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14103035-0410detroitcobrasDetroit Cobras – Life Love and Leaving – Sympathy For The Record Industry, 2001

 

 

변명하지 않는 커버 밴드

세션맨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있다. 창작은 도외시하면서 연주력에만 중점을 두는 태도 또는 지향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누가 누구보다 기타를 더 빨리 친다”라든가 “아무개의 음역은 네 옥타브가 넘는다”라는 식의 담론에 너무나 오랫동안 시달려왔다. 이런 점에서 음악의 기교적 측면보다 창작적 측면에 더욱 주안점을 두는 음악듣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가끔씩은 창작에 대한 이러한 강조가 세션맨 이데올로기와 다를 바 없는 ‘작곡가 이데올로기’로 변질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즉 ‘노래만 잘하는 가수는 반쪽짜리 뮤지션에 불과하다’라든가 ‘연주를 아무리 잘해봐야 작곡을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등의 태도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이다. 세션맨 이데올로기가 문제시되는 것은 그것이 연주력을 강조해서가 아니라 연주력만이 전부인 것으로 못을 박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작곡가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음악의 한 부분을 이루는 작곡만을 절대화함으로써 우리가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의 가능성과 폭을 크게 제한한다.

사실 연주를 잘 하고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음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대단히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나 정경화가 평생 남의 음악만 연주했다고 해서 이들을 ‘반쪽짜리 뮤지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대중음악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음악은 어디까지나 음악일 뿐이다. 좋은 연주는 좋은 음악을 더욱 값지게 하지 결코 그것의 질을 저하시키지 않는다. 일부의 사람들이 연주력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그들이 ‘악기나 목소리를 가지고 하는 서커스’를 연주력이라는 말로 잘못 이해하기 때문인 듯하다. 연주력을 중시하는 클래식 음악에서도 어떤 오페라 가수가 자신의 넓은 음역만을 과시하려 들다가는 3류라고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그 동안 ‘잘한 연주’로만 알고 있던 그 많은 현란한 연주들은 실제로는 ‘못한 연주’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연주의 관건이 되는 것은 곡에 대한 해석이다. 좋은 연주는 연주자가 곡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의 핵심에까지 파고들어 곡의 잠재력을 충분히 구현해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이 점에서 연주는 구상이 배제된 실행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구상의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연주자가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뮤지션이고 아티스트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디트로이트 코브라스(The Detroit Cobras)는 이름 그대로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네오 거라지 록 밴드다. 이들이 여타의 수많은 네오 거라지 록 밴드들과 구별되는 점은 이들에게 오리지널 곡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커버 밴드다. 그러나 이들은 부끄럽지 않은 커버 밴드다. 이들은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발굴해서 연주하며, 탁월한 해석력으로 원곡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들의 음악은 신곡이나 다름없고, 이들의 음악적 태도는 여느 창조적 음악인들에 못지 않게 모험적이다.

디트로이트 코브라스가 이 앨범에서 다루는 레퍼토리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R&B와 소울 그리고 걸 그룹 팝이다. 이들은 이런 음악을 신나고 경쾌한 거라지 로큰롤로 바꿔놓는다(매력적인 발라드도 두 곡 있다). 그러나 이들은 원작자의 의도를 거슬러 자기들 마음대로 곡을 요리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에 입각하여 오리지널 버전의 표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뿐, 곡의 본질적인 내용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곡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창출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제한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그 동안 많은 커버버전들이 범했던 ‘내용 없는 스타일’이라는 우를 반복하지 않는다. 이들이 원곡을 다루는 방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템포를 조금 빠르게 하고 비트를 좀 더 강화한다. 이는 다소 평면적이고 단조롭게 들리는 원곡들을 보다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러면서 이들은 장식이 적고 기름기가 제거된 사운드를 통해 원곡이 지닌 순수함과 깨끗함을 보존하며, 과시적이지 않은 보컬과 연주를 통해 청취자가 곡 자체를 최대한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디트로이트 코브라스의 연주는 그야말로 흠을 잡기 어렵다. 리듬섹션은 최적의 속도와 강도로 음악을 탄탄히 떠받치며 두 대의 기타는 (가끔 퍼즈 톤이 도입되기도 하지만) 밝고 상큼한 내추럴 톤의 음색으로 곡에 활기를 더한다. 그러나 이 앨범은 단연 보컬리스트 레이첼 내기(Rachael Nagy)의 독무대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소울풀하면서도 여유 있는 보컬은 자칫 경량급이 되기 쉬운 이 앨범에 격조 높은 멋과 깊이를 부여한다. 감정의 극단으로 치닫거나 현란한 테크닉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곡이 지닌 세밀한 감정의 결을 낱낱이 끄집어내 표현하는 그녀의 솜씨는 곡마다 상이한 색깔과 느낌으로 나타나 듣는 이를 매혹시킨다. “Shout Bama Lama”의 미소를 머금게 하는 유머와 “Cry On”의 애잔한 우수 그리고 “Hey Sailor”의 활달한 기개 등은 그녀의 목소리가 지닌 다채로운 표정들을 보여주는 단지 일부의 사례들일 뿐이다.

디트로이트 코브라스의 [Life Love and Leaving]은 좋은 연주자의 미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비록 몇몇 트랙에서 곡 자체의 옛스러움을 극복하는데 실패한 모습을 노출하기도 하지만, 곡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디테일에 소홀하지 않는 이들의 해석적 접근은 대단히 올바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곡을 전체와 부분의 양면에 걸쳐 철저히 꿰뚫고 있지 않으면 취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곡 하나를 두고 이들이 얼마나 많은 숙고와 탐구를 거쳤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이들은 곡 자체가 지닌 운동감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자잘한 재미를 아울러 추구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관행을 돌이켜 볼 때 이들이 여기서 커버한 곡들은 대부분 앨범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필러(filler)들이다. 이런 B급 노래들을 가져다 팝의 고전에 못지 않은 후광을 불어넣는 이들의 솜씨는 이들에게 붙여진 커버 밴드라는 타이틀을 전혀 불명예스럽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20020510 | 이기웅 [email protected]

6/10

사족: 수록곡 옆에 병기된 것은 곡을 쓴 사람들의 이름이다. 관심있는 독자들은 참조 바람.

수록곡
1. Hey Sailor (Mickey Lee Lane)
2. He Did It (Jackie DeShannon)
3. Find Me A Home (W.Scott & O.Blackwell)
4. Oh My Lover (Ronnie Mack)
5. Cry On (A.Toussaint)
6. Stupidity (S.Burke, B.Chivian & J.Martin)
7. Bye Bye Baby (Mary Wells)
8. Boss Lady (Davis Jones)
9. Laughing At You (Guardinias)
10. Can’t Miss Nothing (Ike Turner)
11. Right Around The Corner (Singleton T. McCoy)
12. Won’t Dance With Me (J.McCarty & W.Levise)
13. Let’s Forget About The Past (Clyde McPhatter)
14. Shout Bama Lama (Otis Re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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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The Detroit Cobras 공식 사이트
http://www.thedetroitcobras.com/
Sympathy For The Record Industry 공식 사이트
http://www.sympathyrecords.com/
디트로이트 밴드 링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detroitrockandroll/