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골라놓고 나니 [weiv] 독자들의 까다로운 취향에는 다소 식상할(!) 것이 분명한 곡들만 나온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름엔 편하게 듣기 좋은 노래가 최고야’라는 생각으로, 혹시라도 이 곡들 중 여러분의 추억을 건드릴 만한 노래(혹은 뮤지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얄팍한 기대로, 숨어 있는 명곡은 다른 필자분들이 훨씬 잘 찾아서 소개해 드릴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냥 버텨볼 생각입니다.

1. Gorky’s Zygotic Mynci – This Summer’s Been Good From The Start
적어도 저는, 이번 여름이 출발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분들은 그랬길 바랍니다. 출발이 안 좋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좋을 수 있겠지요. 여름은 갈수록 길어지니(조만간 한국이 건기-우기의 구분이 분명한 아열대성 기후가 될 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회할 시간은 충분할 듯합니다.

2. Pet Shop Boys – Delusions Of Grandeur
다음에 고른 디페쉬 모드와 더불어, 펫 샵 보이스는 B-사이드에서도 정규 음반 수록곡과 맞먹는 양질의 곡들을 만들기로 유명합니다(오죽하면 B-사이드 모음집인 [Alternative]가 정규 음반 이상이라는 소리를 들을까요). 도입부의 뿜빠뿜빠 혼 섹션이 인상적인 이 곡 또한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에 틀어도 먹힐 법한 필살기 중 하나입니다.

3. Depeche Mode – Sea Of Sin
[Violator]의 첫 싱글이었던 “World In My Eyes”의 B-사이드로 수록된 곡입니다(여기에는 그들의 음울한 사도 마조히즘 취향이 드러나는 “Happiest Girl”도 실려 있지요). 창작력의 절정에 도달해 있었던 시기였던 만큼 이 곡 또한 정규 음반에 넣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만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소 무겁고 텁텁하지만 중독적이면서도 퇴폐적인 비트는 여름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Talking Heads – Road To Nowhere
귀재(鬼才) 데이빗 번(David Byrne)이 이끌던 토킹 헤즈의 말년 히트곡입니다. 행진곡풍의 리듬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흐르는 고색창연한 멜로디, 터질 듯 불어대는 색소폰 소리가 흥겨움과 묘한 멜랑콜리를 동시에 안겨줍니다.

5. Billy Joel – Scenes From An Italian Restaurant
지금이야 (툭하면 취소되는) 공연 소식으로 간간이 근황을 듣는 것이 전부지만, [The Stranger]를 발매했을 당시의 빌리 조엘에게는 분명 1980년대 이후 그가 내놓은 ‘성인 취향’ 발라드와는 다른 의미의 ‘성인 취향’이라는 것이 있었던 듯합니다. ‘뻔한 걸 뻔하지 않게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네요. 중반부 이후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도 언뜻언뜻 잡히는 ‘도시인의 고독’이 인상적입니다.

6. Roxy Music – She Sells
실은, 이 곡은 음반 커버 때문에 골랐습니다. 암만 좋게 봐도 사이렌은 아닌 아가씨가 바위에 찰싹 붙어서 누워 있는, 맥주 광고용 달력 같은 그 커버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놀라움을 잊을 수 없어서이지요(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들 전성기 시절의 음반 커버는 다 그렇더군요-_-). 피아노가 이끄는 간결하면서도 절묘한 도입부는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7. Pulp – Do You Remember The First Time?
여름이 사랑의 계절이라면 그건 여름에 깨지는 커플의 수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겠지요. 실연에 대한 이보다 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몸부림을 보기도 힘들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건 정말, 내 얘기라고 하더라도 웃길 듯합니다.

8. Suede – The Asphalt World
알고 있습니다. 이런 ‘끈적거리는’ 음악이 여러분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또 다른 땀으로 씻어내게 할 것이란 것은. 하지만 이건 정말 ‘개인적인’ 선곡이라는 변명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습하고 또 습한 늪 밑에 가라앉아 손만 내민 채 결코 빠져 나올 생각을 않는 자폐아 위에 떠도는 이 후덥지근한 아우라는 분명 길고 긴 어느 여름밤의 기억입니다.

9. Doors – Indian Summer
차분하다 못해 한기마저 돕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다 스러지는 기타는 어느 여름 오후 나무그늘에서 잠깐 졸다 깨는 순간 흐린 눈으로 본, 저 멀리 어딘가의 황량한 풍경을 눈앞에 데려옵니다. 절제라는 말을 모르는 것 같던 짐 모리슨의 사자후도 깊이 가라앉아 단순한 가사를 중얼거립니다. 모든 것이 꿈인가 싶지만, 설사 그것이 꿈속의 꿈이라 해도, 꿈은 언젠가 거듭하여 깨게 마련이고, 더구나 좋은 꿈이라면 빨리 깹니다. 그 뒤에 다가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10. Spiritualized – Smiles
엷고 바삭거리는 웃음일까요? 다시 하루가 시작됩니다. 20027019 | 최민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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