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22124024-0414argentina-BersuitVergarabatBersuit Vergarabat – Don Leopardo – Universal/Polygram, 1996

 

 

메스띠소의 후예들의 록 음악 활용법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신들을 ‘라티노(혹은 라티나)’라고 부르는 것조차 싫어할 때가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국 등지에서 저 단어가 ‘잡종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인데, 자신들을 ‘순종 백인’으로 생각하는 아르헨티나인들이 ‘족보없는 것들’이라는 의미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물론 순수한 혈통이라는 이데올로기만큼 엉터리인 것도 없고, 실제로 아르헨티나인들도 알게 모르게 인디오들과 피가 섞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서 자신들을 메스띠소(mestizo)라고 선언하는 밴드는 특이하다. 베르쉬뜨 베르가바라뜨(Bersuit Vergabarat)라는 이국적 이름의 밴드는 빌마 빨마 에 밤삐로스(Vilma Palma e Vampiros)와 다불어 이른바 ‘빠창가 메스띠소 모비멘또(pachanga mestizo movimento)’를 이끈 밴드로 평가된다. 빠창가가 쿠바에 기원을 둔 댄스 음악으로 ‘라틴 댄스 가운데 가장 광적인 춤’이라는 점, 그리고 메스띠소가 스페인계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혼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문화적 지향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보컬 세 명, 기타 두 명, 그 외 드럼, 베이스, 기타가 한 명씩 모두 8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의 편성도 ‘밴드’라기보다는 ‘컬렉티브’라는 이름에 가까워 보인다. (단순무식하게 말해서, 파불로소스 까디약스가 ‘멕시코 음악’처럼 들린다면, 베르쉬뜨 베르가라바뜨는 ‘브라질 음악’처럼 들린다).

이런 사전 정보를 접하게 되면 이들의 음악이 아르헨티나의 국경을 넘어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표상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Bolivian Surf”. “Bolero Militar”, “Madrugon” 등은 제목만 보더라도 라틴 냄새가 나는 곡들이고 실제로 음악을 들어봐도 관악기와 퍼커션이 이끄는 ‘라틴 음악’이다. 반면 앨범을 여는 “Espiritu de esta selva”는 레게(정확히 말하면 브라질의 삼바레게)에 기초한 왁자한 곡인데, 레게의 쿵짝거리는 리듬은 “Cajon 5 estrellas”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그저 왁자하게 한바탕 노는 라틴 음악의 향취가 줄기차게 계속되지는 않는다. “Yo no fui”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의미심장한 서장을 열더니 “Abundancia”에서는 피아노 소리와 함께 차분하지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Ojo por Ojo”에서 쓰래시풍의 리프와 속사포 랩핑으로 화끈한 공격성을 선보이다. 그리고 앨범의 중앙에 비치된 10분을 넘는 “La Mujer Perfecta”는 듣는 이를 원시적 제의(祭儀)가 벌어지는 장소로 인도하는 것만 같다. 그건 공포스럽지만 물리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온다.

후반부에서는 이런 이상한 분위기가 하강곡선을 그린다. 그래서 “En trance”같이 훵키한 록 사운드나 “Ruego”같이 기타가 징징거리는 사운드가 흥분은커녕 안도감을 선사하는 것도 묘한 경험이다. 그렇지만 “Querubin”과 “Encapuchados”에서 다시 등장하는 예의 그 신묘한 분위기는 다시 한번 긴장감을 던지는데, 이는 “Requiem”의 고적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거쳐야만 다시 진정된다. 어쿠스틱 기타가 이끄는 마지막 세 곡은 ‘이제 다 끝났음’을 말해준다.

이런 구성이 모종의 ‘컨셉트’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은 가사를 뒤져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트랙 사이에 휴지부(pause)를 넣지 않고 연속적으로 사운드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 음반이 ‘컨셉트 앨범’이라는 하나의 힌트일 것이다. 그렇지만 메시지를 굳이 알아 볼 필요는 없다. 그건 어쩌면 이제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들어보는 즐거움을 반감시킨다는 대가를 수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음반을 듣다 보면 ‘록 음악’이 이제 더 이상 앵글로색슨 청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다른 백인도 아니고 메스띠소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변형된 채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설사 그게 영미권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문화적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현상’인 것은 틀림없다. 음악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당연하고… 20020720 | 신현준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Espiritu de esta selva
2. Bolivian surf
3. Bolero militar
4. Yo no fui
5. Cajon 5 estrellas
6. Cielo trucho
7. Abundancia
8. Ojo por ojo
9. La mujer perfecta
10. Madrugon
11. Ruego
12. Querubin
13. Encapuchados
14. En trance
15. Requiem
16. Al fondo de la red
17. Piel de gallina
18. Mi cara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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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Bersuit Vergarabat 공식 사이트
http://www.bersui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