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및 정리 : 김필호

인터뷰는 이이의 첫 전미 투어가 끝난 후인 4월 말경 이메일을 통해 질문들을 보냄으로써 시작되었다. 각자 생업 종사와 새 앨범 녹음에 바쁜 탓에 회답을 받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멤버 개개인의 입장을 비교적 균형 있게 알아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이메일 인터뷰의 장점을 찾을 수 있었다. 대면 인터뷰에서 얻을 수 있는 생동감이나 심층적인 후속 질문을 던질 여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의 서로 다른 대답을 ‘잘라 붙이기’ 방식으로 짜맞춰 보니 그런 대로 매끄러운 흐름이 생기는 듯하다.

인터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이들의 과거 및 현재 밴드 활동에 대한 간략한 질의 및 응답으로 이루어진다. 본론의 구실을 하는 두 번째 부분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그들의 종족 정체성(ethnic identity)에 관한 토론이다. 여기서는 미국 사회 내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 그리고 아시아계의 정체성과 음악간의 관계에 대한 이들의 견해가 피력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이의 향후 음악적 방향과 활동계획이 언급된다.

본격적인 인터뷰 질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히 각 멤버의 민족적 배경을 물어보았다. 일본계임이 이미 알려져 있는 밴드의 창시자 겸 리더 토빈 모리(Tobin Mori, 기타+보컬)는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답을 해오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중국계 체 차우(Che Chou)는 여덟 살 때 대만으로부터 베이 에어리어로 이주했다는 얘기를 자세히 해 주었다. 기타와 키보드를 맡은 박수영이 한국계임은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고, 드럼의 피터 반 응구옌(Peter Van Nguyen)은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다시피 베트남계이다.

각 멤버들의 개성은 답변 스타일에서 잘 나타나는데, 오랜 활동을 통해 이런 류의 인터뷰에 익숙해 있는 듯한 토빈과 수영은 본인들이 대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질문들만을 택해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답한 반면, 신진에 속하는 체는 거의 대부분의 질문에 아주 열심히 임해 주었다. 피터는 어떤 질문이건 짖궂은 농담으로 초지일관했지만, 이따금씩 특히 인종문제와 관련해서 통렬한 풍자로 들릴 만한 구석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러면 더 이상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 없이, 이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 보기로 하자.

코리아 걸(Korea Girl), 씨임(Seam),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

20020526105758-0411ee이이의 멤버들. 체, 모리, 수영, 피트(왼쪽부터).
[weiv] 각자의 과거 밴드 경력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먼저 토빈에게 묻겠는데, 코리아 걸은 왜 해체되었나? 듣기로는 첫 번째 앨범 녹음 중에 그랬다고 하던데, 기억하기에 너무나 괴로운 일이 아니라면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토빈 아주 괴로운 일이지만 어쨌든 얘기하겠다. 기본적으로 곡쓰기가 진행되면서 의견충돌이 있었다. 나는 창조적으로 작업하고 싶었던 반면, 나와 같이 곡을 쓰던 밴드 동료는 별로 그런 쪽으로 자극을 받지 않았거나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갈라서서 내 갈 길을 갔던 거다[주1].

[weiv] 짐 오루크(Jim O’Rourke)는 뉴욕으로 떠나면서 시카고 인디 록 씬에 대해 안좋은 말들을 남겼다는데, 시카고 씬에 대한 수영의 견해는? 많은 씨임 팬들은 당신이 왜 시카고를 떠나 미 서해안으로 갔는지 여전히 궁금해할 것 같은데.
수영 시카고 씬은 너무 넓어서 나로서는 어떤 일반화를 내리기가 곤란하다. 몇몇 저렴하면서도 훌륭한 녹음 스튜디오들, 좋은 공연장들 약간, 그리고 수많은 밴드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 보면 음악인으로서의 생활은 조금 더 수월해진다. 2년 전쯤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를 결심한 이유는, 시카고엔 8년 동안이나 있었고 변화를 꾀할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베이 에리어에서 사는 데는 몇 가지 좋은 점들도 있지만, 여기서 전업 음악인으로서 생계를 꾸리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weiv] 씨임의 옛 동료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수영 존 리(John Lee)는 광고회사에서 미술감독으로 일하고 있고, 최근 로트와일러 종(種) 개를 하나 얻었다. 크리스 맨프린(Chris Manfrin)은 회계사이고, 아처 프리윗(Archer Prewitt)의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윌리엄 “빌리” 신(William Shin)은 집에 있는 컴퓨터를 누가 얼마나 쓰느냐를 놓고 아들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애를 낳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weiv] 피터가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프로젝트인 토털 셧다운(Total Shutdown)은 어떤 밴드인가?
피터 토털 쉿타운(Shittown), 토털 렛다운(Letdown)… 한마디로 이거다: 카카카.

