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04034849-coralCoral – The Coral – Deltasonic, 2002

 

 

쿨의 시대에 쿨하기를 거부하기

축구가 음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축구에서는 박지성이나 이을용 같은 친구들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대중음악계에서는 아무리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촌티가 줄줄 흐르는 외모로는 스타가 될 가능성이 ‘0’에 가깝다. 정치적 올바름과 인권의 대변자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과 달리 21세기 초의 대중음악계는 사실 ‘쿨’과 ‘섹시’의 원칙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파시스트 체제다. 이런 상황에서 농사를 짓거나 고깃배나 타면 딱 어울릴 듯한 외모의 청년들이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를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일이다. 더욱이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쿨’의 기본공식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고리타분하고 기괴한 것이라면 이 현상은 더욱 불가해한 것이 된다. 상상해보라. 박지성이나 이을용 같은 외모의 젊은이들이 밴드를 결성해 “새타령”을 데뷔 곡으로 내놓는다면 도대체 누가 그들을 지지하겠는가?

리버풀 출신의 6인조 밴드 코럴(The Coral)은 요즘 보기 드물게 쿨과는 담을 쌓은 청년들이다. 이들은 외모에는 도대체 신경을 쓰려고 들지 않는다. “음악만 잘하면 누구든 멋있게 보이는 법”이라는 것이 이들의 변이다. 하긴 월드컵 이후 박지성이나 이을용의 외모에 대해 시비 거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의 안티 쿨 노선은 비단 외모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들은 철저하게 쿨한 것을 피해 다닌다. “러브(Love)의 [Forever Changes]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Kind Of Blue]처럼 영원히 간직될 위대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라는 이들의 소망은 이들이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들만큼 시대착오적이다. 1960년대에나 통용될 법한 이런 식의 구식 음악관은 오늘날의 세태에서는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토속적인 색채를 짙게 풍기는 이들의 음악적 선택 역시 잠재적으로는 재앙을 자초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모든 시대착오와 재앙의 씨앗들은 코럴의 손끝에서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고 만다.

코럴의 데뷔 앨범을 평하는 데는 “놀랍다”는 한마디면 족하다. 그것은 시대적 맥락이나 음악적 조류와 전혀 무관한 돌연변이라서 놀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대한 음악적 흥분을 안겨주기에 놀랍다. 개인적으로 지난 10여년간 이렇게 훌륭한 앨범은 접해보지 못한 것 같다. 당연히 영국의 미디어도 이 앨범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음반을 다루는 방식은 과거 스트록스(The Strokes)나 바인스(The Vines)의 경우와는 양상이 좀 다르다. 코럴의 앨범은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어내기 보다는 찬반을 양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의 음악이 무모할 정도로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음악깨나 듣는다는 사람들에게 독창성은 음악을 평가하는 가장 흔하고 원론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갖 딜레마와 모순으로 가득 찬 기준이기도 하다. 독창성에는 우선 ‘얼마나 독창적일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독창성이 독창성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청취자의 수용능력 한계를 절대로 벗어나서는 안된다. 그 한계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창적이라고 ‘인정 받는’ 음악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별로 독창적이지 않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독창적일 것인가’의 문제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음악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좋은 음악이라는 보장은 없다. 음악적 주장은 기본적으로 ‘말이 돼야’ 하는 것이다. 누가 “홍석천은 마초다”라는 주장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남들이 같은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 주장은 독창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넌센스에 불과한 것이다.

평단의 지지를 받는 쿨한 밴드가 되는 것은 갈수록 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시험문제 족보’같은 모범답안이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비틀즈(The Beatles)를 근간으로 삼아 기초를 다진 뒤 비치보이스(The Beach Boys),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스투지스(The Stooges), 라몬스(The Ramones), 스미스(The Smiths), 픽시스(Pixies),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 스코트 워커(Scott Walker) 등에서 입맛에 따라 선택해 적당히 버무리면 평단은 열광하게 돼 있다. 평단은 이미 고도로 제도화된 기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재료를 투입하면 언제나 기대되는 산출을 뱉어낸다. 근래 들어 평단의 지지를 받는 밴드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이유에서 이러한 규범적 취향에 따르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 될 수 밖에 없다. 코럴의 앨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이 양분되어 나타나는 것은 모범답안을 철저히 거부하는 이들의 음악을 평단 일부가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1년에 이들의 첫 싱글 “Shadows Fall”이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평단의 대다수는 이들의 음악에 대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론가들의 머리 속에 프로그램된 공식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이상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매체에서 그 곡을 ‘금주 최악의 싱글’로 선정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평단의 태도가 바뀌는 데는 그로부터 1년 남짓의 시간이 소요되어야 했다.

코럴이 채용하는 음악적 재료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척 폭 넓고 참신하고 개성적이다. 영국 포크, 그리스 민속음악, 코사크 무곡, 웨스턴, 스카, 블루스, 스윙재즈, 사이키델릭, 마일스 데이비스, 캡틴 비프하트(Captain Beefheart), 터틀스(The Turtles)… 남들이 좀처럼 손대지 않는 음악들을 끌어들여 록 음악의 범위를 확장한 점도 칭찬할만 하지만, 인디판의 먹물 밴드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예술합네’하는 겉멋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그렇게 반가운 일일 수가 없다. 이들의 음악에서 발견되는 것은 명쾌하고 단일한 비전, 음악적 목표에 대한 정열적인 추구 그리고 음악에의 전면적인 헌신이다. 이들은 결코 개인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60년대의 위대한 절충주의자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였다. 모던포크, 컨트리, 블루스, 재즈, 바로크, 사이키델릭, 터키 민속음악 등을 종횡무진 섭렵했던 칼레이도스코프의 음악은 확실히 코럴의 음악적 접근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비교적 점잖은 음악을 구사했던 칼레이도스코프와 달리 코럴은 열정적이고 힘있고 박력이 넘치는 음악을 연주한다. 이러한 차이는 칼레이도스코프의 음악이 포크를 근간으로 했던 반면 코럴의 음악은 로큰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 록 음악에서 독창성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한 채 살아왔다. 이제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방어심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럴의 데뷔 앨범은 나의 이러한 부정적 태도를 한 순간에 무너뜨려 버렸다. 마음만 먹는다면 록 음악은 아직도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The Coral]은 이러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앨범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면에 걱정과 두려움을 동반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과연 코럴의 이 앨범이 록 음악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찻잔 속의 폭풍에 불과할 것인가? 이들의 후속 앨범이 나올 때까지 또 다시 기나긴 실망의 세월을 보내야 하나? 이들의 후속작마저 기대를 저버리면 그 때는 어떻게 하나? 물론 이런 식의 근심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소모적 행동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음반이 음악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일과적인 것으로 사라지고 만다면 그것 또한 부당한 일임에 틀림 없다. 어쨌든 이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볼 문제다. 일단은 이런 저런 생각들을 모두 접어두고 그냥 이들의 앨범에 푹 빠져들고 싶다. 그리고 이들에게 아무 조건 없는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참으로 천재적인 밴드가 탄생했다. 브라보! 20020730 | 이기웅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Spanish Main
2. I Remember When
3. Shadows Fall
4. Dreaming of You
5. Simon Diamond
6. Goodbye
7. Waiting for the Heartaches
8. Skeleton Key
9. Wild Fire
10. Bad Man
11. Calendars and Clocks

관련 사이트
The Coral 공식 사이트
http://www.thecoral.co.uk
The Coral 팬 사이트
http://www.thecoral.cjb.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