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09071003-mobyMoby – 18 – V2/EMI, 2002

 

 

영적인 안이함

솔직히 말하자. 스타의 이름값에 약하다고 해도 좋지만, 긴가민가하면서 모비의 이번 신보를 열댓 번도 더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다. 1995년의 [Everything Is Wrong]은 유럽식 테크노의 현란한 비트와 차가우면서도 서정적인 앰비언트에 인더스트리얼의 격렬함을 두루 갖춘, 말 그대로 ‘건축무한육면각체’ 같은 음반이었다. 1999년의 [Play]는 댄스 클럽을 넘어서는 막강한 영향력(과 판매량)을 행사한 음반이었고, 록과 하우스, 앰비언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그 위에 블루스와 가스펠이라는 ‘루츠’를 발라놓은 그의 요리 솜씨는 분명 경이로운 것이었다. 미국식 테크노란 이런 것이며, 그는 스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라고 (욕먹을 걸 각오하며)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신보를 처음 들었을 땐 믿을 수가 없었고, 두 번 들었을 땐 잘못 들은 줄 알았으며, 세 번 들었을 땐 내가 뭘 모르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열 일곱 번째쯤인가 들었을 때는 (‘이 곡이 저 곡이고 저 곡이 이 곡인가’ 하는 환청에 시달리면서)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이 음반이 진짜 ‘별로 만들어진(“We Are All Made of Stars”)’ 신비한 작품이라 내 이해를 벗어나는 것이거나, 아니면 안이한 실패작이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음반사의 홍보 자료에도 음악에 대한 얘기보다는 부클릿에 쓴 ‘휴머니즘적’ 에세이나(그런데 모비가 음반에 자기 에세이 쓴 게 한두 번인가) 작곡의 배경 같은 뒷이야기가 더 많았다. 그쪽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18]을 듣는 것은 설교를 듣는 것과 같다. 설교란 것이 ‘예전에 했던 얘기’를 지루하게 반복하는 것이라 결국에는 ‘듣다가 말다가’ 하게 된다는 점에서 분명 그렇다. 그리고 이 경우 설교용 참조 텍스트는 의심할 바 없이 [Play]이다(가끔씩 [Everything Is Wrong]을 주석으로 사용하는 듯 보인다). 보위에 대한 오마주인 “We Are All Made of Stars”나, 비트와 스트링 샘플이 약간씩 엇나가는 재미를 주는 “Extreme Ways” 같은 재미있는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은 [Play]에서 들려주었던 경이로움을 산만한 방식으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혹은, 재차 말하지만, 내 이해를 벗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In This World”는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버그가 침투한 “Natural Blues” 같고, “Signs of Love”는 “Porcelain”의 리믹스처럼 들리며, “Bodyrock”의 R&B 버전처럼 들리는, 앤지 스톤(Angie Stone)이 참여한 “Jam for the Ladies”는 누가 뭐래도 ‘앤지 스톤 feat. 모비’이다. “Sunday (The Day before My Birthday)” 같은 경우는 [Everything Is Wrong]의 “Hymn”과 “First Cool Hive”를 섞은 뒤 잡음만 우겨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력하게 든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전작과 닮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닮으면 또 어떤가? 스파이더맨처럼 이 빌딩 저 빌딩 뛰어다니면서 자기 색깔을 바꾸는 뮤지션은 그리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 모두가 뛰어난 뮤지션인 것도 아니다. [18]의 문제점은 이전의 성공들이 신선하지 못한 방식으로(혹은 내 이해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을 뿐 아니라(다시 말해 자꾸 옛날 음반들과 비교를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음반 안에서조차도 서로가 서로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각 트랙간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나마 구분이 갔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그 곡이 그 곡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중에는 몽롱한 기분에 (화창한 날 목성에서 찍은 것 같은 그의 사진처럼) 지구 밖으로 날아가 버린 듯한 착각마저 생긴다. 이걸 노린 거라면 분명 그는 성공했지만, 사는 건 힘들어도 난 아직 지구가 좋다. 아무리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너도 이리 와, 라는 표정으로 서 있어도. 20020528 | 최민우 [email protected]

5/10

수록곡
1. We Are All Made of Stars
2. In This World
3. In My Heart
4. Great Escape
5. Signs of Love
6. One of These Mornings
7. Another Woman
8. Fireworks
9. Extreme Ways
10. Jam for the Ladies
11. Sunday (The Day before My Birthday)
12. 18
13. Sleep Alone
14. At Least We Tried
15. Harbour
16. Look Back In
17. The Rafters
18. I’m No Worried at All

관련 사이트
모비 공식 사이트
http://www.mob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