[weiv] 킥복싱을 한다던데 진짜인가?
피터 예전엔 킥복싱을 할 줄 아는 척했다. 이제는 시(詩)와 선셋(Sunset) 근처 해변가를 산책하는 일 같은데 관심있는 척한다. 나는 폭력을 즐기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목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일 따위는 삼가려 한다. 대신 시를 갖고 싸우겠다.

[weiv] 체의 경력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간단히 소개한다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서 이이에 합류하기 전에 시카고에 머물렀다고 하던데, 거기서 뭘 했나?
아마 이이 멤버들 중 나만 전에 웬만큼 알려진 밴드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막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친구 조엘 디놀트(Joel Dinolt)와 더불어 샌호제에서 블루 에스키모스(Blue Eskimos)라는 밴드를 조직해서 싸이키델릭 서프(surf) 연주음악과 리버브/피드백에 푹 절은 사운드트랙 음악을 연주했다. 에스키모스를 접은 다음에는 이 밴드 저 밴드를 떠돌면서 이런저런 베이 에리어 친구들과 연주했다. 그러다 토빈의 부탁으로 코리아 걸의 베이스 자리를 채워 LA에서 열린 씨임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두 번 섰고, 거기서 수영을 만났다.
수영과 얘기가 오간 후, 주변 환경에 변화를 줘야겠다고 결심하고 짐을 싸서 시카고로 가 비디오 게임 업계에 투신하기로 했다. 뭘 했냐고? 시카고 교외로 나가 비디오 게임 잡지에서 일한 게 아니라, 시카고 게토에 살면서 추위에 덜덜 떨며 소주를 퍼마셨다. 존 리, 그리고 주피터 썬(Jupiter Sun)의 매트 머독(Matt Murdock)과 같이 연주도 했고, 대체로 즐겁게 지냈다. 그곳이 그리워지곤 한다.

컴퓨터, 투어, 사운드트랙

[weiv] 토빈과 수영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들었다. 하루에 마운틴 듀[주2]는 얼마나 마시나?
수영 지난 순회공연 도중 20온스 마운틴 듀 코드 레드(Code Red)를 두 병 마셨다. 그게 우리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조성모처럼 노래하게 될지도 모르지.

[weiv] 좀더 진지한 질문을 해보자면, 최근 밥 몰드(Bob Mould)가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음악에 도입할 계획이 있는지?
나는 프로그램 중독자(code monkey)는 아니지만, 우리 음악에 테크놀로지를 결합시키는 일은 기꺼이 하고 싶다. 하지만 우린 새 밴드고 아직도 우리 고유의 사운드를 모색하는 중이므로, 전통적인 록 음악 악기들만 갖고도 폭을 좁혀가야 할 선택의 여지는 충분하다. 수영이나 나나 둘 다 방 안에서 전자 음악을 갖고 이리저리 두들겨 맞춰보긴 마찬가지다. 한 방에서 그러지 않을 뿐이지.
토빈 사실 나는 요즈음 ‘디지털’ 음악에 매우 질려있는 상태다. 하지만 컴퓨터는 훌륭한 드러머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관되고 박자가 정확하니까. 그래서 아마 컴퓨터를 깜짝출연(cameo) 시킬지도 모르겠다.

