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22021416-KeyBoysSoulPsychedelic키 보이스 – Key Boys’ Soul & Psychedelic Sound – 유니버어살, 1969

 

 

소울 & 싸이키를 통해 인기 그룹으로 거듭나다

키보이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한국 최초의 대중적인 록 그룹’일 것이다. 여기서 ‘최초’와 ‘대중적’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데, 이유는 ‘최초’라는 규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기준이 그룹 결성인지, 음반 발매인지도 따져 보아야 하고, 나아가 ‘창작’인지 ‘번안’인지 ‘커버’인지도 따져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키보이스의 ‘두 개(혹은 그 이상)의 키보이스’가 존재한다. 편의상 ‘전기 키보이스’와 ‘후기 키보이스’로 구분하는데, 간략히 묘사하면 ‘전자는 김홍탁(기타)이 이끌었고, 후자는 조영조(기타)가 이끌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보다 정확한 고증을 거쳐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단, 지금 소개하는 음반이 ‘후기 키보이스의 첫 번째 음반’이고 이때 후기 키보이스란 ‘조영조가 이끈 키보이스’라는 사실만큼은 확인해 두자. 이때의 라인업은 조영조(리드 기타), 장영(리듬 기타), 박명수(베이스), 우승기(드럼)이고, 보컬은 당시의 ‘보컬 그룹’의 관행대로 멤버 대부분이 참여했다. 이를 통해 전기 키보이스의 멤버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기 멤버들 중 김홍탁은 1968년 탈퇴하여 히 파이브(뒤에는 히 식스)를 결성했고, 윤항기도 1969년 탈퇴한 뒤 키 브라더스를 만들었다. 옥성빈 역시 1969년 9월 시민회관 공연 후에 탈퇴했다.

이렇게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라인업으로 구성된 키보이스는 이 음반을 통해 인기 그룹으로 거듭나고 1970년대 중반까지 인기를 이어나간다. 그렇지만 이 음반은 완벽한 의미에서 키보이스의 ‘독집 앨범’이 아니라, (요즘 용어로 말한다면) 키보이스와 임희숙의 ‘스플릿 음반’이라는 사실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즉, 앞면은 키보이스의 노래와 연주가, 뒷면은 임희숙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정확히 말하면 뒷면 마지막 곡은 “The Music Played”의 번안곡이고 하남궁이 불렀다). 게다가 1969년 초판이 나온 뒤 다음 해에 여러 번의 재판(혹은 삼판)이 발매되었고, 그 중에는 내용물은 동일하지만 임희숙이 표지에 등장하는 판본도 존재한다. 어떤 판본은 더블 재킷으로 이루어지고 일련번호에도 차이가 있다. 이는 [음반법](1969년 제정되어 1970년부터 실시)조차 아직 정립되지 않고 있던 당시 음반업계의 관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임과 동시에 이 음반의 ‘인기’를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음반의 보다 큰 의의는 키보이스의 음반으로서는 처음으로 커버곡이나 번안곡이 없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전기 키보이스의 경우 ‘번안곡 중심의 커버 밴드’였고, 애드 훠(The Add 4)의 경우 창작곡을 발표했지만 시장의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면, 이 음반은 전기 기타 중심의 보컬 그룹이 드디어 시장의 진입장벽을 돌파한 경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때 ‘창작’은 그룹의 내부가 아니라 그룹의 외부가 담당했다. 앨범 표지에 큰 글씨로 적혀 있는 ‘김희갑 작편곡집’이라는 글자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사후적 평가일 뿐이지만, 주류로의 돌파를 위해서는 ‘직업적 작곡가 시스템’이라는 당시 주류 가요 시스템과의 ‘협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김희갑의 작곡은 보컬 그룹의 속성을 잘 고려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즉, 그룹의 속성과는 무관하게 작곡한 곡을 ‘한번 연주해 봐라’라고 내던지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대중적 감각을 체득한 직업적 작곡가답게 보컬 음역의 범위가 넓지 않고 멜로디도 부드러운 라인을 타고 있다. 거기에 퍼즈(fuzz) 이펙트를 사용한 기타와 화려한 키보드의 편곡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상큼함’을 머금고 있다. 이 두 개의 악기를 효과적으로 배치한 편곡이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당시 한국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구성하는 악기는 퍼즈 기타와 와와 페달, 오르간 등이다). 특히 업템포의 리듬 위에서 퍼즈 기타가 이끌어가는 “그 사람”은 미 8군 무대에서 오랫 동안 연주인의 경력을 가진 조영조의 ‘실력’을 볼 수 잇는 대목이다. 보컬 면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는데, 기존의 그룹들이 ‘제창’을 한 반면 이들은 ‘중창’을 한다. 또한 퍼커션이 사용된 “그립다 생각하니”는 라틴 음악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이 부분 역시 기타 연주인의 경력을 거친 김희갑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대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해도 나머지 곡들의 사운드는 지금 듣기에는 ‘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이틀곡이자 키보이스를 상징하는 ‘바다’를 처음으로 노래한 “바닷가의 추억”의 경우 ‘그때 무얼 보고 싸이키델릭하다고 했을까’라는 의문을 던질 정도로 원만하게 편곡되어 있다. 1년 뒤 [키보이스 특선 2집]에서 이 곡을 다시 편곡해서 녹음한 사실은 이때의 ‘불만’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록 그룹으로서 키보이스의 혁신적 사운드를 마음 놓고 구사했다기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와의 절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스타일의 기타 인트로와 ‘가요풍’의 중창이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멀어져간 사랑”도 ‘이들이 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보다는 조금 다른 것이었을 것 같다’는 추측을 낳는다.

