeiros)의 곡을 별 장난치지 않고 무난하게 불렀다. 마찬가지로 톰 제가 직접 작곡한 “So”는 전통 삼바의 달콤한 멜로디를 선사하며, “Se”는 우리 식 표현으로 하자면 거의 ‘뽕끼’에 가까운 센티멘탈리티를 드러낸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꿔서 빠르고 발랄한 리듬에 궁시렁거리는 추임새를 넣는 “Vai”나, 여성 코러스와의 주고 받기가 버트 바카락의 분위기마저 연상시키는 “Ui!”는 이전 앨범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곡들이다.

북미–>남미가 아니라 남미–>북미로, 그리고 다분히 비(非)동시대적으로 이루어진 톰 제의 ‘세계화’는 어떤 면에서 1990년대의 허황찬란한 이데올로기, 즉 미국 자본주의의 ‘성공적인’ 모델을 그대로 갖다 베껴서 전 세계가 번영에 이르는 것이 곧 세계화라는 환상을 깨는 일종의 반례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보다도 축구로 세계를 정복한 지 몇 달만에 경제 식민지 신세로 전락한 브라질만큼이나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허황됨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또 어디 있을까. 20020815 | 김필호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Ma
2. A Felicidade
3. Toc
4. To
5. Vai (Menina Amanha)
6. Ui! (Voce Inventa)
7. Doi
8. Mae (Mae Solteira)
9. Hein
10. So (Solidao)
11. Se
12. Ind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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