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24052559-0413cabaret얼마 전, [안녕하세요 카바레사운드입니다]라는 두 장짜리 컴필레이션 음반이 나왔다. ‘카바레사운드'(이하 ‘카바레’로 표기)라는 인디 레이블이 창립 5주년을 기념하여 내놓은 음반이다. 이 음반은 정확히 말해 5월 19일, 쌈지 스페이스에서 열린 카바레사운드 5주년 기념 공연에서 처음 배포되었다. 음반에 첨부된 부클릿을 보면 “앞으로도 그렇게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실 분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경의를 표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물론 나는 카바레에게 경의를 표할 생각이다.

당연히 이러한 경의는 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관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현재까지 카바레에서 나온 열 네 장의 음반(라이센스, EP, 컴필레이션 포함)에 대해 ‘전문적’이며 ‘객관적’으로 논할 식견이 부족할 뿐더러, “딱딱하고 고루한 한국 음악의 정글에서 야생적으로 살아남겠다”는 카바레의 기본 자세에도 어긋나리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카바레의 ‘문지기’인 이성문이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5년 동안 카바레를 끌어왔듯이, 나도 자유롭게 이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카바레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였다. 구체적으로는, 마이 로 어레이의 음반을 리뷰하면서부터였다. 이것도 실로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 건데, 원래 이 음반을 리뷰하기로 필자가 사정이 생겨 대타로 맡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한국 인디 록에는 거의 관심을 끊은 영미 록 매니아였다. 한국 인디 록에 흥미가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취향’ 탓이기는 하지만, ‘선입견’의 문제이기도 했다. 황신혜 밴드나 어어부 프로젝트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 내가 보기엔 이 땅의 인디 밴드 대다수는 ‘아류들’이(라고 볼 수 있)다. 모두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나 U2,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사생아들 같았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한국 인디 음악의 넓은 저변과 지역적인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한심한 편견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줄기차게 이십 년 동안을 다양한 형태의 영미 록만 즐겨온 인간이기에, 적어도 음악적인 면에서만 보면 서양 사람(그것도 백인)이 다 되어있었던 게 틀림없다. 즉 육신은 한반도에 묶여 있지만,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 정신만큼은 언제나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북아메리카나 UK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문화 제국주의에 철저히 세뇌된 식민지 노예 근성의 불쌍한 꼬락서니임에 틀림없지만, 수십 년 동안 세월의 풍화와 더불어 굳어온 편견의 마음가짐은, 그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자존심’까지 가세하여 깨질래야 깨질 수 없는 단단한 돌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마이 로 어레이를 들으며, 이러한 굳센 믿음이 다소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마이 로 어레이의 음악은 길거리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그런 종류의 음악이 아니었다. 물론 완전히 ‘독창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었지만, 뭔가 다른 건 사실이다(자세한 내용은 내가 쓴 리뷰를 참조하시기를…). 그 ‘뭔가’가 나를 사로잡았다. 이 음악은 한마디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음악이었다. 상업성은 눈꼽만치도 없는 순수한 모습의 음악이었다. ‘대중음악’에서 순수함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몹시 우스꽝스러운 짓이긴 하지만, ‘팬’의 단계를 넘어선 ‘매니아’라는 피곤한 상황으로선 나름대로 절박한 심정일 수도 있음을 밝히고 싶다. 더구나 오늘날 인디 록 씬이라는게 메이저로 뜨고픈 스타지망생의 대기용 벤치와도 같다는 걸(이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절대 아니다) 어느 누가 강력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인디 음악이란 사실 삐딱하게 보면, ‘나이트 클럽에 가기 싫은 애들이 차선책으로 택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 로 어레이의 음악은 그렇지 않았다. 애당초 스타로 떠보겠다는 욕망 자체가 거세되어 있으며, 또한 이런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거나 발을 구를 수도 없다.

이렇게 진귀한 특성이 마이 로 어레이만의 영역이라면 그런대로 넘어가겠건만, 그 배경에 카바레라는 강력한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바레의 손길이 없었다면 마이 로 어레이 같은 음악이 과연 한국에서 온전히 빛을 볼 수 있었을까? 마이 로 어레이는, 말하자면, ‘카바레 정신’의 산물이다. 레이블의 존재감과 아우라가 소속 뮤지션을 압도하는 이같은 사례는 대중음악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여기서 SM같은 기획사나 도레미 같은 거대 음반 제작사가 가수들을 ‘조종’하는 상황을 떠올려 비교하는 바보짓을 하지는 않겠다) 물론 영미에는 카바레와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다. 러프 트레이드(Rough Trade)와 매타도어(Matador), 신칸센(Shinkansen)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레이블과 계약 관계에 있는 뮤지션들이 활동 무대를 옮긴다 해도(혹은 메이저로 터전을 바꾼다 해도), ‘음악성’에 있어 두드러진 변화(변절?)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카바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마이 로 어레이가 카바레를 떠난다면, 과연 그들의 ‘순수한’ 음악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카바레는 ‘보호막’이다. 제대로 된 뮤지션십을 보존하기 어려운 한국 음악시장의 여건에서, 카바레는 특유의 고집과 신념으로 소속 뮤지션의 고유한 존재 가치를 끝까지 유지시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이는 사실 한국 대중음악의 슬픈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카바레의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하는 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볼빨간을 꼽을 수 있다. 카바레의 존재를 만방에 알린 문제작이자 볼빨간의 출세작 [지루박리믹스쇼] (1998)와, 볼빨간이 레이블을 옮겨 만든 두번째 음반 [야매] (2001) 사이에는 명백한 간극이 자리잡고 있다. 언뜻 보아 이러한 차이는 ‘음악성의 변화(성숙?)’로 여겨지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레이블의 힘’이 있고 없고의 탓이라 본다.

