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메모리스 1965-1972: 키 보이스와 ‘부루 코메츠’, 동아시아 록 음악의 잊혀져 가는 기원을 찾아서 주1)

20020822120636-KeyBoysGold1991년에 서울음반에서 CD로 재발매된 [Key Boys Gold]의 표지. 1975년 킹/유니버어살에서 비닐 LP로 초판이 나온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재판이 발매된 바 있다.
지난 7월 말 한 시사주간지에 실린 기사는 몹시 충격적이었다. 간략히 말하면 “해변으로 가요”가 일본곡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해변으로 가요”는 1970년대 초에 발표된 이래 30년 이상 국민적 애청곡으로 자리잡은 곡 아닌가. 특히나 전주에서 “징지징지지지….”하는 기타 리프나 리드 보컬이 “해변으로 가요~”라고 선창하면 백킹 보컬들이 “해변으로 가요”라고 후창하면서 화답하는 노래는 ‘한 시대를 열었다’고 할 정도인데… 최근 유행하는 댄스가요도 아니고 이런 곡이 표절이라니…게다가 이 곡의 작곡가인 김희갑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사랑의 미로”같은 불멸의 가요를 만든 인물이다. 취향에 따라 관심의 정도야 다를 수는 있지만 그래도 ‘대가’라고 할 만한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혹시 김희갑을 ‘트로트 작곡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분이 1960년대 미 8군 무대에서 알아주던 기타 연주자이자 악단의 리더였다는 정보를 전한다) 그런 양반이 노후에 이게 무슨 구설수인가… 사태의 진상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원곡의 작곡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국계라는 사실로 위로를 삼아야 할까…

키 보이스 – 해변으로 가요(1971년 버전)
키 보이스 – 해변으로 가요(1983년 버전)

어쨌든 갑자기 “해변으로 가요”의 원곡을 듣고 싶어졌다. 집에 LP가 한두장 있는 것 같았지만 LP를 틀기가 갈수록 번거로워지고 CD로 한 장 정도 갖고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동네의 ‘판 가게’를 찾았다. 그렇지만 “옛날 음반은 없다”는 말만을 듣고는 서울 시내의 도매상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운 소리바다여. 아무튼 CD 1장을 찾았는데 서울음반에서 1991년 8월에 발매한 [Key Boys Gold]라는 음반이었다. 거기서 “해변으로 가요”는 7번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어, 근데 이상했다. 원곡과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중간중간 관악기 소리가 빽빽 울어대고 간주 부분의 오르간 소리도 왠지 예전에 들었던 상큼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해변으로 가요”와 더불어 키보이스를 대표하는 “바닷가의 추억”도 원곡의 아우라와 달랐다. 원곡의 미묘한 화음은 온데 간데 없었다. 특히나 기타 전주에 이어 나오는 여성 코러스는 ‘꽃봉오리 예술단’이 부르는 것 같았고 색서폰 소리도 왠지 ‘성인 취향’이었다.

키 보이스 – 바닷가의 추억(1969년 버전)
키 보이스 – 바닷가의 추억(1970년 버전)
키 보이스 – 바닷가의 추억(1983년 버전)

이게 원곡을 아예 새롭게 편곡해서 재녹음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마스터 테이프에 몇 트랙을 추가해서 다시 믹싱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원곡을 들을 수 있는 음반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그건 의외로 힘들었다. 한국의 음반시장에서 오래된 곡이 CD로 때깔 좋게 재발매되어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자세한 사정을 밝힐 수 없는 경로를 통해 원곡을 들어볼 수 있었다. 역시나 CD로 재발매된 것과는 달랐다. 그래서 이런 거창한 의문까지 들었다. 한국인들은 왜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싫어할까?

그런데 한국인들만 그럴까. 오늘 주제와 관련된 일본인들은 어떨까. 마침 일본에 다녀온다는 사람이 있어서 원곡을 연주했다는 ‘8인조 그룹 사운드’ 더 아스트로 제트(ザ·アストロ·ゼット)의 음반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불행히도 일정이 여유롭지 못한 관계로 아스트로 제트의 다른 음반은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0-70년대 일본에서 유명했던 몇몇 그룹 사운드의 음반들을 내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음반은 부루 코메츠(Blue Comets: ブル-·コメッツ)의 것이었다. 음반 제목은 [Past Masters 1965-1972](일본어 표기는 생략)이었고 더블 CD였다. 첫 번째 CD는 “Blue Comets Singles 1966-1972″이고 두 번째 CD는 “Blue Comets Rarities 1965-1972″였다. 문자 그대로 앞의 CD는 그들의 히트곡을 모은 곳이고, 두 번째 CD는 구하기 힘든 레코딩을 모아놓을 것이다. 트랙에 대한 설명으로 ‘최초 CD화’라든가, ‘미발표 라이브’같은 표기가 상세하게 붙어 있었다. 부루 코메츠는 “당시의 그룹 사운드 가운데 유일하게 NHK-TV 프로그램에 초대된 존재”이다. 당시는 일본에서도 그룹 사운드란 ‘장발을 하고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애들’ 정도로만 치부되었던 시기였고, 지금조차도 대중음악인이 NHK TV에 초대되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의 ‘당대적 지위’를 짐작할 만하다.

