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21100257-HellacoptersHellacopters – High Visibility – Gearhead/Universal, 2002

 

 

‘신념의 수호자’들의 화끈한 자기 증명

스웨덴의 ‘정통’ 하드 록 밴드 헬라콥터스(The Hellacopters)는 활동한지 8년이 다 되어가는 베테랑이다. 그동안 이들은 유럽과 호주 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미국에서는 서브 팝(Sub Pop) 레이블에서 음반이 발매되기도 하다가, 최근 들어 메이저인 유니버셜(Universal)의 배급망을 타게 되었다. 밴드 활동 초기 이들은 모터헤드(Motorhead) 풍의 거칠고 스피드 있는 메탈을 연주했으나, 점차 1970년대 스타일의 하드 록으로 방향을 바꿔 나갔다. 헬라콥터스의 리더인 닉 로열(Nick Royale, 본명은 닉 안데르손(Nick Anderson))은 원래 데스 메탈 밴드 엔툼드(Entombed)의 드러머였고, 애초에 헬라콥터스는 어렸을적 친구들과 재미삼아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엔 헬라콥터스에서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헬라콥터스의 최신작이자 통산 네번째 정규 음반인 [High Visibility] (2002)는 거침없이 내달리는 하드 록 사운드로 가득하다. 보통 헬라콥터스는 거라지 록 계열의 밴드로 분류되어 있는데, 사실 이들은 소박하고 투박한 거라지 사운드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는, 화려하고 연주 기교도 상당히 튼실한 록을 능란하게 연주하고 있다. 사운드의 퀄리티도 ‘로파이’와는 거리가 멀고, 세심한 엔지니어링으로 잘 뽑혀나온 상태다. 여타 네오 거라지 록 밴드들이 일부러라도 거칠고 조잡한 환경에서 즉흥에 가까운 레코딩을 선호하는 경향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자료를 보면 헬라콥터스는 MC5, 스투지스(The Stooges), 자니 썬더스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Johnny Thunders & The Heartbreakers), 키스(Kiss)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데, 아무래도 사운드 보다는 화려한 스테이지 액션에서 더 많은 영감을 받은 듯 싶다. 더구나 이들은 언더그라운드 밴드도 아니다. 헬라콥터스는 유럽 지역에서 스타급 밴드로 명성을 얻고 있으며, [High Visibility]는 스웨덴에서 골드 레코드를 받을 만큼 많이 팔렸다.

위에서 언급한 헬라콥터스의 상황은 이른바 ‘거라지 정신’에 위배되는 게 아닐까 싶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High Visibility]를 여러 번 되풀이 해 들어 보아도, 첫곡인 “Hopeless Case Of A Kid In Denial”부터 끝 곡 “Envious”까지, 이것들은 우리가 들어오던 그런 종류의 거라지 록이 아니다. 매끈하게 빠진 ‘웰 메이드(well-made) 록’인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주류’의 요소를 두루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High Visibility]를 선뜻 ‘상업 록’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음반의 사운드는 그 표현 방법에 있어 놀랍도록 ‘구닥다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헬라콥터스는 ‘세련된 구식’이라는, 상당히 낯설고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러한 구식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을 보면 대개 두가지 경우 중 하나다. 작위와 키치적인 감수성으로 신랄한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것. 아니면 노골적으로 뻔뻔하게 노스탤지아에 호소해 지갑 넉넉한 이들의 충동을 부추기는 것. 하지만 헬라콥터스는 이 두 가지 범주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대신 이들의 존재 의의를 이루는 키워드는 바로 ‘신념’이다. 시대와 돈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비아냥을 받건 말건 개의치 않고 우직하리만치 구식 하드 록을 밀어붙이는 헬라콥터스의 태도는, 존경심마저 들 정도다.

더구나 이제는 본고장에서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진 아메리칸 스타일 하드 록의 ‘원형’을, 저멀리 스칸디나비아의 어느 한적한 곳에서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신기하다. 그렇다고 이걸 결코 ‘모방’이라고만 볼 수도 없고, 오히려 이들의 하드 록을 향한 뜨겁고 진지한 열정이 가득 느껴지는 것은 과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High Visibility]는 이 음반에 담긴 사운드가 거라지 록이냐 아니냐의 차원을 떠나(이러한 ‘분석’은 자칫 심리적 공허함과 맞닥뜨리게 될 위험이 크다), 록 음악을 대하는 ‘태도’ 자체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지게 만든다. 록은 과연 ‘시류’를 타는 음악인가 아니면 ‘집념’의 음악인가? 지금까지 네오 거라지 록이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막 내쉬려는 순간, 새로운 듯 하지만 좀 더 곤혹스러운 문제 제기를 예기치 않게 마주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록 음악을 듣는 일은 참으로 골치 아프다. 20020520 | 오공훈 [email protected]

6/10

수록곡
1. Hopeless Case Of A Kid In Denial
2. Baby Borderline
3. Sometimes I Don’t Know
4. Toys And Flavors
5. You’re Too Good (To Me Baby)
6. Throw Away Heroes
7. No Song Unheard
8. Truckloads Of Nothin’
9. A Heart Without Home
10. No One’s Gonna Do It For You
11. I Wanna Touch
12. Hurtin’ Time
13. Env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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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공식 사이트
http://www.houseofkicks.se/hellacopters
비공식 사이트
http://home4.swipnet.se/~w-45468/first.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