그런데 앨범의 제목이자 홍보 문구였을 ‘Soul & Psychedelic Sound’에서 ‘사이키델릭’은 대충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지만 ‘소울’은 무엇일까. 뒷면에 수록된 임희숙이 보컬을 맡고 키보이스가 연주한 곡들의 경우 악기연주와 편곡은 앞 면과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앞 면의 키보이스의 노래와 달리 임희숙은 허스키한 음색과 넓은 음역으로 멜로디를 소화해 내지만, 이것만 가지고 소울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혹시 ‘소울은 창법(보컬 스타일)이고, 사이키델릭은 사운드 프로듀싱’으로 여긴 것일까. 아니면 ‘소울&싸이키델릭’이라는 것이 당시 한국에서 전개된 음악적 무브먼트를 지칭하는 용어였을까.

여기서 이 음반의 제작자가 ‘킹박(박성배)’이라는 사실에 잠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킹박은 ‘신중현 사단’에 속한 가수들 대부분, 그리고 뒤에는 양희은, 조용필, 이문세의 데뷔를 일구어낸 배후의 실력자다. 거기에 외국의 트렌드를 민감하게 흡수하면서도 ‘히트 가능성’을 생득적으로 파악하는 인물이라는 세평을 믿는다면, 멤버가 모두 바뀐 키보이스를 ‘포장’하는 위의 문구 역시 ‘킹박의 작품’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자료를 뒤지면 ‘생음악 살롱’과 ‘고고 클럽’에서 ‘엘레키 그룹’이 연주하던 시끄러운 사운드를 ‘소울 싸이키 사운드’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게 킹박이 만든 ‘상업적 용어’가 미디어로 번진 것인지, 아니면 역으로 미디어의 용어를 킹박이 재활용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 ‘소울’이든, ‘싸이키델릭’이든, ‘소울&싸이키델릭’이든 당시의 단어들도 ‘모던 록’, ‘테크노’, ‘R&B’같은 요즘의 단어들처럼 ‘한국식 와전’의 또하나의 사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도 미궁 속을 헤매고 있다. 그러리라고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음반은 ‘비틀스의 시대가 끝나가면서 영미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조류를 동아시아에 살던 음악인들이 어떻게 수용했는가’를 느끼기 위한 텍스트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현충일을 빼고 매일같이 연주했다’는 당시의 그룹들이 청중 앞에서 연주했던 음악이 음반업계를 통해 어떻게 각색되었는가도 느낄 수 있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1990년대 중반 델리 스파이스와 크라잉 넛이 홍대앞 클럽에서 연주하던 사운드를 직접 경험하는 것과 그들의 음반에 담긴 사운드를 듣는 것은 ‘분명히 관련이 있지만 무언가 다른 것’ 아니었는가. 20020817 | 송창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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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훈이 초안을 쓰고 신현준이 정리함.

수록곡
1. 바닷가의 추억 – 키보이스
2. 그 사람 – 키보이스
3. 그립다 생각하니 – 키보이스
4. 멀어져간 사랑 – 키보이스
5. 금잔듸 – 키보이스
6. 그대 목소리 – 임희숙
7. 밤의 장미 – 임희숙
8. 왜 울어 – 임희숙
9. 말로만 사랑하는 당신 – 임희숙
10. 진정 난 몰랐네 – 임희숙
11. 음악은 흐르는데 – 하남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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