Blue Comets – 靑い瞳(日本語)
Blue Comets – ラヴ~ライト·ショウ
Blue Comets – ブル-·シャトウ
Blue Comets – さよならのあとで

20020820072350-BlueComets-PastMasters2000년에 발매된 부루 코메츠(ブル-·コメッツ)의 [Past Maters 1965-1972]의 표지
그런데 키보이스도 그런 지위는 비슷했다. 음반을 직접 들어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재즈와 로커빌리로 출발하여 비트(Beat)와 싸이키델릭(Pscyhedelic)을 거친 뒤 음악에 ‘뽕끼’가 많아진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런데 두 종의 CD는 때깔이 달랐다. ‘국산’ CD는 256컬러로 만든 것 같다면 ‘일제’ CD는 32비트로 만든 것 같았다. 부클렛(소책자)의 분량도 마찬가지다. 국산 CD의 부클렛은 달랑 한 장에 가사만 적혀 있었지만, 일제 CD의 부클렛는 펼쳐 보니 A3 크기가 넘는 커다란 종이였고 거기에 상세한 해설과 가사, 그리고 이들이 발표한 41장의 음반의 컬러 표지가 모두 실려 있었다(세어 보느라고 고생했다 -_-). 음질의 차이는 백견(百見)이 불여일문(不如一聞)이다. 원곡을 그대로 살리면서 디지털 감각에 맡게 다시 매스터링했다는 말이다.

물론 키보이스의 CD는 10년 전에 나온 것이니까 평면적인 비교는 부당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부루 코메츠의 CD는 이것 말고도 이전에 발매된 것이 있으므로 무조건 부당하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오히려 키보이스의 음반이 1991년 이후 발매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것이다. 키보이스가 아닌 다른 록 음반의 경우 재발매되고 있는 음반이 꽤 있고 특히 2001년 이후 ‘마이너 트렌드’로 자리잡는 조짐이 보이지만, 음반의 컨텐츠(음질)이나 포장의 퀄리티가 혁신적으로 좋아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일본인의 ‘깨끗함’과 ‘수집’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착은 가끔 질릴 때가 있다. 부루 코메츠의 음반의 경우도 음질이 너무 쌔끈하고 깔금해서 ‘구룹 사운드’ 특유의 거친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이건 축구만 봐도 그렇다. 경기력, 저변 그리고 특히 기본기 면에서 한국보다 우월하면서도 막상 중차대한 경기에서는 한국에 뒤지는 게 일본이다. 그걸 보면 일본의 ‘정석’의 나라고, 한국은 ‘괴력’의 나라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중간쯤 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는 어설픈 생각도 하게 된다. 그건 가능할까. 어쨌든 그게 ‘8. 15 광복’을 맞이하는 나의 다짐이다. .

이거야 뭐 개인적 다짐일 뿐이다. ‘집단적’ 다짐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에서 ‘영미 대중음악으로부터 영향받아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들’을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록’과 ‘니뽄 로꾸(日本 ロック) 혹은 ‘한국 포크(pokku)주2)와 ‘니뽄 훠꾸(日本 フォ-ク)’를 별도로 고찰하기보다는 ‘동시비교’하는 관점을 세워보자는 다짐이다. 단, 이번에는 그냥 맛배기로만 하고 본격적 작업은 다음 번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일본 음악에 대한 내공이 부족한 관계로 ‘여건이 허락하는 만큼만’ 해야 할 것 같다.

키 보이스 – 이별의 새벽길(Ticket to Ride) (1965-6년 경으로 추정)
Blue Comets – Welcome the Beatles (1966년)

20020821093941-KeyBoys(142)초기 키보이스…눈부시게 젊었던 시절의 모습. 좌측부터 김홍탁, 차도균, 윤항기, 차중락, 옥성빈. 이 글에서 언급하는 ‘후기 키보이스’와는 라인업이 전혀 다르다.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만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1965년의 부루 코메츠는 그 뒤의 부루 코메츠 사이의 멤버나 라인업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1965년의 키보이스는 그 뒤의 키보이스와 많이 다르다. 간략히 말하면 후기 키보이스가 조영조가 이끈 그룹이라면, 전기 키보이스는 김홍탁이 이끈 그룹이다. 게다가 전기 키보이스 출신의 윤항기는 뒤에 키 브라더즈라는 그룹도 결성했다. 헷갈린다고? 야드버즈(The Yarbirds)와 크림(Cream)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인맥’을 쌈빡하게 외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헷갈릴 것도 없다. 어쨌든 다음번 글에서는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20020815 |신현준 [email protected]

주1) 이 글은 [야후 매니아]에 실리게 될 글의 확대·수정 버전입니다.[back]
주2) ‘pokku’라는 표기는 월드 뮤직의 안내서 [The Rough Guide to World Music]을 따른 것이다. 왜 ‘folk’가 아니라 ‘pokku’일까. 일단 그게 한국인의 발음 습관에 가깝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서양인의 관점에서 ‘Korean folk music’는 한국에서 ‘포크’라고 부르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부연하자면 ‘한국 포크’는 민요나 민속음악이 아니고, ‘가든’이 ‘garden’과 다르듯, ‘포크’는 ‘folk’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논하기로 하자. [back]

관련 글
Blue Comets [Past Masters: 1965-1972] 리뷰 – vol.4/no.16 [20020816]
키 보이스 [Key Boys’ Soul & Psychedelic Sound] 리뷰 – vol.4/no.16 [20020816]
키 보이스 [보칼 No.1 키 보이스 특선 2집] 리뷰 – vol.4/no.16 [20020816]
키 보이스 [스테레오 앨범 Vol. 3] 리뷰 – vol.4/no.16 [20020816]

관련 사이트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전기) 키보이스 바이오그래피
http://www.hankooki.com/whan/200106/w20010627180039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후기) 키보이스 바이오그래피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0519303661510.htm
“해변으로 가요” 표절 관련 기사
http://weekly.chosun.com/news/html/200207/200207290034.html
블루 코메츠 인덱스
http://plaza8.mbn.or.jp/~60net/bc_ind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