[weiv] 첫 번째 전미 순회공연은 어땠나? 이이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읽어보니 시카고에서 수영의 어머니가 해 주신 ‘뿅가는’ 음식(dope food) 얘기를 비롯해서 투어 도중에 여러가지 흥미로운 일들이 있었던 것 같던데. 또 다른 얘기들이 있는지?
피터 텍사스에서는 수영이 나한테 자동차 미션 오일을 마시게 했다. 투어가 끝나고 나서 그게 실은 녹차라는 걸 알았지만. 아 좋았던 시절이여…
투어 중 인종차별을 겪은 적이 딱 한번 있는데, LA를 막 벗어난 어딘가쯤에서였다. 뉴 올리언즈에서는 히피들이랑 인연을 맺기도 했고, 휴스턴에서는 마귀(같은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우릴 모두 돌아버리게 했다. 엘 패소에서는 멕시코계 미국인인 서지오 웡(Sergio Wong)이란 사람 집에서 머물렀다. 네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쓸쓸한 곳이었고, 동해안 지역은 아주 좋았다.
수영 투어는 대부분 즐거웠다. 어떤 공연들은 규모가 아주 작아서, 때로는 4~5명 관객 앞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우리가 누군지 모를 때가 원래 힘든 법이지만, 아시안 맨 레코드에서 새 앨범이 나올 때쯤이면 상황이 바뀌길 바라고 있다.

[weiv] 샌프란시스코 및 시카고에서 벌어진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제에서 연주한 것 외에도, 한국계 캐나다인 영화감독 헬렌 리(Helen Lee)의 단편 [은밀히(Subrosa)]에 음악을 작곡해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 일을 맡게 되었는지 얘기해달라.
수영 토빈과 체 그리고 내가 그 프로젝트 일을 하게 된 건 2000년 후반이다. 헬렌과 나는 거의 6년간 연락을 유지하면서 같이 뭔가 해볼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성사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건 앨범을 위해 곡을 쓰는 것과 많이 다르다. 처음 두 번 시도해서 나는 매우 어색한 결과들만을 얻었다. 체와 토빈은 함께 일하기 정말 좋았는데, 같은 비디오 테입을 수백번 되감아 보는 데도 짜증내지 않고 매우 참을성 있게 임했다.

[weiv] 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 소개한다면?
수영 나는 그 일에 제격이 아니지만 간단히 얘기한다면, 그 영화는 생모를 찾아 한국에 간 한 젊은 여성 입양아의 이야기다. 그녀는 엄마를 찾지는 못하고, 대신에 다른 무언가를 찾는 그런 평행선상에 놓인 삶을 버텨 나간다[주3].

모범 소수인종, 종족 정체성, 그리고 음악

[weiv]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가리켜 ‘모범 소수인종(model minority)’이란 용어가 쓰이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주4].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이 용어가 미묘한 형태의 인종차별과 고정관념을 숨기고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는데, 이에 대해 의견이나 개인적 경험이 있다면 얘기해달라.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신들은 소위 ‘아시아계 범생이(Asian geek)’라는 질나쁜 고정관념에 그대로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는데.
수영 내가 보기엔 (모범 소수인종이란 관념은) 전혀 미묘하지 않은, 단순명료한 인종주의다. 젠장, 우리가 괴짜처럼 보인단 말인가?
토빈 그 용어가 얼마나 부정확하고 기만적이든 간에 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신화(神話)가 됐든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야.
피터 내가 베트남인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나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들이 옳겠지.
고정관념은 악(惡)이지만, ‘모범 소수인종’이라는 변종은 개중에 그래도 나은 편이다. 모범 소수인종으로 사는 것은 말하자면 꽁지머리(mullet) 스타일을 하는 것과 같다. 즉 앞에서 보면 점잖아 보이지만, 뒷모습은 날라리 같다는 거다. 그건 어떤 면에서 전복적이다. 우리는 전형적인 록 밴드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게 유리한 점이 되는 건 우리가 실제로 로킹한 연주를 하면 사람들은 즐거운 놀람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멤버 전원이 아시아계인 록 밴드를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징 따위를 두들기리라고 생각할까?

[weiv]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위한 문화행사들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 음악을 통해 아시아계의 정체성에 관해 발언할 필요를 느끼나?
피터 물론이지. 우리의 공연 때 내가 향을 피우고 주문제작한 젓가락으로 드럼을 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 민족에 대한 궁극적 헌사인 것이지.
수영 보통 나는 음악을 만들 때 다른 사람들에 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투어를 통해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아시아계 미국인 밴드라는 것이다. 우리의 가사나 미학이 명시적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가(who we are), 즉 우리가 무얼 말하는가, 어떤 농담을 하는가 등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나는 우리 밴드와 음악에 대해 평온함을 갖게 됐다.
토빈 아니. 내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정치로 한정되거나 그에 속박되지 않는다. 인종 정치(racial politics)에 대한 내 견해를 언급해야 할 특별한 강박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노래 속에서 우연히 드러난다면 그건 괜찮다.