위에서 언급한 이른바 ‘카바레 정책’을 뚜렷하게 체현하는 뮤지션은 뭐니뭐니 해도 오! 브라더스를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카바레의 대표 이성문이 이끄는 오! 브라더스는 오늘날 한국 대중 음악 시장(인디 포함)의 기준으로 보면 철저하게 시대착오적인 밴드다. [안녕하세요 카바레사운드입니다]를 들으면 최근 들어 이들의 관심이 스윙 재즈 쪽으로 옮겨갔음을 느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 브라더스의 음악 스타일은 ‘해변 음악’이다. 1950~60년대 로큰롤이나 서프 뮤직을 근간으로 하는 오! 브라더스의 음악 세계는 이들의 밤무대 의상만큼이나 회고적이며 복고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키치’ 또는 ‘클리셰’에 대한 오! 브라더스의 깊은 성찰이다. 오늘날에도 ‘해변의 음악’은 여전히 존재하며, ‘밤무대’ 또한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것들은 ‘변두리 문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오! 브라더스, 또는 카바레의 고집은 변두리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촌스러움이란 거기에 의도성이 가미될 때 돌연 트렌드를 단숨에 초월하는 ‘아방가르드’가 되기 마련이다.

오! 브라더스와 마이 로 어레이 같은 극히 일부만을 가지고 카바레가 견지하는 조그마해 보이나 광활한 음악 스펙트럼을 전부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안녕하세요 카바레사운드입니다]는 앞서도 말했듯 두 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 디스크가 새로운 얼굴들을 중심으로 한 맛뵈기용 ‘샘플러’의 성격이 강하다면, 두번째 디스크는 5년간 카바레에서 발매된(사실은 1998년부터 나오기 시작) 음반들로부터 뽑아온 ‘히트곡 모음집’ 포맷에 가깝다. 여기 들어간 부클릿의 뒷면을 보면, 카바레 소속 뮤지션들이 표방하는 다양한 음악 장르가 패밀리 트리(family tree)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른바 ‘인디 음악’이라 불리는 장르의 컨벤션 거의 모두가 담겨있음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 5년 간 볼빨간, 오! 브라더스, 곤충스님 윤키, 코코어, 은희의 노을, 위치 윌 등이 작지만 확고하게 이룬 업적은, 향후 버스라이더스, 가정용 피아노를 위한 프로젝트, 플라스틱 피플, 타프카 붓다 등에 의해 이어나갈 예정이다. 1990년대 중반과 후반 반짝 붐을 탔으나 음악 역량의 한계와 유행의 변화로 좌초의 수순을 밟게 된 한국 인디 록의 현실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단단해져 가는 카바레의 위상은 분명 기적과도 같다. 그렇지만 마치 불현듯 엄청난 기량을 떨쳐 세계를 놀라게 한 월드컵 한국 대표팀처럼, 카바레의 기적도 들여다 보면 그 내부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비결이 자리잡고 있다. 즉 철저히 상업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유행에 부합하지 않는 음악을 추구하면서, 발매에 있어 신중을 기하는 것(로파이, 소량 소품종, 그리고 드림비트와의 제휴를 통한 배급 방식). 즉 생각은 자유분방하나 결코 무리수를 두지 않는 치밀한 자세가 카바레를 5년 동안 이끌어온 원동력이다. 이렇게 나온 카바레의 음반은, 영미 음악에 찌든 이들마저 감동과 신선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리만큼 빼어나다.

20020625035432-0413logo그렇다면 과연 카바레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카바레의 수장 이성문의 심오한 마음 속을 들여다 볼 길 없어 안타깝지만, 그 단초를 짚어볼 수는 있다. [안녕하세요 카바레사운드입니다]의 수록곡인 “주먹쥐고 일어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노래는 자칭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커버 전문 취미 밴드”인 스웻 제인(Sweat Jane,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명곡 “Sweet Jane”에서 따옴)이 연주한 곡으로, 이성문이 참여했다. 이 노래는 연주 기법이나 분위기로 보건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What Goes On”을 명백히 커버한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스웻 제인 만의 고유한 레퍼토리로 다가온다. 영미 대중음악에서 주요 포인트를 빌려왔지만, ‘고집’과 ‘감각’으로 완벽하게 자기화 시키는 것. 그리하여 이것을 어느 누구와도 견주기 힘든 독창적인 색깔로 탈바꿈하는 것. 바로 카바레가 지닌 진정한 힘이다.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 뛰어난 퀼리티를 자랑하는 최상의 레이블. 지금으로서는 한국엔 카바레 만이 유일하다. 20020621 | 오공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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