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22125755-0414argentina-EnanitosVerdesLos Enanitos Verdes – Nectar – Universal/Polygram Latino, 1999

 

 

국제적 취향의 아르헨티나제 ‘모던 록’ 음반
월드 뮤직에 관한 안내서 [The Rough Guide to World Music]의 아르헨티나 편에서 ‘록 나씨오날’은 다루지 않는다. 단, 이 책이 아르헨티나의 록 음악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데, 그걸 다루지 않는 이유는 책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번성하는 록 나씨오날 씬”에 대해서는 간략한 코멘트만 달고 있는데, 군부 독재 시기에는 찰리 가르씨아(Charly Garcia)와 리또 네비아(Litto Nebbia)가 (정권에 대한) “도전 세력”이었고, 오늘날 다소 편해진 시기에는 파불로소스 까디약스(Los Fabulosos Cadillacs)와 에나니또스 베르데스(Los Enanitos Verdes)가 “주도적 밴드”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The Rough Guide to World Music]의 소개가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단, 이들의 시선에서 에나니또스 베르데스가 파불로소스 까디약스와 더불어 ‘어느 정도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둘은 많이 다른데, 까디약스가 리드믹하다면 에나노스는 멜로딕하다. 어쨌든 1999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이 앨범이 노미네이트된 사실도 이들의 ‘국제성’을 증명한다. 즉, 이들은 아르헨티나의 경계를 넘어 범라틴권, 나아가 어느 정도는 미국 내에서도 지명도를 누리는 밴드다. 그 점에서 피또 빠에스(Fito Paez)나 미겔 마떼오스(Miguel Mateos)같이 국민적 스타의 지위를 누리는 존재와는 또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멘도사(Mendoza) 출신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로사리오 출신이 지배하는 록 나씨오날의 세계에서는 주변적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영미 팝/록의 어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저런 국민적 스타들의 음악보다 친숙하게 들린다.

펠리뻬 스따이띠(Felipe Staiti: 기타), 마르씨아노 깐떼로(Marciano Cantero: 베이스, 보컬), 다니엘 삐꼴로(Daniel Piccolo: 드럼) 3인조인 밴드의 결성은 1970년대 말 – 198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이들은 생각보다는 베테랑급에 속한다. 이미 1986년부터 다국적 메이저 회사인 CBS(지금의 소니)와 계약해서 활동한 이들은 첫 앨범에 수록된 “La Muralla Verde”를 히트시켰고,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 잠시 휴지기를 가졌지만 1995년 “Lamento Boliviano”(피리 소리가 인상적이다)와 이 곡이 수록된 [Big Bang]으로 재기(?)에 성공하면서 국제적 순회공연의 흥행이 보장되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음반의 레코딩/프로듀싱에 제프 백스터(Jeff Baxter), 나이젤 워커(Nigel Walker)같은 거물급이 참여하는 등 흥행을 보장받는 밴드만이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누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대감을 가지고 이 앨범을 들으면 다소 밋밋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밋밋함이 탄탄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동시에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타의 사용이 적절하게 듣기 좋다. “Hombre vegetal”에서 적절하게 땡땡한 톤으로 백킹과 솔로를 전개하는 것이나 “Tequila”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리프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나 “La Luz de Dia”에서 딜레이를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나 “Un futuro mejor”에서 깔짝깔짝거리는 스트러밍과 솔로를 교대해는 것 등에서 거장적이지는 않지만 솜씨좋은 연주력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오랜 연주를 통해 다져지지 않으면 힘든 합주를 통해 ‘싱어송라이터인 솔로 가수와 그의 백 밴드’라는 198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의 주류 록과는 무언가 다른 사운드를 전개한다. ‘얼핏 듣기에는 신선하지만 유심히 들으면 노련한’ 연주라고 하면 대략 어떤 사운드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라틴적 요소는 어디에 얼마나 있는 것일까. 없지는 않다. 멜로디는 팝적이고 수려하지만(“Piel”을 들으면 이들이 비틀스의 사도였던 시절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라틴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 “Cordilleras”와 “Mal de amores”에서의 리듬이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리듬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정통 민속음악을 록 음악과 접목시킨 것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악기편성 면에서 보더라도 께나(quena) 소리로 시작하고 시꾸스(sikus)와 차랑고(charango)도 등장하는 “Cordilleras”가 가장 남미의 느낌을 던지지만, ‘퓨전’이나 ‘하이브리드’같이 단어를 동원할만큼 거창하고 뻑적지근한 것은 아니다. 플루트와 퍼커션을 사용한 “Tequila”, 아코디언을 사용한 3박자의 “Ay Dolores” 등도 이런 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좋게 말하면 영미 팝/록의 규범을 수용하고 거기에 슬쩍 자신의 뿌리를 드러낼 줄 안다는 말이 될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것이 파생적이거나 모방적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후자의 평은 함부로 할 말은 아니다. 분명히 이런 음반은 최고의 명반으로 꼽지는 않더라도 ‘자주 집어 들게 되는’ 유형에 속한다. 적당히 구린(팝적인?) 면도 있고 그렇다고 수렁에 빠져버리지도 않는 긴장감이 있다. 무엇보다도 ‘잘 하는 밴드 음악’이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렇게 지상에서 메인스트림을 부단히 재정의해 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얼터너티브도 인디펜던트도 발생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들도 한때는 얼터너티브했듯이…(마르씨아노 깐떼로는 ‘라틴 록판 롤라팔루자’인 2001년 워차 투어(Watcha Tour)를 앞두고 MTV와의 인터뷰에서 10대 시절 찰리 가르씨아와 루이스 알베르또 스삐네따를 들으면서 자랐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선배 음악인에 대해 필요한 만큼의 존중의 염을 표시하는 것이 ‘국민적 록 음악의 번성’에 기여하는 하나의 요인인 것 같다). 20020718 | 신현준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Cordillera
2. Hombre vegetal
3. Tequila
4. Luz de dia
5. Un futuro mejor
6. Mal de amores
7. Ay Dolores
8. Rebeca
9. Piel
10. La banda de la esqu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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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Los Enanitos Verdes 홈페이지
http://www.losenanitosverdes.com
Los Enanitos Verdes 팬 페이지
http://jubilo.ca/musica/enani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