[weiv]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시각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랩/힙합이나 스포큰 워드와 비교해 볼 때도 록 뮤직이 소수민족에게 특별히 유리한 매체 구실을 해왔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가사의 메시지에 의존하거나 전통적 민속음악을 참조하지 않고서도 독특한 종족 정체성을 표현하는 음악적인 방식이 존재한다고 보나?
수영 그건 모두 사회적 맥락에 달려 있다. 중국이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록 음악은 변화를 부추기고 소요를 일으키는 등의 일에 적절한 수단이다. 하지만 이곳 미국에서 록 음악은 백인들에 의해 흡수합병된 음악형식이고, 따라서 거의 혁명적이지 않다.
그리고, (전통음악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판소리나 큰북을 갖고 장난치고 싶은 생각 없다.
토빈 흠… ‘독특한 종족 정체성’이란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데, 과연 그런 게 있기나 한가? 난 확신할 수 없다. TV 프로그램, 영화, 음악, 인터넷,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유입/유출 덕택에 서로 다른 문화들이 뒤섞이면서, 독특한 ‘종족정체성’이란 더이상 존재하는 것 같지 않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이의 사운드에서 특별히 아시아적인 게 있는지 확실치 않다. 제길, 아시안 아메리칸 사운드라는 게 있기나 한지 나도 모르겠다. 만일 내륙지방의 백인 애들이 우리 음악을 앨범 표지나 곡 제목도 없이 MP3로 다운로드받아 듣는다면, 아마 우리가 아시아계인지 결코 알아채지 못할 거다. 그렇다곤 해도, 만일 우리 음악을 세부까지 충분히 주의깊게 듣는다면 우리의 종족성(ethnicity)을 알아맞히긴 어렵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긍정이자 부정(yes and no)이다.

[weiv] 가사에 관해 말이 나온 김에, [Ramadan]에 수록된 “Asian Gangsta Kidz”에 얽힌 무슨 뒷얘기라도 있는지?
토빈 그런 건 없다. 그 가사는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선셋 주변 동네의 삶과 헤어진 여자친구에 관해 두서없는 의식의 흐름을 주절거린 것이다.

새로운 음악적 방향 – “100명을 위해 우리는 더 애쓴다”

[weiv] 이제 미래의 계획에 관해 얘기해보자. 이번 가을에 후속 앨범을 낼 예정이라고 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중론은 [Ramadan]이 과거 코리아 걸의 음악적 방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앞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을 것인가?
토빈 우리의 다음 앨범은 코리아 걸로부터 상당히 방향을 틀게 될 것이다. 데뷔 앨범 때와 지금 이이의 진용은 완전히 다르고, 나는 더 이상 곡을 혼자 도맡아 쓰지 않는다. 따라서 음악은 전보다 덜 포크풍이고, 연주가 더 늘어나고 더 로킹할 것이다. 공동 작업이 늘어났으므로 많이 다르게 들릴 것이다.
새 앨범 [For 100 We Try Harder]는 토빈과 그의 옛 동료들이 [Ramadan]에서 했던 것으로부터 명확히 벗어난다. 무엇보다도 절반 이상이 연주곡이고, 가공을 덜 거친 라이브 사운드에 가깝다. 피터와 내가 이이에 합류한 이래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잼 세션 중에 서로의 연주를 들으면서 고무되는 것, 그런 라이브의 상호작용을 얻는 것이었다. 토빈 어머니의 아트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데모 녹음 때 우리는 꼼꼼하고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그 결과 모든 곡들이 냉정하고 생기를 잃게 되어버렸다. 요즘은 많은 곡들에서 메트로놈을 치워버리고 그저 감흥에 맡긴 채 진행한다. 멤버가 전부 바뀌면 전혀 다른 밴드처럼 들리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짐작컨대 여전히 코리아 걸의 뿌리는 남아있을 테고, 우리 모두로부터의 영향이 그걸 보완하겠지.
피터 그럼. 다음 앨범에서 난 ‘괴상한(weird)’ 악기를 쓸까 생각중이다. 내 고국에서 온 바바카카카카 같은 거. 그건 숙달하기에는 위험이 따르는 악기다.

