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33785a1-P1.tiffOasis – Heathen Chemistry – Sony, 2002

 

 

성숙과 전진을 함께 아우르며

[Heathen Chemistry]는 오아시스(Oasis)가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2000) 이후 2년만에 내놓은 음반이다. 우선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들의 대표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1995)를 들으며 신선한 감흥을 느낀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7년 전이었다니. 물론 이 음반 이후 내놓은 오아시스의 음악을 아주 듣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강렬한 이미지에는 (즉 기대에는) 훨씬 못 미쳤던 게 사실이었고, 그러다 보니 잡다한 일상사에 치여 점차 잊혀져 갔다. 즉 오아시스는 더 이상 ‘관심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Heathen Chemistry]는 예전에 껄렁하긴 했지만 인기 많고 잘 나갔던 옛 친구가, 잊을만할 때 오랜만에 보내온 안부 메일도 같은 느낌을 안겨주는 음반이다.

이젠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와 리엄 갤러거(Liam Gallagher) 형제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악동 행각이 먼 옛날의 ‘전설’만 같다. 블러(Blur)와 브릿팝(Britpop) 제왕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펼치던 (사실 언론이 과도하게 부채질한 측면은 많지만) 일도 떠오른다. 하지만 옛날은 옛날. 이제 영미 팝 음악계에 다시 한번 나서보겠다는 오아시스에게, 옛 부귀영화의 노스탤지어만을 강요하는 건 본질에 어긋나는 짓일지도 모른다.

[Heathen Chemistry]는 예전 무소불위의 명성을 탈환하려는 오아시스의 ‘심기일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음반이다. 이들이 슈퍼스타의 지위를 누리게 한 주요 동력, 즉 활기에 넘치면서도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능력은 여기서도 빛 바램 없이 발휘되고 있다. 왕년에 이들에 대해 매스컴이 (좀 ‘오버’라는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퍼부었던 찬사, 즉 “세기말의 비틀즈(The Beatles)”라는 클리셰를 다분히 의식한 듯, 이번에도 비틀즈에 대한 ‘오마주’가 대거 등장한다. 비틀즈 특유의 미드 템포 행진곡이 인트로를 장식하는 “Force Of Nature”나 어쿠스틱 기타와 탬버린이 찰랑거리는 “Songbird”, 제목부터 어디서 많이 들은 듯한 “She Is Love”, 그리고 “Born On A Different Cloud” 등은 여전히 비틀즈의 ‘후손'(그것이 적자인지 서자인지, 여기서 논하기는 좀 부적절하다)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노래들이다. 조금 더 부언을 하자면, 여기서 이들이 추구하는 ‘비틀즈’란, 존 레넌(John Lennon)보다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에센스를 훨씬 더 참고한 듯 보인다(물론 리엄 갤러거의 코맹맹이 보컬은 존 레넌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 음반이 ‘비틀즈 찬양’으로만 일관한 건 아니다. [Heathen Chemistry]를 들으며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점은, 이젠 오아시스의 음악 세계가 상당히 ‘성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창 잘 나갈 때, 이들은 성숙이라는 단어랑은 거리가 멀지 않았었나?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못된 행동거지만 답습을 하며 이게 ‘브리티쉬 록의 자랑스런 전통’이라 으시대던 과거를 청산하려는 듯, 여기서는 훨씬 완숙하고 여유만만한 기량을 풀어놓고 있다. 그럼에도 “The Hindu Times”나 “Hung In A Bad Place”를 들어보면, 이들이 첫 앨범 [Definitely Maybe]에서 보여줬던 거칠고 박력 넘치는 하드 록의 세계로 복귀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오아시스의 결연한 의지로부터 나온 산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트랙들에서조차 예의 ‘여유’가 풍겨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오아시스에게 성숙이라는 단어는 접수가 잘 되지 않는 낯선 매치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이제 조금 있으면 활동한지 10년을 넘기게 되는 ‘베테랑’이 아닌가? ‘중견’으로서 풍겨 나오게 마련인 노련함은, 아무리 방약무인을 이미지 메이킹의 으뜸으로 고수하던 이들로서도 어떻게 막을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을 인기인으로 만든 결정적 요소인 천방지축 껄렁함을 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Heathen Chemistry]를 자세히 들어보면, 이와 같은 상반된 두 가지 요소들이 자연 팽팽한 긴장을 이루며 전개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Stop Crying Your Heart Out”이나 “Little By Little”을 들어보면, 이들이 “Don’t Look Back In Anger”나 “Wonderwall” 등으로 확고하게 쌓아올린 “록 발라드의 절대 강자”라는 아성을 여전히 지키려 고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음반은 단순히 성숙이라는 이름 아래 재포장된 ‘그 때 그 노래’ 모음집에 불과할 것인가? 물론 그렇게만 보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싸이키델릭 록을 표방한 “A Quick Peep”이나 하드 블루스 록 넘버 “Better Man”을 들어보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려 애쓰는 오아시스의 노고가 엿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발전’의 한 양상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들의 고유한 스타일을 비교적 고스란히 지속시키면서도 한 걸음 전진시키려는 시도까지 수행하는 이들의 면모는 어떻게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다. 이들의 ‘스타 파워’가 아직은 약발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브릿팝이라는 유행 자체가 이제는 ‘회고’의 대상으로 멀어져 가는 오늘날 보면 더욱 주목할 만 하다. 이들의 행보가 어떻게 될 것인지, 즉 ‘불멸’의 위치로 가느냐, 아니면 ‘그 시절 명가수’로 그치고 마느냐는 좀 더 두고봐야겠다. 여하튼 [Heathen Chemistry]가 여러모로 몹시 흥미진진한 음반임엔 틀림없다. 마치 홀로 사막을 떠돌다가 예상치 못하게 만난 ‘오아시스’처럼, 청량감을 준다. 물론 그 오아시스의 샘물이 몸에 좋은 생수인지 아니면 복통을 일으키는 폐수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20020721 | 오공훈 [email protected]

7/10

수록곡
1. The Hindu Times
2. Force Of Nature
3. Hung In A Bad Place
4. Stop Crying Your Heart Out
5. Songbird
6. Little By Little
7. A Quick Peep
8. (Probably) All In The Mind
9. She Is Love
10. Born On A Different Cloud
11. Better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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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sis 공식 사이트
http://www.oasisi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