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22120514-stereo키 보이스 – 스테레오 앨범 Vol. 3 – 유니버어살, 1971

 

 

‘인기 그룹 사운드’의 정체성의 혼란과 확립의 동시 발생

1970년대로 접어든 이후에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트로트의 아성은 요지부동이었다. 여섯 살 짜리 꼬마 박혜령의 “검은 고양이 네로”의 세몰이가 얼마간 지속되었지만 단기간의 이상기류였을 뿐이었다. 이어 1971년 초에는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가 발표 1년 만에 정상에 등극했고, 펄 시스터즈가 신중현과 다시 손잡고 내놓은 [속 님아]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포크 가수’의 일부도 주류에 등극하면서 주류 가요계에 조그만 균열을 내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1960년대 말을 뜨겁게 달구었던 ‘엘레키 그룹 사운드’ 음악의 흐름은 미약해져 있었다. 물론 당시 양대 인기 그룹이라 할 수 있는 히 식스와 키 보이스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히 식스의 “초원의 사랑”이 차트에 올라 있었던 그 때 이에 질세라, 키보이스는 1970년 11월 초까지 상위 차트에 머물던 “바닷가의 추억” 자리에, 11월 말 “님 떠나갈 시간”을 대신 올려놓으며 1971년으로 해를 넘기고 있었다.

“님 떠나갈 시간”이 수록된 이 [스테레오 앨범 Vol. 3] 앨범의 표지에는 하얀색 양복을 입은 멤버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들리는 말로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비싼 양복점에서 맞춘 옷이라고 한다. 이는 당시 이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정보다. 이들은 한국의 ‘록 그룹’으로서는 드물게 이미 ‘아이돌 스타’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음반에 수록된 음악은 이제까지 키 보이스에게 슬쩍 드리워져 있던 ‘뽕끼’가 완연해 졌음을 느끼게 해 준다. 이들의 ‘록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준 음반이라고나 할까…

물론 다른 면에서 이 앨범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커버곡이 아닌 창작곡 중심으로 ‘독집 앨범’을 내는 관습을 정착시켰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작곡자가 키보이스 멤버들 본인이 아니라 김영광이라는 기성의 직업적 작곡가였다는 문제는 계속 남는다. 작곡가의 스타일이 음반의 사운드를 지배하던 당시의 관습은 단지 솔로 가수 뿐만 아니라 록 그룹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기’만 있다면 말이다.

이 앨범의 대표곡은 “님 떠나갈 시간”이다.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것처럼 기대감을 잔뜩 불어넣는 벤처스 스타일의 베이스 기타의 리프가 등장하지만, 그 직후 뽕끼 가득한 단조의 선율과 현악기의 편곡이 이어진다. 이보다 한술 더 떠 ‘완전 트로트’에 가까운 곡들도 등장한다. “예전엔 깊은 정인데”나 “잊었다 말해도”는 단순히 선율이나 사운드 뿐만 아니라 ‘뽕짜자 뽕짜’ 하는 리듬마저 삽입되어 있다. 가사 역시 ‘정’, ‘미련’, ‘추억’ 등 추상적이고 성인 취향의 단어가 등장하고, 메시지 역시 ‘이별의 슬픔’가 대부분이다. 가사도 트로트의 전통적 코드를 따르고 있다는 말은 중언부언일 것이다.

악기 면에서도 록 그룹의 편성 이외에 ‘악단’에서 사용된 악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님 떠나갈 시간”, “예전엔 깊은 정인데” 등에서는 ‘재래 가요’를 많이 들은 사람이라면 너무도 익숙할 현악기 편곡이 등장하고, “미련 없이 떠나도”에는 약음기가 사용된 트럼펫의 흥겨운 전주가 들리고 “옛정”에는 플루트가 사용되는 등 관악기도 많이 도입되어 있다. 여러 악기의 도입과 다양한 편곡 그 자체가 문제될 건 없지만 악기의 사용법은 매우 전통적이다. 그 결과 전체적 사운드가 ‘일렉트릭’한 느낌이 적고 관습적인데, 중창 스타일의 보컬도 여기에 한몫 거드는 요인이다. 이전의 히트곡들 “바닷가의 추억”과 “정든 배”를 연주곡(당시 용어는 ‘경음악’)으로 재녹음하여 수록한 것도 ‘어떤 관습’을 확인해 줄 뿐이다.

물론 미드 템포의 ‘고고 리듬’을 가진 “희야”는 강력한 기타 사운드를 선보이고, 유일하게 조영조가 작곡한 곡인 느린 템포의 “오! 당신”은 ‘키 보이스의 숨겨진 명곡’이라고 할 만한 곡이다. 그렇지만 이런 곡들도 이들의 예전의 히트곡을 능가할 만한 무언가는 없다. 그래서 “오! 당신”에 나오는 “흘러간 지난 추억 가슴 깊이 사무칠 때 / 다시 한번 외쳐 보고픈 내게로 돌아와요”라는 가사는 밴드의 전성기에 대한 향수를 표현했다는 ‘착각’까지 던진다.

물론 이상의 평가는 ‘특정한 취향’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므로 편파적일 수 있다. 이런 시도에 대해 ‘트로트 록’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평을 내릴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본인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는 검증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런 시도가 ‘아이돌 스타’로 지위가 급상승된 이후 인기 유지를 위해 제작자가 선택한 방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그 점에서 이 음반의 제작자 역시 킹박이라는 사실은 ‘히트 메이커’로서 그의 양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왜 하필 작곡가로 김영광을 선택했을까). 게다가 이런 ‘토착화’의 시도가 그룹으로서 이들의 미래를 보장한 것도 아니고, 후배들에 의해 존중받은 것도 아니라면… 그래서 ‘한국 최초의 인기 록 그룹’인 (후기) 키보이스는 성공적 음악인이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제어하지 못하게 만드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부조리함의 표본이기도 하다. 20020817 | 최지선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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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선이 초안을 쓰고 신현준이 정리함.

수록곡
1. 님 떠나갈 시간
2. 희야
3. 예전엔 깊은 정인데
4. 옛정
5. 미련없이 떠나도
6. 바닷가의 추억 (경음악)
7. 오! 당신
8. 타인이 된 당신
9. 추억
10. 이별의 순간
11. 잊었다 해도
12. 정든 배 (경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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