[weiv] 앞으로도 다른 아시아계 미국 음악인이나 영화인 혹은 기타 예술가들과 공동작업을 할 계획이 있는지. 베이 에어리어에는 이런 이들이 넘쳐난다고 들었는데.
피터 그렇다. 난 개인 프로젝트로 중국계 장로교회 성가대와 공동작업 중이다.
수영 우리에겐 일주일에 한번 모여 연습하는 것도 벅차다. 따라서 가까운 장래에 다른 이들과 같이 뭔가 할 것 같지는 않다.

[weiv] 해외, 특히 아시아 순회공연 계획은?
사실 아시아 투어를 하려 한다. 연결이 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
수영 새 앨범 발매 이후로 이번 가을쯤 아시아 투어(홍콩, 타이페이, 서울)를 잡으려고 한다. 피터는 서울의 클럽들을 돌아다니려고 몸이 달아 있다.
피터 난 아프리카 투어를 했으면 좋겠는데.

[weiv] 이게 인터뷰의 끝이다. 답변에 감사한다.
피터 고맙다. 세상에 평화를. 20020522 | 김필호 [email protected]

주1. 코리아 걸의 해체에 얽힌 이야기: 이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독자는 아래 관련 사이트로 나와 있는 토빈의 또 다른 인터뷰를 참고하길 권한다. 참고로 이 인터뷰에 걸린 링크 중 하나를 따라가 보면 토빈의 베스트 10 목록이 있는데, 거기엔 한국 인디 노이즈 밴드 퓨어디지털사일런스(PDS)가 끼어 있다.

주2. 카페인이 특히 많이 들어있어 날밤새기를 즐겨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청량음료.

주3. 헬렌 리: 이미 [weiv]에 소개된 대로 헬렌 리는 비너스 큐어스 올(Venus Cures All)에 몸담았던 샐리 리와 자매지간이며, 그녀의 영화 [우양의 간계(The Art of Woo)]는 작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헬렌 리와 [은밀히]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관련 사이트를 참조.

주4. 모범 소수인종: 1966년 사회학자 윌리엄 피터슨(William Peterson)이 일본계 미국인들의 성공담을 서술하면서 처음 쓰기 시작한 이래로, 특히 1980년대 레이건 정권기를 거치면서 타임, 뉴스위크 등의 보수언론이 그 확산에 크게 기여한 일종의 현대판 신화(urban myth). 이에 따르면 아시아계는 근면, 성실, 순응 등의 유교적, 가족주의적 윤리와 높은 교육열을 앞세워 문제 소수인종(problem minority)인 흑인이나 히스패닉과는 달리 소득향상과 신분상승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백인들보다도 더 백인적인(‘outwhiting the whites’) 지위에 이르게 되었다. 아시아계 이민인구의 역사적인 특수성에 기반해서 교묘하게 고안된 이 주장에 대해 비판가들은 그 배후에 깔린 백인 지배의 논리와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자세한 논의는 아래의 관련 사이트를 참조.

관련 글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록의 활로 찾기: ‘Directions in Sound’ 공연 후기 – vol.4/no.9 [20020501]
Various Artists [Ear Of The Dragon] 리뷰 – vol.4/no.9 [20020501]
aMiniature [Murk Time Cruiser] 리뷰 – vol.4/no.9 [20020501]
Versus [Two Cents Plus Tax] 리뷰 – vol.4/no.9 [20020501]
Aerial M [Aerial M] 리뷰 – vol.4/no.9 [20020501]
Mia Doi Todd [Zeroone] 리뷰 – vol.4/no.9 [20020501]
Venus Cures All, [Paradise By The Highway] 리뷰 – vol.4/no.9 [20020501]
eE, [Ramadan] 리뷰 – vol.4/no.9 [20020501]
Korea Girl, [Korea Girl] 리뷰 – vol.4/no.9 [20020501]

관련 사이트
이이 공식 사이트
http://www.eetheband.com
토빈 모리의 또 다른 인터뷰
http://209.80.37.9/tobininterview.html
헬렌 리의 단편 영화 [은밀히] http://www.wmm.com/catalog/pages/c530.htm
‘모범 소수인종’ 신화에 대한 분석과 비판
http://modelminority.com/history/primer.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